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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을 깨부수고 돌아왔다7화

100층을 깨부수고 돌아왔다

100층을 깨부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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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거래의 조건

치지직!

격실 외벽을 파고드는 초음파 절단기의 비명이 귓전을 찢었다.

두꺼운 합금 문 표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시커먼 쇳가루가 튀었다. 틈새로 흘러드는 열기에 좁은 공간의 공기가 삽시간에 메말랐다.

서연우의 손에 들린 전자식 권총의 총구가 미세하게 떨렸다.

글래스 위로는 붉은 경고창이 점멸했다.

[비인가 생체 신호 접근 중: 4초 전]

[외벽 절단율: 82%]

서연우의 시선이 굳게 닫힌 북서쪽 격벽과 태현의 얼굴을 번갈아 훑었다. 방금 전 관제실 문과 정찰 드론을 멈춰 세운 힘을 보았기에 경계심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밖의 수색대는 자비를 베풀 자들이 아니었다.

“강태현.”

서연우가 이를 악물며 다그쳤다.

“이 문을 열 수 있다고 했지? 원하는 대가가 뭐야?”

태현은 문틈으로 스며드는 탄내를 맡으며 서늘하게 말했다.

“고농축 영양제. 그리고 이 저장소를 빠져나갈 지도.”

서연우의 눈매가 사납게 좁혀졌다.

“영양제? 지금 그딴 걸로 흥정할 틈이 있어?”

“몸이 무너지면 문을 열어도 의미가 없다. 네가 가진 군용 앰플을 내놔라. 탈출 경로도 함께.”

태현의 어조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10년간 굳어 있던 근육은 관제실을 빠져나오는 동안 이미 한계에 달했다. 어깨의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고 시야 가장자리에는 검은 점들이 점멸했다.

영양분을 채우지 못하면 다음 격벽의 회로를 덮어쓰는 순간 뇌신경이 타버릴 판이었다.

쿵!

바깥에서 절단 장치가 격벽의 주 빗장을 완전히 부수고 밀고 들어왔다. 틈이 벌어지며 특수안전부 대원의 검은 헬멧이 번뜩였다.

“발견했다. 오류 개체 119번 및 미확인 침입자.”

시간이 없었다.

서연우는 가슴 주머니에서 은색 원통형 앰플 하나를 꺼내 던졌다. 동시에 손목 단말기에서 분리한 소형 데이터 칩 하나를 태현에게 튕겼다.

“플러그아웃에서도 몇 개 안 남은 고순도 합성 영양제야. 데이터 칩 안에는 시티 7 지하 배수로 도면이 들어 있어. 이제 문 열어!”

태현은 공중에서 앰플을 낚아챘다. 주저 없이 안전 캡을 꺾어 목덜미 경동맥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푸쉬익!

고농축 바이오 에너지가 얼음물처럼 혈관을 타고 쏟아져 들어갔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열기가 온몸의 신경망을 관통했다. 비명을 지르던 근육 섬유가 경련을 멈추고 심장이 단단한 맥동을 되찾았다. 시야를 가리던 검은 암전이 깨끗하게 씻겨 나갔다.

‘충분하다.’

신위 권능을 출력할 최소한의 생체 동력이 확보되었다.

태현은 곧바로 돌아섰다. 그의 손바닥이 북서쪽 격벽의 제어 패널을 짚었다.

지이잉.

태현의 동공 속에서 푸른 룬 문자가 회전했다.

단순한 전압 조작이 아니었다. 시스템 최상위 권한을 현실 전력망에 덮어씌우는 신위의 법칙이 케이블을 타고 흘러들었다.

[격벽 잠금 코일 1, 2, 3번 인식]

[권한 덮어쓰기: 즉시 개방]

콰가가각!

전자 락이 일제히 풀리며 거대한 방호 격벽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바로 그 찰나 등 뒤의 격실 문이 완전히 뜯겨 나갔다.

“사격 개시!”

수색대원의 고함과 함께 전자기 소총의 섬광탄이 격실 내부를 집어삼켰다.

“뛰어!”

태현이 서연우의 옷깃을 잡아채 배관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동시에 그는 격벽 아래쪽 센서선을 걷어차며 잠금 해제 명령을 반전시켰다.

쾅!

방호문이 다시 바닥으로 내리꽂히며 수색대의 총탄을 가로막았다. 문 너머에서 빗발치는 탄환이 철판을 두들겼다.


북서쪽 주 배관 통로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발밑으로는 냉각 폐수와 오수가 섞여 흘렀고 머리 위로는 굵은 전력 케이블이 뱀처럼 얽혀 있었다.

서연우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왼쪽 소매에서 흘러내린 피가 배수관 위로 떨어졌다.

“하아, 하아…… 진짜로 열 줄은 몰랐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지혈 스프레이를 팔에 뿌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인공 피막이 상처를 덮었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태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주변의 데이터 흐름을 읽었다.

서연우가 건넨 데이터 칩의 신호가 신경망에 연결된 신위와 부드럽게 동기화되었다. 낡은 배수관의 구조와 환기구 위치가 머릿속에 입체 지도로 펼쳐졌다.

출구까지는 약 400미터.

하지만 유토피아 콥의 추격은 매서웠다.

끼이이익!

머리 위 천장의 환기 격자 사이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서연우가 글래스를 치켜올리며 얼굴을 굳혔다.

“말도 안 돼. 보병 대신 저걸 풀었다고?”

“무엇이지?”

“호넷-4 전술 경비 드론이야! 특수안전부 직속 편대라고!”

환기 격자가 우그러지며 시커먼 기체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네 개의 소형 터빈을 장착한 비행 드론들이었다. 하부에는 고전압 와이어와 마비 침이 번뜩였다.

어두운 배관로를 가득 메우며 쏟아져 나온 기체의 수가 수십 대에 달했다. 붉은 조준선들이 통로 벽면과 두 사람의 전신을 겨누었다.

[타깃 확인: 오류 개체 119번 및 침입자]

[포획 모드 가동. 저항 시 신경 파괴 침 발사 허가]

기계적인 합성음이 통로 전체를 뒤흔들었다.

서연우가 품에서 소형 노이즈 수류탄을 꺼내 던졌다.

파앙!

강렬한 주파수 교란 파동이 퍼지며 앞쪽 드론 서너 대가 허공에서 휘청거렸다.

서연우는 그 틈을 타 권총을 난사했다. 탕, 탕! 정확하게 코어에 박힌 탄환에 두 대가 스파크를 튀기며 추락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드론들은 분산형 군집 통신망으로 묶여 있었다. 몇 대가 파괴되자마자 나머지 기체들이 즉각 대형을 전환하며 틈을 메웠다.

치지직!

공중에서 뿜어진 고전압 와이어가 서연우의 발목을 스쳤다.

“큭!”

서연우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드론 세 대가 급강하하며 그녀를 향해 마비 침을 겨누었다.

“빌어먹을……!”

서연우가 허리춤에서 고열 EMP 신관을 꺼내 들었다. 자폭에 가까운 근접 격발을 각오한 손길이었다.

그때 태현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멈춰라.”

“이거 안 놓으면 둘 다 산 채로 뇌가 지져져!”

“소모품에 목숨을 걸지 마라.”

태현이 서연우를 등 뒤로 거칠게 밀어냈다.

“엎드려. 그리고 네 글래스의 외부 통신선을 뽑아라.”

“뭐?”

태현은 대답 대신 배관로 벽면의 고압 전력 케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저장소 전체를 가동하는 막대한 전력이 흐르는 혈관이었다.

수십 대의 호넷 드론이 일제히 태현을 향해 급강하했다. 수백 발의 마비 침이 허공을 갈랐다.

태현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호흡이 흘러나왔다.

“사육장의 개들이 너무 시끄럽군.”

파지지직!

태현의 오른손이 벽면의 전력 간선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맨손이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수만 볼트의 전류에 닿는 순간 온몸이 타버릴 짓이었다.

그러나 전선에 닿은 것은 단순한 살점이 아니었다.

튜토리얼 탑 100층을 부수고 올라선 유일신의 데이터 노드였다.

파아아앗!

태현의 두 눈이 눈부신 사파이어 빛으로 타올랐다.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고농축 영양제가 강력한 연산력을 뒷받침했다. 손끝에서 시작된 푸른 데이터 룬 문자가 전력 간선을 타고 빛의 파도처럼 뻗어 나갔다.

전류는 태현을 태우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의지에 굴복하여 거대한 전자기 파동으로 뒤바뀌었다.

통로 조명이 푸르게 번쩍였다. 벽면의 통신 중계 안테나들이 과열되며 백색 연기를 뿜었다.

[로컬 무선 중계망 강제 오버라이드]

[호넷-4 편대 제어 프로토콜 해제]

[최상위 관리자 권한 선언: 신위(Godhood)]

우뚝.

돌진하던 수십 대의 드론이 일제히 허공에 얼어붙었다.

날카롭게 돌던 터빈 소리가 기이한 저음으로 꺾였다. 공중을 가르던 마비 침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연우는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멈췄다.

글래스 화면 전체가 푸른 에러 코드로 뒤덮이며 먹통이 되어 있었다. 군용 암호망으로 보호받는 드론 편대의 권한이 단 1초 만에 찢겨 나간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드론들의 붉은 센서등이 동시에 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번쩍!

수십 대의 드론 안구에서 태현의 눈동자와 똑같은 푸른 룬 빛이 뿜어져 나왔다.

기계들이 주인을 바꾼 것이다.

태현이 전력선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산산조각 내라.”

명령이 떨어졌다.

드론들이 미친 듯이 터빈을 역분사했다.

콰아앙! 콰쾅!

공중에 멈춰 있던 기체들이 서로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폭음이 터졌다. 통로 벽면과 천장을 향해 스스로 내리꽂는 자폭 돌격이 이어졌다.

터져 나간 배터리 셀에서 일어난 연쇄 폭발이 어두운 배수관로를 대낮처럼 밝혔다.

치이익.

마지막 드론 한 대가 바닥에 처박히며 불꽃을 뿜고 멈췄다.

통로를 가득 메웠던 위협적인 군단이 단 몇 초 만에 찌그러진 고철 무더기로 변해 나뒹굴었다.


정적.

타오르는 파편 매연과 오수가 끓어오르는 냄새만이 통로에 감돌았다.

태현은 전력선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손바닥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데이터 스파크가 사그라들었다.

전신에 피로가 찾아왔지만 이전처럼 의식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서연우가 건넨 영양 앰플 덕분에 신경망의 붕괴를 막아낸 덕이었다.

태현이 고개를 돌려 서연우를 내려다보았다.

서연우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해킹으로 드론 하드웨어를 통째로 태웠다고? 그딴 신호 프로토콜은 본 적도 없어.”

“질문할 시간 없다.”

태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폭발음 때문에 다른 수색팀이 이쪽으로 올 거다. 출구는 어디지?”

서연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공포와 경외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기업의 탈주 자산 따위가 아니었다. 상식적인 해킹이나 개조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존재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살렸다.

서연우는 떨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앞쪽 배수로 끝을 가리켰다.

“저기 꺾이는 곳에 대형 배수 환기 해치가 있어. 바깥쪽 잠금장치는 내가 아까 침투할 때 미리 풀어뒀어.”

두 사람은 불타는 기계 잔해를 밟으며 통로 끝으로 달렸다.

육중한 철제 격자가 나타났다. 서연우가 비상 레버를 당기자 녹슨 소리와 함께 거대한 해치가 바깥쪽으로 열렸다.

쏴아아아아―.

차가운 바람과 함께 굵은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매캐한 유황 냄새와 기름 냄새 그리고 차가운 습기. 10년 만에 마시는 날것의 현실이었다.

태현은 해치 난간을 짚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먹구름이 낮게 깔린 밤하늘 아래로 거대한 폐허의 도시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시티 7.

녹슨 골조 사이로 어지럽게 얽힌 전선들. 깜빡이는 불량 홀로그램 간판과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찬 슬럼가의 골목길.

그리고 저 멀리 비구름 위로 오만하게 솟아오른 유토피아 콥의 초고층 첨탑 빌딩들이 차가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번쩍!

도시 상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거대한 수송정의 서치라이트가 빗줄기를 하얗게 갈랐다.

지상으로 떨어진 신.

마침내 강태현의 발이 가짜 낙원의 우리를 찢고 차가운 현실의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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