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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 수습생은 귀신의 퇴근을 돕는다3화

종탑 수습생은 귀신의 퇴근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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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동생 이름으로 예약된 마지막 종

종추가 묻힌 자리에는 계단이 없었다.

태린은 금속 원 가장자리에 손을 대고 바닥의 진동을 들었다. 귀신들은 종탑으로 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백교의 이름이 떠오른 뒤로 그들은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문을 여는 법을 아세요?” 태린이 물었다.

“예전에는 종추를 들어 올리면 됐어. 지금은 그 위에 광장 바닥을 덮었지.”

“공사 전에 파내면 됩니다.” 민석이 말했다. 그는 작업복을 벗어 기계 옆에 놓았다. “오전 작업은 멈췄어요. 현장 장비를 빌려 올 수 있습니다.”

감독은 펜스 앞에서 팔짱을 꼈다. “정식 허가가 없으면 장비는 못 씁니다.”

“그럼 손으로 하겠습니다.” 태린은 광장 바닥의 얇은 틈에 손종 끝을 넣었다.

무진이 그녀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바닥을 뜯으면 종탑이 흔들릴 수 있어요.”

“기둥이 아니라 땅에 묻힌 금속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종이 울릴 때 발밑에서 진동이 왔어요. 탑에서 내려온 진동은 아니었어요. 여기서 올라왔어요.”

백교는 오래된 열쇠를 꺼내 펜스 문을 열었다. “바닥을 들어 올릴 때 내가 지켜볼게. 종추를 잡아당기지는 마. 손잡이를 먼저 풀어야 해.”

“왜 그런 걸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그 종추를 묻었으니까.”

작업자들은 삽과 쇠지렛대를 가져왔다. 태린은 감독에게 말했다. “오늘 오전까지만 광장을 열어 주세요. 그 뒤엔 다시 닫아도 됩니다.”

“오전만요. 다만 지반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멈춥니다.”

“알겠습니다.”

바닥 판을 들어 올리자 흙 속에서 청동 고리가 드러났다. 아래에는 종추와 함께 낡은 승차권 여러 장이 묻혀 있었다. 무진은 승차권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었다. 그날 야간 노선의 마지막 표였다.

“이건 내가 운전하던 버스의 표예요.”

백교가 그를 바라봤다. “그날 네가 만차라고 생각해 돌아섰던 버스?”

“네. 그날 광장에서 사람들을 태우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뒤로 이 노선을 계속 돌았어요.”

“왜 그때 돌아오지 않았어?”

“돌아오면 제 잘못을 봐야 하니까요.” 무진은 승차권을 내려놓았다. “버스를 운전하면 늘 다음 정류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서 멈추면 모든 사람이 기다리는 걸 보게 될 테니까.”

귀신 여자가 도시락 통을 들고 다가왔다. “그날 당신이 돌아오지 않아서 남편도 집에 못 갔어요.”

무진은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한테 사과하지 마세요. 남편은 이미 떠났어요.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럼 지금 그 사람에게 갈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아니요. 나는 여기 남아 있을래요. 집은 없어도 이 정류장은 기억해요.”

태린은 여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종을 울리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억지로 보내지 않아 줘서.”

백교는 종추의 고리를 풀었다. 고리 밑에서 작은 명부가 나왔다. 백 년 전 종지기가 기록한 마지막 예약이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긁혀 있었다. 지워진 자리에는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보류’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를 보내려 했어요?” 태린이 물었다.

“그 사람은 남고 싶어 했어. 하지만 당시 종지기는 모두를 보내야 도시가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름을 지운 거예요?”

“이름을 남기면 다음 종지기가 다시 부를까 봐.”

광장 가장자리에서 늙은 여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는 다른 귀신들처럼 투명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작업용 등불은 불이 꺼진 채였다.

“그 이름은 내가 지웠어.” 여자가 말했다.

백교가 얼굴을 들었다. “당신이었군요.”

“종지기였던 시절, 나는 이 사람에게 떠나라고 했어. 대종이 울리면 도시의 경계가 안정된다고 믿었거든.”

“그 사람은 남고 싶어 했습니까?” 태린이 물었다.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어. 아이가 다음 전차를 타고 오기로 했는데, 나는 종을 울렸지. 아이는 왔지만 어머니가 떠난 뒤였어.”

백교의 손이 떨렸다. “그때 기록을 왜 남기지 않았어요?”

“내가 종지기였으니까. 의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면 종탑이 무너질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그 이름을 지웠군요.”

“내가 지웠어. 백교가 아니라.” 여자는 광장 바닥에 놓인 명부를 바라봤다. “그는 그 뒤에 종을 울리지 않았어. 그게 옳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침묵도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더군.”

태린은 손종을 내려놓았다. “이제 이름을 적을 수 있어요. 다만 떠날지 남을지는 본인이 정해야 해요.”

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 이름은 강담희야. 나는 내 아들을 기다리러 여기 남을래.”

“아들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요.” 백교가 말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거야. 네가 나를 보내지 않아도 돼.”

백교는 명부의 빈칸에 이름을 적었다. 강담희. 그는 처음으로 서명을 덧붙였다. ‘강제로 종을 울린 종지기 백교의 책임으로 기록함.’

담희는 글씨를 확인했다. “내 아들이 이걸 볼 수 있겠지?”

“광장을 지키면요.” 태린이 답했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으면요.”

담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대신 광장에 남아 기록을 읽을 사람을 기다리기로 했다.
백교는 명부의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손목에 있던 종추 자국이 붉어졌다. “나는 그 기록을 숨겼어. 종을 울리지 않으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오늘 울렸어요.”

“네가 종탑에 오고, 대종이 네 동생 이름을 읽었지.”

태린은 명부를 넘겼다. 가장 뒤쪽에 새 글씨가 있었다. ‘유태오, 마지막 종 예약.’ 날짜는 없었다. “이건 누가 적었어요?”

“모르겠다.”

“태오가 직접 적었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가 돌아왔다는 뜻인가?”

“아니요. 예약은 그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일 수 있어요.”

태린은 종추 밑의 작은 손종을 발견했다. 손잡이에 태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손종을 들어 올렸지만 울리지 않았다. 태오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종을 울리면 돌아올 거라 믿고 싶었지만, 그 믿음으로 동생의 선택을 대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진은 버스 승차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남기로 한 사람들을 태우지 않겠습니다. 떠나겠다고 한 사람만 집 근처에 내려드리죠.”

“그게 퇴근 노선이네요.” 태린이 말했다.

“그렇게 부르면 회사가 좋아하겠군요. 배차표를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민석은 광장 바닥에서 출근 카드를 들었다. 그는 돌아갈 수 없는 공장 대신, 현재의 일터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내일 사고 기록을 다시 확인할 거예요. 제 이름으로 증언하겠습니다.”

귀신 남자는 민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둘은 악수하지 못했다. 손끝이 겹치는 순간, 바람처럼 얇은 불빛이 지나갔다.

“고맙다.” 박윤수가 말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그는 손종을 한 번 울렸다. 태린은 대종을 울리지 않았다. 손종의 소리는 작았지만, 박윤수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는 무진의 버스에 올라 자기 이름이 적힌 카드 한 장을 남겼다.

도시락 든 여자는 광장에 남았다. 그녀는 통 안의 메모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에 오면 이 정류장 이야기를 더 들려주세요.”

태린이 답했다. “올게요.”

“그 약속은 지켜야 해요.”

“네. 제 이름으로 약속할게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떠나겠다고 한 귀신들은 무진의 버스에 올랐고, 남기로 한 이들은 이름을 명부에 적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따라가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든 여자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통의 메모를 꺼냈다. “이 문장을 여기 남겨도 될까요?”

“원하면요.” 태린이 말했다.

여자는 통 뚜껑을 벤치 밑에 끼워 두었다. 작업복 남자의 출근 카드는 민석이 가져갔다. 그는 내일 회사 기록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버스에 탄 귀신들은 창밖으로 남은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같은 목적지를 향하지 않았고, 그래도 서로를 막지 않았다.

무진은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더 물었다. “정말 지금 떠날까요?”

승객들은 각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우리가 내릴 정류장을 골랐소.”

그들은 버스에 올랐다. 엔진이 출발하자 광장에는 남겠다고 선택한 이들의 발소리만 남았다.
백교는 묻힌 종추를 다시 덮지 않았다. 대신 펜스 안쪽에 작은 표지판을 세웠다. ‘이곳은 마지막으로 기다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철거 전 이름을 확인할 것.’

“이 문구로 개발사가 공사를 멈추진 않을 겁니다.” 감독이 말했다.

“그렇다면 멈추게 할 기록을 만들겠습니다.” 백교가 답했다.

“누가 작성하죠?”

“저와 이 사람들.”

태린은 명부의 예약란을 다시 보았다. 동생의 이름 아래 빈 공간이 있었다. 그녀는 이름을 지우지 않고, 옆에 날짜도 적지 않았다. 태오가 돌아올 날을 대신 정하지 않기로 했다.

종탑에 돌아온 태린은 손종을 원래 자리에 걸었다. 그 옆에 낯선 종이 하나 놓여 있었다. 종에는 ‘마지막 연락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새 종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백교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태린이 종을 흔들자, 대종이 아주 낮게 답했다.

손종의 안쪽에는 동생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태린은 소리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그대로.

“누나, 다음 막차는 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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