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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먹겠습니다10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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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100만의 울림

여수 포구의 아침 공기는 차가웠지만 비리지 않았다.

부둣가 새벽 시장에서 사 온 콩나물은 잔뿌리가 투명하고 줄기가 곧게 뻗어 있었다. 성운은 냄비에 물을 붓고 완도산 마른 다시마 두 조각과 내장을 발라낸 디포리를 넣었다.

물이 끓기 직전 기포가 바닥에서 조용히 밀려올라올 때 다시마를 건져냈다. 알긴산이 빠져나와 국물이 끈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어 불을 줄이고 콩나물을 넉넉히 넣었다. 냄비 뚜껑은 처음부터 덮지 않았다.

콩나물 특유의 풋내를 유발하는 리폭시게나아제 효소는 애매하게 뚜껑을 여닫을 때 휘발되지 못하고 국물에 갇힌다. 뚜껑을 연 채 85도 안팎의 은근한 온도로 데쳐내면 비린 향은 날아가고 아삭한 식감과 단맛만 남는다.

다진 마늘 반 작은술과 굵은 천일염 한 꼬집 그리고 송송 썬 대파를 넣자 맑고 투명한 콩나물국이 완성되었다.

성운은 뚝배기에 갓 지은 쌀밥 반 공기를 담고 뜨거운 국물을 천천히 부었다.

“이설 씨 아침 준비됐습니다.”

방에서 나온 이설은 식탁 앞에 단정하게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뚝배기 안에서 노란 콩나물 대가리와 파란 대파 조각이 맑은 국물 위로 떠올랐다.

선수 시절 체중 감량을 위해 물만 겨우 넘기거나 무미건조한 단백질 보충제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의 압박감은 없었다. 자극적인 고춧가루도 인공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온기였다.

이설은 숟가락을 들었다. 손끝에 망설임은 없었다.

맑은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술에 댔다.

따뜻한 온기가 혀끝을 부드럽게 감쌌다. 디포리의 이노신산과 다시마의 글루탐산이 만나 만들어낸 은은한 감칠맛 뒤로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의 청량한 단맛이 번졌다.

이설은 밥알을 적셔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풀리는 밥의 전분질과 개운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굳어 있던 위장을 포근하게 어루만졌다. 얹히는 느낌도 속이 쓰린 감각도 없었다.

“……맛있어요.”

이설의 눈동자에 맑은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반 공기 남짓 담긴 국밥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거부 반응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식탁 맞은편에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던 도현이 주먹을 쥐었다.

“렌더링 끝났습니다. 음향 싱크도 완벽하고 색감도 어제 그 밤바다 느낌 그대로 나왔어요.”

화면에는 완성된 15분짜리 영상 파일이 떠 있었다.

[여수 밤바다의 삼치회: 0도에서 버틴 7시간]

도현이 마우스를 쥐고 성운을 바라보았다.

“형님 올립니다?”

“네 올려주세요.”

도현이 마우스 버튼을 눌렀다.

유튜브 채널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에 첫 본편 영상이 게시되었다. 1분짜리 쇼츠 영상도 함께 알고리즘의 바다로 던져졌다.


지리산 구례로 돌아오는 길은 잔잔했다.

도현이 모는 승합차 안에서는 아무도 조급하게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섬진강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각자의 숨을 골랐다.

정오 무렵 온기(溫氣) 마당에 도착하자 복만이 마당 평상을 쓸다 말고 반갑게 맞이했다.

“성운이 왔는가! 여수 삼치는 잘 보고 왔어?”

“네 어르신. 정자 사장님이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성운이 짐을 내리는 사이 도현이 주머니에서 울리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형님 이거 잠깐 와서 보실래요?”

도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성운이 다가가 도현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채널 알림창이 쉴 새 없이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업로드된 지 불과 네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쇼츠 조회수 42만 회.

본편 영상 조회수 18만 회.

실시간 동시 시청자 1만 2천 명.

“이게 무슨 일이야……?”

도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숫자는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수천 단위로 뛰어올랐다.

기폭제는 1분짜리 쇼츠 클립이었다.

영상은 아무런 배경음악 없이 문정자의 거친 손이 0도 배수판에서 삼치를 꺼내 도마에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사각사각 도마를 가르는 정갈한 칼질 소리.

차가운 얼음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붉은빛과 은빛이 투명하게 어우러진 삼치 선어회 단면 위로 성운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식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이 작은 노포는 세상의 조급함에 타협하지 않고 식재료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자극적인 썸네일도 과장된 리액션도 없었다. 하지만 그 고요하고 정직한 울림이 끝없는 자극에 피로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쇼츠를 통해 유입된 사람들은 고스란히 15분짜리 본편으로 흘러 들어갔다.

보통 3분을 넘기기 힘든 유튜브 환경에서 본편의 평균 시청 유지 시간은 무려 72%를 기록했다. 영상을 켠 사람들이 중간에 나가지 않고 끝까지 보았다는 뜻이었다.

댓글 창에는 저마다의 진솔한 고백이 이어졌다.

  • 퇴근길 지하철에서 편의점 김밥 먹다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음식 하나에 저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는 사람이 아직 있군요.

  • 거식증으로 1년을 앓고 있는 수험생입니다. 영상 속 손님이 조심스럽게 한 점을 삼키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 가성비 따지면서 장인들 쥐어짜는 방송들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구독 누르고 응원합니다.

  • 도마 소리와 파도 소리만으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다니…… 이게 진짜 미식입니다.

해가 지리산 능선 너머로 저물어 갈 무렵 본편 영상 조회수는 마침내 100만 회를 돌파했다.

채널 구독자 수도 첫날 500명에서 단숨에 8만 명으로 치솟았다.

도현은 마당 평상에 주저앉아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형님…… 저 구독자 150만 찍을 때도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없었어요. 조회수 올리려고 매운 양념 퍼먹고 호들갑 떨 때는 늘 헛헛했는데…… 진짜 이야기는 통하는 거였네요.”

성운은 도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도현 씨가 진심을 담아 찍어준 덕분입니다.”

평상 한쪽에 앉아 있던 이설도 조용히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자신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조심스러웠던 젓가락의 온기가 화면 너머 수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작은 용기가 되어주고 있었다.

자신의 아픔이 부끄러운 상처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축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도현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 번호에는 여수 지역번호가 찍혀 있었다.

“정자 사장님 번호인데요?”

도현이 전화를 받아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사장님 영상 보셨어요? 지금 백만 명이 넘게……”

[도현 총각! 나 좀 살려줘!]

수화기 너머 문정자의 목소리는 짙은 당혹감과 피로로 젖어 있었다.

가게 안에서 끊임없이 따르릉거리며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전해졌다.

성운이 가까이 다가섰다.

“사장님 성운입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성운 셰프…… 아침부터 가게 전화가 불이 났어. 지금 이 시간까지 전화가 끊이질 않아. 어디서 번호를 알았는지 당장 이번 주말에 서른 명 예약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생선을 택배로 보내라고 난리야!]

“택배는 안 된다고 설명하셨습니까?”

[말을 해도 안 들어! 돈을 두 배로 줄 테니 보내라느니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느니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어. 내가 하루에 네 마리밖에 손질 못 한다고 사정을 해도 듣지를 않아.]

정자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게다가 아까 낮에는 양복 입은 사내들이 가게 앞에 차를 대놓더니…… 프랜차이즈 기획사라면서 명함을 내밀더군. 삼치 숙성 비법을 넘기면 수억을 준다나 어쩐다나. 거절하니까 가게 자리 권리금이라도 넘기라고 으름장을 놓고 갔어.]

성운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장인의 정성을 조명한 영상이 세상에 나가자마자 그것을 소비하고 집어삼키려는 탐욕스러운 자본이 냄새를 맡고 몰려든 것이었다.

“사장님 오늘 남은 삼치는 있습니까?”

[단골들 주려고 두 마리 썰어두고 가게 셔터 내려버렸어. 무서워서 문을 못 열겠어.]

성운은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정자를 달랬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가게 전화선은 오늘 밤 잠시 뽑아두십시오. 저희가 만든 영상 때문에 사장님이 고통받으시게 두지 않겠습니다. 채널 커뮤니티와 고정 댓글을 통해 사장님의 원칙을 알리고 무분별한 방문을 멈춰달라고 강력하게 공지하겠습니다.”

[……미안해 성운 셰프. 좋은 뜻으로 찍어준 건 아는데 내가 감당하기엔 세상이 너무 사나워.]

“아닙니다.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사장님은 평소처럼 새벽 포구에서 좋은 생선만 골라주시면 됩니다.”

통화를 마친 성운은 도현을 바라보았다.

도현의 얼굴에서도 환희는 사라지고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형님…… 노포가 방송 타고 나면 브로커들이 달라붙어서 망쳐놓는 거 한순간이거든요. 대체 어떤 자들이 정자 사장님한테까지 찾아간 걸까요?”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자들이겠죠.”

성운의 머릿속에 지난밤 예고 영상에 달렸던 익명의 댓글이 스쳐 지나갔다.

‘기획 아이템으로 프랜차이즈화 검토해 볼 만하겠군.’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거대한 외식 자본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이미 작은 골목길 노포를 조준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고층 빌딩 32층.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태식F&B’ 대표실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벽면을 채운 85인치 모니터에는 성운의 유튜브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문정자가 삼치를 배수판에서 건져 올리는 장면 성운이 단백질 분해와 감칠맛을 설명하는 장면 그리고 100만 뷰를 가리키는 붉은색 조회수 표시.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박태식 대표가 위스키 잔을 흔들었다. 얼음이 부딪히며 서늘한 소리를 냈다.

“하루 네 마리?”

박태식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갔다.

“골목 구석에서 생선 몇 점 썰어 팔면서 아주 예술가 나셨군. 장사꾼이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저게 무슨 짓거리야?”

맞은편에 서 있던 기획개발팀장이 서류철을 내밀었다.

“대표님 오늘 하루 동안 포털 사이트에서 ‘여수 삼치 선어회’ 검색량이 평소 대비 42배 급증했습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선어회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폭발했습니다.”

“그래? 대중이란 것들은 참 단순해. 유튜브에서 누가 조금만 감성적인 척 폼을 잡으면 그게 유행인 줄 알고 벌떼처럼 달려들거든.”

박태식은 위스키를 들이켠 뒤 빈 잔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여수 그 노포에 사람 보낸 건 어떻게 됐어?”

“가게 주인이 워낙 깐깐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법 전수는커녕 소금을 뿌리며 내쫓았답니다.”

“멍청한 늙은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줘도 못 받아먹네.”

박태식은 코웃음을 쳤다.

“상관없어. 노포가 안 팔면 우리가 만들면 돼. 수산물 유통망에 연락해서 원양산 대서양 냉동 삼치 물량 있는 대로 싹 끌어모아.”

기획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서양 냉동 삼치는 국내산 생물 삼치보다 기름기가 적고 살이 퍽퍽해서 횟감으로는 취급하지 않는데요…….”

“누가 그걸 생으로 내놓으래?”

박태식의 눈빛이 번뜩였다.

“조미료 친 염지액에 담가서 급속 해동하고 훈연 향료 살짝 입히면 개돼지 같은 손님들은 참치 뱃살인 줄 알고 먹어. 가격은 저 노포의 절반으로 후려쳐서 ‘여수 명물 숙성 삼치회’ 간판 달고 전국 가맹점 삼십 개 동시 오픈 때려.”

“하지만 대표님 저 채널의 파급력이 상당합니다. 원조 노포와의 품질 차이나 냉동 삼치 논란이 터지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박태식은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갔다.

화려한 도심 불빛 아래로 수많은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지난 15년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쌓아 올린 자본의 왕국이었다.

“역풍? 그딴 건 바람을 반대로 불게 만들면 그만이야.”

박태식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여수 위생과에 민원 백 개 넣어. 저 노포 위생 상태 불량하고 허가 없이 날생선 팔고 있다고 털어버려. 그리고 인터넷 역바이럴 팀 가동해. 저 유튜버 놈들 뒤로 돈 받고 뒷광고 찍은 거 아니냐고 찌라시 쫙 뿌려.”

그는 모니터 속 성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진정성? 온기? 장사판은 그런 애송이 장난질로 버티는 데가 아니야. 자본의 속도가 뭔지 뼈저리게 가르쳐주지.”


같은 시각 지리산 온기의 마당.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화덕 안에서 타오르는 장작개비가 타닥 소리를 내며 붉은 불씨를 뿜어냈다.

성운은 평상에 앉아 채널 커뮤니티에 올릴 공지글을 다듬고 있었다. 노포의 시간과 장인의 철학을 존중해 달라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호소문이었다.

곁으로 다가온 이설이 따뜻한 국화차 한 잔을 건넸다.

“성운 씨.”

“감사합니다 이설 씨.”

차를 받아 든 성운은 맑은 찻물 속에 비친 달을 바라보았다.

도현이 편집실로 들어간 마당에는 차가운 밤바람만이 낮게 맴돌고 있었다.

“세상이 참 빠릅니다.”

성운이 낮게 읊조렸다.

“좋은 마음으로 전한 온기조차 누군가에게는 손쉬운 돈벌이나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리니까요.”

이설은 성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따뜻한 요리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성운이었지만 지금 그의 눈빛에는 서늘할 정도의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성운 씨가 지켜주실 거죠?”

이설의 물음에 성운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추었다.

“네. 지킬 겁니다.”

성운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시간과 정성을 다해 식재료를 다루는 사람들의 온기가 자본의 차가운 발길질에 짓밟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밤바람이 거세졌지만 화덕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더욱 붉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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