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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4층 이웃은 발소리로 올라온다1화

반지하 4층 이웃은 발소리로 올라온다

반지하 4층 이웃은 발소리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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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계단 아래서 올라온 발자국

백다은은 물이 차기 전에 바닥에 찍힌 젖은 발자국을 봤다. 은하빌라 지하 2층 계단참에는 빗물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창문은 지상보다 높은 쪽에 있었고, 복도 바닥도 말라 있었다. 그런데 계단 아래에서부터 물방울이 이어져 한 층씩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관리인 아저씨, 여기 누가 내려갔다 왔어요?”

임현수가 허리의 열쇠 꾸러미를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아무도 지하에 안 왔습니다.”

“그럼 발자국이 왜 위로 올라와요?”

“배관에서 샌 물이겠죠.”

다은은 무릎을 굽혀 가장 아래쪽 자국을 살폈다. 발뒤꿈치가 깊고 발끝은 가벼웠다. 신발을 신은 흔적이 아니라 맨발이었다. 물자국은 계단 하나마다 선명해졌다가, 2층 계단참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배관 누수면 천장이나 벽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엔 물이 올라온 흔적이 없어요.”

“그럼 누가 밤에 들어왔나 보죠.” 현수는 계단 아래를 보지 않았다. “점검만 하고 올라가세요. 세입자들이 괜히 소란을 피우면 골치 아파요.”

다은은 형광 방수복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소란은 물이 차고 나면 더 커져요.”

그녀는 건물 입구에 세워 둔 작업차에서 공구가방을 다시 확인했다. 휴대형 수분계, 절연 장갑, 양수 펌프용 연장선, 밸브 렌치. 장비는 모두 제자리에 있었지만, 작업표에는 ‘누수 원인 확인’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건물주가 직접 전화해 지하 배수 소리가 난다고 했고, 관리인은 입주민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집주인이 요청한 건 펌프 확인뿐이에요.” 현수가 말했다. “벽을 뜯거나 도면 밖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벽을 뜯진 않아요. 문이 막혔는지만 볼 겁니다.”

“그걸 열면 책임이 기사님한테 와요.”

“닫아 둔 쪽에 먼저 오겠죠.”

다은은 작업표 사진을 찍어 본사에 전송했다. 원인을 확인하기 전에는 벽이나 배수구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적었다. 예전에 급하게 펌프를 바꿨다가, 역류밸브가 고장난 걸 놓친 적이 있었다. 그때 물은 낮은 층으로 다시 올라왔고, 방 하나가 통째로 젖었다. 다은은 그 뒤로 수리보다 물의 방향을 먼저 봤다.

“사람들한테 대피하라고 하면 다들 화를 내요.” 현수가 말했다.

“물이 차면 화낼 힘도 없어요.”

“이 건물 세입자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일찍 알려야 해요.”

현수는 열쇠를 허리에서 빼 들었다. “적어도 지하 3층까지는 제가 같이 내려가겠습니다.”

“좋아요. 문은 안쪽에서 잠그지 마세요.”

“왜요?”

“제가 올라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현수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다은은 그에게 예비 손전등을 건넸다. 그는 받지 않고 자기 휴대전화 플래시를 켰다. 빛이 계단 벽을 흔들었다.

그녀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밑 집수정의 펌프가 낮은 진동을 내고 있었다. 수위계는 정상 범위였다. 역류방지 밸브도 닫혀 있었다. 벽에 붙인 도면은 반지하와 지하 1~3층을 표시했다. 가장 아래는 펌프실에서 끝났다.

하지만 발자국은 펌프실 문 아래로 이어졌다.

다은은 공구가방에서 손전등과 수분계를 꺼냈다. 바닥에 대자 측정값이 거의 0으로 나왔다. 물은 없었다. 그녀는 문 아래 틈에 휴지를 밀어 넣었다. 바람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펌프가 돌 때 생기는 공기 흐름과 달랐다.

“거기서 뭐 해요?”

계단 위에 장유라가 서 있었다. 지하 3층 원룸에 사는 대학생이었다. 한쪽 이어폰은 귀에 꽂힌 채, 다른 쪽은 손에 쥐고 있었다.

“펌프실을 확인해요. 내려오지 말고 위에 있어요.”

“방금 밑에서 발소리가 올라왔어요.”

“누가 내려간 거야?”

“아무도요. 저 혼자 집에 있었어요.”

유라는 손에 든 휴대전화를 보여 줬다. 녹음 앱이 켜져 있었지만 파형은 거의 비어 있었다. “새벽 세 시마다 들려요. 처음엔 한 사람이었는데, 지난주부터 둘이 됐어요.”

“그걸 왜 관리인한테 말하지 않았어?”

“말했더니 발소리는 층간소음이 아니라고 했어요.”

위층에서 노란 장화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최경자가 손에 작은 라디오를 들고 나타났다. “또 문을 열어 보려고?”

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경자 어르신, 방으로 들어가세요. 아직 비도 안 왔습니다.”

“비가 안 왔는데 계단이 젖었잖아.” 경자는 난간을 잡고 발자국을 내려다봤다. “이런 자국은 장마 오기 전에 꼭 생겼어.”

다은은 경자의 장화를 보았다. 밑창은 마르고, 양말에도 물기가 없었다. “지난번에도 보셨어요?”

“이 집이 다세대 되기 전부터 여기 살았어. 그땐 아래가 우물이었지.”

“도면에는 그런 표시가 없는데요.”

“도면은 새로 그리면 옛날 걸 지우는 거야.”

현수가 말을 잘랐다. “그 우물은 덮였습니다. 오래전 일이에요.”

경자는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잡음이 났다. “덮었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지. 남편은 비 오는 날마다 여기서 누가 걷는다고 했어. 난 못 믿었어.”

“할머니도 소리를 들었어요?” 유라가 물었다.

“못 들었으니까 믿지 않았지. 그런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이 라디오가 혼자 켜졌어.”

“라디오가 고장 난 거겠죠.” 현수가 말했다.

경자는 그를 보지 않았다. “고장이면 고쳐야지. 왜 4층 계단을 막았어?”

다은은 현수를 바라봤다. “4층이 있다고요?”

현수의 손이 열쇠 꾸러미 위에서 멈췄다.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

“방금 어르신이 물었어요.”

“옛날 계단 얘기입니다.”

경자는 라디오를 다은에게 내밀었다. “밤에 이걸 켜 봐. 네가 발소리를 듣는지 안 듣는지 그때 알겠지.”

다은은 받지 않았다. “저는 라디오를 수리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래. 그럼 물을 수리해.”

경자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녀가 지나간 뒤에도 라디오에서 잡음이 잠깐 더 이어졌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다이얼이 저절로 멈춘 숫자는 4였다.

현수는 경자가 사라진 계단을 한동안 바라봤다. “유라 씨, 또 그 얘기예요? 이분은 수리 기사라 그런 얘기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발자국은요?” 유라가 물었다. “누가 맨발로 펌프실에 갔어요?”

현수의 손이 열쇠 꾸러미를 꽉 쥐었다. “배관이 새는 거라고 했잖아요.”

다은은 문 아래 휴지를 당겨 꺼냈다. 휴지 끝에 검은 흙이 묻어 있었다. 은하빌라 외부 흙은 붉은 화강암 가루가 섞여 붉은빛을 띠었다. 이 흙은 회색이었다. 지하 깊은 곳의 점토였다.

“펌프실 안쪽에 다른 공간이 있습니까?”

“없어요.”

“도면하고 현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지하 3층까지예요.”

“그건 도면에 그렇게 그려져 있다는 말이지, 공간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죠.”

다은은 펌프를 끄지 않고 옆면의 수위를 확인했다. 물은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집중호우 예보가 있긴 했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다. 외부 하수관의 압력이 먼저 올라온 것 같았다. 집수정의 역류밸브가 한 번 덜컥거렸다.

그 순간,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났다.

첨벙.

첨벙.

소리는 펌프실 문 안쪽에서 시작해 계단을 올라왔다. 다은은 손전등을 들고 아래를 비췄다. 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계단 모서리에 젖은 발자국이 하나씩 생겼다. 처음엔 문 앞, 다음은 한 계단 위, 그다음은 다시 한 계단 위.

유라가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제가 들은 소리랑 같아요.”

현수가 그녀를 밀어 올렸다. “위로 가요.”

“아저씨는 왜 안 가요?”

“난 관리인이야.”

다은은 발자국이 멈춘 계단에 손전등을 비췄다. 물기는 차가웠고, 가장자리가 맨발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마지막 발소리가 하나 더 울렸다. 그 소리는 그들 셋이 서 있는 지점보다 아래에서 들렸다.

“펌프실 문을 열게요.” 다은이 말했다.

현수는 열쇠를 주지 않았다. “안 열어도 됩니다.”

“그럼 왜 열쇠를 갖고 있어요?”

“점검용입니다.”

“점검하게 주세요.”

현수는 다은과 유라를 번갈아 봤다. 결국 가장 작은 열쇠를 골라 문에 꽂았다. 잠금쇠는 돌아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쪽에서 누군가 손바닥으로 밀고 있는 것처럼 단단히 버텼다.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유라가 물었다.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은은 어깨를 문에 대고 밀었다. 한번, 두 번. 세 번째 밀었을 때 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벌어졌다. 찬 공기와 함께 오래된 흙 냄새가 나왔다.

문틈 아래로 물이 흘러나왔다. 수분계는 여전히 0을 가리켰다.

다은은 틈으로 손전등을 밀어 넣었다. 펌프실의 벽은 정면에 있어야 했지만, 빛은 아래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비췄다. 계단은 한 층 더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문틈에 쐐기를 끼워 다시 닫히지 않게 했다. 현수는 열쇠를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 공간은 건물주가 막으라고 했습니다.”

“언제요?”

“제가 관리인으로 오기 전입니다. 벽돌을 쌓았다는 사람은 이제 없어요.”

“그럼 발자국은 그 뒤에 생긴 거네요.”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라는 계단 끝을 바라보며 자기 휴대전화를 껐다. “오늘은 녹음 안 할래요. 제 목소리까지 같이 들어갈 것 같아서.”

다은은 그녀를 먼저 계단 위로 올려보냈다. “내가 부르기 전까지 문 근처에 오지 마.”

건물은 지하 3층까지였다.

“이 공간은 누가 막았습니까?”

현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면에 없어요.”

문 안쪽에서 젖은 발자국 소리가 다시 났다. 이번에는 올라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계단 아래에서 멈춘 뒤, 문틈으로 다은을 향해 말했다.

“백다은 씨, 이번에도 늦었네요.”

그 목소리는 다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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