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블라인드 아포칼립스8화

블라인드 아포칼립스

블라인드 아포칼립스

AD
스폰서 광고

8화: 셔터 아래의 숨

정문 보조 셔터가 들썩일 때마다 통로 바닥의 먼지가 발목을 향해 밀려왔다.

— 쿠우웅.

철판 아래의 틈에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왔다. 젖은 콘크리트 냄새와 핏비린내가 뒤엉킨 바람이었다. 한결은 무릎을 굽혀 손등을 바닥 가까이 내렸다. 공기가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방향이 일정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밀어 올린 철판이 바닥을 스치며 떨릴 때마다 틈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수아가 벽을 짚으며 셔터 레일까지 다가갔다. 눈가리개 아래로 새는 숨이 가늘게 떨렸다.

“바닥 걸쇠는 살아 있어요. 셔터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아래쪽이 휘는 거예요.”

“밖에 몇 명입니까?”

박두식이 낮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충격은 하나씩 와요.”

한결이 바닥에 손끝을 댔다. 충격은 철판 중앙이 아니라 오른쪽 하단에서 먼저 울렸다. 무언가가 몸무게를 싣고 밀다가 통로 안의 소리가 바뀌면 위치를 옮기는 듯했다.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덩치가 크거나 밀 줄 아는 놈일 수도 있고요.”

말을 끝낸 한결의 손끝에 축축한 것이 닿았다. 배수 홈을 따라 들어온 붉은 안개 찌꺼기였다. 빛은 없었다. 하지만 차갑고 끈적한 감촉이 얇은 막처럼 타일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생수 수레를 가져옵시다.”

박두식이 민석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저놈은 빼고 가. 눈에 붉은 게 남았다는 놈을 셔터 앞에 왜 둬?”

민석의 숨이 턱 막혔다. 아까부터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이 떨려 옷감 스치는 소리를 냈다.

한결은 민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석 씨. 내 목소리 들립니까?”

대답은 한 박자 늦었다.

“들려요.”

“손바닥을 펴세요. 손가락 다섯 개를 하나씩 접습니다. 하나.”

민석이 숨을 삼켰다.

“둘.”

한결은 일부러 셋을 바로 말하지 않았다. 민석의 떨리는 손가락 관절이 굽혀지는 작은 마찰음을 들었다. 손에 힘을 주고 순서를 따라갈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공포에 완전히 떠밀린 상태가 아니었다.

“셋.”

민석의 호흡이 조금 길어졌다.

“아직 위험하다고 정해진 게 아닙니다.”

한결이 박두식에게 말했다.

“정해질 때까지는 사람으로 대합니다.”

박두식은 한결을 노려보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셔터가 다시 한 번 울렸다.

— 쿠웅!

이번 충격은 왼쪽에서 왔다. 지우가 한결의 소매를 붙들었다.

“옮겼어요. 처음엔 오른쪽이었는데 이번엔 왼쪽이에요.”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밖의 존재는 무작정 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안쪽의 발소리와 숨소리에 맞춰 힘을 줄 자리를 찾고 있었다.

“수아 씨. 팔레트는 어디 있죠?”

“벽 쪽이에요. 생수 네 상자 올린 채로요. 포장 랩도 손잡이에 감아 놨어요.”

“정면으로 밀면 됩니까?”

“안 돼요. 셔터 앞 배수 홈에 바퀴가 빠져요. 왼쪽으로 넣어서 손잡이를 꺾어야 해요.”

한결은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얕은 홈은 셔터와 나란히 길게 나 있었다. 바퀴가 빠지는 순간 수레는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출 것이다. 그 소리는 밖의 존재에게 통로의 모양까지 알려 주는 꼴이 된다.

“수아 씨가 앞을 잡아요. 팀장님은 오른쪽을 받치세요. 지우는 민석 씨 손을 잡고 내 뒤에 서. 손을 한 번 쥐면 멈추는 신호야.”

지우가 대답 대신 민석의 손을 꼭 쥐었다.

한결은 팔레트 수레의 손잡이를 만졌다. 테이프로 감은 바퀴는 거칠었고 생수 상자의 무게는 팔뚝으로 묵직하게 전해졌다. 그는 수레 앞쪽을 살짝 들어 바퀴가 배수 홈을 비켜 가는 각도를 잡았다.

“밀어요.”

수레가 움직였다.

생수 상자들이 낮게 출렁이고 비닐이 마찰하는 소리가 통로를 훑었다. 곧바로 셔터 밖에서 거친 숨이 들렸다. 사람의 숨이라기에는 깊고 물기가 많았다.

— 하아아.

쿵!

철판이 위로 들리며 바람이 발목을 훑었다. 붉은 찌꺼기가 배수 홈을 따라 퍼져 한결의 운동화 밑창에 닿았다.

수아가 숨을 들이켰다.

“이거 닿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직접 본 사람이 변했습니다.”

한결은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말했다.

“닿는 건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 확인하려고 가까이 있진 마세요. 빨리 끝냅시다.”

모른다는 말은 누구도 안심시키지 못했다. 대신 모두의 움직임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팔레트가 배수 홈 앞까지 왔다. 한결이 발끝으로 홈의 가장자리를 찾고 수레를 왼쪽으로 틀었다. 수아가 손잡이를 당기는 방향을 바꾸고 박두식이 어깨로 수레 옆을 밀었다.

바퀴 하나가 홈을 간신히 넘었다.

그때 민석이 뒤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지우가 재빨리 민석의 입을 눌렀지만 목 안에서 새는 숨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 흐. 흐흐.

젖은 웃음과 닮은 소리였다.

지우의 손이 한결의 팔목을 파고들었다.

“한결 아저씨. 민석 아저씨가 웃었어요.”

“전 안 웃었어요.”

민석이 울먹였다. 그러나 문장 끝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떨렸다. 음료 코너 진열대 사이에서 들었던 웃음의 억양이 아주 얇게 겹쳐 있었다.

박두식이 몸을 돌렸다.

“들었지? 묶어.”

“지금 수레에서 손 떼면 셔터가 열립니다.”

한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묶을지 말지는 이걸 막고 결정하세요.”

박두식의 숨이 거칠어졌다. 잠깐 뒤 그는 욕설을 삼킨 채 다시 수레에 어깨를 붙였다.

“밀어.”

팔레트의 생수 상자가 셔터 하단에 닿았다. 단단한 비닐 포장 너머로 철판의 떨림이 한결의 손까지 전해졌다.

쿵!

바깥의 힘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팔레트가 반 뼘 뒤로 밀렸다. 박두식의 발뒤꿈치가 타일을 긁었다. 수아가 비명을 삼키며 수레 손잡이를 놓칠 뻔했다.

“랩 주세요.”

수아는 곧장 허리춤의 포장 랩 뭉치를 꺼냈다. 한결은 통로 난간 기둥을 더듬어 위치를 잡았다. 수아가 팔레트 손잡이와 난간을 한 바퀴 감고 또 한 바퀴 감았다. 얇은 비닐이 팽팽하게 늘어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셔터 밖이 조용해졌다.

그 침묵이 한결의 등골을 서늘하게 훑었다. 바람도 멎었다. 외부의 존재가 힘을 빼고 철판 가까이에 붙어 통로 안의 숨을 듣고 있었다.

“입 가리세요.”

한결이 속삭였다.

박두식이 민석의 입을 장갑 낀 손으로 막았다. 지우는 자신의 팔꿈치로 코와 입을 가렸다. 수아는 랩을 감던 손을 멈춘 채 숨을 죽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몇 초가 지났다.

— 톡.

셔터 왼쪽 아래에서 아주 작은 금속음이 났다.

— 톡.

이번에는 오른쪽이었다.

지우의 손가락이 한결의 팔목을 두 번 눌렀다. 한결은 알아들었다. 밖의 존재가 철판을 세게 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두드리며 약한 자리를 찾고 있었다.

한결은 손을 더듬어 낮은 운반 카트를 찾았다. 7화에서 생수 수레와 함께 끌고 나온 카트였다. 바퀴는 작고 단단했다.

“카트 앞을 들어 주세요.”

수아가 즉시 반응했다. 한결은 카트의 앞쪽 바퀴를 손으로 돌려 방향을 바꾼 뒤 팔레트 밑의 낮은 틈에 밀어 넣었다. 박두식이 수레를 눌러 주는 동안 그는 바퀴가 철판과 바닥 사이에 단단히 걸리는 감각을 확인했다.

“더 밀어.”

박두식이 낮게 말했다.

“안 됩니다. 바퀴가 깨지면 한꺼번에 밀려요.”

“그럼 어떻게 버텨?”

“버티는 게 아니라 시간을 삽니다.”

한결은 다시 포장 랩 끝을 찾아 난간에 묶었다. 수아가 매듭을 잡아당기자 팔레트는 더 이상 손쉽게 뒤로 밀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 셔터 밖이 기다렸다는 듯 들이받았다.

콰앙!

팔레트가 크게 떨렸다. 생수 상자 한 개가 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한결은 몸을 던져 상자 모서리를 받쳤고 박두식은 수레를 붙든 채 낮게 신음했다.

카트 바퀴가 바닥을 긁었다. 금속과 고무가 버티는 소리 뒤로 셔터가 다시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틈은 여전했다. 그러나 팔레트와 쐐기 역할을 하는 카트가 셔터의 더 큰 들림을 막고 있었다.

한결은 팔뚝으로 생수 상자에 남은 진동을 느꼈다. 충격은 멈췄다.

“성공한 거예요?”

수아가 물었다.

“문을 잠근 게 아닙니다.”

한결이 답했다.

“다음에 부술 시간을 번 겁니다.”

박두식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민석의 팔을 잡은 손을 놓았다. 거칠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민석은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손가락 다섯 개를 접은 채였다. 눈가리개 아래로 땀이 흘러내렸고 얼굴은 달아오른 숨으로 젖어 있었다.

“민석 씨.”

한결이 가까이 다가갔다.

“눈가리개 만지지 마세요.”

민석의 손은 이미 매듭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천을 풀려 했던 듯 움찔하며 손을 내렸다.

“안 보여서요.”

민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그게 제일 위험한 생각입니다.”

한결은 민석의 손목을 잡아 천에서 멀어지게 했다. 손목은 열이 올랐지만 맥은 아직 사람의 빠른 맥박이었다.

“지금 들리는 것만 믿어요. 지우가 손을 잡고 있고 수아 씨가 여기 있습니다. 셔터는 막았어요. 하나씩 확인하면 됩니다.”

민석이 고개를 숙였다. 숨을 고르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통로 끝에서 수아가 다시 한 번 랩 매듭을 확인했다. 그 작은 비닐 마찰음에 셔터 밖의 존재가 반응했다.

— 톡.

철판 아래에서 손톱 같은 것이 움직였다.

모두가 굳었다.

이번에는 충격이 오지 않았다. 철판 너머에서 누군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입을 댄 듯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결 씨.”

한결의 손가락이 민석의 손목 위에서 멈췄다.

그 목소리는 방재실 스피커에서 들었던 김도현의 목소리와 같았다.

“문 좀 열어 주세요.”

민석의 입술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문 좀 열어 주세요.”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