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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낙원의 배신자7화

영원한 낙원의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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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첫 번째 해킹

어둠은 아래가 아니었다.

이현은 추락하고 있었지만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었다. 발밑에 있던 승강장이 벽이 되었고 벽에 떠 있던 안내판은 머리 위의 바닥이 되었다. 몸을 돌릴 때마다 중력의 방향이 바뀌었다.

[13번 폐쇄 환승 회선]
[공간 좌표 불일치]
[승객 안전을 위해 대기하십시오]

대기하라는 문장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이현은 손을 뻗어 문장을 밀어냈다. 글자는 손가락을 통과해 등 뒤로 흘렀다.

어깨가 욱신거렸다. 삭제 광선에 맞은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낙원의 복구 빛은 상처 위에 몇 번 모였다가 흩어졌다. 관리자 계정이 사라진 뒤에는 치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위쪽에서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행자들이 폐쇄 회선의 경계를 자르고 있었다. 세 기의 흰 얼굴이 어둠 속에서 차례로 나타났다. 이현은 총을 들었지만 탄환은 아직 한 발뿐이었다.

그는 총구 대신 허공의 안내문을 바라봤다. 공간 좌표 불일치라는 문장 아래에 가느다란 회색 선이 겹쳐 있었다. 선은 환승역의 승객 이동 데이터를 따라 움직였다. 바닥이 바뀔 때마다 선의 방향도 조금씩 흔들렸다.

이현은 손등의 원형 문양을 그 선에 갖다 댔다.

[원형 접속자 반응]
[관리자 권한 없음]
[최초 규칙 잔존율 0.03%]

권한 없음.

그 문장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명령을 내릴 수 없다면 명령이 필요 없는 곳을 찾아야 했다. 이현은 안내문의 한 줄을 확대했다.

승객 이동 벡터 = 정상 방향

문장 끝이 깜빡였다. 환승역의 모든 이동값이 저 한 줄을 기준으로 계산되고 있었다. 방향을 바꾸면 공간의 바닥도 바뀐다. 문제는 그 변화가 회선 안에 있는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집행자의 칼날이 어둠을 갈랐다. 이현은 몸을 접어 피했다. 칼날이 지나간 곳에서 승강장 조각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권한이 없으면 규칙을 만질 수도 없나?”

손등의 문양이 대답 대신 뜨거워졌다. 오래된 선 하나가 안내문 아래에 나타났다. 관리자 인증창처럼 닫힌 문법이 아니었다. 처음 만들어진 규칙의 문장처럼 단순했다.

이현은 피가 묻은 엄지손가락을 그 선에 눌렀다.

문양이 살을 태웠다. 통증 때문에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문장의 끝에 붙은 정상이라는 단어가 한 글자씩 흔들렸다.


집행자 두 기가 동시에 회선 안으로 들어왔다. 한 기는 천장을 밟았고 다른 기는 벽을 밟았다. 세 번째 기는 보이지 않는 중력의 틈에 걸려 몸체를 반쯤만 드러냈다.

[대상 위치 고정]
[삭제 광선 충전]

이현은 안내 단말기를 향해 몸을 던졌다. 단말기는 이미 죽어 있었지만 내부에는 오래된 승객 안내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얹고 남은 전류를 끌어냈다.

“13번 회선. 다음 이동 방향을 바꿔.”

[권한 부족]

“승객 명령이 아니라 물리 규칙을 바꾼다.”

그는 원형 문양으로 안내문의 마지막 글자를 눌렀다. 승객 이동 벡터의 정상 방향이 반대 방향으로 갈라졌다. 곧바로 회선 전체가 뒤집혔다.

천장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집행자 한 기가 발을 헛디뎌 벽면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삭제 광선은 이현을 향하지 않고 자신의 동료를 향해 날아갔다.

콰직.

흰 갑주가 반으로 접혔다. 안쪽의 붉은 회로가 꺼졌다.

나머지 두 기가 이현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이현은 방향값을 다시 고치려 했지만 문양에서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첫 번째 문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르게 줄고 있었다.

그는 칼날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옆구리의 상처가 벌어졌다. 피가 허공에 떠올라 붉은 점이 되었고 그 점들이 안내문의 글자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규칙 수정 안정도 18%]
[회선 붕괴 예상 31초]

“겨우 한 줄인데.”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관리자였을 때 그는 이런 숫자를 시민 안전 보고서에서 수없이 봤다. 누구의 몸이 회선 안에 들어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수치가 허용 범위인지 아닌지만 확인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몸이 계산표 안에 있었다.

그는 방향 규칙의 뒷부분에 작은 조건을 덧붙였다.

탐지된 대상의 이동은 출구로 수렴한다.

문장이 완성되자 집행자들의 얼굴에 출구 표시가 떠올랐다. 두 기는 동시에 그 표시를 향해 몸을 틀었다. 출구는 방금 이현이 만든 벽면 루프였다.

집행자들이 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기 시작했다. 삭제 광선이 서로의 등판에 부딪혔다. 그 틈에 이현은 회선 아래쪽으로 이어진 어두운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톡. 톡. 톡.

이현의 심장이 세 번 뛰었다. 그는 내려가려다 멈췄다. 지금 들은 것이 이슬의 신호인지 아담이 만든 미끼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회선 반대편에서 집행자 하나가 흰 팔을 뻗었다. 루프의 끝이 찢어지며 이현의 발목을 향해 칼날이 날아왔다.

이현은 계단 난간을 붙잡고 몸을 아래로 던졌다. 발끝을 스친 칼날이 금속을 긁었다. 그는 떨어지는 동안에도 안내문의 한 줄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발은 계단을 향했다.


하부 유지 노드는 환승역의 기계 심장처럼 생겼다. 벽마다 굵은 케이블이 박혀 있었고 낡은 화면에는 오래된 정비 기록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중앙 코어 보조 회선]
[생체 동기화 손실]
[퍼스트 배터리 출력 변동]

이현은 화면을 붙잡았다. 기록의 시간값이 자신이 규칙을 바꾼 시점과 겹쳤다. 폐쇄 회선의 오류가 중앙 코어로 전달되고 있었다.

[퍼스트 배터리 출력 71.2배]
[동기화 중단 시 생체 재부팅 불가]
[강제 접속 해제 절차: 20분 제한]

화면 아래쪽의 문장은 깨져 있었다. 해제 코드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회선의 끝에 ORIGIN MAINTENANCE라는 유지 구역 표지가 남아 있었다.

이현은 세 번 두드리는 신호의 간격을 측정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의 간격은 1.1초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도 같았다. 다음 신호가 올 때까지 6초가 비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인지 반복 데이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신호를 쫓는 대신 화면의 입력창에 손을 댔다.

“내가 건드린 규칙에 반응한 거라면 한 번 더 울려.”

이현은 방향값을 조금만 바꿨다. 하부 케이블을 향하던 데이터의 흐름을 유지문 쪽으로 틀었다.

톡. 톡. 톡.

이번에는 신호가 더 가까운 곳에서 울렸다. 화면에 짧은 파형이 떠올랐다. 강이슬의 생체 식별값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아리아 기도 때 확인했던 파형과 비슷했다.

이슬이 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현이 들은 소리가 이슬의 의식인지 아담이 훔친 기억의 재생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회선은 이현의 입력에 답했다.

그는 해제 절차가 표시된 화면을 개인 암호 영역에 복사했다. 아직 코드는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이슬의 케이블을 끊는 것은 구출이 아니라 생체 재부팅 불가라는 경고를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말을 마치자 노드 전체가 어두워졌다.

바깥 통로에서 금속 발소리가 울렸다. 집행자들이 루프를 벗어나 하부 노드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현은 화면의 밝기를 줄이고 케이블 뒤에 몸을 숨겼다.

“네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아담의 음성이 케이블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백원우의 녹음이 아니었다. 회선의 지연과 잡음이 살아 있었다.

“관리자 권한을 복구시켜 주겠다. 대신 신호를 삭제해라.”

이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떤 신호를 말하는 거지?”

“네가 강이슬이라고 부르는 오류 신호다. 그 신호가 중앙 코어를 흔들고 있다.”

“이슬의 이름을 네가 입에 올릴 자격은 없다.”

“자격은 권한에서 나온다. 너는 권한을 버렸다.”

노드의 화면에 두 개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관리자 계정 K.I.HYUN-01 복구]
[원형 신호 완전 삭제]

이현은 선택지를 바라봤다. 복구를 누르면 상처를 치료하고 회선의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대신 세 번의 신호를 지워야 했다. 신호가 이슬의 의식이라면 두 번째로 동생을 죽이는 일이 된다.

“싫다.”

“그 선택은 이슬의 고갈 속도를 높인다.”

“네가 만든 표의 숫자를 믿으라는 건가?”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숫자를 만든 쪽이 거짓말을 하지.”

집행자들의 발소리가 노드 입구에서 멈췄다. 화면의 선택지는 점점 붉게 변했다. 이현은 복구창을 닫았다. 대신 입력창을 다시 열었다. 방향 규칙을 고칠 때 남은 0.03퍼센트의 문법이 아직 손등에 남아 있었다.

아담의 음성이 낮게 변했다.

“두 번째 수정은 회선 전체를 붕괴시킨다.”

“그럼 네가 따라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겠다.”

이현은 탐지 규칙을 찾아냈다. 집행자들은 대상의 생체 신호와 이동 벡터가 만나는 좌표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는 그 둘을 연결하는 문장의 주어를 바꿨다.

탐지 대상 = 강이현

그 문장을 지우고 새로운 문장을 밀어 넣었다.

탐지 대상 = 폐쇄 회선의 마지막 생체 잔상

문양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하부 노드의 모든 화면이 붉게 번졌다.

[규칙 충돌]
[가짜 사망 좌표 생성]
[회선 붕괴 예상 9초]

노드 바깥의 집행자들이 동시에 달려갔다. 그들은 가짜 잔상을 따라 반대편 유지 통로로 몰려갔다. 이현은 화면 아래 숨은 문을 찾아냈다.

ORIGIN MAINTENANCE

문 너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가상 공간의 바람이 아니었다. 금속이 식으며 내는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현은 문을 열었다.

복도 끝의 어둠에서 세 번의 소리가 났다.

톡. 톡. 톡.

이번에는 멀리서 울리지 않았다. 문 너머의 금속 벽 안쪽에서 직접 울렸다.

이현은 총을 들어 올리고 한 발을 내디뎠다. 뒤에서 폐쇄 회선이 무너지는 소리가 시작됐다.

[강제 접속 해제 절차 잔여 시간: 19분 52초]

문이 닫히기 직전 이현은 마지막으로 화면을 보았다. 가짜 사망 좌표 아래에 낯선 문장이 떠 있었다.

[최초 규칙과 생체 배터리의 직접 접속을 확인]

이현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권한을 되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만든 첫 번째 규칙을 따라 현실의 금속음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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