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수의 재도전

2화: 초읽기에서 손을 내리다
청소년 기원 팀전은 토요일 오전 열 시에 시작됐다. 백서준은 대국실 입구에서 선수 명단과 보드를 확인했다. 팀은 초등부 두 명과 중등부 한 명으로 구성됐고, 이시아는 마지막 보드에 앉았다. 대국 중 코치가 수를 알려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서준은 선수 옆에서 대국을 지켜보더라도 표정이나 손짓으로 선택을 암시하지 않기로 했다.
신우는 첫 대국에서 흑을 잡았다. 초반 포석은 안정적이었지만, 중앙 접전에서 상대 돌을 잡으려다 자기 돌을 끊길 위험에 빠졌다. 서준은 입단대회에서 자기가 19수 이후 보였던 조급함을 떠올렸다. 신우는 초읽기 30초가 시작되자 바둑시계를 보며 손을 멈췄다.
“신우야, 시간이야.” 대회 진행자가 알렸다.
“한 번 더 읽고 둘게요.” 신우가 말했다.
그는 상대의 끊는 수와 자신의 연결을 번갈아 살폈다. 손을 뻗어 돌을 놓으려다 취소하고, 눈을 감았다. 서준은 대신 수를 말해 주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초읽기 규칙은 선수에게 남은 시간을 알릴 뿐, 안전한 수를 알려 주지 않았다.
신우는 공격을 멈추고 자기 돌을 연결했다. 상대는 중앙을 넓게 차지했다. 대국은 상대의 우세로 끝났고, 신우는 패배했다. 그는 돌을 정리하면서 자기 선택이 틀렸다고 말했다. 서준은 먼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묻고, 신우가 연결을 택한 이유를 설명하게 했다.
“더 큰 돌을 살렸어요. 대신 중앙을 줬어요.”
“그걸 선택했을 때 네가 감당한 건 뭐야?”
“집이 줄었어요. 그래도 잡히는 것보단 나았어요.”
신우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초읽기에서 아무렇게나 돌을 놓지는 않았다. 서준은 패배한 점수와 별도로 초읽기 안에 선택한 기준을 기록했다. 신우는 자신이 오래 생각해 시간을 다 쓴 점도 고치고 싶다고 했다. 서준은 후보 수를 줄이는 연습을 다음 수업에서 하자고 했다.
대국이 끝난 뒤 신우는 상대가 중앙을 차지한 뒤에도 자신의 약한 돌을 끊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서준은 19줄 전체를 다시 놓기 전에, 문제의 모양만 9줄 바둑판에 옮겼다. 신우는 연결하면 집이 줄고, 버티면 돌이 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돌을 놓는 대신 두 선택의 다음 응수를 말로 먼저 설명했다. 상대 돌이 바깥에 한 수 더 두면 자기 돌이 살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럼 이번 판에서 진 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수만으로 판 전체를 결정할 수는 없어. 네가 다음에 비슷한 모양을 만나면 어떤 선택을 할지 준비하는 거야.”
신우는 끝내기에서 자신이 두 집을 내준 장면도 기억했다. 그때는 중앙에서 만회하려고 서둘렀다고 했다. 서준은 그 수순을 다음 복기 시간에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신우는 패배를 전부 한 번의 공격으로 설명하려던 생각을 조금 내려놓았다.
이시아의 대국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녀는 상대의 좌변을 공격하며 여러 차례 싸움을 만들었다. 중반에 상대가 약한 돌을 연결하자, 시아는 공격을 더 이어갈지 우변의 집을 지킬지 선택해야 했다. 그녀는 공격을 계속했다. 상대는 중앙에서 살았지만, 시아는 바깥 세력을 얻었다. 대국은 시아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이번에는 공격이 성공했네.” 서준이 말했다.
“저는 늘 공격해요. 이번엔 상대가 받아 준 거고.”
“그럼 성공한 이유가 네 공격 때문인지, 상대가 받아 준 선택 때문인지 나눠 봐야겠네.”
시아는 표정을 굳혔다. 그녀는 상대가 연결할 때 자신이 두었던 수가 의도한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복기에서 그 수를 다시 확인할 때, 상대가 다른 방향으로 버텼다면 공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같이 보자고 했다. 시아는 서준이 결과를 깎아내린다고 느꼈다. 그녀는 자기 승리를 인정해 주길 바랐다.
“이겼다는 건 좋은데, 다음에도 같은 공격이 통할지 알고 싶어요.” 서준이 덧붙였다.
시아는 잠시 생각한 뒤 대국 기록을 남기고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승리 장면만 보여 주려는 게 아니라, 상대가 연결을 선택했을 때 자기 바깥 세력이 실제로 얼마나 컸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서준은 판을 다시 놓고, 공격을 멈출 수 있던 지점을 함께 보자고 했다.
팀전은 마지막 보드의 결과로 1승 2패가 됐다. 시아의 승리로 한 판을 가져왔지만, 팀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신우는 자기 패배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같은 팀의 중학생은 첫 판에서 큰 실수를 했고, 서준은 팀 결과를 한 사람의 선택으로 돌리지 말자고 했다. 각 대국은 개인의 기록으로 복기하되, 단체전 결과는 팀 전체의 몫이었다.
대국실 바깥에서 시아의 어머니는 서류철을 펼쳐 전학 날짜와 대회 등록 마감일을 대조했다. 새 학교의 재학 증명서는 이사한 뒤에야 나올 수 있었다. 시아는 자신이 출전 자격을 얻지 못하면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할까 걱정했다. 어머니는 출전이 안 되더라도 바둑을 그만두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시아는 대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과 가족 이사를 막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같이 있다고 했다.
서준은 그 말을 듣고 시아에게 해결책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사 일정과 대회 규정을 분리해 확인하자고 했다. 시아는 전학을 택한 가족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대회 출전이 가능한 방법을 주최 측에 직접 문의하겠다고 했다.
경기 뒤 원장 조영재는 선수와 보호자들에게 다음 지역 대회 일정을 안내했다. 시아는 전학을 앞두고 있어 새 학교의 선수 등록 기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보호자는 이사 날짜가 확정되지 않아 서류를 낼 수 없다고 했다. 영재는 대회 주최 측에 재학 확인과 주소 변경 시점의 기준을 물어보기로 했다. 시아는 자격이 안 되면 이번에는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 다음 대회 준비할게요. 이번 판을 먼저 복기하고요.”
시아는 대국 기록을 재현하며 47수 공격을 꺼냈다. 상대가 연결한 이후 자신이 바깥을 얻은 건 맞았지만, 다른 선택으로도 같은 결과가 가능한지 확인했다. 서준은 시아가 공격을 계속할지 말지 묻기 전에, 상대가 어떤 응수를 할 수 있었는지 먼저 나열하게 했다. 시아는 처음엔 짜증을 냈지만, 두 번째 후보 수가 바깥 세력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의 선택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을 이해하자, 자기 승리도 다른 방식으로 보였다.
그날 저녁 서준은 자신의 입단대회 두 번째 판을 다시 펼쳤다. 19수 이후의 수순은 더 빠르게 진행됐다. 25수에서 상대가 끊고, 28수에서 서준은 두 무리를 동시에 살리려 했다. 그는 그때 초읽기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했지만, 한 쪽을 포기하는 게 두려워 계산을 서둘렀다.
영재는 서준에게 그 순간을 복기해 보라고 했다. 서준은 중앙 무리를 살리고 좌상귀를 내주는 수를 놓았다. 상대가 귀를 차지하면 손해가 커 보였지만, 중앙은 두터워졌다. 다른 방법으로 양쪽을 모두 살릴 수 있는지도 검토했지만, 상대에게 단단한 연결을 허용할 위험이 있었다. 그는 당시 이 차이를 보지 않고 귀를 지키는 데 집착했다.
“그때 네가 두려워한 게 뭐야?”
“제가 실수했다는 걸 상대가 알까 봐요. 처음부터 수가 나빴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어요.”
“바둑판은 네가 인정했는지 모른다. 상대 응수만 놓여.”
서준은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자기 판이 단순한 승패가 아니더라도, 패배 뒤에 남은 수순을 다시 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대국 기록을 끝까지 재현하기로 했다. 영재는 옆에 앉아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서준이 직접 다음 응수를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대국 기록을 다 복기한 뒤, 서준은 입단대회 준비 계획을 새로 적었다. 오전에는 사활 문제와 포석, 오후에는 기원 보조 근무, 저녁에는 주 3회 실전 대국을 넣었다. 계획은 기존보다 빡빡해 보였지만, 영재는 수입과 휴식 시간을 먼저 고려하라고 했다. 서준은 보조 근무가 있는 날에는 문제 풀이를 줄이고, 주말 한 번은 완전히 쉬기로 했다.
“입단 준비만 하면 돈이 안 되고, 일만 하면 대회 준비가 안 돼요.”
“그래서 시간표를 직접 조정해야지. 내가 네 하루를 대신 살 수는 없어.”
서준은 기원에서 맡은 보조 수업 시간을 고정하고, 대국 분석은 주 2회만 하기로 했다. 입단 대회 참가비를 모으기 위해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저축하는 계획도 세웠다. 다음 대회에 참가할지 결정하는 날짜를 달력에 적었다. 패배 기록을 복기한 뒤에야 그는 참가 여부를 실제로 고민할 수 있었다.
신우는 수업이 끝나기 전 서준에게 자신의 대국을 또 봐 달라고 했다. 그는 초읽기 때 연결을 택한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을 알고 싶었다. 서준은 신우에게 수를 대신 놓지 않고, 후보를 세 개까지만 적으라고 했다. 신우는 두 개를 찾고 마지막 하나를 오래 고민했다. 이번에는 초읽기 시계를 보며 생각을 나눴다.
시아는 전학 관련 서류를 영재에게 전달했다. 등록 기준을 확인하는 동안 다음 대회 출전이 확정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불확실한 상태가 싫었지만, 출전 자격을 속이고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서준은 그녀가 대국 기록을 복기할 수 있도록 다음 주 시간을 정했다. 시아는 이번에는 자신의 공격 수뿐 아니라 상대가 버틴 수를 분석하겠다고 했다.
기원 문을 닫을 때 서준은 대국 노트를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그는 19수 이후의 실수와 다음 입단 일정, 주간 수련 시간을 노트에 넣었다. 시계가 초읽기를 알리는 소리는 다시 듣기 싫었지만, 이번엔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생각할 수 있었다. 다음 대국에서 같은 수를 두지 않겠다는 약속은 아직 하지 않았다. 대신 후보를 두 개로 줄이고,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