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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만 치료하는 정골 네크로맨서6화

뼈만 치료하는 정골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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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마디의 첫 규칙

뒷방의 먼지

창살 틈으로 비친 아침 햇살이 약방 바닥을 말리고 있었다. 밤새 창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멎었다.

도윤은 낮은 의자에 앉아 오른손 손목을 돌렸다. 손끝을 짓누르던 냉기는 없었고 맥박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저씨.”

침상에서 토마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이의 입술에는 혈색이 돌고 있었다.

“누워 있어라. 함부로 일어나지 마.”

도윤이 다가가 아이의 정강이 붕대를 살폈다. 붓기는 눈에 띄게 줄었고 부목 아래 발가락 끝을 누르자 맑은 피가 차올랐다.

“발가락을 움직여 보렴.”

토마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얼음물에 담근 것 같던 통증은 사라졌어요. 묵직하기만 해요.”

“뼈가 제자리를 찾아서 그렇다. 하지만 부목을 댄 자리는 아직 연약하니 절대 디뎌서는 안 된다.”

곁의 누나가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치료를 버텨낸 건 토마입니다.”

도윤은 짧게 답하고 돌아섰다. 카운터에서 따뜻한 보리죽 그릇을 들고 온 리에나가 아이에게 그릇을 쥐여주며 도윤을 불렀다.

“도윤 씨, 안쪽으로 와요.”

그녀가 안내한 곳은 약방 안쪽에 딸린 뒷방이었다. 썩어가는 나무 궤짝과 먼지 쌓인 약초 찌꺼기가 가득한 어두컴컴한 창고였다.

“성당 순찰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요. 환자를 약방 바닥에 계속 둘 수는 없잖아요.”

“이곳을 치료실로 쓰자는 뜻입니까.”

“원래 그렇게 썼어야 했던 공간이에요. 성당이 빈민가 약방의 외과 시술을 금지하기 전까지는요.”

두 사람은 곧바로 정리에 들어갔다.

도윤은 볏짚단과 부서진 궤짝을 뒷마당으로 치웠고 리에나는 묵은 먼지를 쓸어냈다.

방 안쪽 선반 뒤 하수구로 이어지는 탈출로 앞에는 굵은 무명천을 둘러 가림막을 쳤다. 한가운데의 묵직한 참나무 작업대도 닦아내자 단단한 진료대가 되었다.

먼지를 털어낸 리에나가 벽면에 걸린 낡은 칠판을 물걸레로 훔쳐냈다.

“장소만 있다고 치료소가 되는 건 아니에요. 환자를 받기 전에 이곳의 법부터 세워야 합니다.”

칠판에 새긴 규약

리에나는 주머니에서 몽당 분필을 꺼냈다.

“어제 말했던 규칙들 기억하죠?”

“이름 확인, 명시적 동의, 치료 중단권, 한계 고지, 그리고 유골을 도구로 쓰지 않는 것.”

도윤이 막힘없이 답하자 리에나는 분필을 들어 칠판 상단에 힘있게 써 내려갔다.

1. 환자의 이름을 먼저 묻고 기록한다. 이름이 없는 자는 스스로 지은 이름을 적는다.

2. 뼈에 손을 대기 전 과정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

3. 환자가 멈추기를 원하면 치료자는 즉시 손을 뗀다.

셋째 줄을 적은 리에나가 분필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환자가 너무 아파서 멈추라 소리치면 어쩔 건가요? 어설프게 멈추면 뼈가 더 틀어질 수도 있어요.”

“그 위험까지 환자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치료자가 환자를 위한다는 핑계로 비명을 무시하면 의술은 폭력이 됩니다. 아픔을 견디고 뼈를 맞출지 멈출지는 고통을 겪는 본인의 몫입니다.”

도윤의 단호한 목소리에 리에나는 입을 다물고 다음 조항을 적었다.

4. 뼈만 고칠 뿐 만병을 고친다 속이지 않는다. 상처는 약사가 살피고 인대는 시간에 맡긴다.

5. 억울하게 남겨진 유골은 함부로 부리지 않으며 미련을 덜어 온전한 안식으로 돌려보낸다.

도윤은 선반 위 박달나무 상자를 바라보았다. 간밤에 안식을 찾은 아이의 정골된 뼛조각이 잠든 상자였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뼈는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 이 치료소의 기본이어야 합니다.”

리에나는 잠시 침묵하더니 마지막 조항을 덧붙였다.

6. 치료의 대가는 강요하지 않되 거저 베풀지 않는다. 금전이 없다면 정당한 노동과 물품으로 치른다.

“공짜는 치료자를 지치게 해요. 땔감이든 낡은 목재든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칠판 맨 위에 큼직한 세 글자가 더해졌다.

[정골소 마디]

도윤이 글자를 눈에 담는 순간이었다.

쿵, 쿵, 쿵!

뒷골목으로 난 덧문에 거친 주먹질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빗장을 두드리는 소리

“약사님! 안에 계십니까? 접니다, 석재 운반하는 브람입니다!”

문틈으로 다급한 외침이 새어 들어왔다.

리에나가 옹이구멍으로 바깥을 확인한 뒤 빗장을 들어 올렸다.

문밖에는 어제 손목 골절을 고정받았던 석공 브람이 서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축 늘어져 매달려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대낮에 이런 꼴로 뛰어다니면 어쩌자고……!”

“약사님, 제 동료 벤입니다! 채석장 하역장에서 목재 받침대가 무너졌습니다!”

브람이 사내를 부축해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사내의 왼쪽 어깨는 기괴하게 처져 있었고 쇄골 부위는 살갗을 뚫을 듯 뾰족하게 솟아 푸른 피멍이 번지고 있었다.

“성당 수거 마차가 큰길에 나타나 십장들이 벤을 넘기려 했습니다. 거기 실려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잖습니까! 토마가 다리를 건졌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업고 달렸습니다.”

사내, 벤이 무릎을 꿇으며 헐떡였다.

“크으윽…… 숨을…… 못 쉬겠습니다…….”

쇄골이 부러져 안쪽으로 말려들며 가슴 근육과 신경을 짓누르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로운 뼛조각이 폐를 찌르는 고통이 따랐다.

“진료대로 눕혀요, 어서!”

리에나가 문을 걸어 잠그고 외쳤다. 도윤과 브람이 사내를 진료대 위에 조심스럽게 뉘었다.

고통으로 허옇게 질린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윤은 칠판 앞으로 걸어가 첫 번째 규칙을 짚었다.

쇄골을 맞추다

“치료 전에 묻겠습니다. 성함이 무엇입니까?”

“의원님, 뼈가 튀어나왔는데 이름 물을 새가 어디 있습니까!”

브람이 안절부절못하며 외쳤지만 도윤은 벤의 대답을 기다렸다.

“벤…… 벤 카터입니다. 부두에서 석재를 나릅니다…….”

“벤 씨, 왼쪽 쇄골이 부러져 어깨와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 손으로 축을 맞춰 뼈를 넣어야 합니다. 극심한 통증이 올 겁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팔을…… 다시 쓸 수 있습니까?”

“뼈는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이상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합니다. 그래도 동의하십니까?”

“제발 맞춰 주십시오. 자식이 셋입니다. 팔을 못 쓰면 다 굶어 죽습니다…….”

“도저히 못 참겠거든 언제든 멈추라 소리치십시오. 그 즉시 손을 떼겠습니다.”

벤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윤은 가죽 장갑을 벗었다.

그가 벤의 부러진 쇄골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징―

손바닥으로 거친 골흔이 밀려들었다. 무거운 목재가 부러지던 굉음과 쇄골 중앙부가 두 동강으로 튕겨 나가던 파열의 감각이었다.

‘단순 골절이다. 뼛조각이 부서지진 않았어.’

솟구친 안쪽 뼈편과 처진 바깥쪽 뼈편이 심하게 어긋나 있었다.

“리에나 씨는 환자의 턱을 받치고 브람 씨는 반대쪽 어깨를 잡아요.”

도윤은 왼손으로 벤의 왼쪽 어깨 관절을 감싸 뒤로 견인하며 오른손으로 솟아오른 뼈끝을 눌렀다. 푸른빛 마력 실이 어긋난 뼈의 단면을 감쌌다.

우득.

뼈가 맞부딪히며 섬뜩한 마찰음이 울렸다.

“크아아악! 멈…… 멈춰요! 제발!”

벤이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웅크렸다.

도윤은 망설임 없이 손끝의 압력을 풀었다. 견인만 유지한 채 뼈를 누르던 손을 완전히 뗐다.

“의원님, 다 안 들어갔는데 왜 멈춥니까!” 브람이 경악했다.

“환자가 멈추라고 했습니다.”

도윤은 헐떡이는 벤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손을 떼자 벤의 눈에 충격과 함께 깊은 신뢰가 어렸다.

“통증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마지막 맞물림만 남았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멈추고 부목만 대겠습니까?”

벤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해 주십시오.”

도윤의 손이 다시 뼈를 잡았다. 이번에는 벤도 온 힘을 다해 어깨의 힘을 뺐다. 도윤이 뼈의 축을 미세하게 비틀어 제자리로 유도했다.

딱!

맑은 소리와 함께 쇄골의 두 단면이 완벽하게 맞물렸다. 가슴을 찌르던 끔찍한 압박감이 단숨에 사라졌다.

“아…….”

하지만 맞물린 뼈는 주변 근육의 당김 때문에 손을 떼면 다시 어긋나려 했다. 도윤은 양손으로 어깨를 붙든 채 꼼짝할 수 없었다.

“팔자 붕대입니다! 어깨를 뒤로 당겨 고정해야 합니다!”

리에나가 붕대와 가죽 패드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벤의 체구가 워낙 커서 붕대를 당기는 동안 패드가 미끄러졌다. 도윤이 손을 뗄 수 없는 상황에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잡을게요!”

토마의 누나가 깨끗한 헝겊을 들고 달려와 리에나가 지시하는 자리를 힘껏 눌렀다.

도윤이 버티고 누나가 누르며 리에나가 붕대를 억세게 당겨 맸다. 마침내 양 어깨를 등 뒤로 젖혀 고정하는 팔자 붕대와 팔걸이가 완성되었다.

도윤이 진료대에서 물러서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양손의 근육이 굳어 뻐근한 피로가 몰려왔다.

흔들리지 않는 손

벤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가슴을 찌르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숨이 쉬어집니다. 어깨가 제자리에 붙었어요.”

“붙은 게 아니라 맞물려 놓았을 뿐입니다. 넉 주 동안은 절대로 무거운 짐을 들면 안 됩니다.”

도윤이 물대야에 손을 씻으며 경고했다. 리에나는 진통 약초 가루를 건넸다.

벤이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동전 한 닢이 없습니다…….”

리에나가 벽면의 칠판을 가리켰다.

“여섯 번째 규칙을 봐요. 이 방에 환자용 침대도 칸막이도 부족하잖아요. 석재장 목수 일 할 줄 알죠?”

“합니다! 버려진 참나무 각목과 판자를 모아 내일 밤 환자용 침상 두 개와 가림막 틀을 직접 짜 오겠습니다. 땔감도 함께 지어 오겠습니다!”

“좋아요. 그것으로 치료비는 충분합니다.”

벤과 브람은 거듭 감사를 표한 뒤 어스름이 깔린 뒷골목으로 조심스레 빠져나갔다.

약방 뒷방에 고요가 찾아왔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으며 칠판 위에 새겨진 백묵 글씨를 물들였다.

‘정골소 마디.’

도윤은 마른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진료대를 바라보았다.

“오늘 처치는 완벽했어요.” 리에나가 말했다.

“아닙니다. 성인 남성의 뼈를 맞출 땐 손이 너무 모자랍니다. 누이가 헝겊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붕대를 감다 뼈가 다시 어긋났을 겁니다.”

“조수를 한 명 더 구할까요?”

“일반인을 둘 수는 없습니다. 성당의 눈도 있고 사람의 손은 피로해지면 떨립니다. 뼈를 잡는 손은 찰나의 순간에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도윤은 선반 위 박달나무 상자를 응시했다. 간밤에 안식을 찾은 어린아이의 정골된 뼛조각이 잠든 상자였다.

‘살아 있는 사람은 위험에 처하고 피로에 지쳐 손을 떤다. 하지만…….’

만약 환자를 돕는 일에 동의해 주는 유골이 있다면.

지치지 않고 떨리지 않는 손으로 붕대를 건네고 부목을 묵묵히 받쳐줄 조수가 있다면.

도윤의 품속에서 유골 조각이 희미하게 맥동했다.

저 멀리 대성당 방향에서 야간 순찰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둠이 내린 빈민가 한구석.

새로운 규칙을 품은 정골소 ‘마디’의 등불 아래 도윤은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 죽은 자의 손길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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