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8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도현은 노트북 화면에 채널 개설 버튼을 띄워 놓고도 한참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거 누르면 진짜 시작입니다.”
성운은 마당 한쪽에 놓인 카메라를 바라봤다. 검은 렌즈는 아직 꺼져 있었지만 그 안에는 온기를 찾았던 사람들의 얼굴과 말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미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그건 손님으로 시작한 거고요. 이제는 저희 이름으로 시작하는 거죠.”
도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예전에 함께 방송을 만들던 편집자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전 국가대표 손님 이야기를 첫 화면에 넣으면 반응이 클 겁니다. 얼굴은 가리고 이력만 써도 되고요.’
도현은 화면을 이설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메시지를 지운 뒤 노트북을 성운 쪽으로 돌렸다.
“이런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거절하면 됩니다.”
“조회수는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분의 이야기를 빌려서 시작하면 채널이 오래 못 갑니다.”
이설은 평상 끝에 앉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면 안 될까요?”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요. 음식이 편해진 이유 정도는 말할 수 있어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현은 채널 소개란에 적어 둔 문장을 지웠다.
‘전국의 맛집을 찾아드립니다.’
성운이 그 자리에 짧게 적었다.
‘음식과 사람의 선택을 함께 기록합니다.’
도현이 채널 이름을 입력했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개설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작은 축하 문구가 떴다. 도현은 웃었지만 박수를 치지는 않았다. 성운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만든 것보다 그 이름으로 무엇을 하지 않을지가 더 중요했다.
“첫 인사를 녹음하죠.”
도현이 마이크를 켰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성운은 첫 문장을 말하고 멈췄다. 평범한 인사였지만 목 안쪽이 이상하게 잠겼다. 호텔 주방에서 셰프의 이름을 걸고 음식을 내던 때와는 다른 떨림이었다.
이설이 마이크를 향해 몸을 조금 기울였다.
“잘 먹는다는 말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을 겁니다.”
도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그래서 이 채널에서는 먹는 양을 정하지 않겠습니다. 냄새만 맡고 돌아가도 되고 한 숟가락만 먹어도 됩니다.”
이설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오늘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고르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녹음이 끝났다. 도현은 목소리를 한 번 재생한 뒤 이설의 이름을 자막에 넣지 않았다.
첫 영상에는 성운이 숫돌에 칼날을 세우는 장면과 복만이 낡은 여행 가방을 닦는 장면 그리고 여수의 어두운 바다 사진을 담았다. 영상 마지막에는 도현이 메모 한 장을 비췄다.
‘밤바다 끝의 파란 간판.’
게시 버튼을 누른 도현은 곧장 통계를 확인하려 했다. 성운이 그의 손목을 가볍게 눌렀다.
“지금은 조회수를 보지 맙시다.”
“그럼 뭘 봐요?”
“다음에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봐야죠.”
성운은 여수로 가는 길과 촬영 장비 목록을 수첩에 적었다. 이설은 자신의 가방을 작게 꾸렸다. 구토 봉투와 물병 그리고 얇은 겉옷을 챙긴 뒤 한참 생각하다가 마스크를 가방 안쪽에 넣었다.
“마스크는 안 쓰려고요?”
성운이 묻자 이설은 가방 지퍼를 닫았다.
“계속 쓰고 있을 수도 있어요. 다만 제가 필요할 때 벗어 보려고요.”
여수로 내려가는 길은 산길보다 완만했지만 이설의 손은 무릎 위에서 계속 오므라들었다.
도현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조수석의 성운은 제보 메모와 수첩을 번갈아 보며 이동 시간을 확인했다.
“삼치는 잡힌 뒤부터 살이 빠르게 무른다고 합니다.”
“회로 먹는데 바로 안 먹고 숙성한다고요?”
도현이 룸미러로 이설을 살폈다.
“선어회는 손질과 온도 관리가 중요해요. 얼려서 살을 굳히는 것과 차갑게 보관하면서 숙성시키는 건 다릅니다.”
성운은 수첩에 적힌 문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삼치는 기름이 많은 생선이라 잡은 직후의 향과 시간이 지난 뒤의 단맛이 크게 달라집니다. 어느 지점에서 멈추느냐가 노포의 실력일 겁니다.”
이설은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직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에는 젖은 풀 냄새 대신 낯선 짠 기운이 섞여 있었다.
“냄새가 나요.”
“불편하면 창문을 닫겠습니다.”
“아니요. 조금 더 맡아 볼게요.”
도현은 더 묻지 않고 속도를 낮췄다.
여수의 해안 골목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오래된 간판 사이로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작은 간판이 보였다.
‘바다 끝 삼치’.
간판 아래에는 제보 메모와 같은 파란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문 앞에 선 이설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다 쪽을 먼저 바라봤다. 방파제 너머의 물결은 낮은 빛을 받아 은색으로 흔들렸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성운이 말했다.
“네.”
“지금 들어가도 되고 조금 있다가 들어가도 됩니다.”
이설은 바다에서 가게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먼저 들어갈게요. 다만 먹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그 선택까지 촬영하면 됩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수조는 없었고 주방 옆에는 스테인리스 작업대와 얼음이 담긴 낮은 통이 놓여 있었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다 맛집이 되는 줄 알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칼을 닦으며 말했다. 명찰에는 문정자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게를 예쁘게 찍으러 온 게 아닙니다. 제보를 받고 음식이 어떤 방식으로 나오는지 기록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도현이 허리를 숙였다.
“오늘 바로 찍을 수 있나?”
“해가 지기 전에는 회를 내지 않습니다.”
정자는 작업대 위 삼치를 가리켰다. 생선은 얼음 위에 배를 아래로 두고 있었고 꼬리 쪽으로 맑은 물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잡은 생선을 얼리면 편하긴 해. 하지만 살결이 깨지고 기름 향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우리는 얼리지 않고 피를 빼고 물기를 닦아 저온에서 쉬게 해.”
성운이 작업대 가까이 다가갔다.
“배 쪽에 얼음이 직접 닿지 않게 하셨네요.”
“살이 눌리면 그 자리부터 맛이 변해. 얼음은 차갑게 하는 데 쓰는 거지 생선을 짓누르는 데 쓰는 게 아니야.”
정자는 온도계를 들어 보였다. 숫자는 0도에 가까웠다.
“몇 시간 쉬게 합니까?”
“오늘 생선은 밤 일곱 시가 넘어야 칼을 댈 거야.”
도현이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기다리기 싫으면 다른 데 가면 돼. 삼치는 사람 사정에 맞춰 익지 않거든.”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정자는 카메라를 막지 않았다.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과정부터 찍겠습니다.”
도현은 잠시 성운을 보다가 삼각대를 세웠다. 카메라가 켜졌지만 정자는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얼음이 녹은 물을 버리고 작업대를 닦는 손만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예전에 방송을 탄 뒤에 사람들이 낮에 와서 회를 달라고 소리를 질렀어. 안 된다고 하니까 장사가 안 되는 집이라고 댓글을 달더군. 그 뒤로는 먼저 약속을 받지 않으면 촬영을 안 해.”
“오늘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사연도 멋대로 만들지 않겠습니다.”
정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럼 찍어. 대신 내 얼굴은 안 나와도 된다.”
“가게 이름은요?”
“간판만 있으면 됐지. 오래된 이야기를 꾸며서 붙이지는 마.”
성운은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음식은 손질대 위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바다 아래로 내려가자 가게 안의 생선 냄새가 조금씩 짙어졌다.
이설은 문밖 의자에 앉아 있다가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현은 촬영을 멈춘 채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밖에 있어도 괜찮아요.”
“알아요.”
이설은 손가락으로 의자 가장자리를 쓸었다. 소금기 섞인 바람이 목 뒤를 스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돌아가고 싶어서 나가는 건지 냄새가 무서워서 나가는 건지 구분해 보고 싶어요.”
성운은 문 안쪽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구분하지 못해도 됩니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그쪽을 따라가세요.”
이설은 잠시 바다를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마스크를 벗어 손에 쥐었다.
정자가 칼을 숫돌에 한 번 세웠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좁은 가게 안에 길게 퍼졌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네.”
도마 위에 삼치가 놓였다. 성운은 살결을 손끝으로 누르지 않고 칼날을 세워 표면의 탄력을 확인했다. 껍질 아래의 은빛은 기름을 품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번들거리지 않았다.
정자가 첫 칼집을 냈다. 칼은 뼈를 긁지 않고 살 사이를 미끄러졌다. 도마 위로 맑은 물기가 가느다랗게 번졌다.
도현이 마이크를 성운 쪽으로 내밀었다.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아직 먹기 전입니다.”
성운은 칼끝과 접시를 번갈아 보며 말을 골랐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삼치는 시간을 잘못 다루면 단맛보다 무거운 기름 향이 먼저 올라옵니다. 이 집은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자가 얇게 썬 한 점을 접시에 올렸다. 붉은 살과 은빛 껍질이 겹쳐졌지만 소금도 간장도 곁들여지지 않았다.
“첫 점은 아무것도 찍지 마.”
정자가 말했다.
성운은 접시를 카메라 앞에 놓았다. 도현이 녹화 버튼을 확인했다.
이설은 접시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바다와 생선의 냄새가 섞여 코끝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성운 씨.”
“네.”
“이번에는 냄새부터 들어 볼게요.”
성운은 접시를 그녀 쪽으로 밀었다. 아직 누구도 먹지 않은 삼치 한 점이 조용히 빛났다.
도현의 카메라가 처음으로 세 사람을 한 화면에 담았다.
성운이 낮게 말했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바다 쪽에서 밤바람이 불어왔다. 삼치의 숙성은 이제 막 끝났고 이설의 선택은 아직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