파혼당하고 주식으로 대박 났다

6화: 첫 번째 사이다
화요일 아침 여덟 시.
창문 틈으로 스며든 햇살이 원룸 바닥을 비췄다. 며칠 밤을 지새운 눈가가 무거웠지만 강현우의 정신은 얼음물에 담근 듯 맑았다.
책상 위 모니터에는 세 곳의 시중은행 계좌 잔고가 나란히 떠 있었다.
18억 원, 17억 원 그리고 15억 8천만 원.
도합 50억 8천만 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이 숫자로 정렬되어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월세와 카드값을 걱정하며 통장을 들여다보던 자신이 아니었다.
현우는 차가운 생수를 들이켜며 외장 메모리에 저장된 거래 기록을 확인했다. 메디큐어 숏 포지션 청산으로 벌어들인 자금은 정당한 매매 수익이었고 모든 자료는 암호화 폴더에 안전하게 백업해 두었다.
그때 책상 한구석에 놓인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서유리가 아니었다.
[유리 어머니]
결혼 준비 내내 현우의 집안 형편을 들먹이며 예단과 가전을 더 해오라고 압박하던 전 예비 장모였다.
현우는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녹음 기능을 켰다. 상대가 무슨 말을 꺼낼지는 뻔했다.
"여보세요."
수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앙칼진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너 지금 제정신이니? 네가 감히 우리 유리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내?"
인사도 없이 쏟아진 고함이었다. 현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낮게 대답했다.
"보증금 반환 기한을 정해서 정식으로 통보한 겁니다."
"정식 통보? 웃기고 자빠졌네! 네가 낸 그깟 푼돈 천오백만 원 때문에 우리 집안 망신을 시켜? 호텔 예식장 취소 위약금만 수천만 원이야! 그 위약금은 네가 다 물어내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적반하장으로 돈을 내놓으래!"
어머니의 숨소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윤 상무님이 우리 유리 짝으로 들어오기로 한 마당에 너 같은 게 고춧가루를 뿌려? 가난뱅이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기본 예의도 없구나. 네 부모가 자식 교육을 그렇게 시켰어?"
부모 이야기까지 들먹이는 순간 현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삼 년 동안 명절마다 찾아갔을 때 그들이 보내던 멸시가 떠올랐다. 부모님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사위 대접 한 번 해준 적 없던 집안이었다.
"말씀 삼가시죠."
현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서늘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보증금 천오백만 원은 제 피 같은 돈입니다. 유리가 일방적으로 파혼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 이상 제 돈을 돌려받는 건 당연한 권리입니다."
"바람? 너처럼 능력 없는 놈이랑 사느니 능력 있는 상무님 만나는 게 당연하지! 평생 월급쟁이로 쥐꼬리만 한 돈이나 벌 놈이 어디서 잘난 척이야!"
어머니는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당장 그 내용증명 취하하고 사과문 써서 보내! 안 그러면 윤 상무님 회사 법무팀 동원해서 너 평생 빚더미에 앉게 만들 테니까!"
"법무팀이든 누구든 데려오십시오. 반환 기한은 다음 주 금요일까지입니다. 그날까지 입금되지 않으면 즉시 지급명령 신청과 신혼집 전세보증금 채권 가압류 들어갑니다."
"뭐? 가압류? 이 자식이 진짜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현우는 상대의 말을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원룸 안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현우는 녹음 파일이 정상적으로 저장되었는지 확인했다. 상대의 협박과 폭언은 법정에서 아주 유용한 정황 증거가 될 터였다.
지잉-
전화가 끊기자마자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유리 어머니: 너 통장에 십만 원이나 있니? 천오백만 원에 벌벌 떠는 꼴이라니 가관이다. 우리 유리가 버려줬으면 감사한 줄 알고 꺼져라. 식장 위약금 분담조로 오백만 원 당장 입금해라. 농협 302-XXXX-XXXX 서유리. 오늘 안 보내면 너희 회사 찾아가서 뒤집어엎을 줄 알아라.]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도리어 위약금 오백만 원을 뜯어내겠다는 요구였다.
현우는 문자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분노보다 먼저 치민 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소였다.
자신을 여전히 보증금 천오백만 원에 목을 매는 힘없는 가난뱅이로만 보고 있었다. 저들은 돈의 액수로 사람의 인격을 저울질하는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저울질에 걸맞은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도리였다.
현우는 스마트폰 뱅킹 앱을 열었다.
세 개로 분산된 계좌 중 주식 매수를 위해 한곳으로 모아두었던 대표 계좌 화면이 떴다.
[강현우 님 대표 계좌]
[출금 가능 잔액: 5,082,410,000원]
오십억 팔천이백만 원.
현우는 망설임 없이 화면 캡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서유리 어머니의 문자 대화창을 열었다.
사진 첨부 버튼을 눌러 방금 캡처한 잔고 이미지를 선택했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 파란 말풍선과 함께 50억 원의 숫자가 전송되었다.
현우는 곧바로 다음 문장을 입력해 보냈다.
[강현우: 잘못 보냈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한 줄을 덧붙였다.
[강현우: 천오백만 원은 다음 주 금요일까지 정확히 입금하세요. 단 일 원도 깎아드릴 생각 없습니다.]
문자를 전송한 뒤 현우는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엎어놓았다.
단 십 초도 지나지 않았다.
엎어둔 스마트폰이 책상을 부술 듯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다시 서유리 어머니의 번호가 번쩍이고 있었다.
현우는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며 통화를 연결했다. 스피커폰을 켜자 수화기 너머에서 헐떡이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 너 이거 뭐야?"
조금 전까지 고함을 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완전히 질려버린 목소리였다.
"어디서 남의 통장 사진을 캡처해서 장난질이야? 네가 무슨 수로 오십억이 있어? 이거 조작이지? 사기 치면 감옥 가는 거 몰라?"
현우는 낮게 웃었다.
"조작인지 아닌지는 은행에 직접 확인해 보시죠. 계좌주 이름에 제 이름 강현우 석 자 안 보이십니까?"
"이, 이게 진짜 네 돈이라고? 말도 안 돼. 며칠 전까지 천오백만 원 없으면 죽겠다고 하던 놈이 어떻게……."
"제가 얼마를 가지고 있든 그건 아주머니가 상관할 바 아닙니다. 중요한 건 제가 가진 오십억 중에서 천오백만 원도 제 돈이라는 사실이죠."
현우의 음성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전세금 천오백만 원. 유리가 다른 남자와 살겠다고 가로채려던 그 돈은 원금 그대로 받아내겠습니다. 만약 기한을 넘기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지연이자까지 청구할 테니 그리 아세요."
"현, 현우야!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라!"
어머니의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현우는 가차 없이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상대의 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 등록했다.
저쪽 집안은 지금쯤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가난하다고 짓밟았던 상대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거액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과 박탈감.
하지만 이것은 복수의 시작에 불과했다.
현우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오전 여덟 시 사십오 분.
국내 주식시장이 열리기까지 십오 분이 남아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싸움으로 아침을 허비할 시간은 없었다. 저들에게 진짜 지옥을 보여주려면 자신이 쥔 무기를 더 단단하게 벼려내야 했다.
현우는 PC 모니터의 증권사 HTS 화면을 열었다.
시중은행에 흩어두었던 50억 원 중 1차 투자금으로 5억 원을 증권 계좌로 이체했다. 거액을 한 번에 주식 계좌로 옮기지 않은 이유는 명확했다. 아직 시장의 유동성을 확인하지 않았고 단일 종목에 무리한 자금을 쏟아부으면 미래 차트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우는 검색창에 종목코드를 입력했다.
[한성바이오]
현재 주가 8,200원. 시가총액 약 1,200억 원의 코스닥 바이오 벤처 기업이었다.
엔터를 누르자 화면 가득 한성바이오의 일봉 차트가 펼쳐졌다.
동시에 현우의 시야 한구석에서 붉은빛이 번져 나왔다.
전지적 차트 시스템의 궤적이 캔들 그래프 위로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현재가 8,200원에서 시작된 붉은 선은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8,000원에서 8,300원 사이의 좁은 박스권을 지루하게 횡보하고 있었다. 거래량도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흘 뒤 수요일 장 마감 무렵부터 붉은 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목요일 개장과 함께 상한가.
금요일 점상한가.
그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 그리고 수요일까지 이어지는 파죽지세의 5연속 상한가 행진.
주가는 8,200원에서 순식간에 3만 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무려 300퍼센트에 육박하는 폭등 궤적이었다.
"사흘 뒤에 뭔가가 터진다."
현우는 기업 공시와 뉴스 탭을 살폈다. 최근 한 달간 올라온 공시는 전환사채 발행과 임시주총 소집 결의가 전부였다. 시장 어디에도 폭등을 암시하는 단서는 없었다.
개미들은 소외되어 있었고 세력만이 물밑에서 폭탄을 조립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폭등 뒤의 모양새는 더욱 흥미로웠다.
5연속 상한가를 찍은 붉은 선의 끝자락에는 칼로 베어낸 듯한 수직 절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숨에 하한가로 직행하는 검은 골짜기. 전형적인 세력의 설거지 패턴이었다.
"호재를 터뜨려 개미들을 끌어모은 뒤 최고점에서 전량을 떠넘기고 도망칠 생각이군."
현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세력이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들이 파놓은 함정의 입구와 출구를 모두 알고 있는 이상 이 판의 지배자는 현우 자신이었다.
오전 아홉 시 정각.
알림음과 함께 국내 주식시장이 일제히 개장했다.
호가창의 숫자들이 붉고 푸른빛을 번쩍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성바이오의 시초가는 전일 대비 10원 오른 8,210원에 형성되었다. 매수 잔량과 매도 잔량 모두 몇천 주 단위에 불과했다. 하루 거래량이 수십만 주에 불과한 소형주에서 5억 원을 한 번에 긁어모으면 호가가 단숨에 튀어 오를 판이었다.
현우는 메디큐어 선물 매매에서 터득한 원칙을 꺼내 들었다.
'주문은 나눈다. 세력의 눈을 속이고 차트의 왜곡을 막는다.'
그는 5억 원의 자금을 1억 원씩 다섯 번으로 쪼갰다. 1억 원이면 현재 주가 기준으로 약 12,200주였다.
현우는 매도 1호가인 8,220원에 걸려 있는 15,000주의 매도벽을 확인했다. 세력이 개미들의 추격 매수를 누르기 위해 깔아둔 뚜껑이었다.
그는 첫 번째 1억 원 주문을 입력했다.
지정가 8,220원에 12,000주 매수.
클릭과 함께 체결음이 울렸다.
[매수 체결 완료: 한성바이오 12,000주 (체결가: 8,220원)]
호가창의 매도 잔량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붉은 미래선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사흘 뒤 상한가로 솟구치는 거대한 궤적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현우는 숨을 죽인 채 호가창을 관찰했다.
잠시 후 매도 2호가에 걸려 있던 물량이 취소되더니 8,190원 매수 호가 쪽으로 대규모 매수벽이 깔렸다. 세력이 주가를 더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밑에서 물량을 받아먹으려는 매집 움직임이었다.
"눈치채지 못했군."
현우는 차분하게 다음 주문을 넣었다.
세력이 받쳐둔 매수벽 위에 살짝 얹듯이 8,200원에 두 번째 12,000주를 분할 매수했다.
체결음이 연이어 울렸다.
삼십 분에 걸쳐 호가를 어지럽히지 않는 선에서 다섯 번의 분할 매수가 모두 끝났다.
[한성바이오 보유 잔고]
[보유 수량: 60,975주]
[평균 단가: 8,200원]
[총 매입 금액: 499,995,000원]
5억 원어치의 물량이 현우의 계좌로 온전히 들어왔다.
차트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붉은 미래선은 여전히 8,200원 부근에서 잔잔하게 숨을 고르다가 사흘 뒤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자신이 투입한 5억 원의 물량은 세력의 계획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폭등 열차의 일등석에 탑승하기에 완벽한 크기였다.
책상 위의 스마트폰이 다시 한 번 진동했다. 이번에는 서유리의 이름이었다.
엄마에게서 50억 원 잔고 캡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색이 되어 전화를 걸어온 것이 분명했다.
현우는 화면을 흘겨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안달 낼 것 없어. 너희들이 무너질 자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현우는 통화를 거절하고 실시간 시세창을 잠갔다.
사흘 뒤. 상한가 5연타의 서막이 오르면 이 주식판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될 터였다. 그리고 그 전쟁터의 가장 높은 곳에는 강현우가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