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12화: 사기극이라니 섭섭하네요
오전 아홉 시가 되자 스마트폰 화면에 입금 알림이 떴다.
[계좌 입금: 12,000,000원 (지하철 3호선 연장선 긴급 자문료 및 위험 수당)]
[현재 잔액: 60,540,000원]
유진우는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숫자를 확인했다. 밤새 지하 통로에서 굴렀던 피로가 단숨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신아린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돈 들어왔습니까?"
"방금 입금됐습니다. 신 팀장님 몫 삼백만 원도 포함해서요."
신아린이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자 시선이 누런 결정으로 향했다. 토룡 굴각이 건넨 지맥석이었다.
결정 표면의 푸른 선은 신아린의 검날에 새겨진 푸른 금과 같은 박자로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사흘 동안은 공사장이 완전히 멈추는 거죠?"
"네. 박은채 조사관이 지반 위험 구간으로 묶었고 신 팀장님이 안전 권한을 걸었으니까요. 지하 벽 너머 목소리도 조용합니다."
진우가 지맥석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사흘간 푹 쉬면서 충전이나 하면……."
그 순간 벽걸이 텔레비전 뉴스에서 날카로운 효과음이 울렸다.
[긴급 속보: 서울 지하철 3호선 공사 중단 사태, F급 무자격 행정관의 대국민 사기극 논란]
화면에는 국내 5대 대형 길드 중 하나인 '태산(泰山) 길드'의 공식 기자회견장이 떠 있었다. 단상에 선 대외협력실장 배태혁이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가 멈춘 표면적 이유는 마수 출현이지만 이는 명백한 허위이자 대국민 사기극입니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F급 하급 행정관 유진우 씨가 허무맹랑한 마수 통역을 내세워 현장을 무단 점거했습니다. 심지어 벽 너머에서 미지의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는 미신을 퍼뜨리며 고의로 갱도 붕괴를 유도했습니다!"
배태혁이 두툼한 서류철을 흔들었다.
"일일 손실액만 수십억 원입니다. 태산 길드는 유진우 씨를 업무방해 및 사기 혐의로 형사 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습니다!"
신아린의 미간이 서늘하게 좁아졌다.
"어제 천공기를 불법으로 돌려 벽을 깬 건 저쪽 현장 소장이었습니다. 그걸 진우 씨 탓으로 돌린다고요?"
진우는 헛웃음을 흘리며 커피를 마셨다.
"태산 길드가 3호선 역세권 상업 지구 개발권에 수천억을 넣었거든요. 공사가 밀리면 하루 이자만 억대니까요."
"그렇다고 대놓고 사기꾼으로 몹니까?"
"게다가 지난주 파주 S급 거암 던전 2차 공략에 실패해서 주가가 15퍼센트 폭락했죠. 시선을 돌릴 희생양이 필요했던 겁니다. 마수를 핑계로 도심 방역 독점권을 따내 적자를 메우려는 속셈이에요."
그때 건물 아래에서 시끄러운 경적과 웅성거림이 터졌다.
창밖을 내려다본 신아린이 말했다.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저 앞에는 방금 화면에 나온 사람도 있네요."
건물 입구는 취재진 수십 명과 방송사 중계차로 가득 찼고 그 중심에 배태혁이 서류 봉투를 든 채 서 있었다.
사무소 1층 로비 문이 거칠게 열렸다.
"유진우 씨! 당당하다면 나와서 해명하십시오!"
배태혁이 앞장서 들어왔고 뒤에는 태산 길드 소속 B급 헌터 세 명이 버티고 섰다. 취재진의 카메라가 계단을 향했다.
진우는 특수 확성기를 어깨에 메고 느긋하게 내려왔다. 뒤에는 검집을 찬 신아린이 따랐다.
배태혁이 서류를 내밀었다.
"유진우 씨. 손해배상 소장과 고발장입니다. 공사를 멈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으셨습니까?"
진우는 서류 대신 확성기 전원을 켰다.
삑- 하는 신호음과 함께 로비가 조용해졌다.
"배태혁 실장님. 남의 사무실까지 와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고발장을 쓰실 거면 주소부터 제대로 적으셔야죠. 공사를 멈춘 건 당신들이 보낸 현장 시공팀이니까요."
배태혁이 안경을 고쳐 썼다.
"오세만 소장의 진술서에 따르면 진우 씨가 검증되지 않은 소리로 작업을 방해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진우는 태블릿을 꺼내 취재진을 향해 화면을 비췄다.
"관리국 지질 조사관 박은채 님이 공식 승인한 지하 28미터 수직 마력-지진 공명 파형 원본입니다. 그리고 이건 오세만 소장이 안전 점검도 없이 천공기를 무단 가동해 지하 벽을 훼손하던 블랙박스 기록이고요."
화면 속에서 드릴이 돌자 바닥이 쩍 갈라지며 파편이 튀는 영상이 재생됐다.
"천공기 진동으로 2차 붕괴가 났고 토룡 굴각의 둥지가 무너질 뻔했습니다. 마수가 날뛴 게 아니라 불법 천공 때문에 마수가 방어에 나선 겁니다."
기자들의 노트북 자판 소리가 빨라지자 배태혁의 얼굴이 굳었다.
"파형 따위는 조작할 수 있습니다! 진짜 마수와 대화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녹음된 마수의 목소리가 단 1초라도 있습니까?"
배태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없지 않습니까! 소리를 녹음도 못 하면서 무슨 통역입니까? 벽 너머 목소리도 몸값을 올리려 꾸며낸 사기극 아닙니까!"
배태혁의 손짓에 B급 헌터들이 진우를 향해 다가왔다.
"말장난 그만하고 폐업 각서에 서명하시죠."
헌터 한 명이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은 찰나였다.
쩌저적-!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로비 바닥에 짙푸른 서릿발이 벼락처럼 꽂혔다.
"크악!"
헌터들이 가슴을 쥐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에는 신아린의 검끝이 닿았던 자리를 중심으로 푸른 검기 결계가 서슬 퍼렇게 일렁였다.
신아린이 차가운 눈으로 배태혁을 응시했다.
"한 걸음만 더 오면 통역사에 대한 위해 시도로 보고 현행범 진압하겠습니다. S급 경호 권한을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로비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헌터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물러섰다.
배태혁이 넥타이를 풀며 악에 받쳐 외쳤다.
"신아린 헌터! S급이라도 민간 기업의 법적 절차를 무력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진우가 앞으로 나섰다.
"배 실장님. 녹음 파일이 왜 없냐고요?"
진우가 마이크를 잡았다.
"마수의 포효는 공기 진동이 아니라 마력 파동에 개념과 감정이 실린 특수 파동입니다. 일반 녹음기에는 굉음만 잡힐 뿐 언어적 의미는 기록되지 않죠."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우가 덧붙였다.
"하지만 의미는 전달됩니다. 저는 굴각과 대화해 새끼 두 마리를 무사히 구조했고 현장 인부 전원을 부상 없이 생환시켰습니다. 굴각은 비공격 협약서에 동의했고요. 사기극으로 마수가 사람을 살려 보냅니까?"
배태혁이 이를 갈았다.
"태산 길드 공격대였으면 진작 때려잡고 공사를 재개했을 겁니다!"
"때려잡아요?"
진우가 비스듬히 웃었다.
"그렇게 잘 때려잡아서 지난주 파주 S급 거암 던전 2차 공략에서 전멸할 뻔했습니까?"
로비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배태혁의 눈이 커졌다.
"당신…… 그걸 어떻게……!"
"정예 1공략대 스무 명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튕겨 나와 전원 중상을 입었죠. 주가는 일주일 만에 15퍼센트 폭락했고 길드장님은 병원 특실로 피신하셨다던데 맞습니까?"
진우가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적자를 메우려고 도심 공사장에 숟가락 얹어 방역 독점권을 따내려던 거 아닙니까? 자기들 실패를 감추려고 F급 하나를 사기꾼으로 모는 수작이 참 유치하네요."
기자들의 마이크가 일제히 배태혁에게 쏟아졌다.
"배 실장님! 파주 던전 실패가 사실입니까?"
"주가 방어를 위해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려 했나요?"
"아닙니다! 길드 기밀…… 악의적 소문입니다! 카메라 치우세요!"
배태혁은 고개를 숙인 채 도망치듯 로비를 빠져나갔다. 취재진이 그 뒤를 쫓아가자 로비가 텅 비었다.
신아린이 진우를 보며 물었다.
"태산 길드 사정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관리국 하급 행정관 시절 매일 보던 게 대형 길드의 사고 접수 서류였습니다. 태산의 구린내는 서류 속에서도 진동하거든요."
진우가 웃으며 확성기를 껐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포털 검색어 순위에 '태산 길드 파주 던전 의혹'과 '유진우 마수 통역 반박'이 나란히 떴다.
"사기극 프레임은 깼네요."
신아린이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진우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박은채 지질 조사관이었다.
스피커폰을 켜자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진우 씨! 로비 뉴스 봤어요. 배 실장을 제대로 털어버리셨더군요!
"관리국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 심각해요. 태산 길드장 강철민이 인맥을 총동원해 오늘 오후 두 시 본청 대강당에서 '마수 통역 검증 특별 청문회'를 긴급 소집했습니다!
신아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흘간 봉쇄하기로 합의하지 않았습니까?"
- 친 대형 길드 파벌 국장들이 움직였어요. 진우 씨의 통역 자격을 영구 박탈하고 봉쇄를 풀어 굴각의 둥지를 강제 소탕하려 합니다. 게다가 파주 거암 던전 보스의 전투 영상을 가져와 마수는 대화가 불가능한 괴물임을 증명하겠대요. 전 방송사 생중계까지 잡혔습니다. 출석하시면 안 돼요!
신아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권한으로 안전 조사를 이유 삼아 출석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진우는 책상 위 지맥석을 내려다봤다. 결정 속 푸른빛이 신아린의 검날을 향해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벽 너머의 낮은 음성이 스쳤다.
너는 듣는 자다.
피하면 사기꾼 꼬리표는 평생 남는다. 굴각은 칼날에 찢길 것이고 지하 벽의 진실도 묻힌다.
"박 조사관님."
- 네 진우 씨.
"청문회 출석하겠습니다."
- 거길 왜 가요! 저쪽이 짠 판이라니까요!
"생중계 카메라가 다 들어온다면서요. 밥상을 화려하게 차려줬는데 안 가면 섭섭하죠."
진우는 확성기를 챙기고 소형 마이크를 꽂았다.
"태산 길드가 던전 보스 영상을 튼다고요? 아주 기대되네요. 그 잘난 헌터들이 왜 도망쳤는지 전 국민 앞에서 똑똑히 통역해 드리겠습니다."
신아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칼집을 고쳐 맸다.
"그럼 저도 갑니다. 협상에는 든든한 몽둥이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진우가 문을 열자 지맥석과 검날의 푸른빛이 나란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