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의 종소리는 세 번

1화: 빈 병실의 호출
최은호는 폐쇄된 404호의 호출벨을 끄러 매일 밤 복도를 걸었다.
오래된 병원 본관 4층은 증축 공사로 절반이 막혀 있었다. 404호는 20년 전에 폐쇄된 병실이었다. 화재로 병동 일부가 손상됐고, 환자 강연화가 사망했다. 병실은 잠겼지만 호출벨 회선만은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매일 새벽 1시 04분, 2시 04분, 4시 04분에 벨이 세 번 울렸다.
은호는 전기실에서 절연 장갑을 꼈다. 호출선은 환자 침대 옆 버튼에서 간호 스테이션까지 이어져야 했다. 404호는 전원이 차단된 채였다. 그런데 스테이션에는 ‘강연화, 404호, 요청: 물’이라는 기록이 떴다. 그는 벨을 초기화하고, 회선이 어디에서 다시 연결되는지 확인했다.
신입 간호사 나경이 복도 끝에서 호출 기록을 들고 왔다. “이 환자, 오늘 입원한 것으로 나와요.”
“입원 기록은 20년 전으로 끝났어.”
“전산에는 오늘 날짜예요. 그런데 병실이 없다고 뜹니다.”
나경은 환자 호출에 응답하지 못한 채 당직 간호사에게 혼났다. 병원은 전산 오류라고 처리했지만, 그녀는 환자 이름과 요청을 잊지 않았다. 호출 기록의 환자는 물을 달라고 했고, 나경은 실제로 물컵을 준비해 두었다. 컵은 404호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은호는 문을 열지 않고 벽의 패널을 떼었다. 회선은 끊겨 있었지만, 벽 안에서 얇은 전선 하나가 살아 있었다. 그는 전압을 측정하려고 탐침을 댔다. 전기 신호는 0이었다. 그런데 호출벨은 다시 울렸다. 이번엔 복도 스피커가 아니라, 그의 작업용 단말기에서 세 번 진동했다.
“끊긴 선에서 왜 울리죠?” 나경이 물었다.
“회선이 다른 곳에 연결됐을 수 있어.”
은호는 벽 안의 전선을 따라갔다. 배선은 병동의 폐쇄 구역을 지나 기록실 쪽으로 이어졌다. 병원 설계도에는 그 통로가 없었다. 나경은 환자 기록실에서 강연화 이름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은호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대신 문을 열지 말고, 종이 차트만 확인하라고 했다.
기록실에는 박도식이 있었다. 그는 종이 차트의 상자를 이동하고 있었다. 강연화의 이름을 듣자 손이 멈췄다. “그분은 2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오늘 입원 기록이 있습니다.” 나경이 말했다.
도식은 컴퓨터를 확인하지 않고, 종이 차트 상자를 내렸다. 404호 환자 기록은 한 묶음이 아니라 세 묶음이었다. 사망 시간은 각각 1시 04분, 2시 04분, 4시 04분으로 달랐다. 처치 기록과 간호 기록은 중간 페이지가 뜯겨 있었다. 도식은 그 차트가 전산화 과정에서 폐기됐다고 알고 있었다.
은호는 마지막 호출이 울리는 4시 04분까지 복도에서 대기했다. 나경은 물컵을 문 앞에 놓았다. 호출벨이 세 번 울렸다. 한 번, 한 시간 뒤 한 번, 다시 두 시간 뒤 한 번. 세 번의 호출이 끝난 뒤 병실 안에서 유리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환자가 물을 마셨어요.” 나경이 속삭였다.
은호는 문고리를 잡지 않았다. “문은 열 수 없어.”
“그럼 환자에게 대답은요?”
그는 비상 인터폰을 켰다. 병실은 폐쇄되어 있고 환자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요청을 기록했다. “강연화 환자, 물 요청 확인. 병실 외부 제공.”
스테이션의 호출 기록이 바뀌었다. ‘요청: 물’이 ‘요청 처리’로 변했다. 문틈으로 물컵이 밀려 나왔다. 컵은 비어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립스틱 자국이 남았다. 나경은 컵을 잡지 못했다. 은호가 장갑을 끼고 종이봉투에 담았다.
도식은 오래된 병동 사진을 가져왔다. 사진에는 연화의 침대 옆에서 젊은 간호사가 서 있었다. 은호는 그 여자를 알아봤다. 자신의 누나 최선영이었다. 당시 인턴 간호사였던 그녀는 사고 직후 병원을 그만두고 연락을 끊었다.
“누나는 왜 여기 있었죠?” 은호가 물었다.
도식은 사진 뒷면을 뒤집었다. “연화 씨가 마지막으로 부탁한 게 있었어요. 기록에 남기지 말라고.”
“무엇을요?”
그때 404호 호출벨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스테이션에 환자 이름 대신 ‘최선영’이 떴다. 나경은 은호를 바라봤다. 그 이름은 사망 기록도, 입원 기록도 없었다.
문 안쪽에서 누군가 손잡이를 세 번 돌렸다.
은호는 오래된 회선을 따라 404호 옆의 벽장에 들어갔다. 벽장은 병동이 증축되기 전 설비 샤프트였다. 그는 손전등을 들고 전선을 하나씩 확인했다. 세 번째 전선만 벽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피복에는 흰색 분필로 ‘침대 호출’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글씨는 20년 전 병원에서 쓰던 표기법이었다.
나경은 스테이션에서 호출 기록의 시간표를 출력했다. 매일 세 번, 정확히 1시 04분, 2시 04분, 4시 04분. 하지만 어떤 날은 환자의 요청이 물이었고, 어떤 날은 통증, 간호사 호출, 가족 면회였다. 마지막 요청은 늘 비어 있었다. 그녀는 그 기록을 읽다가 자신의 실습 기록을 떠올렸다. 환자가 호출했을 때 수업 중이라 응답하지 못했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다른 간호사가 처리한 뒤였다. 작은 지연 하나도 환자에게는 길 수 있었다.
“왜 그 시간들만 반복될까요?” 나경이 물었다.
“그때가 교대 시각이었어.” 도식이 답했다. “사람이 바뀌는 틈이 가장 쉽게 생기는 시간이지.”
은호는 누나의 퇴사 기록을 검색했다. 선영은 화재 다음 날 병원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가족에게는 며칠 뒤에야 연락이 왔다. 주소는 지방 병원으로 옮겼다는 말뿐이었다. 이후 기록은 끊겼다. 그는 어릴 때 누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가족은 그녀가 떠났다고 받아들였고, 병원은 사고와 무관한 퇴사라고 처리했다.
은호는 404호의 잠금장치를 점검하기로 했다. 문을 열지는 않고, 걸쇠가 안쪽에서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이버를 끼우자 잠금 안에서 금속이 긁혔다.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문 안쪽에서 손이 문을 밀었다. 그는 도구를 놓았다. 나경은 뒤로 물러났고, 도식은 차트 상자를 가슴에 안았다.
“문을 열어 주세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인터폰으로 응답했다. “안전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안에 계시면 이름과 상태를 말해 주세요.”
잠깐 침묵이 흐른 뒤, “강연화예요. 물을 마셨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스테이션에 ‘요청 처리’가 떴다. 이 요청은 끝난 듯했다. 하지만 이어서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제 동생도 여기 있어요.”
나경은 그 말을 듣고 누나의 이름을 떠올렸다. 은호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문을 열면 누구의 얼굴을 보게 될지 몰랐다. 대신 그는 방화문을 확인하고, 404호 앞 복도를 통제했다. 병원 시설 책임자는 이상 현상을 무시하라며 호출 회선을 끊으라고 했다. 은호는 현재 환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방법을 먼저 찾겠다고 답했다.
호출벨이 다시 울렸을 때, 스테이션에는 ‘최선영, 보호자 입실’이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나경은 화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전산 기록은 10초 뒤 자동 초기화됐다. 그러나 그녀의 수첩에는 이름과 시각이 남았다.
나경은 물컵을 회수하기 위해 병동 청소 카트를 밀고 왔다. 그녀는 컵을 씻지 않고 환자용 트레이에 올렸다. 물컵의 위치와 시간이 환자 요청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은호는 벨을 끈 뒤에도 문 앞에서 기다렸다. 벽 안에서 누군가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그는 환자 요청을 확인했지만, 환자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 불일치가 그의 손에 남았다.
도식은 호출 기록이 매일 자동 삭제되는 이유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전산 이관 때 404호의 기록이 환자 목록과 연결되지 않도록 별도 번호를 부여했을 수 있었다. 그는 기록실에 남아 새벽 차트를 더 찾기로 했다. 나경은 그를 혼자 두지 않고 같이 남겠다고 했다.
오래된 병원 시계가 2시 04분을 가리키자, 벨이 정확히 한 번 울렸다. 세 번 중 두 번째 호출이었다.
나경은 물컵을 간호 스테이션에 가져와 환자 호출 시간과 나란히 놓았다. 컵 안쪽에 남은 물은 미지근했지만, 병실 밖 복도 공기는 차가웠다. 그녀는 누군가 안에서 마셨다는 사실을 믿기보다, 병동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호출을 듣고도 응답하지 않는 것과 응답할 수 없는 상황은 다르다.
은호는 벽 안쪽에서 전선이 움직이는 진동을 느꼈다. 배선이 고정돼 있는데도, 금속이 마치 손으로 당겨지는 것처럼 떨렸다. 그는 전원 차단기를 다시 잠갔다. 벨은 멎었지만 단말기의 기록은 남았다. ‘물 요청, 응답 대기.’
은호는 누나가 근무하던 이름표를 찾아 전기실 서랍에서 꺼냈다. 선영의 사진은 빛이 바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버릇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이름표를 404호 앞에 두지 않았다. 대신 기록실에 가져가 도식에게 보여 줬다.
도식은 이름표 뒷면의 날짜를 읽고 말했다. “그날도 야간 근무였네요.”
그는 이름표를 다시 서랍에 넣지 않았다. 누나가 이 병원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자신도 더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
나경은 자신의 호출 기록을 확인했다. 그날 밤 환자에게 물을 전달한 시간도 정확히 4시 04분이었다. 그녀는 요청을 들은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사실을 차트에 남겼다.
복도를 나서며 은호는 호출 기록의 출력물을 접지 않았다. 한 장은 전기실 기록함에, 한 장은 나경에게 건넸다.
나경은 그 사본을 이름표와 함께 보관함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