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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먹겠습니다5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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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마음을 닫은 손님

아침부터 대문 밖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성운은 가마솥 뚜껑을 닫은 채 골목을 내다봤다. 어제보다 밥은 두 배로 안쳤고 장작도 마당 한쪽에 더 쌓아 두었다. 그래도 평상 둘과 소반 몇 개가 온기의 전부였다.

“여기가 그 방송에 나온 곳 맞죠?”

젊은 남자가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어제 도현이 찍은 감자전과 ‘지리산 골목의 작은 밥집’이라는 제목이 떠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을 텐데요.”

“댓글에 감나무랑 돌담 이야기가 많아서요. 냄새를 따라왔습니다.”

남자가 카메라를 들자 성운은 대문 옆의 숯글씨를 가리켰다.

“사람 얼굴은 찍지 말아 주세요. 음식만 드시고 가시면 됩니다.”

남자의 손이 잠시 멈췄다.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휴대폰은 내려갔다.

대문 밖에는 세 팀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감자전 소리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부부와 야간 일을 마치고 왔다는 배달 기사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생방송을 켜려는 듯 휴대폰을 세로로 세웠다.

“오늘 메뉴는 감자전과 된장찌개입니다. 밥은 준비한 만큼만 드릴 수 있어요.”

도현은 오늘 카메라를 꺼내지 않은 채 손님들 앞에서 말했다. 작은 종이에 순서를 적어 대문 옆에 붙이고 촬영 금지 원칙도 거듭 안내했다.

“어제는 특별 메뉴처럼 보였는데 오늘도 똑같은 건가요?”

“먹기 좋은 밥을 준비했습니다.”

성운은 주물 팬 위에 감자 반죽을 올렸다. 얇게 펼친 반죽 가장자리에서 수분이 빠지며 작은 기포가 생겼다. 그는 소금을 더 넣지 않았다. 감자의 단맛과 들기름 향이면 된장찌개와 함께 먹기에 충분했다.

치이익.

감자전이 천천히 굳었다. 성운은 반죽이 스스로 팬에서 떨어질 때까지 뒤집개를 대지 않았다. 완성된 감자전은 네 조각으로 나눴다. 한 사람에게 큰 조각 하나를 내기보다 따뜻할 때 모두가 나눠 먹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작게 주시는 거예요?”

“다음 손님 것도 바로 부쳐야 해서요.”

남자는 접시와 대문 밖의 줄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 젓가락으로 감자전 한 조각을 집었다. 바삭하게 굳은 가장자리가 부서지고 안쪽의 부드러운 감자가 입안에서 풀렸다.

“아.”

남자는 된장찌개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주소를 숨긴 거군요.”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운은 밥주걱으로 솥 가장자리를 살짝 긁었다. 김 사이로 갓 익은 쌀의 단내가 피어올랐다.

“숨기는 게 아니라 아직 맞이할 준비가 안 된 겁니다.”

“그럼 오늘 온 사람들은요?”

“오늘은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죠.”

그때 도현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발신자 이름이 비어 있는 비공개 메시지였다.

‘오늘도 문이 열리면 감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도현은 화면을 읽은 뒤 골목 끝을 바라봤다. 큰 감나무 아래에는 아까부터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데다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줄에 합류하지 않았다. 대문 안에서 들려오는 팬 소리만 바라보다가 사람들이 돌아갈 때마다 한 걸음씩 다가왔다.

도현이 먼저 다가가려는 순간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한도현 씨죠?”

낮고 쉰 목소리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짧게 대답하던 여자 선수의 목소리와 같았다.

“혹시 윤이설 선수…….”

여자는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그 이름은 여기서 크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도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알아본 척하지 않을게요.”

“먹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습니까?”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도현은 성운을 바라봤다. 성운은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의 어깨는 지나치게 올라가 있었고 손가락은 마스크 끈을 놓지 못했다. 밥 냄새가 가까워질 때마다 숨이 짧아졌다.

성운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 드셔도 됩니다.”

여자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정말요?”

“네. 앉아 계셔도 되고 물만 드셔도 됩니다. 불편하면 바로 나가셔도 괜찮아요.”

성운은 마당 안쪽의 작은 평상을 가리켰다.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부를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말씀하기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여자는 마스크를 내리지 않은 채 한참 침묵했다.

“윤이설입니다.”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성운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보다 먼저 손목과 호흡을 살폈다. 오랫동안 힘을 쓰던 사람의 몸이었지만 지금은 손가락 끝에 힘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는 그냥 손님으로 있을게요.”

“그렇게 하세요.”

성운은 빈 접시와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내놓았다. 음식은 올리지 않았다.

이설은 빈 접시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없는 그릇이 오히려 편해 보였다.

그날 온기는 점심이 지나서야 조용해졌다. 성운은 마지막 손님에게 밥을 퍼 주고 솥 안을 확인했다. 바닥의 밥알까지 긁어도 한 사람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어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도현이 대문 밖에 안내문을 붙였다. 성운은 남은 감자전 가장자리를 조금씩 싸 주었다. 더 끓일 국물은 남지 않았다.

이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이설은 빈 접시 앞에 앉아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눈이 접시와 주방 사이를 오갔다.

성운은 접시를 치우지 않았다.

“바람이 차면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됩니다.”

이설이 눈을 들었다.

“그 말이 조금 이상해서요. 보통은 괜찮아져야 먹을 수 있다고 하거든요.”

성운은 대답 대신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기 전까지 어떤 질문도 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뒤 그는 식은 밥을 작은 공기에 반 숟갈만 담았다. 찌개 국물은 건더기 없이 체에 한 번 걸렀다. 된장 향이 강하면 안 될 것 같아 물을 조금 더 보탰다.

“먹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냄새가 너무 세면 치울게요.”

이설은 국물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공기를 아주 작게 움직였다. 된장과 애호박 냄새가 섞인 따뜻한 김이 마스크 위로 닿았다.

그녀의 어깨가 다시 굳었다.

성운은 그릇을 치우려 했다.

“잠깐만요.”

이설의 손이 숟가락을 잡았다.

숟가락 끝이 국물 표면에 닿았다. 한 방울이 흔들렸다. 그녀는 그것을 입에 넣지 못한 채 오래 멈춰 있었다.

도현은 주방 쪽에 서 있다가 조용히 뒷문으로 물러났다. 카메라는 이미 꺼져 있었다.

이설은 마침내 국물을 아주 조금 삼켰다.

뜨겁지 않은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맛을 느끼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만큼 숟가락을 움켜쥐었고 숨이 갑자기 빨라졌다.

성운은 물잔을 그녀 쪽으로 밀었다.

“여기까지 하셔도 됩니다.”

이설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밥그릇은 보지 못했다.

“밥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식탁에 앉으면 자꾸 기록을 재는 기분이 들어요. 몇 칼로리인지. 얼마나 빨리 먹는지. 내일 몸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아무도 안 물어보는데 제가 계속 확인해요.”

이설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수영을 그만두고 나서는 기록판이 없어졌는데도요.”

도현은 뒷문 너머에서 숨을 삼켰다. 성운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물에 들어가고 싶으세요?”

말을 꺼낸 뒤 성운은 선을 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물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나오면 다시 먹어야 하고 다시 설명해야 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래서 여기에 왔어요. 누가 제가 먹는지 확인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성운은 더 권하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된장 냄새를 골목의 바람에 흘려보냈다.

“제가 뭘 만들면 드실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지금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설은 한참 뒤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닭 냄새는 괜찮을지도 몰라요.”

성운의 손이 행주 위에서 멈췄다.

“닭곰탕 같은 맑은 국물은요. 어릴 때 아버지가 끓여 주면 국물부터 먹었어요. 지금도 그건 다른 음식보다 덜 무서울 것 같아요.”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후회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 내일 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운은 곧바로 대답했다.

“다만 오신다면 국물은 준비해 두겠습니다. 식혀서 드릴 수 있게요.”

이설은 성운을 바라봤다. 친절한 말 뒤에는 대개 사진 한 장이나 인터뷰 한 줄 같은 대가가 따라왔다. 하지만 성운은 먹지 못한 양을 세지 않았다.

“오늘은 안 먹어도 되는 거죠?”

“네.”

“그럼 조금 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닫혀 있던 이설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렸다.


해가 감나무 가지 사이로 기울 무렵 이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가져가려 했지만 성운이 손을 내저었다.

“그냥 두세요.”

“제가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요.”

“그릇을 옮긴 것도 오늘 하신 일입니다.”

이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성운을 바라봤다. 그래도 접시를 평상 위에 내려놓고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도현이 골목 입구까지 배웅했다.

“방송에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부탁하지 않아도요?”

“네. 부탁받지 않아도 그래야 하는 일이라서요.”

이설은 걸음을 멈췄다.

“그럼 저를 알아본 것도 잊어 주세요.”

“가능한 한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현은 억지로 웃지 않았다. 이설은 잠시 그의 얼굴을 보다가 골목 아래로 내려갔다.

성운은 마당에 남아 장작을 정리했다. 도현이 돌아와 낮게 말했다.

“그분 이야기까지 담으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겁니다. 먹는 문제로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성운은 젖은 장작을 처마 아래에 세웠다.

“도움이 될지는 그분이 정해야죠.”

“셰프님은 정말 아무것도 안 물어보시네요.”

“물어봐서 나아지는 일이 있고 기다려야 나아지는 일이 있으니까요.”

복만이 빈 솥을 들여다보며 마당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밥이 다 나갔구나. 내일은 쌀을 더 불려 놔야겠어.”

“내일은 메뉴를 바꿀 것 같아요.”

“뭘 하려고?”

성운은 바람에 식어 가는 된장 냄새를 맡았다. 이설이 국물을 삼키던 순간 짧아졌던 숨이 떠올랐다. 필요한 것은 더 진한 맛이 아니라 오래 머물 수 있는 맑은 온기였다.

“닭곰탕을 해 보려고요.”

복만은 눈을 끔벅였다.

“내일 손님이 몇 명인데 닭 한 마리로 되겠냐?”

“한 사람분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성운은 가마솥을 씻어 엎어 두었다. 선반에 남은 소금과 생강을 확인했다. 닭 껍질의 기름을 얼마나 걷을지 가슴살을 언제 건질지 머릿속에서 순서가 잡혔다.

대문 밖 골목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성운은 숯을 모아 불씨를 덮었다. 완전히 꺼뜨리기 전까지 붉은 빛이 몇 번 더 살아났다.

내일 이설이 오지 않아도 닭곰탕은 끓일 생각이었다. 다시 올 수 있는 문을 열어 두는 일은 손님이 실제로 들어오는 것과 달랐다. 그 문을 닫지 않는 데에도 요리사의 손이 필요했다.

성운은 장터에 갈 시간을 계산하며 부엌 불을 켰다.

빈 접시 하나가 평상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릇은 비지 않았지만 성운은 그것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직 숟가락을 놓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 온기는 충분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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