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싣고 달리는 밤버스

2화: 운행 끝난 뒤의 열람실
현수는 차고지 관리자에게 야간 버스를 책장으로 쓰는 시범 운영안을 제출했다. 운행 중 좌석과 통로를 비우고, 회차 종료 뒤에만 책을 대여한다. 승객이 버스에 남아 있으면 도서관 직원이 동행하고, 운전 기사는 승객 안전 확인과 차량 점검을 우선한다. 책장은 좌석 고정 장치에 묶을 수 있는 크기로 제한했다.
은채는 도서관 장서 목록을 만들었다. 짧게 읽을 수 있는 책, 큰 글씨 책, 오디오북 안내 카드. 그녀는 필구에게 어떤 책을 원하는지 물었다.
“제가 원하는 걸 말하면 그 책을 꼭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준비할 수 없는 책도 있어요. 대신 찾을 방법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를 한 권 빌리고 싶어요.”
은채는 시집 세 권을 골라 버스에 가져왔다. 필구는 한 권을 고르고, 대출 기한과 반납 방법을 확인했다. 그에게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문자 알림을 받을 수 없었다. 은채는 종이 대출증을 발급했다. 주소는 받지 않고, 반납 기한을 다음 야간 정류장 방문일로 정했다.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아도 빌릴 수 있나요?”
“네. 연락처가 없어도 됩니다. 다만 책을 반납할 장소와 날짜를 정하면 돼요.”
필구는 처음으로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는 반납일을 수첩에 적었다. 은채는 그의 사정을 묻지 않았다. 버스에서 책을 빌리는 데 필요한 정보만 확인했다.
시범 운영 첫날, 세 명의 승객이 책을 빌리러 왔다. 한 사람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청소 노동자였고, 다른 사람은 기차를 기다리는 대학생이었다. 현수는 회차 종료 후 차량을 차고지 지정 구역에 세웠다. 엔진을 끄고, 문과 비상구를 확인한 뒤 은채가 책장을 열었다. 대여를 위해 버스를 다시 이동시키지는 않았다.
“여기서 책을 빌려도 되나요?” 청소 노동자가 물었다.
“네. 다만 운행 중에는 책을 고를 수 없고, 다음 회차를 시작하기 전에 모두 내리셔야 해요.”
“책을 읽을 자리가 있나요?”
“좌석은 한 줄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래 머무르기는 어렵습니다.”
현수는 이용 시간을 안내하고, 승객이 남아 있는 동안 차량을 잠그지 않았다. 은채는 대출 기록을 종이 카드와 도서관 시스템에 함께 남겼다. 대학생은 책을 빌렸고, 청소 노동자는 오디오북 안내를 받아 갔다. 필구는 시집을 읽다가 다음 회차가 시작되기 전에 하차했다.
두 번째 날, 버스 뒤쪽 책장이 흔들렸다. 책 몇 권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통로는 막히지 않았다. 현수는 바로 시범 운영을 멈췄다. 은채는 책장을 고정한 스트랩을 확인했고, 한쪽 고리가 좌석 프레임에서 빠져 있었다.
“오늘은 다시 열지 않겠습니다.” 현수가 말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은채가 말했다.
“고정 장치가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않습니다. 책 한 권보다 사람의 안전이 먼저예요.”
은채는 동의했다. 그녀는 대출자에게 예정한 운영 중단을 알리고, 빌린 책을 다음 정류장에서 반납할 수 있게 안내했다. 현수는 관리자와 안전 담당자에게 사고 기록을 보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고정 장치의 문제를 보고서에 남겼다.
필구는 책을 반납하러 와서 멈춘 버스를 봤다. 그는 시집을 내밀었다.
“오늘은 반납하지 않아도 됩니다.” 은채가 말했다.
“제가 읽을 자리가 없어질까 봐요.”
“시범 운영은 잠시 멈췄어요. 책은 계속 빌려 갈 수 있습니다. 반납은 다른 도서관이나 다음 방문 때 하시면 돼요.”
필구는 책을 다시 가져갔다. 그는 책장 없이도 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했다. 은채는 이동도서관의 대체 반납함 위치를 알려 주었다.
현수는 고정 장치 수리 견적을 확인했다. 임시 스트랩을 더 강한 것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책장이 좌석 프레임에 맞게 제작되어야 했다. 새 장비는 예산에 없었다. 은채는 도서관 예산을 살펴보고,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기부를 받으면 빨리 만들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기부자에게 운영 방식을 맡기면 안 됩니다.” 현수가 말했다.
“맞아요. 조건 없이 받거나, 공식 예산을 신청해야 해요.”
둘은 지역 도서관과 교통 부서에 공동 시범 계획을 제출했다. 책장 제작비, 설치 검사, 운영 시간, 안전 책임자를 나눠 적었다. 필구도 운영 이용자로 의견을 냈다. 그는 밤버스가 쉼터 대신 사용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책을 빌리는 일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은 다르다고 말했다.
“책 읽으러 오는 사람이 오래 머물 수는 없나요?” 은채가 물었다.
“오래 머물 자리가 필요하면 쉼터를 안내해 주세요. 버스가 밤새 우리를 책임지는 곳이 되면 곤란합니다.”
현수는 그 말을 듣고 운행 종료 시간을 더 명확히 표시하기로 했다. 은채는 책장 시범 운영이 끝나면 쉼터 정보가 있는 안내 카드도 함께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필구의 말이 모든 이용자를 대표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다른 승객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책장 설치 예산을 검토하는 동안 은채는 정류장에서 승객 의견을 모았다. 가장 많이 나온 요구는 책을 빌리는 시간보다 반납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야간 근무자는 도서관이 문을 열기 전에 출근하고, 퇴근 뒤에는 문이 닫혀 있었다. 은채는 우편함처럼 책을 넣어 두는 무인 반납함을 제안했지만, 책의 분실과 훼손 책임을 정해야 했다.
현수는 버스가 정류장을 오가는 동안 반납함 역할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차량 안의 책을 인계하는 담당자가 없고, 다음 운행 전 책의 수량을 확인할 시간이 부족했다. 대신 은채는 도서관 분관의 잠금 반납함을 야간에도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시설팀은 보안 문제를 검토하고, 임시로 한 곳을 연장 운영하겠다고 답했다.
필구는 책을 읽을 자리가 없는 이용자의 의견도 전달했다. 그는 버스 안에서 오래 머물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쉼터에 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대체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은채는 쉼터 운영자에게 야간 개방 시간과 좌석을 확인했다. 현수는 버스 안내 카드에 쉼터 위치와 운영 종료 시간을 정확히 적도록 했다. 버스가 잠자리를 제공한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이용 조건을 분명히 했다.
도서관 내부에서는 책장 제작비를 다른 사업에서 가져오려면 결재가 필요하다는 답이 왔다. 은채는 예산을 나눠 신청하고, 먼저 이동도서관 차량 수리비를 확보했다. 밤버스 책장은 그 다음 순위였다. 그녀는 당장 시작할 수 없다고 필구에게 알렸다.
“그럼 기다리면 되죠.” 필구가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약속한 날짜가 없는데 미안할 건 없어요. 준비되면 알려 주세요.”
그는 그날 빌린 책을 돌려주지 않고 계속 읽기로 했다. 은채는 연체가 아니라 새 반납 날짜를 합의해 대출을 연장했다. 사람마다 연락 수단이 다른 만큼, 대출 기록에는 전화번호 대신 종이 카드 번호를 썼다.
차고지 관리자와 안전 담당자는 책장 견적서를 검토했다. 업체는 기존 선반을 활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지만, 좌석 프레임과 맞지 않아 결박 위치가 달랐다. 현수는 운행 전후 진동 시험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 채택할 수 없다고 했다. 은채는 예산에 맞추기 위해 책 수를 줄이는 대신 안전 고정 장치를 유지하는 안을 냈다.
“열 권만 실어도 책장은 책장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먼저 작게 시작하고 이용 기록을 모으면 됩니다.”
도서관은 시범 장비 비용 일부를 승인했다. 제작 업체는 30권 이하로 무게를 제한하고, 휠체어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낮은 구조로 새 도면을 보냈다. 현수는 좌석 고리의 하중 기준과 간격을 확인했다. 은채는 책을 고를 기준을 정했다. 글자 크기, 장르, 파손 정도, 이용자가 직접 요청한 책.
필구는 시집을 연장했고, 종이 대출증에 반납 장소를 적었다. 그는 책을 읽는 동안 쉼터 안내 카드도 함께 가방에 넣었다. 버스가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책을 빌릴 자리가 생길 가능성을 기다렸다.
일주일 뒤 도서관은 간단한 장비 제작비를 승인했다. 교통 부서는 운행 종료 후 40분 동안만 버스를 책장으로 이용하도록 허가했다. 좌석 일부는 고정 책장으로 바뀌고, 통로와 휠체어 공간은 그대로 유지해야 했다.
“이제 다시 열 수 있겠네요.” 은채가 말했다.
“설치 후 점검을 통과하면요.” 현수가 답했다.
책장 제작을 맡은 업체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 더 큰 선반을 권했다. 은채는 공간을 많이 쓰면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해진다고 반대했다. 현수도 좌석 배치와 출입 폭을 확인했다. 업체는 처음 설계를 수정해 낮고 좁은 책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날 밤 필구는 대출한 시집의 한 구절을 기억해 적었다. 그는 그 종이를 버스 좌석에 놓지 않고, 자기 수첩에 보관했다. 다음 시범 운영이 시작되면 은채에게 어떤 책인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제작 업체는 설치 뒤 안전 검사를 다시 받기로 했다. 은채는 책장 수량보다 먼저 검사 날짜를 예약했다. 현수는 그 일정을 운행표에 반영했다.
제작 승인에는 차량별 고정 방식과 대출 기록 보관 기간이 조건으로 붙었다. 은채는 개인정보를 최소한으로 남기는 대출증 양식을 만들고, 현수는 차량 점검표에 책장 고정 상태를 더했다. 두 사람은 설치 전에 다시 확인할 날짜를 잡았다.
필구는 새 날짜를 수첩에 적었다. 운영이 멈추면 대체 반납함을 이용하기로 했다.
은채는 확인 일정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