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탑 수습생은 귀신의 퇴근을 돕는다

1화: 백 년 만의 종소리
종탑의 대종은 백 년 동안 울리지 않았다.
유태린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오래된 종은 금이 가도 울리고, 녹슨 종추는 바람에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종탑에 배치된 첫날부터 그녀는 꼭대기 층의 문을 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왜 안 돼요?” 태린이 물었다.
백교는 낡은 작업 장갑을 벗었다. “울리면 안 되니까.”
“고장이라면 수리해야죠.”
“고장이 아니야.”
“그럼 왜 종을 못 울려요?”
“사람을 보내는 종이라서.”
“누가 어디로 가는데요?”
“그걸 묻기 전에, 종이 울리면 누구를 부를지 알아야 한다.”
태린은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종탑에 취직해 동생 태오의 실종 기록을 찾을 생각이었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본 장소가 폐역 앞 환승 광장이었고, 그곳을 내려다보는 종탑은 야간 운행 기록을 보관했다. 백교가 자꾸 종 이야기를 돌리는 이유도 그 기록과 관련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첫 야간 근무는 조용했다. 종탑 아래의 시계는 새벽 두 시를 가리켰고, 도시의 버스들은 막차 노선을 돌고 있었다. 태린은 계단을 쓸다가 꼭대기에서 작은 진동을 느꼈다.
쿵.
그녀는 빗자루를 멈췄다. 소리는 종탑 안쪽에서 난 것 같았다. 백교는 아래 작업실에 있었다. 태린은 금지된 문 앞까지 올라갔다. 문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손잡이가 오히려 따뜻했다.
쿵.
두 번째 진동과 함께 문이 열렸다. 안쪽에는 거대한 청동 종이 걸려 있었다. 종추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종이 스스로 몸을 흔들었다.
“태린아, 내려와!”
백교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에서 울렸다. 태린은 문에서 물러났다. 그때 종이 울렸다.
소리는 귀가 아니라 가슴을 때렸다. 종탑 창문마다 불이 켜졌다. 거리의 가로등 아래에서 투명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남자는 작업복 차림으로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고, 한 여자는 손에 빈 도시락 통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백 년 전의 옷이 아니라 지금 도시에서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었다.
“나 아직 퇴근 안 했는데.”
“내가 여기 왜 있지?”
“막차가 왔나?”
귀신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태린은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백교가 그녀를 맞았다. 그의 얼굴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누가 종을 울렸어?”
“저는 만지지 않았어요.”
“그럼 네가 여기 온 뒤 울린 거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백교는 대답하지 않았다. 종탑 아래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귀신들이 하나둘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재개발 펜스로 둘러싸인 폐역 환승 광장이었다. 구청은 몇 년 전에 승강장을 없앴고, 지상 출구는 철거 자재로 막혀 있었다.
“저 사람들 어디로 가요?”
“모른다.”
“수습 종지기라면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종이 울리는 걸 백 년 동안 보지 못했어.”
태린은 작은 손종을 꺼냈다. 백교가 근무 도구로 준 것이었다. 손종을 한 번 흔들자 가까이 있던 귀신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도시락 통을 들고 있었다.
“혹시 어디로 가시는지 아세요?”
“집에 가야 해요. 막차 시간이 지났는데, 역이 안 보여요.”
“도시락은 누구 거예요?”
여자는 통을 내려다봤다. “내가 오늘 못 전한 거요. 남편한테.”
“남편은 어디 있어요?”
“같은 데 있겠죠. 늘 먼저 내렸거든요.”
여자는 광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린은 뒤따라가려 했다. 백교가 손목을 잡았다.
“귀신에게 부탁을 들으면 끝까지 들어. 네가 생각하는 답을 먼저 말하지 마.”
“아직 부탁을 안 했어요.”
“벌써 대신 길을 찾으려 했잖아.”
그때 아래 도로에서 버스가 급정거했다. 문이 열리고 운전기사가 내렸다. 서무진은 종탑의 종을 올려다봤다.
“누가 울렸습니까?”
“저도 몰라요.” 태린이 답했다.
“그럼 저 사람들은요?”
“환승 광장으로 가요.”
무진은 버스 문을 다시 열었다. 귀신들이 차례로 탔다. 도시락을 든 여자도 올라탔다. 무진은 승객을 세지 않고 문을 닫았다.
“저도 같이 갈게요.” 태린이 말했다.
“종지기는 탑을 떠나면 안 됩니다.” 백교가 막았다.
“종은 이미 울렸어요.”
“그래서 네가 있어야 해.”
“무슨 일이 생기든 여기서 기다리면 귀신들이 돌아오나요?”
백교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린은 손종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태린 씨, 타도 되는 사람만 타세요.” 무진이 말했다.
“저는 산 사람인데요.”
“그게 더 까다롭습니다.”
“그래도 갈 거예요.”
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았다. 버스는 텅 빈 도로를 달렸다. 귀신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각자 이름 모를 정류장을 기다렸다. 노선표에는 종점이 폐역 환승 광장으로 표시돼 있었다.
“이 노선은 폐지된 거 아닌가요?” 태린이 물었다.
“회사 기록에는 그렇죠.”
“그럼 왜 운행해요?”
“그날 이후로 승객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누가요?”
무진은 거울로 뒷좌석을 보았다. “당신 뒤에 앉은 사람들.”
태린이 돌아보자 귀신 여자는 빈 도시락 통을 무릎에 놓고 있었다. 통의 뚜껑 안쪽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미안해, 오늘도 늦을 것 같아.’
버스 안에서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손잡이를 잡고 섰다. “기사님, 이 노선은 공단 쪽으로 안 갑니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무진이 말했다.
“내 교대가 끝나지 않았어요. 공장 문을 닫고 가야 해요.”
“그 공장은 12년 전에 없어졌습니다.” 태린이 답했다.
남자는 창밖을 확인했다. “그럴 리 없어요. 오늘 밤 야간조에 내가 먼저 나왔는데.”
그의 옷에는 기름 얼룩이 있었고, 왼쪽 주머니엔 출근 카드가 꽂혀 있었다. 그는 버스 문이 열리자 뛰어내리려 했다. 태린이 길을 막지 않고 손종을 한 번 흔들었다.
“잠깐만요. 오늘 공장에서 누구를 기다려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설비를 멈춰야 해요. 압력계가 고장 나서 교대조가 위험해졌거든.”
“그날 멈췄나요?”
남자의 얼굴에 당황이 번졌다. 그는 대답 대신 주머니의 출근 카드를 만졌다. “내가 멈추러 가야 해요.”
무진이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그 공장은 지금 물류창고가 됐습니다. 새벽에도 직원들이 있습니다. 무단으로 들어가면 경비가 신고할 거예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죠?”
태린은 카드의 이름을 확인했다. 박윤수, 58세. 카드 뒤에는 현장 연락처가 연필로 적혀 있었다. “당신이 누구를 구하려 했는지 먼저 기억해 보세요.”
“같은 조의 막내요. 압력계가 30을 넘으면 터진다고 했어. 나는 28에서 퇴근했는데.”
“그럼 그 막내가 지금 살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이름을 몰라요. 다들 막내라고 불렀으니까.”
버스가 흔들렸다. 남자는 손잡이를 놓고 앉았다. “나는 집에도 못 갔어. 막차를 타려고 했는데 정류장을 지나쳤지.”
무진이 조용히 말했다. “그날 제가 이 노선을 운전했어요. 당신을 못 태웠습니다.”
남자는 운전석을 바라봤다. “당신도 그때 있었소?”
“당신이 정류장에 서 있는 걸 봤는데, 만차라 생각해서 그냥 갔습니다. 뒤에서 사람이 내렸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럼 당신도 계속 그날을 타고 있었군.”
무진은 핸들을 놓지 않았다. “네. 매일 밤 같은 곳을 지나갔습니다.”
태린은 남자의 출근 카드를 다시 보았다. “광장에 가면 이름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기서 내리면 그 사람을 대신 찾아주지는 못해요. 당신이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남자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럼 가 봅시다.”
버스는 폐역 앞에서 멈췄다. 귀신들은 한 사람씩 내렸다. 그들은 플랫폼도 매표소도 없는 광장 한가운데로 모였다. 한 남자는 손목시계를 확인했고, 한 아이는 땅에 쪼그려 앉아 조약돌을 세었다.
태린은 사람들에게 이름과 마지막 일을 물었다. 누군가는 공장 야간조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누군가는 병원에 약을 전달하려 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곳에 도착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왜 다들 여기로 모였죠?” 태린이 물었다.
무진은 버스 앞에 서서 멀리 종탑을 바라봤다. “이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당신도요?”
그는 답하지 않았다. 광장 바닥에 오래된 금속 원이 드러났다. 종탑 대종의 문양과 같은 무늬였다. 귀신들은 그 원을 바라보며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각자의 손에는 같은 모양의 종이표가 들려 있었다. 표에는 숫자가 없고 종탑 문양만 찍혀 있었다. 태린은 하나를 건네받아 뒷면을 살폈다. 누군가 연필로 ‘돌아오는 차를 기다릴 것’이라고 적어 두었다.
태린의 손종이 주머니 안에서 울렸다. 금속 원 아래에서 두 번째 종소리가 올라왔다. 대종보다 작고, 훨씬 가까운 소리였다.
태린은 손종을 한 번 더 흔들었지만, 광장의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를 떠올렸다. ‘내가 먼저 갈게.’ 그 문자를 태오는 읽지 않았고, 태린은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그녀는 후회했다. 많이. 늘.
백교가 종탑 창문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광장을 가리키며 태린에게 돌아오라고 신호했다.
그 순간 금속 원 한가운데에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유태오.
태린은 손종을 움켜쥐었다. 광장에 있던 귀신들이 일제히 그녀를 돌아봤다.
태린은 종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한 발을 올렸다. 뒤에서 버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귀신들은 광장을 떠나지 않았고, 유태오라는 이름은 금속 원에서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