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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싣고 달리는 밤버스1화

책을 싣고 달리는 밤버스

책을 싣고 달리는 밤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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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종점의 책장

박현수는 막차를 몰고 차고지로 들어왔다. 회차 종료까지 12분이 남았지만, 종점에서 내리지 못한 승객이 한 명 있었다. 장필구는 늘 마지막 정류장까지 타고 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구겨진 코트를 입고, 손에는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오늘도 종점까지 가세요?”

“다른 데 내릴 곳이 없어서요.”

현수는 운행 규정상 승객을 차고지 안으로 데려갈 수 없었다. 그는 필구에게 인근 야간 쉼터와 따뜻한 식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안내했다. 필구는 알고 있다고 했지만,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때 이동도서관 사서 조은채가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왔다. 그녀는 책 상자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이동도서관 차량이 고장 나 오늘 대출 책을 옮길 곳이 없다고 했다. 현수는 버스에 책을 실을 수 없다고 답했다. 통로와 비상구를 막으면 안 됐다.

“좌석에 놓으면 안 돼요?” 은채가 물었다.

“승객 운송용 차량에 화물을 실을 땐 안전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좌석 고정도 안 돼 있고요.”

“그럼 책은 내일 아침까지 어디에 두죠?”

“도서관에 연락해 보세요.”

“차량이 이미 차고지로 갔어요. 지금은 문을 닫았고요.”

현수는 버스의 빈 공간을 살폈다. 뒤쪽 휠체어 공간에 책 상자를 둘 수는 있었지만, 고정 장치가 필요했다. 그는 차고지 관리자에게 연락해 화물 고정 스트랩을 요청했다. 운행을 마친 뒤라면 버스를 임시 도서관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승객이 있을 때는 안 됩니다. 운행 끝난 뒤 안전 점검하고, 차고지 허가를 받아야 해요.”

은채는 일정이 촉박해 표정이 굳었다. 책 상자 안에는 다음 날 학교에 전달할 책이 들어 있었다. 현수는 규정을 건너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버스 안의 승객을 모두 내린 뒤, 차고지 관리자의 입회 아래 상자를 싣고 이동도서관까지 옮길 수 있었다. 대신 대출 업무는 불가능했다.

“책을 옮기는 것만이라도 도와주세요.” 은채가 말했다.

“관리자 허가가 나면요.”

필구는 두 사람의 말을 듣다가 종이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책 한 권이 있었다. 표지에는 ‘밤을 건너는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은채는 책을 보자 놀랐다.

“그 책은 도서관 장서였어요. 10년 전 대출된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납을 못 했어요.” 필구가 말했다.

“책을 잃어버리셨나요?”

“아니요.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 도서관이 옮겨 가고, 저는 갈 곳이 없어졌죠.”

은채는 책의 등록 번호를 확인했다. 책은 반납 처리되어 있었지만, 누가 반납했는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필구에게 다시 빌려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체료는 없었고, 책 상태를 확인한 뒤 반납 기한을 새로 정할 수 있었다.

“지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원하시면 대출 연장부터 할게요.”

필구는 책을 손에 든 채 버스에 앉아 있었다. 현수는 그의 상황을 묻지 않았다. 그는 단지 막차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안내했다. 필구는 책을 반납하려고 했지만, 은채는 그가 원하면 다시 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을 빌리면 어디서 읽죠?”

“이동도서관은 다음 주부터 야간 정류장도 방문할 수 있어요. 장소를 협의해 볼게요.”

“그럼 그때까지는요?”

현수는 버스 운행이 끝난 뒤 차고지 휴게실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관리자는 안전 점검을 통과하면 운전 기사 휴게 시간에만 이용하도록 임시 허가할 수 있다고 했다. 승객 운행 중에는 사용할 수 없고, 도서관 직원이 함께 있어야 했다.

은채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책 상자를 운반할 대차를 가져오고, 책 목록과 수량을 확인했다. 현수는 버스 휠체어 공간의 고정 장치를 점검했다. 필구는 자신의 책을 상자에 넣지 않고 무릎에 올려 두었다.

“그 책도 함께 옮길까요?”

“제가 들고 갈게요.”

현수는 필구에게 차고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안내했다. 그는 근처 쉼터까지 이동하는 버스 노선을 적어 주었다. 필구는 그 종이를 받아 들고 내릴 준비를 했다.

“오늘은 책을 어디서 읽죠?” 은채가 물었다.

“쉼터에 책을 읽을 자리 있어요?”

“있어요. 다만 밤 열 시까지만 열려요.”

“그럼 오늘은 거기서 읽어야겠네요.”

그는 버스에서 내렸다. 현수는 종점에서 승객을 태우지 않은 채 차고지로 이동했다. 관리자는 버스 안에 책을 싣기 전 통로 폭과 고정 장치를 확인했다. 책 상자는 휠체어 공간의 벽면 고리에 묶였다. 운전석과 비상구는 비워 뒀고, 인계 기록에 상자의 무게와 수량을 적었다.

은채는 책을 옮긴 뒤 현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내일 학교에 전달할 수 있겠어요.”

“도서관까지 옮기는 것만 도운 겁니다. 승객을 태우는 시간엔 책을 실을 수 없어요.”

“알아요. 그래서 이 버스에서 책방을 열 수는 없겠네요.”

“운행 시간 밖이라면 다른 방법을 검토할 수 있어요.”

은채는 그 말을 메모했다. 이동도서관 차량은 수리까지 일주일이 걸릴 예정이었다. 야간 승객들이 책을 빌릴 방법이 필요했다. 그녀는 버스 기사 휴게 시간에만 열 수 있는 이동 책장을 제안했다. 현수는 차고지 허가와 안전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리자는 책을 싣는다고 버스가 도서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운행 중에는 모든 좌석과 통로가 승객 안전 기준을 따라야 했고, 회차를 마친 뒤에도 운전 기사 휴식 시간을 침범할 수 없었다. 은채는 이용 시간을 40분으로 제한하고, 대출 업무는 도서관 직원이 맡는 안을 작성했다. 차량은 책을 보관하는 동안에도 차고지 관리자의 시야 안에 둔다.

현수는 운전 기사 노조의 안전 담당자에게 계획서를 보여 주었다. 그는 책장이 좌석에 고정되지 않으면 운행 중 흔들려 위험하고,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면 차량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채는 책장 제작 전 차량 모델과 좌석 고정 위치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현수는 어떤 조건이면 운영을 멈춰야 하는지도 계획서에 추가했다. 통로가 막히거나 책장이 움직이면 즉시 폐쇄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어 해도 안전 기준은 바뀌지 않아요.” 현수가 말했다.

“알아요. 그래서 먼저 허가를 받는 겁니다.”

필구는 차고지 입구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책을 빌릴 기회가 생기길 바랐지만, 운행을 위험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는 승객으로서 어떤 불편이 있는지 적어 주겠다고 했다. 현수는 그 의견을 계획서에 포함하되, 필구 한 명의 경험을 모든 야간 승객의 필요로 쓰지 말자고 했다.

은채는 막차를 타는 승객들이 책을 빌리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설문을 만들었다. 이름과 주소는 받지 않고, 원하는 책 종류와 이용 가능한 시간만 물었다. 세 사람은 정류장에 설문지를 놓되, 응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시범 운영 허가가 나지 않으면 결과를 따로 보관할 계획이었다.

다음날 은채는 차고지 관리자의 서명을 받아 버스 이용 가능 시간을 확인했다. 안전 규정 때문에 좌석 한 줄을 비우고, 통로를 막지 않는 낮은 책장만 설치할 수 있었다. 책 대여와 반납은 버스가 회차를 마친 뒤에만 가능했다.

“승객이 책을 빌릴 수 있어요?” 필구가 물었다.

“시범 운영을 신청할 거예요. 지자체와 차고지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럼 오늘은요?”

“오늘은 준비만 할 수 있어요.”

필구는 책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기다려도 되겠네요.”

은채는 그가 책을 빌리러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책을 반납하지 않았다. 현수는 다음 운행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은채는 대출 기록을 정리했다. 그날 밤 차고지 벽에 붙은 안내판에는 임시 계획이 적혔다.

밤버스 책장 시범 운영, 허가 검토 중.

은채는 책장 계획을 제출한 뒤 버스 운행표와 도서관 대출 규정을 함께 검토했다. 차고지에서 책을 빌린 사람이 다른 지점에 반납할 수 있는지, 분관의 반납함이 야간에 열려 있는지 확인했다. 도서관은 반납 도장을 다음 영업일에 찍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현수는 그 사실을 대출 카드에 적어 이용자가 반납과 처리 완료를 혼동하지 않도록 했다.

필구는 종점 근처 쉼터의 운영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그곳은 밤 열 시 이후에는 새 이용자를 받지 않았다. 은채는 야간 근무자들이 책을 읽을 곳과 잠시 쉬어 갈 곳이 다르다는 점을 설문에 넣었다. 현수는 버스가 그 역할을 모두 맡을 수 없다고 했고, 은채도 동의했다. 책장을 만든다고 해서 안전한 잠자리나 상담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빌려 줄 수 없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려 줄 수 있어요.” 은채가 말했다.

“운전 중에도 필요한 안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현수가 답했다.

그들은 차고지 관리자에게 임시 도서관 계획과 대체 쉼터 안내를 함께 제출했다. 관리자는 즉시 승인하지 않고 안전 담당자의 검토를 요청했다. 은채는 운영이 늦어질 수 있음을 필구에게 알렸다. 그는 책을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래 누군가 연필로 한 줄을 더 썼다.

은채는 승인 여부가 언제 나오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배포할 설문지를 인쇄하고, 현수에게 점검 일정을 확인했다. 책장을 열 수 없는 동안에도 승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릴 수 있었다.

은채는 규정을 다시 읽고, 내일 시설팀과 협의하기로 했다.

책을 기다리는 사람도 승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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