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13화: 냄새나서 안 싸운다는데요
오후 한 시 오십 분. 헌터 관리국 본청 지하 1층 대강당 앞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지상파 방송 3사를 비롯한 각 언론사의 중계 카메라 수십 대가 통로 양옆으로 장벽처럼 늘어서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고출력 조명이 뿜어내는 열기로 강당 내부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유진우 씨가 정말 올까요?"
"태산 길드장 강철민이 직접 단상에 앉았습니다. 저건 사기극으로 몰아 매장하겠다는 뜻이죠."
"F급 출신이 국내 5대 대형 길드와 맞붙어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기자들의 수군거림이 가득 찬 강당 문이 활짝 열렸다.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정장 차림에 어깨에 특수 확성기를 멘 유진우가 문턱을 넘어 걸어 들어왔다. 그의 반 걸음 뒤에는 허리에 검을 찬 신아린이 차가운 기운을 흘리며 동행하고 있었다.
플래시 세례가 벼락처럼 터졌다.
진우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증인석을 향해 걸어갔다. 단상 가장 높은 자리에는 휠체어에서 갓 일어난 태산 길드장 강철민이 앉아 있었다. 깁스를 푼 팔을 탁자에 올린 채였고 그 옆에는 아침에 로비에서 쫓겨났던 배태혁 실장이 독기 어린 눈으로 진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철민이 마이크를 당기며 굵직한 음성을 흘렸다.
"F급 하급 행정관 출신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감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곳에 발을 들여?"
진우는 증인석 의자를 끌어당겨 편안하게 앉았다.
"강철민 길드장님도 병원 특실에서 링거 바늘 뽑고 나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가가 15퍼센트나 빠졌으니 병상에 누워 계실 마음이 안 드셨겠죠."
"이 건방진 놈이……!"
강철민의 미간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배태혁이 황급히 길드장의 어깨를 짚으며 진정시켰다.
단상 중앙에 앉은 청문회 심의위원장 윤상식 국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탕! 탕! 탕!
"정숙하십시오. 지금부터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선 공사 지연 사태 및 무자격 행정관의 비공식 마수 통역 행위에 관한 특별 검증 청문회를 개회합니다."
윤 국장은 미리 준비된 문서를 굳은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증인 유진우는 검증되지 않은 마수 통역을 핑계로 국가 기간망 공사를 사흘간 마비시켰으며 시공사의 정당한 발파 작업을 방해했습니다. 이에 관리국은 증인의 현장 출입 권한을 영구 박탈하고 지하 굴각 둥지에 대한 태산 길드의 강제 소탕 작전을 승인하고자 합니다."
진우는 헛웃음을 삼켰다. 질문도 하기 전에 결론부터 들이미는 졸속 재판이었다.
"윤 위원장님. 현장 안전 봉쇄는 최고 등급 헌터인 신아린 실장님의 정당한 법적 권한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또한 박은채 지질 조사관의 수직 마력 공명 기록과 오세만 소장의 불법 천공 영상이 이미 증거로 제출되어 있습니다. 시공 측의 과실로 마수 둥지가 무너질 뻔한 사건을 왜 제 탓으로 돌립니까?"
윤 국장이 서류를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그딴 파형 기록 따위는 조작이 가능합니다! 본질은 유진우 씨가 주장하는 '마수와의 대화'라는 허무맹랑한 사기극입니다! 마수는 인류를 학살하는 야수일 뿐 소통의 대상이 아닙니다!"
강철민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위원장님 말씀이 정확합니다. 태산 길드는 오늘 이 자리에서 마수가 대화 불가능한 살육 병기라는 결정적 증거를 전 국민 앞에 공개하겠습니다!"
강철민이 손짓하자 강당 전면의 대형 스크린이 천천히 내려왔다.
"이 영상은 지난주 파주에 출몰한 S급 거암 던전 내부에서 태산 길드 정예 1공략대가 촬영한 실제 교전 기록입니다. 국가 기밀로 분류된 원본이지만 오늘 사기꾼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특별히 공개합니다."
취재진의 카메라가 일제히 스크린으로 쏠렸다. 조명이 어두워지며 고화질 영상이 재생됐다.
화면 속은 칠흑 같은 지하 암반 동굴이었다.
미스릴 중갑으로 무장한 태산 길드의 정예 헌터 스무 명이 진형을 갖추고 거대한 석실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잠시 후 동굴 천장이 흔들리며 거대한 바위 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키가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 거수였다. 전신이 단단한 흑요석과 화강암 장갑으로 뒤덮인 S급 거암 마수 '골라움'이었다.
골라움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그리고 이어진 포효.
쿠오오오오오오-!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대강당 전체를 뒤흔들었다. 현장에 있던 기자 몇몇은 귀를 틀어막으며 비명을 삼켰다.
영상 속 골라움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닥을 내리쳤다. 지면이 갈라지며 돌기둥이 솟았고 거대한 바위 주먹을 휘두르자 방패를 든 최전방 탱커 두 명이 종이 인형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헌터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거암 마수는 사납게 울부짖으며 그들을 동굴 입구 밖으로 완전히 쫓아냈다.
화면이 꺼지자 강당에 불이 켜졌다.
강철민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진우를 손가락질했다.
"들었습니까! 저 피에 주린 포효를! 저 흉포한 살의를 보고도 감히 대화가 통한다고 지껄일 수 있습니까? 저 괴물이 대체 뭐라고 울부짖은 건지 어디 전 국민 앞에서 통역해 보시지!"
기자들의 시선이 진우에게 쏟아졌다. 온라인 생중계 채팅창에는 이미 회의적인 댓글이 빗발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가만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의 망막에는 파란색 인터페이스 창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마력 파동 주파수 분석 완료: 바위계 고위 마수 '골라움']
[번역 모드: 직역]
자막을 읽어 내려가던 진우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당황해서가 아니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느라 입술이 떨린 것이었다.
진우는 헛기침을 가볍게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강철민 길드장님."
"왜 그러나? 겁에 질려 말이 안 나오나?"
"영상 2분 14초 지점부터 30초 동안만 다시 재생해 주시겠습니까? 느린 화면으로요."
강철민이 코웃음을 쳤다.
"시간 끌기 수작을 부려도 소용없다. 틀어 줘!"
영상이 다시 켜졌다. 골라움이 거대한 주먹을 휘두르고 헌터들이 튕겨 나가는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재생됐다.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깨에 멘 확성기의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강당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강 길드장님께 묻겠습니다. 파주 던전 보스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공략대원 스무 명이 단체로 마신 약물이 뭡니까?"
강철민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갑자기 약물 이야기는 왜 꺼내나? 공략 전 도핑은 길드의 고유 기밀이다!"
"태산 길드가 이번에 계열사 제약 회사를 통해 신제품으로 출시했다고 광고하던 음료 아닙니까? 피로 회복과 마력 증폭에 탁월하다는 '고농축 유황 용혈 비약' 맞죠?"
배태혁의 안경이 콧등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 그걸 어떻게……!"
"그게 이 전투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강철민이 탁자를 내리쳤다.
진우는 확성기 마이크를 입술에 바짝 대었다.
"상관이 아주 큽니다. 저 거암 마수는 살육의 의지로 포효한 게 아닙니다. 골라움이 지른 포효의 정확한 번역을 지금 전 국민께 들려드리겠습니다."
진우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의역 최적화 스킬 발동]
확성기를 통해 진우의 또렷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악! 첫 번째 포효 번역입니다."
진우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소리쳤다.
"'으악! 냄새! 이 미친 인간들아! 똥 방귀 좀 그만 뀌어! 코 떨어지겠네!'"
대강당 내부의 모든 공기가 일순간 굳어버렸다.
속기사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마저 뚝 끊겼다.
윤상식 위원장의 턱이 덜컥 내려앉았고 강철민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멈췄다.
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포효를 이어 통역했다.
"쿠워어어어! 두 번째 포효입니다. '썩은 계란 냄새 나는 이상한 흙탕물 단체로 쳐먹고 남의 방에 들어와서 독가스 살포하지 마라! 당장 꺼져! 토할 것 같다고!'"
정적.
그리고 3초 뒤.
"푸하하하핫!"
방청석 뒷줄에 앉아 있던 기자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 소리를 신호탄으로 강당 전체가 뒤집어졌다.
"푸흡! 방귀?!"
"미친 진짜야?!"
"보스 몬스터가 냄새난다고 쫓아낸 거라고?!"
기자들이 배를 잡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촬영 기자의 카메라가 흔들릴 정도였다.
강철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무, 무슨 개소리야! 저놈 마이크 꺼! 당장 마이크 끄라고!"
"왜 끕니까? 눈이 있으면 화면을 똑바로 보십시오!"
진우가 손가락으로 스크린 속 골라움의 얼굴을 가리켰다.
"2분 18초 화면을 확대해 보세요. 저 거암 마수의 왼쪽 손가락이 어디로 가 있습니까? 바위 콧구멍을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있지 않습니까!"
화면이 확대되자 기괴한 디테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산만 한 덩치의 골렘이 거대한 검지 바위로 코 위치를 꽉 누른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오른손을 보십시오. 무기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 허공을 파리 쫓듯 휘젓고 있습니다. 공기 중에 찬 방귀 냄새를 부채질해서 날려 보내려는 동작입니다!"
진우의 명쾌한 해설이 이어졌다.
"골라움 같은 지하 심층 바위계 마수는 땅속에서 광맥을 찾기 위해 미세 후각 점막과 진동 감각이 인간의 수십 배로 발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밀폐된 동굴 안에서 성인 남성 스무 명이 소화도 안 되는 고농축 유황 비약을 들이켜고 방귀를 뀌어대니 마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생화학 테러를 당한 겁니다!"
진우는 강철민을 정면으로 쏘아봤다.
"골라움이 진짜 살육을 원했다면 튕겨 나간 대원들을 쫓아가 밟아 죽였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동굴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고 쫓아가지 않았습니까?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근처에도 가기 싫었던 겁니다! 대원들이 도망치자마자 골라움이 벽을 쳐서 환기 구멍부터 뚫는 거 안 보이십니까!"
스크린 속 골라움은 실제로 도망치는 헌터들을 내버려 둔 채 동굴 천장 구석을 쳐서 바람길을 내고 있었다.
실시간 방송 중계창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실화냐 태산 길드 단체 방귀 살포단이었음?
- S급 레이드 실패 이유: 보스가 방귀 냄새 때문에 빡쳐서 쫓아냄 ㅋㅋㅋㅋㅋ
- 콧구멍 막고 있는 거 진짜네 미치겠다 ㅋㅋㅋㅋㅋ
- 고농축 유황 비약 = 천연 방귀 유발제 ㅋㅋㅋㅋㅋ 주가 또 폭락하겠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태산 길드 방귀', 2위에 '골라움 코막힘'이 나란히 올라섰다.
강철민은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이, 이런 날조를…… 내가…… 태산 길드가……!"
"길드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길드장님!"
배태혁이 달려들었지만 강철민은 혈압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뒤집은 채 탁자 위로 쓰러졌다. 강당은 순식간에 구급대를 부르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됐다.
심의위원장 윤상식 국장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의사봉을 내동댕이치듯 두드렸다.
"정, 정회! 오늘 청문회는 무기한 정회합니다!"
소란을 뒤로하고 진우는 여유롭게 확성기를 챙겼다.
신아린이 곁으로 다가왔다.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정말 방귀 때문이었습니까?"
"바위 마수들이 냄새에 쥐약이거든요. 관리국 서류에 유황 비약 부작용으로 가스 배출이 적혀 있었는데 그걸 고스란히 던전에 들고 들어간 겁니다."
"역시 말로 때리는 게 칼보다 아프군요."
신아린이 진우의 뒤를 호위하며 강당 문을 밀었다.
로비로 나오자마자 취재진 수십 명이 벌떼처럼 진우를 에워쌌다. 이번에는 비난이 아니라 특종을 향한 경이로움의 눈빛이었다.
"유진우 통역사님! 골라움의 추가 요구 사항은 없었습니까?"
"태산 길드의 사기극 주장은 허위로 드러났는데 법적 대응을 하실 겁니까?"
"지하철 3호선 토룡 굴각과의 공존 협약은 예정대로 진행되나요?"
진우는 기자들을 향해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수도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습니다. 다음부터 파주 던전에 들어가실 분들은 비약 대신 소화제나 챙겨 가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굴각 둥지는 사흘 뒤 안전하게 공존 구역으로 전환될 예정이니 안심하십시오."
진우가 사무소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대한 길드: S급 화룡 통역 자문 의뢰 (착수금 5,000만 원)]
[백두 길드: 서해안 수룡 분쟁 협상 긴급 요청 (자문료 백지 수표)]
[삼송 마력 개발: 마수 후각 데이터 독점 자문 계약 제안]
신아린이 운전대를 잡으며 백미러로 진우를 바라봤다.
"통역 예약이 폭주하는군요."
"이러다 진짜 빌딩 사겠습니다."
진우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그때 화면 상단에 굵은 글씨의 긴급 공문 알림이 깜빡였다.
[발신: 대한민국 환경부 게이트생태관리국]
[제목: 마수-인간 환경 분쟁 전담 특별 외교관 위촉 및 긴급 면담 요청]
진우의 눈동자에 새로운 흥미가 떠올랐다.
대형 길드의 콧대를 납작하게 꺾자 이제는 국가 단위의 판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