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11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AD
스폰서 광고

11화: 자본의 그늘

성운은 국화차 잔을 평상에 내려놓고 휴대폰 화면을 도현 쪽으로 돌렸다.

‘바다 끝 삼치는 하루 네 마리만 손질합니다. 택배와 단체 예약은 받지 않습니다. 가게와 이웃의 일상을 위해 무단 방문을 삼가 주세요.’

“사장님한테 먼저 보여 드릴까요?”

도현이 물었다.

“네. 가게 운영을 저희가 대신 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정자에게 보낸 문자는 한참 만에 답이 왔다.

‘그대로 올려. 다만 가게 전화번호는 적지 마.’

잠시 뒤 한 줄이 더 도착했다.

‘단골 둘은 옆문으로 생선을 찾아갔어. 내일은 평소처럼 해 보려 한다.’

성운은 그제야 굳어 있던 어깨를 조금 풀었다. 정자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다시 문을 열어 보려는 참이었다.

도현은 번호가 화면 어디에도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한 뒤 공지를 올리고 영상의 고정 댓글에도 같은 문장을 붙였다. 실시간 댓글이 이어졌다. 미안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돈을 더 내겠다며 예외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문을 열어 주겠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이설이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닫아야 할 선을 쓴 겁니다.”

성운은 답했다.

다음 날 아침 도현이 편집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밤새 잠을 설친 얼굴이었다.

“형님. 이거 보셔야겠어요.”

그가 내민 화면에는 종이 계약서를 촬영한 듯한 사진이 있었다. ‘바다 끝 삼치 홍보비 지급’이라는 제목 아래 성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명 칸은 번진 잉크처럼 흐렸다.

‘감동 팔아서 광고비 챙겼네.’

‘위생 민원도 들어갔다던데?’

짧은 글이 서로를 인용하며 늘어났다.

“저희가 받은 돈 없잖아요.”

“압니다. 사진에 적힌 날짜도 우리가 여수에 간 날보다 앞서요.”

도현은 무작정 반박 글을 올리려다가 손을 거두었다. 그때 성운의 휴대폰이 울렸다. 문정자였다.

도현은 사진의 원본과 게시 시각을 따로 저장했다. 여러 계정이 같은 문장을 조금씩 바꿔 올리고 있었다. 잘못된 날짜 하나를 지적해도 잘려 나간 사진 한 장이 또 돌아다니면 그만이었다.

[성운 셰프. 구청에서 사람들이 왔어. 위생 민원이 들어왔다네.]

성운은 벽에 걸린 차 열쇠를 집었다.

“사장님. 저희가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확인하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정자는 셔터를 반쯤 올렸다. 아침 장사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두 명의 위생 담당 공무원이 신분을 밝히고 민원 내용을 읽어 주었다.

전날 저녁 단골들이 찾아간 두 마리 대신 새벽에 새로 받아 온 삼치가 배수판에 놓여 있었다. 정자는 밤새 손질한 것과 오늘 들어온 것을 같은 생선처럼 취급하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손질대에 오래된 피가 남아 있다. 녹은 얼음물에 생선을 담가 판다. 국내산이라고 속인다.

정자는 마지막 문장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가 포구에서 직접 골라 온 생선이야.”

“확인하겠습니다. 작업대와 보관 상태부터 보여 주세요.”

공무원은 정자의 안내를 받으며 작업대를 살폈다. 도마와 칼은 씻어 건조해 두었고 생선은 얼음에 직접 닿지 않도록 배수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온도계는 0도 가까이를 가리켰다. 아래로 빠진 물이 담기는 통은 따로 비워져 있었다.

담당자가 배수판을 들어 보자 삼치 아래에는 고인 물이 없었다. 정자는 말없이 작은 통을 꺼내 배출된 물을 보여 주었다. 담당자는 작업대 모서리를 살피고 손을 씻는 자리와 행주를 따로 확인했다.

“여기 물에 담근다는 민원 내용과는 다르네요.”

담당자가 말했다.

정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전날 전화로 들었던 욕설과 삼 년 전 방송국 카메라가 떠올랐다. 눈앞의 사람이 사실을 보는 동안에도 바깥에서는 벌써 자신을 더러운 장사꾼이라 부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셔터 틈으로 휴대폰 렌즈가 비쳤다. 정자가 등을 돌리자 담당자 한 명이 문 쪽으로 가서 점검 중 무단 촬영을 삼가 달라고 말했다. 짧은 말 한마디에도 정자의 손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담당자가 원산지 표시판을 확인한 뒤 물었다.

“오늘 들어온 생선 거래 자료도 볼 수 있을까요?”

정자는 주방 선반의 양철 상자를 꺼냈다. 손글씨로 적은 선장과의 거래 메모와 송금 내역을 함께 보관하는 상자였다. 그런데 맨 위쪽 종이 한 장의 모서리가 젖어 있었다. 새벽에 젖은 손으로 뚜껑을 열다가 물이 들었는지 날짜와 생선 수량의 일부가 번져 있었다.

정자의 손끝이 굳었다.

“선장한테 물어보면 돼. 그 사람 배에서 받아 왔어.”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선장은 조업 중이었다.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확인했습니다. 지금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 건 아닙니다. 이 종이와 송금 내역을 대조할 수 있게 자료를 보완해 주세요.”

“손질대가 더럽다는 말도 확인이 됐습니까?”

“지금 살펴본 상태에서는 민원에 적힌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자료를 받고 확인하겠습니다.”

담당자는 확인이 필요한 항목을 적어 정자에게 건넸다.

정자는 통에 놓인 오늘 새로 들인 삼치를 보았다. 밤새 바다를 건너온 생선에는 아직 칼을 대지 않았다. 매일 같은 배에서 오는 삼치라도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확인되기 전에는 안 팔아.”

“사장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공무원이 돌아간 뒤 정자는 셔터를 다시 내렸다. 철판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성운 일행이 여수에 도착한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파란 간판 아래에는 ‘오늘은 쉽니다’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 아래에 누군가 검은 펜으로 ‘위생 불량?’이라고 써 놓았다.

도현이 그 글씨를 보자마자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런 것까지 찍어서 올려야겠어요. 누가 시작했는지 찾아야죠.”

“사장님께 먼저 묻죠.”

성운은 휴대폰으로 정자에게 도착을 알렸다. 잠시 뒤 좁은 옆문이 열렸다.

도현은 카메라를 가방에 다시 넣었다. 문 앞의 낙서를 먼저 올리면 분노는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까지 따뜻한 댓글을 남기던 사람들까지 누군가를 공격하는 쪽으로 밀어 넣고 싶지는 않았다.

가게 안은 차갑고 깨끗했다. 아무 음식 냄새도 나지 않았다. 정자는 의자에 앉은 채 젖은 메모를 펴 두고 있었다.

“영업정지라며 벌써 글이 돌더라. 그 사람들은 여기 들어와 보지도 않았어.”

“점검하신 분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확인할 게 남았다고. 당장 문 닫으라는 말은 안 했어. 내가 닫은 거야.”

정자는 번진 날짜 부분을 손톱으로 짚었다. 금액과 선장의 이름은 읽혔지만 수량은 흐릿했다.

옆에는 이른 새벽에 찍힌 송금 기록이 있었다. 액수는 적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어느 배에서 몇 마리를 받았는지 보는 사람이 모두 납득할 수는 없었다. 선장과 연락이 닿아야 했다.

성운은 그 종이를 손대지 않았다.

“선장님과 통화할 때까지 저희도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은 벌써 단정했는데?”

정자의 말에 성운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이설이 빈 그릇 세 개를 찾아 식탁에 올렸다.

“사장님은 식사하셨어요?”

“그게 넘어가겠니.”

“저도 그런 날에는 냄새부터 확인해요. 괜찮으면 한 숟가락만요.”

이설은 자기 이야기를 더 보태지 않았다. 정자가 성운을 보았다.

“생선은 손대지 마. 이 가게에서 네가 해 줄 게 있으면 국이나 끓여 줘.”

성운은 정자의 허락을 받고 냉장고에서 무 한 토막을 꺼냈다. 냄비 바닥에 멸치를 살짝 덖어 남은 습기를 날린 뒤 물을 붓고 무를 얇게 썰어 넣었다. 멸치 향이 맑게 올라왔다.

“무를 얇게 써는구나.”

“빨리 익혀야 사장님이 덜 기다리시니까요.”

“나한테도 기다리라더니.”

“생선은 기다려야 맛이 나지만 국은 지금 필요합니다.”

정자의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국물에는 소금을 조금만 넣었다. 숟가락으로 건드리자 푹 익은 무가 결을 따라 부서졌다. 정자는 첫 모금을 오래 머금었다. 짠맛보다 먼저 무의 단맛과 멸치의 구수함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두 번째 숟가락에는 밥을 조금 풀었다. 국물에 닿은 밥알이 부드럽게 흩어졌다. 정자는 오전 내내 비워 둔 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서야 굳었던 손가락을 폈다.

이설은 자신의 그릇에도 국을 담았다.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삼키지 않았다. 향을 맡고 한 숟가락을 떠먹은 뒤 정자와 나란히 앉았다.

“새벽마다 선장이 나한테 두 마리 더 맡길 때가 있었어. 나는 네 마리 넘게는 못 본다고 돌려보냈지.”

정자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 사람 이름 석 자를 내가 기억해. 종이 한 장이 번졌다고 그 생선까지 남의 것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

도현은 노트북을 열어 원본 영상 파일과 촬영 일정, 채널 계좌 내역을 모았다. 그러나 정자의 작업대 쪽으로 렌즈를 들이대지 않았다.

“반박 영상에 가짜 계약서부터 띄우면 눈길은 끌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러면 사장님 주방은 또 뒤로 밀립니다.”

도현이 파일 이름을 정리하며 말했다.

“저희가 받은 돈이 없다는 건 자료로 보여 드리고 오늘 점검받은 일도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확인 중인 것은 확인 중이라고요.”

“사장님. 내일 선장님과 연락이 되면 그때 촬영해도 될까요? 가게 전체 말고 손질대와 온도계, 사장님 손만요.”

“점검받은 건 숨기지 마. 남은 확인도 그대로 말해.”

“네.”

“선장이 돌아오기 전에는 원산지까지 다 밝혀졌다고 떠들지도 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얼굴도 필요 없어.”

이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화면 밖에서 확인할게요. 불편하시면 언제든 멈추라고 말씀해 주세요.”


같은 시각 서울의 태식F&B 사무실에서는 직원이 게시물 통계를 넘기고 있었다.

“계약서 사진이 퍼졌습니다. 위생 민원 이야기가 붙으면서 검색어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박태식은 화면을 훑고 짧게 말했다.

“점검받았다는 말만으론 약해. 영업정지 확정이라고 써.”

“아직 처분이 난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써야지. 사실이 따라오기 전에.”

직원은 입을 다물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여수 가게에서는 도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같은 문장이 여러 계정에서 동시에 올라오고 있었다.

‘바다 끝 삼치 위생 불량으로 영업정지 확정.’

정자가 그 글을 읽었다. 국그릇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성운은 댓글 입력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문서를 들고 거짓말과 싸울 수는 없었다.

“내일 아침에 문을 열어 주세요.”

“손님 받으라고?”

“아니요. 사장님이 허락하신 만큼만 보여 주려고요. 물이 어디로 빠지는지, 생선이 어디에 놓이는지, 모르는 건 무엇인지까지요.”

정자는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숨기지 마. 내가 오늘 문을 닫은 것도.”

“네. 그것부터 말하겠습니다.”

셔터 너머에서 누군가 간판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났다. 정자는 일어나 불을 끄지 않았다. 내일 카메라가 비출 작업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