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치료하는 정골 네크로맨서

4화: 치료의 값
아침의 발가락
도윤은 약방 뒷방의 좁은 침상에서 눈을 떴다.
새벽부터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선반 뒤 은신 통로에서 올라오던 먼지 냄새와 달랐다. 이곳은 누군가가 계속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일어났으면 물부터 길어 와요.”
카운터 쪽에서 리에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은 대답하기 전에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손목 안쪽의 뻣뻣함은 어젯밤보다 심해지지 않았다. 손가락 끝은 한동안 둔했다.
“다친 손으로 물을 들 생각은 하지 마세요.”
“다친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손가락을 세 번씩 확인하죠?”
도윤은 대꾸하지 않고 뒷방을 나왔다. 약방 안쪽에는 토마가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나무 부목과 붕대에 싸여 있었고 누나는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도윤 아저씨. 오늘은 걸어도 돼요?”
“아직 안 됩니다.”
“통증은 어제보다 덜해요.”
“통증이 줄었다고 뼈가 붙은 건 아닙니다.”
도윤은 토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만져도 되겠니?”
토마가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윤은 붕대 끝을 살폈다. 피가 새어 나온 흔적은 줄어 있었다. 부목 아래로 발가락 색을 확인하고 발등에 손끝을 댔다. 맥박은 일정했다.
“발가락을 움직여 보자.”
토마가 발가락을 하나씩 움직였다. 넷째 발가락이 조금 늦었지만 감각은 남아 있었다.
리에나가 상처 주변을 살폈다.
“열감은 남아 있어요. 어젯밤보다 번지지는 않았고요.”
“뼈는 안정됐습니다. 하지만 상처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열이 오르거나 냄새가 달라지면 바로 알려야 합니다.”
도윤은 부목을 풀지 않고 붕대 매듭 하나만 느슨하게 조정했다.
“오늘도 무릎 아래에 힘을 주면 안 됩니다. 목발이 없으면 기어서라도 움직이지 마.”
“기어서 약초를 나르면요?”
리에나가 끼어들었다.
“그러면 약초 대신 네가 약재가 돼요.”
토마가 풀이 죽었다. 도윤은 아이의 발끝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젯밤에 다른 통증은 없었니?”
“한 번 있었어요. 다리 안쪽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았어요. 손가락 같은 것도 닿았고요.”
“붕대 안쪽에 자국은 없었습니다.” 리에나가 말했다.
“열 때문에 헛것을 봤을 수도 있습니다.”
도윤은 토마의 다리에서 손을 떼었다.
“지금 확인할 수 없는 원인을 병명처럼 말하지 않겠습니다.”
리에나의 표정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곧 카운터 아래에서 두꺼운 장부를 꺼냈다.
“좋아요. 이제 당신 차례예요. 이 약방에서 치료하는 방법과 값을 정하죠.”
약방의 규칙
장부는 카운터 위에 놓였지만 천으로 덮여 있었다. 리에나는 옆에 작은 나무판을 세웠다. 판에는 짧은 글씨가 다섯 줄 적혀 있었다.
“첫째. 환자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을 말할 수 없으면 보호자나 증인을 확인해요.”
“둘째는 동의.”
“손을 대기 전에 무엇을 할지 설명하고 허락을 받습니다. 아이도 예외가 아니고요.”
“셋째는 중단권이겠군요.”
“환자가 멈추라고 하면 멈춰요. 치료자가 옳다고 우기지 않습니다.”
리에나는 네 번째 줄을 두드렸다.
“뼈만 고치는 사람이 상처까지 나았다고 말하면 환자는 죽어요. 감염은 약사가 보고 인대는 시간이 봅니다. 고칠 수 없는 건 고칠 수 없다고 말해요.”
마지막 줄에는 유골 사용 금지가 적혀 있었다.
“죽은 사람의 뼈는 허락 없이 쓰지 않습니다. 유족이 없으면 장례를 먼저 생각하고요. 움직이는 해골을 약방 일꾼으로 부리는 건 더 안 됩니다.”
도윤은 이름도 묻지 못한 뼈를 떠올렸다.
“동의합니다.”
“어기면 당신을 약방 밖으로 쫓아내고 정화대에 넘길 겁니다.”
“대가는 무엇입니까?”
“사흘 동안 약재 상자를 옮기고 환자 상태를 기록해요. 토마가 다시 나빠지면 당신이 먼저 확인하고요.”
“돈은 필요 없습니까?”
“돈 없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 척하는 취미는 없어요. 대신 치료한 환자를 모른 척하지 마세요.”
리에나는 천을 조금 걷었다. 장부에는 이름과 날짜가 빽빽했다. 몇몇 이름 옆에는 은빛 표식과 함께 ‘회수’라는 글자가 반복됐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골절 환자입니까?”
“내가 훔친 기록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약을 받은 뒤 이송된 사람도 있고 치료 직후 사라진 사람도 있습니다.”
“회수는 퇴원입니까?”
“그걸 확인하는 게 당신의 첫 일은 아니에요.”
리에나는 장부를 덮었다.
“당신은 본 것과 추측을 구분해야 해요. 어젯밤 장부를 보고도 손을 뻗지 않았죠. 그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 약방 문이 거칠게 열렸다.
굽은 팔의 선택
“리에나! 아직 사람을 봐?”
큰 체격의 사내가 문턱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팔은 가슴에 붙어 있었고 손목은 붕대에 감겨 있었다. 붕대 끝에는 굳은 흙이 묻어 있었다.
“브람. 또 무거운 걸 들었어요?”
“안 들면 오늘 저녁을 굶어.”
브람이 도윤을 경계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오늘부터 사흘 동안 일할 사람. 뼈를 봅니다.”
“성당에서 한 번 봤는데도 이 모양이야. 이번에는 제대로 맞출 수 있어?”
“팔을 만져도 됩니까?”
브람이 헛웃음을 흘렸다.
“다들 묻기는 하더군. 그리고 돈을 부르지.”
“치료 전에 상태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도윤은 손목을 살폈다.
“오래된 골절이 비뚤게 붙었습니다. 다시 맞추려면 재골절이 필요할 수 있고 피가 많이 나거나 신경을 다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럼 왜 만져?”
“통증을 줄이고 손을 쓰는 각도를 넓힐 가능성은 있습니다. 한 달 이상 무거운 일을 피해야 합니다.”
브람은 팔을 끌어안았다.
“한 달을 쉬면 굶어.”
“그렇다면 오늘 재골절은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손목이 더 돌아가지 않게 고정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리에나는 말없이 도윤을 바라보았다. 위험을 먼저 말하는지 확인하는 눈이었다.
브람이 의자에 앉았다.
“그걸 해 줘. 그래도 내일 돌은 들어야 해.”
“내일은 절반 무게만 드십시오. 통증이 찌르면 즉시 놓으시고요.”
도윤은 브람의 허락을 다시 확인한 뒤 손목을 감쌌다. 골흔에는 성당의 흰 방과 은빛 천이 스쳤다. 팔을 붙잡은 손보다 종이에 이름을 적는 소리가 오래 남았다.
그것이 누가 무엇을 했다는 증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도윤이 손목을 내려놓자 브람이 눈을 치켜떴다.
“더 할 수 있잖아.”
“더 하면 치료가 아니라 손상입니다.”
리에나가 소독액과 천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상처가 눌린 자리를 씻고 새 부목을 댔다. 도윤은 손목이 가장 덜 꺾이는 각도로 끈을 묶었다.
“이건 뼈를 다시 맞춘 게 아닙니다. 손목이 더 돌아가지 않게 돕는 고정입니다.”
브람은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그래도 조금 덜 아파.”
그는 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에는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성당에서 치료받고 나올 때 적으라고 했어. 약을 더 준다고.”
“그 종이를 보관해도 됩니까?”
“내 이름은 지우지 마.”
“지우지 않겠습니다.”
브람이 떠난 뒤 리에나는 장부를 펼쳤다. 이름 옆의 ‘회수’ 표기와 브람의 종이가 나란히 놓였다.
“이 기록에 손대려면 이름을 함부로 소문내지 말고 살아 있는 환자에게 위험을 떠넘기지 마요.”
“저는 성당과 싸울 힘이 없습니다.”
“나도 없어요. 그래서 약방 문을 닫지 않는 방식으로 버티는 겁니다.”
도윤은 종이를 장부 사이에 끼웠다. 리에나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붙어 있는 통증
낮이 기울 무렵 도윤은 약재 상자 두 개를 옮겼다. 손목이 뻣뻣해질 때마다 리에나는 상자를 내려놓게 했다. 약방의 규칙은 치료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밤이 되자 토마의 누나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리에나 씨! 토마가 또 아파해요!”
도윤은 방으로 들어갔다. 토마는 침상 위에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부목은 움직이지 않았고 발가락 색도 정상이었다. 리에나가 발등의 맥박을 확인했다.
“맥박은 괜찮아요. 열도 없고요.”
“뼈가 아픈 게 아니에요.”
토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다리를 잡고 있어요. 아저씨 손보다 작은 손이에요.”
도윤은 침상 옆에 앉았다.
“부목을 열어도 될까? 확인만 할 거야. 네가 싫으면 멈춘다.”
토마는 누나의 손을 잡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붕대를 풀자 정강이뼈는 제자리에 있었다. 피부의 열도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골절 부근에 차가운 잔상이 달라붙어 있었다.
검은 손가락 다섯 개가 뼈를 움켜쥔 모양이었다.
도윤은 손을 멈췄다. 잔상에서는 토마의 것이 아닌 통증이 흘러나왔다. 오래 굶은 아이가 돌바닥을 기어가다 손을 뻗는 감각이었다.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고 누군가 그 손을 밟았다.
“이건 토마의 골절이 아닙니다.”
리에나가 낮게 물었다.
“그럼 뭔데요?”
“아직 모릅니다.”
도윤은 잔상을 억지로 떼려 하지 않았다.
“토마. 이걸 떼어 내려면 아플 수 있어. 먼저 말을 걸어 볼 수도 있어. 어느 쪽이 좋으니?”
아이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다.
“말을 걸어 주세요. 잡아당기는 게 무서워요.”
도윤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 순간 검은 손가락이 발목 쪽으로 움직였다.
차가운 목소리가 토마의 다리 안쪽에서 새어 나왔다.
“돌려줘.”
리에나가 숨을 멈췄다.
도윤은 잔상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도 무엇을 돌려달라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목소리는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 뼈를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