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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13화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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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30분의 간극

밤 21시 40분.

남항 제3부두 동부 보세구역 외곽 방파제에는 짙은 해무가 낮게 깔려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짠 소금기와 녹슨 쇠 냄새, 벙커C유의 매캐한 타르 냄새가 젖은 공기 중에 무겁게 엉겨 붙었다. 수백 개의 거대한 철제 컨테이너가 깎아지른 절벽처럼 어둠 속에 솟아 있었고 저 멀리 크레인의 붉은 경고등만이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깜빡였다.

태오는 짙은 남색 방한 작업복을 입은 채 테트라포드 그늘에 웅크리고 있었다. 왼쪽 팔에는 낮에 오복자에게 넘겨받은 부두 화물 검수원용 형광 완장이 둘러져 있었다.

귀 안쪽에 꽂힌 초소형 무선 이어폰에서 미세한 잡음과 함께 윤서린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 감정사님. 들리시나요?”

“잘 들립니다. 관제소 레이더는 어떻습니까.”

“방금 세관 감시정이 2부두 유류 탱크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B-17 수첩에 적혀 있던 세관 순찰조 교대 주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22시 25분부터 22시 45분까지 제7 컨테이너 야드 사각지대에 20분의 감시 공백이 생깁니다.”

윤서린은 섀도 엔틱 지하 보존실에서 남항 항만 관제 주파수를 쥐고 침착하게 동선을 읽어내고 있었다. 쫓기던 연구원의 나약한 기색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크레인 Q-41의 상태는 확인했습니까?”

“네. 일반 갠트리 크레인과 다릅니다. 메인 제어반 아래쪽에 불법 증설된 보조 유압 라인과 단거리 수평 레일이 확인돼요. 대형 화물선에서 컨테이너를 부두 안쪽으로 직하역하기 위해 야간 전용으로 개조된 설비입니다.”

“문화재를 운반하는 크레인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태오는 손가락 끝으로 작업복 주머니 안의 미세 광학 렌즈와 납작한 XRF 성분 분석기를 매만졌다.

“야드로 진입하겠습니다. 22시 35분에 크레인 비상 정지 주파수 대기하세요.”

“알겠습니다. 무선 채널 열어두겠습니다.”

태오는 방파제 끝단의 철조망 아래로 몸을 낮췄다. 녹슨 배수로 점검구의 볼트를 풀고 미끄러져 들어가자 차가운 빗물 찌꺼기와 갯벌 흙이 장화 밑창에 밟혔다. 배수관을 빠져나오자마자 거대한 철골 기둥들이 도열한 제7 컨테이너 야드가 눈앞에 펼쳐졌다.

크레인 Q-41은 야드 안쪽 바닷가 선석에 우뚝 서 있었다.

밤 22시 25분.

3번 야드 7열, 블록 3-7.

적재된 컨테이너 더미 가장 아래쪽에 육중한 40피트 붉은색 냉동 컨테이너 하나가 박혀 있었다.

컨테이너 주변에는 작업용 조끼를 걸친 사내 여섯 명이 중장비 지게차와 유압 윈치를 세워두고 서성이고 있었다. 거친 말투와 굳은 손놀림, 허리춤에 비정상적으로 불룩 튀어나온 외투 자락은 부두 하역 인부가 아닌 사설 무장 회수조 특유의 살기를 풍겼다.

크레인 상부의 권상기 와이어가 안개 속에서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태오는 5열과 6열 컨테이너 사이의 한 뼘 남짓한 어둠 속으로 몸을 밀착했다. 젖은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휴대용 광학 렌즈의 초점을 붉은 컨테이너 출입문에 맞췄다.

컨테이너 문틈에는 세관 통관 필증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한빛 문화재환수재단 해외 교류 기증품 - 비과세 감면 대상]

선명한 푸른색 세관 면세 직인 아래에는 B-17 경매장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한빛-C-03 압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태오는 렌즈를 아래로 내려 잠금장치의 볼트 씰을 살폈다.

일반적인 해상 화물 볼트 씰은 연철이나 플라스틱 외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컨테이너의 씰은 표면에 미세한 헤어라인 가공이 들어간 군용 티타늄 합금이었다. 태오가 렌즈 옆의 자외선 스위치를 켜자 볼트 씰 머리 부분에서 극초단파 신호를 내뿜는 나노 안테나 코일이 푸른 형광으로 번뜩였다.

“문화재 기증품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전수 검사를 피하고 안쪽에는 전자 추적 씰을 달았군.”

태오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문화재 환수라는 국가적 명분을 가림막으로 삼아 군용 물자를 세관의 눈앞에서 무사통과시키는 수법이었다. 김 의원의 네트워크가 장악한 한빛 재단은 골동품 세탁망이자 불법 화물의 면죄부 발행처였던 셈이다.

밤 22시 40분 정각.

철제 레일을 구르는 육중한 굉음과 함께 크레인 Q-41의 활차가 컨테이너 상단에 고정되었다.

“열어! 시간 없다!”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사내가 턱짓으로 지시했다.

작업 인원 둘이 달라붙어 유압 절단기로 티타늄 볼트 씰을 끊어냈다. 묵직한 강철 빗장이 풀리며 붉은 컨테이너의 양쪽 문이 삐걱거리며 좌우로 열렸다.

내부의 서늘한 냉기와 함께 방부제 냄새와 기름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컨테이너 안쪽에는 두꺼운 방수포로 결속된 대형 목재 궤짝 열두 개가 2열 종대로 견고하게 적재되어 있었다.

“지게차 붙여! 23시 10분 전에 차에 다 실어야 해!”

회수조 사내들이 지게차를 후진시키며 컨테이너 안으로 와이어를 밀어 넣으려 했다.

태오는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 짧게 두 번 두드렸다.

“윤서린 씨. 지금입니다.”

“신호 송출합니다.”

그 순간 크레인 Q-41 메인 제어반에서 앙칼진 전기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지지직거리는 스파크와 함께 주탑 상부의 고출력 나트륨 투광등이 일제히 꺼져 내렸다. 야드 전체가 순간적인 칠흑의 암흑 속에 잠겼다.

“어, 뭐야? 전력 나갔어!”

“차단기 확인해! 비상 발전기 돌려!”

갑작스러운 정전과 고함 속에서 회수조 사내들의 시선이 크레인 배전반 쪽으로 쏠렸다. 작업 조장이 손전등을 켜며 발전실로 달려갔다.

태오는 그 혼란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안개와 어둠을 망토처럼 두르고 컨테이너 적재함 안쪽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열두 개의 목재 상자 중 가장 안쪽에 놓인 상자 앞으로 다가섰다. 상자 겉면에는 한자로 [고려석조보살입상 완충재]라는 묵서가 적혀 있었고 뚜껑 틈새로 하얀 석고 가루와 방충용 목모가 비져나와 있었다.

태오는 코트 안쪽에서 탄소강 메스를 꺼내 목재 상자의 봉인 테이프를 소리 없이 갈랐다. 목모를 걷어내자 안쪽에 숨겨져 있던 차가운 무광 블랙의 티타늄 합금 케이스가 손끝에 걸렸다.

군용 저반사 도료가 입혀진 방수 모듈 케이스였다. 케이스 측면에는 고유 납품 코드가 압인되어 있었다.

[SPEC-TACTICAL / COGNITIVE GUIDANCE MODULE - 12 UNITS]

정밀 타격 유도 장비였다. 도자기를 감싸던 완충재 밑에 숨겨진 것은 도시 하나를 마비시킬 수 있는 군용 전자 통신 타격 부품이었다.

태오는 케이스 상단에 방수 실리콘으로 접착되어 있던 투명 서류 파우치를 메스로 단숨에 도려냈다.

파우치 안에서 접힌 선적 원본 송장과 황동 재질의 일련번호 납품 태그가 빠져나왔다.

태오는 미세 손전등 불빛을 손바닥으로 가려가며 송장 하단을 확인했다.

붉은색 인장에는 [C-03 / HANBIT ASSET TRUST]라는 비자금 세탁망 코드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 최종 검수 확인관 서명란에 낯익은 세 글자의 영문 이니셜이 각인되어 있었다.

H.D.Y

한도윤.

자신을 미술품 위작 스캔들의 희생양으로 몰아넣고 정식 시장의 권좌를 차지했던 옛 동료의 식별 부호였다. 한도윤의 손길이 한빛 재단의 문화재 조작을 넘어 군용 무기 밀수의 검수선까지 깊숙이 뻗어 있었다.

태오의 가슴 밑바닥에서 차가운 불꽃이 일었다.

물건의 거짓말은 언제나 권력의 약점을 드러낸다. 이 한 장의 원본 송장은 김 의원 네트워크와 한도윤의 숨통을 동시에 끊어놓을 쥐덫이었다.

위잉-

크레인 기둥 뒤편에서 비상 발전기 모터가 회전하며 주황색 비상 유도등이 희미하게 켜졌다.

“야! 컨테이너 문 닫아! 송장 파우치가 뜯겼어!”

컨테이너 입구로 돌아온 작업 조장이 찢어진 방수포를 보며 절규하듯 소리쳤다.

“누가 들어왔어! 야드 봉쇄해!”

회수조 사내들이 외투 안에서 권총과 쇠파이프를 꺼내 들며 컨테이너 주변을 겹겹이 에워쌌다.

시계의 바늘은 22시 5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태오는 컨테이너 내부의 어둠 속에 등을 대고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세관 비상 조명탄 원통을 꺼냈다.

경매장 금고 앞에 남겨둔 가짜 메모의 시각은 23시 10분이었다. 회수조는 23시 10분에 맞춰 물건을 싣고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태오가 쥐고 있는 시간의 패는 달랐다.

그는 컨테이너 환기창 틈새로 손을 뻗어 크레인 활차 프레임의 빈 홈에 조명탄을 비스듬히 거치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하단의 격발 와이어를 잡아당겼다.

쾅!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붉은 섬광이 밤하늘을 수직으로 갈랐다.

상공 200미터에 도달한 조명탄이 낙하산을 펼치며 눈부신 주홍빛 화염을 뿜어냈다. 짙은 해무 속으로 붉은빛이 번지며 제7 야드의 컨테이너 미로가 대낮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동시에 부두 전역의 방공 사이렌이 귀청을 찢을 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애애애앵-!

“뭐야! 조명탄을 누가 쐈어?”

회수조 조장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당황해 소리쳤다.

그 혼란을 찢고 야드 북쪽 진입로의 철제 차단기가 굉음을 내며 부서져 튕겨 나갔다.

쿵- 쾅!

검은색 특수 승합차와 경찰 순찰차 네 대가 상향등을 켠 채 거친 타이어 마찰음을 내지르며 야드 한가운데로 돌입했다.

차량 문이 일제히 열리며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한 광수대 무장 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 선 신유경이 확성기를 들고 차 문 뒤에 몸을 엄폐했다.

“광역수사대다! 전원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

회수조 사내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하얗게 질렸다.

“경찰이다! 23시 10분이라고 하지 않았어? 왜 지금 들이닥쳐!”

놈들은 가짜 쪽지의 시각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경은 낮에 태오가 던져준 조수 간만 표의 모순을 간파하고 23시 정각에 맞춰 부두 외곽에 잠복하고 있었다.

태오가 쏘아 올린 조명탄은 경찰의 잠복망을 깨우고 회수조의 퇴로를 단숨에 닫아버린 결정타였다.

탕! 탕!

당황한 회수조 사내 하나가 허공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자 경찰의 진압 사격이 빗발쳤다.

“사격 중지! 엎드려!”

비명과 총성, 번쩍이는 섬광탄의 백색광이 야드를 집어삼켰다.

태오는 혼란이 극에 달한 순간 컨테이너 하부의 좁은 틈새로 몸을 던져 굴러 나왔다. 붉은 조명탄의 역광을 등지고 컨테이너 블록 사이의 그늘진 배수로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뒤편에서 신유경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아스팔트를 울렸다.

“현장 화물 전량 확보해! 도주로 차단!”

태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부두 남쪽의 해안 방파제 배수관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올랐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관로를 빠져나와 젖은 바위틈을 기어오르자 폐등대 뒤편의 비포장도로에 전조등을 끈 청소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조수석 문이 덜컥 열렸다.

“타쇼. 감정사 양반.”

오복자의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태오가 적재함으로 뛰어들자 트럭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부두 외곽 순환도로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트럭 안에서 태오는 젖은 방한복을 벗어젖히고 거친 숨을 골랐다.

무선 이어폰 너머로 윤서린의 떨리는 음성이 전해졌다.

“강 감정사님. 무사하신가요? 방금 경찰 무전 감청했습니다. 광수대가 현장에서 화물 열두 상자를 전부 압수하고 회수조 네 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어요.”

“알고 있습니다.”

태오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빳빳하게 마른 선적 송장과 C-03 납품 태그를 꺼냈다.

손가락 끝으로 종이 하단에 음각된 H.D.Y 이니셜을 문질렀다.

물건은 경찰의 손에 넘어갔지만 그 물건이 누구의 목을 겨누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유일한 열쇠는 태오의 손바닥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태오의 목소리가 덜컹거리는 트럭의 엔진음 사이로 낮게 가라앉았다.

남항의 검은 바다 너머로 오랫동안 숨어 있던 복수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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