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404호의 종소리는 세 번2화

404호의 종소리는 세 번

404호의 종소리는 세 번

AD
스폰서 광고

2화: 뜯겨 나간 차트

문손잡이는 돌아갔지만 잠금은 풀리지 않았다.

은호는 전기실에서 가져온 절연 계측기를 손잡이에 대었다. 금속 내부에는 전류가 없었다. 나경은 간호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환자 이름을 다시 조회했다. 호출 기록은 사라졌지만, 물컵을 처리한 메모는 남아 있었다. 오늘 입원한 환자라는 표시도 그대로였다.

도식은 세 묶음의 차트를 책상에 늘어놓았다. 사망 시각은 다르지만, 세 기록 모두 ‘물 한 컵’이라는 처치가 있었다. 첫 기록의 담당 간호사는 최선영. 둘째는 서명이 없었다. 셋째는 강연화 본인의 필체처럼 보이는 글씨가 여백에 남아 있었다. ‘문은 열지 말 것.’

“왜 병실 안에서 그런 말을 썼죠?” 나경이 물었다.

도식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당시 기록실에서 차트를 전산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병원은 화재 당시 연화가 혼자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기록에는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는 흔적이 있었다. 도식은 그 페이지를 따로 보관했고, 사고 보고서는 폐기했다고 말했다. 누가 지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은호는 벽 안의 배선을 따라 병원 지하로 내려갔다. 선은 오래된 엘리베이터 샤프트 옆에서 끊겼다. 전선의 피복에는 새로 붙인 절연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도 이 회선을 손댄 것이다. 그는 테이프를 자르려다 멈췄다. 스테이션에서 호출벨이 울리면, 회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었다.

나경은 404호에 직접 말을 걸어 보겠다고 했다. 은호는 대답이 돌아오면 기록만 하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인터폰을 켜고 물었다. “연화 환자분, 물이 더 필요하세요?”

스피커에서 잡음이 났다. “언니가 오면 안 돼요.”

은호는 즉시 인터폰을 껐다. 그 목소리는 연화의 것인지 선영의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나경은 자신이 먼저 물을 물어봤다고 후회했다. 은호는 환자의 요청에 답한 건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도식은 복도 끝 비상계단으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그곳에는 20년 전 화재 때 사용한 병동 도면이 보관돼 있었다. 404호는 실제로는 405호와 벽을 공유했고, 두 병실 사이에 직원용 통로가 있었다. 통로는 화재 뒤 막혔지만, 배선은 그 공간을 지나갔다. 벽 안에는 아직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폭의 틈이 있을지도 몰랐다.

은호는 통로를 확인하려면 병원 시설 책임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도식은 자신이 문서를 보관한 것이 드러나면 해고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나경은 환자 안전을 이유로 시설 책임자에게 정식 요청을 하자고 제안했다. 은호는 요청서를 쓰려다 종이 차트의 찢긴 자국을 보았다. 장마다 작은 숫자가 남아 있었다. 1, 2, 3. 순서가 아니라 호출 시각을 표시한 듯했다.

그들은 벽을 뜯지 않고 내시경 카메라를 틈으로 넣었다. 화면에는 오래된 침대와 산소통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이 카메라를 밀어냈다. 나경이 숨을 삼켰다. 손에는 병원 환자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이름이 적힌 면은 벽 쪽을 향했다.

도식은 문서 승인 없이 통로를 열 수 없다고 했다. 은호는 그 말에 동의했지만, 산소통의 압력계가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내부에 산소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손이 다시 나타나 팔찌를 돌렸다. 이름은 ‘최선영’이었다.

은호는 누나가 아직 살아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누나는 병원 화재 뒤 연락을 끊었다. 병원은 그녀를 퇴사자로 처리했고, 가족은 사망 신고도 하지 않았다. 누나가 살아 있다면 왜 20년간 돌아오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호출벨이 한 번 더 울렸다. 스테이션에는 ‘강연화, 요청: 가족 면회’가 떴다. 나경은 빈 병실 앞에 물컵을 다시 놓았다. 벽 안에서 컵이 끌려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작은 종이 한 장이 문틈으로 나왔다.

‘그 사람은 선영이 아니야.’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었다. 글씨는 차트의 필체와 달랐다.

그들은 폐쇄 병동의 설비 샤프트를 열기 위해 병원 안전 책임자의 서명을 받았다. 승인에는 40분이 걸렸다. 그동안 나경은 404호 앞에서 혼자 환자 요청을 듣지 않도록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병실의 소리를 한 사람이 감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승인이 도착하자 은호는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샤프트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바닥에 최근 발자국이 있었다. 신발 자국은 병실 문 쪽으로 향했고, 돌아온 흔적은 없었다. 도식은 통로 밖에서 손전등을 비췄다. 나경은 스테이션에서 산소와 호출 신호를 모니터링했다.

은호는 통로 끝에서 오래된 침대 난간을 발견했다. 벽 너머의 404호와 이어지는 크기의 틈이었다. 그러나 틈은 사람이 통과할 만큼 넓지 않았다. 그 아래 바닥에는 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컵 안에는 물이 반쯤 남아 있고, 가장자리에는 립스틱 자국이 있었다. 은호는 컵을 들지 않았다. 물은 아직 미지근했다.

그때 샤프트 조명이 꺼졌다. 은호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숨을 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손전등을 켜지 않고 멈췄다. 소리는 가까워졌다가 벽 안으로 사라졌다. 그는 후퇴해 나경에게 상태를 알렸다. 나경은 산소 농도에 변화가 없다고 확인했다. 숨소리는 병실에 있는 사람의 호흡이 아니라, 벽 안의 녹음 장치일 수도 있었다.

도식은 오래된 차트의 서명과 전산 기록을 비교했다. 최선영의 근무표는 화재 당일 새벽 4시 04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뒤의 교대표에는 선영이 아니라 연화의 보호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간호 기록을 환자 가족 기록으로 바꿔 놓았다. 도식은 그 수정에 자기 이니셜이 들어간 것을 보고 말을 잃었다. 그는 지시를 받아 페이지를 다시 입력했다.

“왜 서명했어요?” 나경이 물었다.

“해고될까 봐 무서웠어요.”

“환자 이름도 지워졌는데요.”

“그때는 기록을 바꾸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어.”

나경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공개 보관함에 넘기기 전 도식이 직접 서명하도록 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기록의 맨 앞에 적었다. 그 행동은 과거를 바꾸지 못했지만,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게 했다.

은호는 회선의 끝에서 두 개의 선을 발견했다. 하나는 병실 호출 버튼, 다른 하나는 스테이션의 점검 단말기였다. 병실 버튼을 누르면 현재 기록은 지워지고, 점검 단말기는 기록을 저장했다. 그는 404호의 요청을 점검 회선으로 우회할 수 있다고 했다. 나경은 환자에게 응답하되, 환자 정보를 의료 기록과 분리해 보존하는 방법을 택했다.

작업이 끝난 뒤 호출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한 번만 울렸다. 화면에는 ‘물’이라는 요청과 함께 간호 기록 번호가 나타났다. 그 번호는 20년 전 폐기된 문서의 번호였다. 도식은 그 번호가 연화의 딸 최선영의 개인 기록임을 알아봤다.

은호는 호출이 들어온 직후의 전압 변화를 측정했다. 스테이션 단말기에는 1.5볼트의 짧은 신호가 나타났고, 병실 회선에는 아무 값도 없었다. 벨은 끊긴 병실에서 울리는 게 아니라, 기록실의 점검 회로를 통해 발생하고 있었다. 누군가 환자 기록을 열 때마다 회선이 움직였다.

도식은 차트를 찾던 중 손가락을 베었다. 오래된 종이에는 말라붙은 테이프와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는 상처를 닦으면서도 페이지를 덮지 않았다. 첫 번째 기록에는 연화가 물을 마신 뒤 “선영이 나가서 문을 잠갔다”고 적혀 있었다. 다음 장에는 같은 문장이 “선영이 안에서 문을 잠갔다”로 바뀌어 있었다.

두 기록 사이에 누락된 한 줄이 있었다. 은호는 그 한 줄을 찾기 위해 폐쇄 샤프트 반대편을 조사하기로 했다.

나경은 환자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찾았다. 기록에는 보호자 항목이 비어 있었다. 도식은 과거 차트에 적힌 전화번호를 찾아 다이얼을 눌렀다. 연결음은 갔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시도에서 자동 응답이 켜졌다. 번호는 20년 전에 해지된 상태였다. 그 번호의 가입자 이름은 최선영이었다.

은호는 누나가 병원을 떠난 뒤 이 번호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화를 끊지 않고, 음성 사서함을 끝까지 들었다. 잡음 사이에 숨소리만 남았다.

은호는 샤프트의 틈으로 작은 물컵을 밀어 넣었다. 컵이 바닥에 닿지 않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손으로 받았는지, 벽 너머에 선반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경은 인터폰으로 “물을 놓았습니다”라고 알렸다. 잠시 뒤 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물이 없었고, 컵 바닥에 간호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선영.’

그들은 선영의 근무 기록과 호출 시간표를 대조했다. 첫 호출이 울릴 때 선영은 환자 곁에 있었고, 마지막 호출 직전에는 병동을 나간 것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출입 기록은 없었다. 누군가 그녀가 병원을 떠났다고 기록한 것이다.

나경은 물컵의 사진을 찍고 원본은 씻지 않은 채 보관했다. 환자가 무엇을 남겼는지 판단하기 전에, 손자국부터 사라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

도식은 이름표의 번호를 차트에 적고 봉투를 봉인했다. 그 번호가 선영의 근무 기록과 일치했다. 은호는 번호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사본을 만들었다.

그는 차트를 들고 병동을 지나갔다. 종이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작은 통증은 그가 기록을 실제로 옮기고 있다는 감각을 남겼다.

나경은 날짜를 차트에 적고, 확인한 사람으로 자기 이름을 남겼다.

도식은 원본 차트를 서랍에 잠갔다.

AD
스폰서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