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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먹겠습니다9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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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여수 밤바다의 삼치회

도마 위에서 갓 썰려 나온 삼치 선어회 한 점은 붉은빛과 은빛이 은은하게 겹쳐 있었다.

하얀 사기접시 위에 놓인 살점은 투명하게 비쳤다. 소금도 간장도 묻지 않은 순수한 날것의 상태였다.

“첫 점은 아무것도 찍지 마.”

문정자의 메마른 목소리가 좁은 주방 안에 울렸다.

이설은 접시 앞에 멈춰 선 채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코끝이 접시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훈련 시절부터 그녀를 괴롭히던 생선 비린내나 기름에 찌든 무거운 냄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차가운 바닷바람이 갓 스쳐 지나간 포구의 공기처럼 서늘하고 맑은 향이 났다.

얼음을 직접 대지 않고 0도에 맞춘 배수판 위에서 핏물과 표면 수분을 천천히 걷어낸 덕분이었다.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에 응축된 생선 본연의 담백한 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이설의 굳어 있던 어깨가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헛구역질을 하거나 목구멍이 조여드는 거부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운 씨.”

이설이 고개를 들며 작게 불렀다.

“비린내가 안 나요.”

“피를 완벽하게 빼내고 저온에서 수분을 조절했기 때문입니다. 삼치는 잡히는 순간 살이 빠르게 물러지지만 얼리지 않고 온도를 다스리면 전혀 다른 생선이 됩니다.”

성운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가 집어 올린 삼치 살점은 탄력을 잃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톰한 두께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휘어졌다. 껍질 바로 아래에는 미세한 기름막이 배어 나와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성운은 첫 점을 입에 넣었다.

혀에 닿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서늘한 온도였다. 그러나 이내 입안의 체온과 만나자 삼치 특유의 지방질이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씹을 필요조차 없었다.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가볍게 누르는 것만으로도 결이 결대로 풀렸다.

활어회의 억센 탄력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살코기 단백질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미노산과 이노신산으로 분해되어 입안 가득 짙은 감칠맛을 남겼다.

비릿함은 없었고 뒤이어 은은한 단맛이 혀뿌리를 감쌌다.

성운은 눈을 감고 미각의 울림을 따라갔다.

0도에서 버텨낸 일곱 시간의 기다림이 생선의 근육 세포 속 과잉 수분을 걷어내고 순수한 지방의 고소함만을 남겨 놓은 결과였다. 이것이 바로 세월이 빚어낸 선어회의 정점이었다.

성운이 눈을 뜨자 도현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마이크를 바짝 댔다.

“어떻습니까 형님?”

“녹아내립니다. 하지만 물러터진 게 아닙니다. 단단하게 뭉쳐 있던 긴장이 풀린 자리에 순수한 단맛만 남아 있습니다.”

성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울림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마스크를 꽉 쥐었다가 이내 손을 펴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저도 먹어볼게요.”

도현의 카메라 렌즈가 이설의 손끝을 조용히 비췄다.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단정한 턱선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젓가락이 화면에 담겼다.

정자가 무심한 눈길로 삼치 한 점을 접시 가장자리에 더 얹어 주었다.

“천천히 씹어. 삼키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혀 위에 얹어 둬.”

이설은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삼치 살점을 입에 넣었다.

차가운 촉감이 입술을 스쳤다. 곧이어 살점이 혀 위에 닿았다.

선수 시절 억지로 목구멍으로 밀어 넣던 퍽퍽한 닭가슴살의 기억이나 속을 뒤집어 놓던 비린내가 아니었다.

부드러웠다. 마치 따뜻한 물속으로 스르륵 가라앉는 것처럼 자극 없이 혀를 감쌌다. 어떠한 저항도 없이 맑은 고소함이 입안에 번졌다.

이설은 천천히 목을 울렸다.

아무런 걸림 없이 삼치 살점이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았다. 얹힌 것도 없었다.

그녀의 눈가에 투명한 물기가 차올랐지만 이번에는 슬픔이나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몸이 음식을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안도감이었다.

“넘어갔어요.”

이설의 젖은 목소리에 성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정자가 작업대 아래에서 작은 종지들과 반찬 그릇을 꺼내 놓았다.

묵은지를 맑은 물에 여러 번 씻어 물기를 꼭 짠 것과 살짝 구워낸 재래김 그리고 굵게 썬 쪽파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참기름을 듬뿍 넣은 특제 양념간장이었다.

“원래 여수 삼치 선어회는 이렇게 먹는 법이야.”

정자가 김 한 장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 위에 물기를 짠 묵은지를 한 조각 얹고 양념간장에 적신 삼치 뱃살을 올렸다.

“김의 바삭함과 묵은지의 신맛이 삼치의 기름진 맛을 딱 잡아주거든. 활어처럼 초장에 찍어 먹으면 삼치 맛을 다 버려.”

정자가 내민 쌈을 성운이 먼저 받아들었다.

바삭한 김 속에서 아삭한 묵은지가 씹히더니 곧바로 부드러운 삼치 살이 터져 나왔다.

묵은지의 젖산 발효가 만들어낸 산미가 삼치의 농후한 불포화지방산을 완벽하게 감싸 안았다. 거기에 참기름의 고소함과 쪽파의 알싸한 향이 어우러지며 풍미의 균형을 완성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기름기를 산미가 깔끔하게 씻어내어 다음 한 점을 부르는 구조였다.

“완벽합니다.”

성운이 감탄하자 도현도 얼른 한 쌈을 입에 넣었다.

“와 대박이다! 형님 이거 진짜 삼치가 맞아요? 참치 뱃살보다 훨씬 깔끔하고 묵은지랑 김이 기름기를 싹 잡아주는데요?”

도현의 진심 어린 감탄에 정자의 굳어 있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설도 조심스럽게 김 한 장을 집었다. 성운이 양념장을 살짝 묻힌 삼치 살점을 김 위에 얹어 주었다.

이설은 두 번째 점을 입에 넣었다.

바삭거리는 김의 질감 뒤로 시원한 묵은지의 즙이 터져 나왔고 부드러운 삼치가 고소하게 녹아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작지만 분명한 미소가 피어났다.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 위한 고역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임을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접시의 회가 절반쯤 비워졌을 때 정자가 칼을 헹구며 입을 열었다.

“삼 년 전에 서울 방송국에서 찾아온 적이 있었어.”

칼날을 마른 행주로 훔치는 정자의 손길은 무거웠다.

“대단한 맛집이라고 소문을 내주겠다고 하더군. 난 싫다고 했는데 동네 상인들이 상권 살리자고 하도 사정을 해서 딱 한 번 찍게 해줬지. 그런데 방송에는 어떻게 나간 줄 알아?”

도현이 카메라의 앵글을 유지한 채 귀를 기울였다.

“낮 열두 시부터 줄 서서 만 원에 먹는 가성비 삼치회로 방송을 내보냈더라고. 숙성 시간이나 손질 과정은 싹 편집해 버리고 그저 싸고 푸짐하다는 것만 강조했어.”

정자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분노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식지 않은 듯했다.

“다음 날부터 난리가 났지. 낮 열한 시부터 외지인들이 들이닥쳐서 왜 문을 안 여냐고 문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질렀어. 아직 피도 덜 빠지고 숙성도 안 된 삼치를 억지로 내놓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밤 일곱 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더니 방송에 나온 거짓말쟁이 집이라고 욕을 퍼붓더군.”

정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놈은 덜 숙성된 생선을 먹더니 맛이 밍밍하다고 도마에 회를 패대기치고 나갔어. 인터넷에는 별점 일 점을 주면서 손님한테 갑질하는 망할 노포라고 글을 도배하고. 그때 가게 문을 닫으려고 했어.”

“그런데 왜 계속하셨습니까?”

성운이 묻자 정자는 도마 옆 낡은 나무 팻말을 어루만졌다. 팻말에는 서투른 글씨로 ‘바다 끝 삼치’라고 적혀 있었다.

“새벽마다 포구에서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 넘겨주는 선장과의 약속 때문이었어. 그 사람이 밤새 목숨 걸고 그물을 당겨 잡아 온 생선인데 방송 따위에 휘둘려서 그만둘 수는 없었지. 그리고 아무리 욕을 먹어도 밤 일곱 시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는 진짜 단골들이 있었으니까.”

정자가 도현의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서 난 하루에 딱 네 마리만 팔아. 내가 혼자서 온도 재고 물기 닦고 보살필 수 있는 한계가 딱 네 마리야. 돈 더 벌겠다고 냉동 삼치를 떼어다 낮부터 썰어 낼 생각은 죽어도 없어.”

정자의 말에는 화려한 수사나 과장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도마를 지켜온 장인의 뼈아픈 진심뿐이었다.

성운이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이 지켜오신 건 고집이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예의였습니다. 그 시간을 기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현은 말없이 녹화 버튼을 눌렀다.

화려한 효과음도 빠른 교차 편집도 필요 없었다. 정자의 거친 손과 도마 위에서 사각거리며 베어지는 삼치의 단면 그리고 침묵 속에서 익어간 시간 그 자체가 최고의 이야기였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장비를 정리했을 때는 이미 밤 아홉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정자는 세 사람을 문밖까지 배웅했다. 그녀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이설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놓았다.

“아가씨 낯빛이 처음 올 때보다 훨씬 낫네.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이설은 고개 숙여 깊이 인사했다.

가게 골목을 빠져나오자 시원한 밤바람이 세 사람의 뺨을 스쳤다.

방파제 아래로 검푸른 물결이 하얗게 부서지며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냈다.

이설은 바다를 향해 걸어가 난간에 두 손을 얹었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마스크는 꺼내지 않았다.

바닷바람 속에 섞여 있는 소금기와 갯내음이 더 이상 역하지 않았다. 그것은 차가운 물속에서 숨을 참아야 했던 고통의 냄새가 아니라 싱싱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바다의 온기였다.

“속은 괜찮으세요?”

성운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이설은 바다를 바라본 채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네. 전혀 안 체했어요. 속이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 손을 얹었다.

“선수 생활할 때는요. 음식을 먹는 게 꼭 벌을 받는 것 같았어요. 칼로리를 채우고 체중을 맞추고 기록을 내기 위한 연료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먹은 삼치회는 저한테 기다려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도현이 방파제 턱에 걸터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렸다.

“성운 형님 이설 씨. 가편집본 소리 한번 들어보실래요?”

도현이 이어폰을 건넸다. 성운과 이설이 한쪽씩 귀에 꽂았다.

화면 속에서는 정자의 거친 칼질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사각사각 도마를 울리는 규칙적인 마찰음 뒤로 얼음이 녹아 떨어지는 물소리가 겹쳐졌다. 그리고 성운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식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이 작은 노포는 세상의 조급함에 타협하지 않고 식재료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어 화면 하단에 이설의 젓가락과 삼치 한 점이 떠올랐다.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한 점을 입에 넣기까지의 조심스러운 망설임과 그 뒤에 찾아온 평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때요? 기존 맛집 방송처럼 자극적인 효과음이나 호들갑스러운 자막은 다 뺐습니다.”

도현의 물음에 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 우리가 하려던 이야기가 온전히 담겼습니다.”

도현은 뿌듯한 표정으로 가편집 파일을 저장했다.

그때 도현의 스마트폰 화면이 반짝였다. 낮에 업로드했던 채널의 첫 예고 영상에 달린 알림이었다.

“어? 댓글이 벌써 오십 개가 넘었네?”

도현이 화면을 터치했다.

‘영상 색감 무슨 일이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보는 줄.’

‘저 파란 간판 여수에 있는 숨은 노포 아닌가? 저 집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인데.’

‘먹는 걸 강요하지 않는다는 소개 문구가 너무 마음에 와닿네요. 구독 누르고 본편 기다립니다.’

댓글 창에는 따뜻한 반응들이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현이 스크롤을 내리다 한 댓글 앞에서 잠시 손을 멈췄다.

‘여수 삼치 선어회 노포라…… 기획 아이템으로 프랜차이즈화 검토해 볼 만하겠군.’

아이디는 무작위 영문과 숫자의 조합이었고 프로필 사진은 비어 있었다.

도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뭐지? 프랜차이즈 검토라니 장난인가?”

성운도 그 글을 보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밤바다 저편의 등대를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언제나 정성을 다해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손쉬운 이익과 회전율로 계산하려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가 전해야 할 온기를 전하면 됩니다.”

“그렇죠? 내일 아침에 이 본편 올라가면 진짜 난리 날 겁니다. 정자 사장님도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도현이 노트북을 덮으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등대의 불빛이 규칙적으로 바다를 비추며 긴 빛의 길을 만들어냈다.

성운은 주머니에서 조리 기록 수첩을 꺼냈다.

‘0도에서 쉬어간 일곱 시간. 시간은 맛을 배반하지 않는다.’

간결한 문장 아래로 이설이 스스로 쥐었던 젓가락의 무게와 정자의 굳은살 박인 손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성운 씨.”

이설이 바람을 맞으며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수 밤바다의 등대 불빛처럼 흔들림 없이 맑았다.

“내일 아침에는요. 따뜻한 밥에 콩나물국 같은 것도 먹어보고 싶어요. 아주 조금이어도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이설 씨가 먹고 싶은 만큼만 드시면 됩니다.”

성운의 대답에 이설이 환하게 웃었다.

차갑던 밤바다의 바람 사이로 세 사람이 함께 나눈 한 끼의 온기가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고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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