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4화: 불시에 켠 불
새벽부터 성운은 쌀을 씻고 있었다.
찬물에 잠긴 쌀알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굴리자 뿌연 물이 피어올랐다. 성운은 물을 세 번 갈았다. 마지막 물이 맑아질 때까지 쌀을 헹군 뒤 넓은 소쿠리에 받쳐 두었다.
오늘은 몇 명이 밥을 먹으러 올지 알 수 없었다.
한도현이 말한 라이브 방송은 예약 장부도 없고 준비한 손님 수도 없는 자리였다. 휴대폰 화면 너머에 누가 앉을지조차 알 수 없는데 불을 켠다는 생각이 성운의 속을 조금씩 조였다.
서울의 주방에서 받았던 평가표가 불현듯 떠올랐다. 접시 하나가 나갈 때마다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던 시간이었다.
성운은 씻은 쌀을 가마솥에 안쳤다.
‘평가받으려고 차리는 밥은 아니야.’
마당으로 나온 복만이 그의 등을 한번 두드렸다.
“새벽부터 물소리가 나길래 또 뭘 하나 했다. 밥은 넉넉히 안치지 그랬냐?”
“처음부터 너무 많이 하면 남길 수도 있어요.”
“남으면 내가 먹지. 내 입이 한 입은 더 크다.”
복만은 낡은 평상을 마른 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는 이웃집에서 빌려 온 놋그릇과 나무 수저까지 들고 왔다.
“방송이라는 건 나도 모르지만 손님이 오면 그릇은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성운은 복만이 쌓아 둔 그릇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마당 한쪽에는 어제 남은 애호박 두 개와 감자 한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순덕이 밭에서 따 왔다며 두고 간 것이었다. 성운은 감자를 하나씩 들어 보며 단단한 것을 골랐다. 수분이 너무 많은 감자는 전이 물러지기 쉬웠다.
“오늘 메뉴는 뭘로 할 건데?”
“감자전이랑 애호박 된장찌개요. 밥도 하고요.”
복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방송까지 한다는데 고기라도 한 판 굽지.”
“잘 보이는 음식보다 지금 먹기 좋은 음식이 나을 것 같아요.”
성운은 감자를 깨끗이 씻어 강판에 갈기 시작했다. 하얀 감자즙이 그릇에 차오르자 체에 밭쳐 물을 뺐다. 가라앉은 전분은 버리지 않고 다시 감자채에 섞었다.
바삭한 가장자리와 촉촉한 속을 붙잡아 줄 것은 밀가루가 아니라 감자 속에 남은 전분이었다.
대문 밖에서 차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도현이 큰 배낭과 접이식 삼각대를 양손에 들고 들어왔다.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눈가에는 옅은 그늘이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들떠 있었다.
“셰프님. 준비는 좀 되셨어요?”
“되는 데까지요.”
도현은 마당을 둘러보더니 작은 한숨과 함께 웃었다.
“진짜 이대로 가시려고요? 메뉴를 몇 개 더 잡고 접시도 예쁘게 세팅하면 화면이 훨씬 좋을 텐데요.”
성운은 감자채에 소금을 한 꼬집 넣었다. 소금이 감자의 수분을 더 끌어내기 전에 바로 팬에 올릴 생각이었다.
“카메라가 먹는 건 아니잖아요.”
도현의 손이 배낭 지퍼 위에서 멈췄다.
“오는 사람이 있으면 따뜻하게 먹고 가야죠. 그걸 먼저 맞추고 싶습니다.”
잠시 후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릴게요.”
휴대폰 화면에 붉은 표시등이 켜졌다.
도현은 삼각대를 평상 끝에 세우고 마당을 넓게 담았다. 돌담의 작은 나무 간판과 장작 화로, 감나무 그늘 아래 놓인 소반이 화면 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계획에 없던 방송입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맑은 아침 공기 속으로 번졌다.
“지리산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밥상을 보여드릴게요. 광고도 협찬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지금 막 점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접속자가 몇십 명에 불과했다. 댓글도 느리게 올라왔다.
‘어디예요?’
‘도현 님 얼굴이 왜 이렇게 좋아 보여요?’
‘오늘은 또 어떤 숨은 맛집입니까?’
성운은 화면에 등을 보인 채 주물 팬을 달궜다. 팬 위에 들기름을 얇게 둘러 향을 깨운 뒤 감자 반죽을 넓게 펼쳤다.
치이익.
낮은 불에서 익기 시작한 감자전은 처음에는 축축한 소리만 냈다. 성운은 성급하게 뒤집지 않았다. 바닥의 전분이 굳어 얇은 막을 만들 때까지 팬 가장자리만 살짝 들어 올려 확인했다.
“처음부터 센 불이면 안쪽 수분이 빠져나올 길이 없어요.”
도현이 카메라 너머로 물었다.
“그럼 언제 불을 올리세요?”
“팬에서 스스로 떨어질 때요.”
성운은 팬 손잡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감자전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제야 불을 한 단계 올리고 넓은 뒤집개를 밀어 넣었다.
퍽.
감자전이 뒤집히자 황금빛으로 익은 면이 드러났다. 고소한 들기름 향과 구운 감자의 달큰한 냄새가 마당에 가득 찼다.
댓글창이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소리 미쳤다.’
‘밀가루 안 넣는 거예요?’
‘저거 한 조각에 막걸리 생각난다.’
도현은 억지로 감탄사를 보태지 않았다. 카메라를 팬 가까이 가져가 바삭하게 부풀어 오르는 가장자리만 비췄다.
성운은 옆 화로에 올린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로 낸 육수를 부었다. 된장을 풀고 양파와 애호박을 넣자 국물은 탁하지 않고 부드러운 갈색으로 맑아졌다.
된장을 더 넣으면 화면에는 진해 보일지 몰랐다. 하지만 감자전과 솥밥까지 함께 먹을 밥상이었다. 성운은 국물 한 숟갈을 맛본 뒤 된장을 반 숟갈만 더 풀었다.
짭짤한 맛보다 애호박의 단맛이 먼저 느껴졌다.
가마솥 뚜껑 틈으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성운은 불을 줄이고 솥 아래의 장작을 하나 뺐다. 밥알에 남은 수분이 고르게 퍼질 수 있도록 뜸을 들일 시간이었다.
“이게 다예요?”
도현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밥상은 원래 이런 게 다예요.”
성운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뒤 댓글창에 다른 문장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며칠째 밥맛이 없는데 냄새만 맡아도 좀 살 것 같네요.’
‘야근하고 컵라면 먹으려 했는데 밥 해 먹고 싶어졌어요.’
‘혼자 사니까 국 끓이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성운은 찌개 냄비의 불을 낮췄다. 화면 속 글자들이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 안에 배어 있는 피로와 허기가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는 카메라가 아닌 솥을 보며 말했다.
“꼭 거창하게 차릴 필요는 없어요. 따뜻한 국물 한 숟갈이면 됩니다. 그걸 먹고 나면 다음 숟갈은 조금 쉬워질 거예요.”
도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속자 수가 천 단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숫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대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렸다.
순덕이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성을 곁에 세운 채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여성은 모자를 깊이 눌러쓴 상태였다. 밥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굳어 있던 손끝이 더 바짝 오므라들었다.
“성운아.”
순덕은 성운을 부르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조카야. 며칠째 제대로 못 먹고 있어. 억지로 데려온 건 아닌데 이 냄새 맡고 여기까지 걸어왔어.”
성운은 여성에게 왜 먹지 못하는지 묻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과 가느다란 손목, 짧고 얕은 숨만으로도 지금 필요한 것이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배고픔은 때때로 입을 열기보다 먼저 사람을 겁먹게 했다.
성운은 작은 공기에 밥을 반만 담았다. 감자전은 가장자리의 얇고 바삭한 부분만 떼어 작은 접시에 놓았다. 된장찌개에서는 맑은 국물과 부드럽게 익은 애호박만 건져 열을 식혔다.
그는 소반을 여성 앞에 조용히 밀어 두었다.
“안 드셔도 괜찮아요.”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국물이 식으면 한 숟갈만 드셔보세요. 밥도 한 숟갈만요.”
도현은 손을 뻗어 삼각대 각도를 바꿨다. 화면에는 여성의 얼굴 대신 잔잔히 끓는 된장찌개와 김이 오른 밥그릇만 남았다.
“잠깐 주방 쪽을 보여드릴게요.”
도현은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댓글창에 누군가가 ‘손님도 보여달라’고 썼지만 이내 다른 댓글들이 그 말을 밀어냈다.
‘그냥 밥 먹게 두세요.’
‘카메라보다 밥이 먼저죠.’
여성은 한동안 숟가락을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순덕이 조카의 등을 쓸어 주려 하자 성운이 눈빛으로 가만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성운은 팬을 닦는 척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잠시 뒤 작은 숟가락이 그릇 가장자리에 닿는 소리가 났다.
여성이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된장 향은 세지 않았고 애호박은 혀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부서질 만큼 부드러웠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간 뒤에야 여성의 굳어 있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맛있어요.”
바람에 섞여 사라질 듯한 목소리였다.
순덕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눈가를 훔치는 손등이 떨렸다.
성운은 모른 척 감자전 접시를 한 뼘 더 가까이 놓았다.
“바삭한 쪽이에요. 기름은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망설이다가 작은 조각을 집었다. 바삭한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그는 씹는 동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성운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불안이 조용히 자리를 바꿨다.
완벽한 접시를 만들지 못해도 괜찮았다. 누군가가 다시 숟가락을 드는 순간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방송을 마칠 무렵 마당에는 감자전 한 장과 된장찌개 한 냄비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도현이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동시 시청자가 이렇게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어요.”
그는 화면을 성운에게 내밀었다. 방송을 저장해 달라는 요청과 내일도 켜 달라는 댓글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위치를 묻는 메시지도 수십 개였다.
“정확한 주소를 올리면 내일은 정말 많이 올 겁니다.”
성운은 대문 밖의 좁은 골목을 바라보았다. 마당에는 평상 둘과 작은 소반 몇 개가 전부였다. 솥도 하나뿐이고 복만이 빌려 온 그릇도 많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와서 오래 기다리다 빈속으로 돌아간다면 오늘의 밥상과는 달라질 것이었다.
“주소는 아직 말하지 마세요.”
도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신 내일 점심에 다시 밥을 차린다고 해주세요. 온 분들만큼만 준비할 겁니다.”
“후원하겠다는 분들도 있어요.”
“밥값도 못 정했는데 후원부터 받을 순 없죠.”
성운은 대문 옆의 나무 간판을 바라보았다. 숯으로 쓴 ‘온기’ 두 글자가 햇빛 아래 조금 흐릿해져 있었다.
“우선 밥을 제대로 차려야죠.”
도현은 한참 화면과 성운을 번갈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제가 그렇게 말할게요.”
방송 종료 버튼이 눌렸다.
그제야 도현의 휴대폰 상단에 비공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온기라는 곳이 정확히 어디입니까? 꼭 찾아가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도현은 보낸 사람의 이름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성운에게 바로 보여줄까 고민했지만 성운은 이미 화로 곁에 쪼그리고 앉아 남은 숯을 한데 모으고 있었다.
성운은 내일 쓸 장작을 골라 세워 두었다.
오늘보다 조금 더 많은 밥을 안칠 생각이었다.
지리산의 바람이 마당을 스치자 식어 가던 화로 안에서 작은 불씨가 다시 붉게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