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7화: 잊고 있던 온기
이설은 빈 대접을 한참 내려다봤다.
눈물은 멎었지만 뺨에는 아직 젖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성운은 닦으라고 하지 않았다. 보리차를 한 잔 더 따라 이설의 손 가까이에 놓았을 뿐이었다.
“물이 식기 전에 조금 드세요.”
“저… 너무 많이 먹은 건 아니죠?”
성운은 대답하기 전에 대접 안을 살폈다. 투명한 국물은 한 방울도 남지 않았고 밥알도 보이지 않았다.
“많고 적은 건 제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
이설의 손가락이 찻잔을 감쌌다.
“그럼 뭘 정해야 해요?”
“오늘은 여기까지 먹을지 조금 더 머물지 이설 씨가 정하면 됩니다.”
그 말에 이설은 금방이라도 다시 울 것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선수 시절에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 일어나는 시간과 훈련량 그리고 식탁에 앉아야 하는 시간까지 기록표의 칸 안에 들어 있었다.
성운이 빈 대접을 치우려 손을 뻗자 이설이 먼저 대접을 들었다.
“제가 씻을게요.”
“손님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손님으로만 있고 싶지는 않아서요.”
이설은 대접을 들고 우물가로 갔다. 찬물이 백자 표면을 스쳤다. 가느다란 손목은 떨렸지만 대접을 놓치지 않았다.
성운은 말없이 옆에 섰다. 이설은 물만 흘려보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닭국물을 자주 끓여 줬어요.”
“수영을 시작한 건 일곱 살 때였어요. 처음에는 물에 오래 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훈련이 됐어요. 훈련이 끝나면 아버지는 말없이 국물을 데워 주셨고요.”
“말없이요?”
“네. 잘했다고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 국물이 식을까 봐 그릇을 먼저 데워 뒀어요.”
이설은 대접을 뒤집어 물기를 뺐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으니까 받는 밥이라고 생각했고요.”
성운이 젖은 행주를 건넸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이설은 대접의 물기를 닦았다. 시선은 대문 밖 어두운 골목으로 향했다.
“어깨를 다친 뒤부터요.”
다음 날 아침 이설은 온기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모자는 쓰고 있었지만 마스크는 턱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성운은 놀란 기색 대신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차 드시겠어요?”
“걷고 싶어요. 냄새가 덜한 곳으로요.”
성운은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둘은 집 뒤편 냇가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비가 온 뒤라 흙길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냇물은 낮은 돌을 타고 흘렀다. 물비린내와 젖은 풀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이설은 다리 앞에서 멈췄다.
“수영장 물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날 때가 있어요. 소독약 냄새 사이에 젖은 타일 냄새가 섞여요.”
“돌아갈까요?”
“아니요. 잠깐만요.”
이설은 냇물을 내려다봤다. 물속에는 부러진 나뭇가지와 모래가 보였다. 수영장 바닥처럼 반듯하지도 않았고 레인을 나누는 줄도 없었다.
“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훈련하다가 어깨를 다쳤어요. 턴을 하려고 벽을 밀었는데 오른쪽 팔이 빠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이설은 오른쪽 어깨를 감싸 쥐었다.
“처음에는 참고 계속했어요. 수영 선수는 아프다고 멈추면 안 된다고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물 밖으로 나오니까 팔을 들 수가 없더라고요.”
성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회전근개와 관절 주변 손상이었어요. 수술을 해도 예전처럼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고요. 대표팀에서는 다음 선수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이설은 웃으려다 실패했다.
“아버지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요. 재활하면 된다고 했고 먹어야 힘이 난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시 수영장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어요.”
“국물도요?”
“네.”
이설은 고개를 숙였다.
“닭국물 냄새만 맡아도 훈련이 떠올랐어요. 먹고 회복해야 하고 회복해서 다시 기록을 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끓여 둔 냄비를 싱크대에 부어 버렸어요.”
냇물 소리가 잠시 크게 들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게 더 힘들었어요. 화를 내면 미안하다고 할 수라도 있는데 그냥 냄비를 씻고 나가셨어요.”
“그 뒤에 은퇴를 결정했습니까?”
“제가 결정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사실은 통보받았어요. 재활이 길어지면서 대표팀 명단에서 빠졌고 코치는 다른 길을 준비하라고 했어요. 그날 집에 돌아와서 식탁을 봤어요. 아무것도 없는데도 국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이설의 목소리가 끊겼다.
성운은 냇가 옆 낮은 돌을 가리켰다.
“잠깐 앉으세요.”
“제가 너무 오래 이야기하죠?”
“아닙니다.”
“다들 이제 그만하라고 했어요. 이미 끝난 일인데 왜 계속 붙잡고 있느냐고.”
“끝난 일과 아픈 일이 같은 건 아니니까요.”
이설은 돌 위에 앉았다. 젖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아버지는 제가 선수가 아니어도 국물을 끓여 줬을까요?”
성운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대신 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강요가 될 수 있었다.
“그건 이설 씨가 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설은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물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아버지가 제 기록만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릇을 데워 둔 건 기록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으로 이설의 입가에 어제보다 분명한 미소가 번졌다.
“다음에는 제가 먹을 양과 메뉴를 골라도 될까요?”
“온기는 원래 손님이 고르는 곳입니다.”
점심 무렵 도현이 서류 봉투와 노트북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회의만 하려고요. 카메라는 꺼져 있습니다.”
그는 이설을 발견하고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설은 그 짧은 배려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인사했다.
도현이 노트북을 펼치자 화면에 채널 이름 후보와 시청자들이 보낸 사연이 나타났다.
‘혼자 먹는 저녁이 너무 오래됐습니다.’
‘엄마가 하던 국의 맛을 찾고 싶어요.’
‘관광지 말고 진짜 오래된 식당을 보고 싶습니다.’
성운은 글자들을 천천히 읽었다. 음식 사진을 보내 달라는 요청보다 먹지 못하는 이유를 털어놓은 글이 많았다.
“이런 사연을 방송에서 다루면 반응은 클 겁니다.”
도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설 씨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지는 않아요. 회복하는 사람을 화면에 세워 놓고 모두가 박수치게 만드는 건 제가 하려던 방송이 아닙니다.”
이설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음식이 왜 편해졌는지는 말할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닭가슴살이 운동 음식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기억일 수도 있다고요.”
도현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목소리만 녹음해도 될까요?”
이설은 잠시 생각했다.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어도 괜찮다면요.”
“완성시키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성운은 도현을 바라봤다.
“채널을 만들 거라면 맛있는 장면만 보여주면 안 됩니다. 누가 왜 그 음식을 먹게 됐는지 그 사람의 선택을 먼저 담아야 해요.”
“광고가 들어오면요?”
“음식과 상관없는 조건이면 거절해야죠.”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채널 이름은 그대로 가겠습니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그 이름이 마당에 놓이자 성운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잘 먹으라고 명령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오늘도 살아 있는 사람이 서로의 식탁에 건네는 작은 인사에 가까웠다.
도현은 봉투에서 메모 한 장을 꺼냈다.
“첫 탐방 제보가 하나 있습니다. 여수에 삼치 선어회만 고집하는 작은 노포가 있대요. 냉동하지 않은 삼치를 손질해서 하루 숙성한 뒤 내는 집입니다.”
이설이 처음으로 노트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삼치를 회로 먹는다고요?”
“기름이 빨리 변하는 생선이라 손질과 온도 관리가 까다롭다고 합니다.”
성운은 메모의 주소와 연락처를 확인했다. 제보자는 가게 이름 대신 ‘밤바다 끝의 파란 간판’이라고만 적어 두었다.
“확인부터 해 봐야 합니다. 제보만으로 맛을 단정할 수는 없어요.”
“제가 같이 가도 될까요?”
이설의 질문에 도현과 성운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
“먹겠다는 약속은 못 해요. 다만 생선 냄새가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 수영을 그만둔 뒤 바다에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어서요.”
성운은 메모를 접어 노트 위에 올려 두었다.
“먹지 않아도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있으니까 가고 싶어요.”
저녁에 성운은 작은 솥에 밥을 반 공기만 안쳤다.
닭 육수에 물을 조금 보태고 소금은 넣지 않았다. 이설이 식탁에 앉았을 때 김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오늘은 이걸 먹어 볼래요.”
성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숟가락을 그녀 앞에 놓았다. 이설은 국물 한 숟갈과 밥 두 숟갈을 천천히 먹었다. 세 번째 숟가락 앞에서 손을 멈췄다.
“여기까지 할게요.”
“네.”
성운은 그릇을 치우지 않았다. 이설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현은 마당 한쪽에서 여수행 촬영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복만은 낡은 여행 가방을 가져와 성운 앞에 내려놓았다.
“바다에 가려면 옷을 챙겨야지. 네 셔츠는 죄다 국물 냄새가 배어 있더라.”
“아직 날짜도 안 잡혔어요.”
“날짜가 잡힌 뒤에 챙기면 늦는다.”
복만은 이설에게도 가방을 내밀었다.
“아가씨 것도 하나 빌려줄까?”
“괜찮습니다. 제가 준비할게요.”
이설은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
“이번에는 제가 고르고 싶어요.”
성운은 여수 제보 메모를 펼쳤다. 맑은 닭곰탕 한 그릇으로 시작한 작은 마당이 이제 바다 쪽으로 길을 내고 있었다.
이설은 다 먹지 못한 그릇을 내려다봤다. 예전 같으면 남은 양을 세며 자신을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숟가락을 내려놓은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성운 씨.”
“네.”
“다음에는 제가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도 되죠?”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설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편안한 숨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제보다 길고 따뜻했다.
도현이 노트북을 닫으며 물었다.
“그럼 첫 인사는 언제 녹음할까요?”
성운은 카메라가 놓일 자리를 바라봤다. 아직 아무것도 켜지지 않은 검은 렌즈였다.
“여수에서 돌아와서요. 먼저 우리가 어떤 음식을 만났는지 알아야 하니까.”
이설은 남은 밥그릇 옆에 여수 메모를 끌어당겼다.
종이 위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밤바다 끝의 파란 간판. 삼치가 가장 맛있는 시간은 해가 진 뒤.’
마당의 불씨가 바람에 흔들렸다. 성운은 장작 하나를 더 얹었다.
온기는 한 그릇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누군가가 다시 숟가락을 들 수 있도록 기다리는 마음은 이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