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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14화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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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사과는 공개로, 예약은 선착순

청문회장을 나온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진우의 휴대전화가 뜨거워졌다.

차량 뒷좌석에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새로운 번호가 떴다. 신아린이 백미러를 흘끗 봤다.

"열일곱 번째입니까?"

"스물셋이요. 그중 넷은 제 목소리만 듣고 계약금을 보내겠답니다."

진우는 휴대전화를 무릎 위에 엎어 놓았다. 화면 위로 대한 길드의 거액 착수금 제안이 사라지자 환경부 공문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전담 특별 외교관이라. 이름은 그럴싸한데 계약서가 없네요."

"면담 요청일 뿐입니다. 조건을 보고 결정하면 됩니다."

아린은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말을 이었다.

"길드 의뢰부터 걸러야 합니다. 현장마다 따라다니면 제가 경호할 시간이 모자랍니다."

"저도 혀가 하나뿐입니다."

진우는 메모장에 '정규 현장 통역 주 1회, 연 48회'라고 적었다. 한 달에 나흘씩은 이동과 후속 확인을 위해 비워 둘 계산이었다. 위험 자료가 빠진 현장은 예약을 확정하지 않고 구조가 급한 마수나 사람의 신고는 별도로 받기로 했다. 돈을 먼저 보낸 순서대로 마수를 만나러 뛰어다닐 수는 없었다.

그때 배태혁의 번호가 떴다.

"이번엔 어떤 증거를 조작했다고 하시려고요?"

  • 유 대표님. 길드장님께서 원만한 해결을 원하십니다. 사과문 초안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공동 발표 형식으로 진행하시죠.

진우의 휴대전화에 첨부 파일이 도착했다.

'상호 간의 의사소통 부족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했으며 양측은 유감을 표한다.'

그 아래에는 진우가 향후 태산 길드의 브랜드 및 공략 자료에 대해 공개 발언을 삼간다는 조항이 숨어 있었다. 굴각 둥지를 강제 소탕해 달라고 제출한 요청서에 관한 말은 한 줄도 없었다.

"제 입은 통역료가 비싼 편인데 이건 공짜로 막으시네요."

  • 합의금을 얹겠습니다.

"사과할 사람이 저로 적혀 있습니다. 태산이 제게 한 말을 철회하는 문장은 어디 있습니까?"

상대가 답하지 못하자 진우는 사무소 주소를 보냈다.

"회견 전에 직접 오세요. 제가 빠진 사과문은 제가 읽어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소 로비에는 택배 상자와 취재진의 명함이 쌓여 있었다. 아린은 계단에 붙은 취재진을 아래로 돌려보냈다.

오전 열 시, 강철민이 배태혁과 함께 들어왔다. 얼굴은 창백했고 재킷 아래에는 병원에서 붙였던 심전도 패치 자국이 비쳤다.

"유진우 씨. 원하는 게 뭔가."

강철민이 앉자마자 물었다.

배태혁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그는 화면을 가리고 통화를 받았지만 '이사회'와 '비약 공급 중단'이라는 말은 테이블 건너편까지 들렸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는 한동안 앉지 못했다.

"정확한 정정입니다. 저를 사기꾼이라고 한 말, 불법 천공을 덮으려 한 말, 굴각을 소탕하겠다고 한 요청. 전부 길드 이름으로 거두세요."

배태혁이 준비한 봉투를 밀었다.

"보상금은 충분히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 비약 관련 언급은 멈춰 주십시오."

진우는 봉투를 열지도 않았다. 테이블 위에 현장 기록 세 장을 펼쳤다. 박은채의 공명 파형, 오세만의 천공기 가동 영상, 굴각의 비공격 협약서였다.

"비약 부작용은 길드가 조사하십시오. 저는 골라움이 말한 것만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들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탕 요청이 접수된 상태에서 공사 현장에 누가 다시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진우는 굴각의 협약서 아래에 찍힌 큼지막한 발톱 자국을 가리켰다. 마수는 글자를 몰라도 둥지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에 자기 흔적을 남겼다. 인간 쪽 서류에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길이 아직 열려 있었다.

강철민이 배태혁을 쳐다봤다. 배태혁은 시선을 피했다.

"청문회가 정회됐으니 그 안건도 멈춘 것 아닙니까?" 강철민이 물었다.

"정회는 철회가 아닙니다. 굴각과 새끼들은 서류 한 장 때문에 다시 쫓겨날 수 있어요."

진우는 빈 종이에 문장을 적었다. '형사 고발과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한다. 굴각 둥지 강제 소탕 요청을 철회한다. 안전 조사와 공존 구역 지정 절차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 세 줄을 공개적으로 읽으세요. 그리고 태산이 제 통역을 사기라고 주장한 근거가 틀렸다고 인정하십시오."

"내 길드를 조롱거리로 만든 건 당신이야."

강철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우는 그를 바라봤다.

"영상에 녹음된 목소리는 골라움 겁니다. 제가 그 마수에게 무슨 말을 하라고 가르친 적도 없어요."

강철민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단상에서 자신이 직접 틀라고 지시했던 영상이었다. 콧구멍을 막고 환기구를 뚫던 골라움의 모습까지 지울 방법은 없었다.

아린이 팔짱을 풀고 테이블 앞으로 섰다.

"회견 전까지는 현장에 태산 인력을 들이지 마십시오. 현장 안전 책임자로서 드리는 통보입니다."

강철민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배태혁의 봉투를 도로 밀어냈다.

"회견문을 다시 써. 고발과 손해배상 절차를 멈춘다는 확인서도 가져오고. 소탕 요청서 철회는 내가 서명한다."

그가 다시 진우를 바라봤다.

"그 대신 사실 아닌 말까지 덧붙이지 마시오. 비약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 손으로 조사하겠소."

"그게 제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사실부터 바로잡자는 거죠."


오후 두 시 태산 길드 본사 기자회견장. 단상에 오른 강철민은 물컵을 잡았다 놓았다.

진우와 아린은 객석 뒷줄에 섰다. 진우는 강철민의 손에 들린 종이를 확인했다. 오전에 요구한 문장들이 들어 있었다.

"태산 길드의 이름으로 사과드립니다."

강철민이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유진우 통역사를 사기꾼으로 단정한 발언을 철회합니다. 현장 천공 기록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공사 지연의 책임을 돌렸습니다. 저희의 잘못입니다."

플래시가 터졌다. 배태혁은 단상 옆에서 턱을 굳게 다물었다.

"유진우 씨에 대한 형사 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방침을 철회하고 진행 중인 절차도 중단하겠습니다. 굴각 둥지의 강제 소탕 요청도 철회합니다. 현장의 안전 조사와 공존 구역 지정 절차에 협조하겠습니다."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고농축 유황 용혈 비약은 안전합니까? 골라움이 거부한 이유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강철민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공략대 복용 기록과 이상 반응을 확인 중입니다. 제품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급을 중단하겠습니다."

배태혁이 눈을 감았다. 강철민은 사과문의 마지막 줄을 읽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회견이 끝나자 진우는 태산이 관리국에 제출한 소탕 요청 철회서의 접수 번호를 확인했다. 확인서의 다른 면에는 고발·손해배상 관련 방침을 접겠다는 강철민의 서명이 있었다. 박은채에게 사진을 보내자 답장이 왔다.

[현장에도 철회 문서 접수됐어요. 조사 일정은 그대로입니다. 굴각한테도 알려 줄게요.]

곧 박은채가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뒤로 공사장 바람 소리와 낮은 울음이 섞여 들어왔다. 진우의 시야에 푸른 자막이 떠올랐다.

[큰 쇳짐승이 아직 서 있다. 저것이 내 새끼들 머리 위로 다시 내려오나?]

진우는 순간 말을 잃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한 장의 요청서였지만 굴각에게는 천장을 깨던 기계의 그림자였다.

"박 조사관님. 천공기 전원 내려간 거 보여 주세요. 철회서도 그 앞에서 펼쳐 주시고요. 굴각이 글을 못 읽어도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봅니다."

  • 알겠어요. 장비 반출까지 제가 확인할게요.

둔중한 울음이 한 번 더 들렸다.

[작은 혀가 한 약속은 아직 안 깨졌다.]

진우는 손가락으로 그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

"이제야 새끼들 잠자리가 서류보다 안전해졌네요."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문을 돈으로 바꾸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요."

"돈은 따로 벌면 됩니다."


사무소로 돌아오자 대기 중이던 의뢰인들이 계단 끝까지 늘어서 있었다. 진우는 문 앞에 예약 기준을 붙였다.

우편함에는 시청 게이트관리과의 봉투가 끼어 있었고 전자우편함에는 지방 하천관리단과 길드 세 곳이 보낸 현장 영상이 들어와 있었다. 단순한 팬레터로 넘길 수 없는 의뢰들이었다.

[정규 현장 통역: 안전 자료 확인 후 계약. 주 1회, 연 48회. 착수금 500만 원. 독점 계약 불가. 긴급 생태·인명 분쟁 별도 접수.]

"계약금부터 드리겠습니다!" 대한 길드 직원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날 보냈던 5천만 원짜리 긴급 제안서를 흔들었다.

"현장 자료부터요. 통역사가 현장에 들어갔다가 밟히면 계약금 돌려드릴 사람도 없습니다. 5천만 원이라도 현장 검토 순서를 건너뛸 수는 없어요."

직원 뒤에 선 구청 담당자가 물었다.

"저희 하천 배수문에는 밤마다 마수가 머리를 들이밉니다. 닫으면 주변 주택이 잠기는데 긴급 건으로 먼저 볼 수 없습니까?"

"수위 기록과 출현 시간을 보내 주세요. 오늘 밤 사람이 위험하면 긴급 신고로 따로 분류합니다. 정규 예약을 앞당기는 돈은 받지 않습니다."

담당자는 줄에서 빠져나와 서류를 촬영했다. 대한 길드 직원도 결국 제안서 대신 현장 출입 동선도를 꺼냈다.

아린이 첫 신청서의 출입 동선과 구조 인원을 확인했다. 진우는 마수의 행동 기록이 없는 의뢰를 보류함에 넣었다. 자료가 갖춰진 신청서에는 '현장 안전 재확인 전까지 방문 날짜 조정 가능'이라는 조건을 달아 전자 계약 링크를 보냈다.

모든 신청을 진우 혼자 읽을 수는 없었다. 아린이 방호벽과 퇴로를 보고 진우가 마수의 포효 기록과 요청 목적을 확인했다. 둘 중 하나라도 비어 있으면 신청자에게 보완 요청을 돌렸다. 선입금을 무턱대고 받지 않자 줄 앞쪽에서 불평이 터졌지만 뒤쪽에서는 오히려 서류를 꺼내는 소리가 빨라졌다.

저녁 여섯 시, 벽에 붙인 달력의 마지막 빈칸이 채워졌다. 향후 열두 달의 정규 현장 통역 48칸이 모두 계약됐다. 보류한 위험 현장과 긴급 신고는 그 숫자에 넣지 않았다.

진우의 계좌에 착수금 합계 2억 4천만 원이 찍혔다. 그는 숫자를 세 번 읽었다. 처음 빌린 사무실 월세를 계산하던 때와는 자릿수가 달랐다.

"신 팀장님. 사무실 건물 주인 연락처 혹시 압니까?"

"임대료 협상은 제가 하겠습니다. 건물을 살 생각은 아직 하지 마세요."

"생각 정도는 공짜잖아요."

진우가 웃는데 또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표시는 환경부 게이트생태관리국이었다.

  • 유 대표님. 공문 확인하셨습니까? 내일 직접 찾아뵙고 전담 특별 외교관 위촉 조건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우는 달력의 빈칸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보았다.

"면담은 가능합니다. 다만 제 통역을 정부가 독점하는 조건이라면 안 됩니다. 마수가 싫다고 하면 그것도 그대로 옮길 겁니다."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 그 부분 때문에 대표님을 찾았습니다. 내일 계약서와 함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진우는 통화를 끊고 달력 옆에 새로운 칸 하나를 그렸다.

'환경부 면담. 계약서 확인.'

문제는 그 계약서에 사람의 서명란만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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