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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12화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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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지워지지 않는 흔적

오전 8시 10분.

비는 잦아들지 않고 슬럼가 골목의 낡은 함석지붕을 거세게 두드렸다.

폐 수장고 하역 골목을 빠져나온 태오는 윤서린의 보폭에 맞추어 걸음을 조절했다. 사거리 큰길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바닥 위로는 광역수사대 순찰차의 푸른 경광등 불빛이 물웅덩이에 젖어 번쩍였다.

윤서린의 젖은 흑색 외투 소매에서 아세톤과 시너가 뒤섞인 자극적인 보존액 냄새가 빗물 안개 속으로 피어올랐다.

“발소리를 낮추세요.”

태오가 낮게 말했다.

“골목 안쪽에 폐자재가 쌓여 있습니다.”

윤서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고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경매장 금고 앞에서 관리자가 뻗었던 손과 전원 차단기가 내려가던 순간의 암흑이 아직 그녀의 눈동자에 맺혀 있었다.

태오는 대로를 피해 슬럼가의 노후 배수관 환기통 옆으로 몸을 틀었다. 붉은 벽돌 담벼락 사이에 버려진 폐목재와 함석판을 밀어내자 굳게 닫힌 녹슨 방화문이 드러났다.

그는 주머니에서 납작한 열쇠를 꺼내 열쇠구멍에 밀어 넣었다. 거친 금속 마찰음과 함께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지하 2층으로 꺾여 내려가는 계단 통로였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태오는 방화문을 닫고 이중 걸쇠를 채웠다.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두꺼운 철문 뒤로 일순간 차단되었다.

계단 아래 섀도 엔틱의 뒷문이 나타났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태오는 윤서린의 젖은 외투를 벗겨 벽면에 걸린 차폐용 비닐 백에 밀봉했다. 지퍼를 닫자 공기 중에 떠돌던 화학 용제의 냄새가 한풀 꺾였다.

“외투는 거기에 둡니다.”

“제 옷에서 그렇게 냄새가 심한가요?”

“경찰견이 없어도 사거리의 감시조가 지나치면 바로 알아챌 수준입니다. 경매장의 보존실에서 쓰던 솔벤트 배합은 시중 도료와 휘발성 유기화합물 비율이 다릅니다.”

태오는 작업대 구석의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었다. 선반 아래에서 짙은 갈색 유리병을 꺼내 에탄올과 희석 아세트산을 1 대 1로 섞은 중화액을 세면대에 풀었다.

“손을 넣으세요. 손톱 밑에 낀 붉은 안료까지 남김없이 문질러 씻어야 합니다.”

윤서린은 차가운 중화액에 손을 담갔다. 손가락 끝의 잔 상처에 용액이 닿자 짧게 숨을 들이켰지만 이를 악물고 손을 비볐다. 손톱 사이에 박혀 있던 붉은색 합성 수지 가루가 하얗게 풀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태오는 벽면의 차폐 환기 팬 스위치를 올렸다. 모터가 부드럽게 회전하며 지하 감정실 내부의 탁한 공기를 배출하고 갓 정화된 건조한 공기를 밀어 넣었다.

손을 씻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윤서린이 비로소 고개를 들어 실내를 둘러보았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매장에는 먼지 쌓인 싸구려 목기 항아리와 모조 도자기가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안쪽 작업 공간은 완전히 달랐다.

벽면 한쪽에는 자외선과 적외선 복합 투과등이 거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휴대용 XRF 형광 성분 분석기와 광학 현미경이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방화문 옆의 수납장 안쪽에는 두꺼운 오프라인 장부와 봉인 라벨이 일정한 간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여긴 평범한 전당포가 아니군요.”

윤서린이 낮게 말했다.

“물건의 출처를 지우거나 밝히는 곳입니다.”

태오는 품에서 꺼낸 방진포를 풀었다.

청동 불상이 차가운 금속 광택을 드러내며 작업대 중앙에 놓였다. 그 옆에 윤서린이 품고 온 작업대 사진 묶음과 경매장 출처 확인서 조각이 나란히 펼쳐졌다.

윤서린이 사진 한 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사진들을 경찰에 가져가면 제 결백을 입증할 수 있어요. 불상의 눈을 떼어내고 안에 좌표를 밀어 넣은 건 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관리자가 가져온 압인 도구와 제가 거부했던 서명란이 그대로 찍혀 있잖아요.”

태오는 청동 불상의 왼쪽 눈 안쪽 접착면을 현미경 렌즈 아래에 가져다 댔다. 모니터 화면에 푸른 녹과 검붉은 합성 에폭시가 엉겨 붙은 미세 단면이 80배로 확대되었다.

“경찰에 가면 당신 결백을 증명해 줄 거라고 믿습니까?”

“증거가 이렇게 분명한데요.”

“증거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증거를 쥐고 있는 권력이 원하는 말을 할 뿐이죠.”

태오는 핀셋 끝으로 확인서 조각의 하단을 짚었다.

“이 확인서의 압인을 자세히 보세요. 한빛-C-03 코드가 찍힌 위치는 당신의 서명란 위쪽이 아닙니다. 압인이 먼저 종이에 찍혀 있었고 그 위에 서명란 경계선이 덧인쇄된 서식입니다.”

윤서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당신이 서명을 했든 거부했든 처음부터 이 확인서의 최종 책임자는 보존 처리사인 당신 하나로 설계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경매장의 윗선은 빠져나가고 박물관에서 쫓겨난 이력이 있는 계약직 연구원에게 모든 위작과 불법 개조의 혐의를 덮어씌우는 서식입니다.”

태오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서늘했다.

“내가 정식 감정원에서 쫓겨날 때도 똑같은 서식과 똑같은 압인이 쓰였습니다. 서류를 들고 공권력을 찾아가는 순간 당신은 무죄를 주장하는 증인이 아니라 자수하러 온 주범이 됩니다.”

윤서린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과거 국립 박물관 계약직 시절 윗선이 감춘 도난 유물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고 쫓겨났던 기억이 빗물처럼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그럼 저는 평생 도망자로 살아야 한다는 건가요?”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태오가 코트 안주머니에서 은색 원통형 보존 캡슐을 꺼냈다.

캡슐의 뚜껑을 돌리자 얇은 방수 종이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B-17 불상의 왼쪽 눈 안쪽에서 꺼낸 바로 그 종이였다.

Q-41 / 3-7 / 22:40

그리고 그 아래에는 12개의 사각형 상자를 뜻하는 격자 표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태오는 얇은 아크릴 판 사이에 종이를 끼우고 자외선 램프의 각도를 조절했다. 파란빛이 투명한 섬유 틈새로 파고들자 종이 하단에 숨겨져 있던 미세한 요철 워터마크가 형광빛을 내며 떠올랐다.

CRANE-Q41 / BUSAN-NORTH / BLOCK-37

“남항 제3부두.”

태오가 읊조렸다.

“Q-41은 외국의 무기 거래 좌표가 아닙니다. 남항 동부 보세구역 제7 컨테이너 야드에 설치된 특수 하역 크레인의 관리 번호입니다.”

윤서린이 숨을 죽이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크레인 번호라고요?”

“3-7은 3번 야드 7열에 적재된 컨테이너 식별자입니다. 그리고 22:40은 세관 야간 순찰조의 교대 시간입니다. 오늘 밤 10시 40분 저 크레인 아래로 군용 화물 열두 상자가 밀반입됩니다.”

윤서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불상 안에 군용 무기 밀수 좌표를 숨겨서 경매로 팔아넘긴 거였군요. 이걸 그냥 둘 순 없어요. 광수대에 알려서 막아야 해요.”

“광수대에 넘기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태오가 반문했다.

“신유경 경감의 손에는 이미 당신 이름이 적힌 B-17 출처 확인서가 들어갔습니다. 지금 이 종이를 들고 찾아가면 경찰 윗선은 당신을 무기 밀수 조직의 말단 운반책으로 엮어 구속영장부터 칠 겁니다. 그리고 진짜 무기 컨테이너는 다른 부두로 조용히 빼돌려지겠죠.”

“그럼 이대로 불법 거래를 지켜보자는 건가요? 당신도 결국 물건값이나 챙기려는 장물아비 아닌가요?”

윤서린이 쏘아붙였다.

태오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물건값만 챙길 생각이었다면 경매장 금고 앞에 가짜 쪽지를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가짜 쪽지요?”

“그곳에 남긴 쪽지에는 시각을 23:10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윤서린의 눈이 커졌다.

“30분의 시차를 둔 겁니까?”

“30분이면 밀수 화물이 크레인에서 내려와 트럭에 실리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정보를 통째로 던져주면 사냥개는 주인이 던진 뼈다귀만 물고 끝납니다. 하지만 정보를 쪼개어 다른 시간에 던지면 사냥개와 밀수꾼이 서로를 물어뜯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지상 1층 출입문의 청동 풍경 벨이 날카롭게 울렸다.

딸랑거리는 금속음 뒤로 젖은 신발이 삐걱거리며 철제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소리가 이어졌다.

발소리는 망설임 없이 일정했고 무게가 실려 있었다.

태오는 망설이지 않고 윤서린의 팔을 잡아끌었다. 벽면의 가짜 민속품 수납장을 당겨 이중 벽 안쪽의 보존실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숨소리도 내지 마세요. 환기 닥트는 잠갔으니 냄새는 새어 나가지 않습니다.”

윤서린은 청동 불상과 방수 종이를 가슴에 품은 채 좁은 보존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수납장이 맞물려 닫히자 겉보기에는 완벽한 목재 진열장으로 돌아갔다.

태오는 낡은 갈색 앞치마를 두르고 바깥 매장으로 걸어 나갔다.

매장 문이 열리며 검은 레인코트를 입은 여자가 들어섰다.

광역수사대 특수장물 전담팀장 신유경이었다.

신유경의 머리칼 끝에서는 차가운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섀도 엔틱의 진열대 구석구석을 빠르게 훑은 뒤 작업대 앞에 서 있는 태오의 얼굴에 멎었다.

“비가 꽤 거세게 내리는데 문을 열어 두셨군요.”

태오는 작업대 위에 놓인 조선 후기 분청사기 접시의 모서리를 마른 헝겊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습도 때문에 도자기 균열에 낀 때가 잘 닦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신유경은 천천히 다가와 진열대 유리 위에 투명한 증거물 비닐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봉투 안에는 가장자리가 검게 그을린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태오가 B-17 경매장 금고 앞에 떨어뜨려 두었던 바로 그 가짜 메모였다.

Q-41 / 3-7 / 23:10

신유경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늘 아침 동부 시립 수장고 하역동 B-17을 덮쳤습니다. 고미술품을 미끼로 걸어 두고 뒤편에서는 출처 불명의 특수 화물 좌표를 거래하던 불법 경매장이더군요.”

“그렇습니까. 슬럼가에는 그런 유령 경매장이 서너 군데쯤 있습니다.”

“발뺌할 생각 마세요. 현장에서 수거된 장부와 확인서에서 흥미로운 이름이 나왔습니다.”

신유경이 품에서 또 다른 서류 사본을 꺼내 유리판 위에 펼쳤다.

“보존 처리사 윤서린. 전직 국립 박물관 보존실 연구원이었고 2년 전 유물 훼손 사건으로 파면당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B-17 하역 골목의 폐쇄회로 화면에 당신과 체격이 똑같은 사내가 젊은 여자와 함께 빠져나가는 장면이 잡혔습니다.”

태오는 헝겊을 내려놓고 증거물 봉투를 응시했다.

“윤서린이라는 보존사를 찾고 계신 겁니까?”

“그 여자가 오늘 경매 물건의 상태 확인서에 서명한 당사자입니다. 그 여자를 확보해야 이 불탄 쪽지의 좌표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태오는 나직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경감님 실망스럽군요. 광수대 특수팀장이 고작 위조된 미끼에 매달리고 계시다니.”

신유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위조된 미끼라고요?”

“그 쪽지에 적힌 시각을 다시 보십시오. 23시 10분이라고 되어 있죠?”

“그게 왜 문제죠?”

태오는 카운터 아래에서 해양수산청의 남항 조수 간만 표가 인쇄된 낡은 책자를 꺼내 펼쳤다.

“남항 제3부두의 조석 주기를 보십시오. 오늘 밤 23시는 간조가 시작되어 수심이 낮아지는 시간입니다. 1만 톤급 외항 화물선이 접안하려면 만조 수위가 유지되는 22시 30분에서 22시 50분 사이여야 합니다.”

신유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23시 10분은 화물이 도착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하역이 끝나고 빈 배가 출항 준비를 마쳤을 시간입니다. 현장에 남겨진 쪽지는 수사팀을 부두 밖에서 헛걸음치게 만들려는 조작된 시간입니다.”

신유경은 조수 간만 표의 숫자와 불탄 쪽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물건의 출처를 감정할 때는 재료만 보지 않고 그 물건이 이동한 항로와 바다의 시간까지 계산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확인서의 압인을 보십시오. C-03 직인이 찍힌 서식은 단순한 밀수꾼이 만든 게 아닙니다. 정계 비자금 세탁망에서 흔히 쓰는 사전 인쇄 양식입니다.”

태오는 신유경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경찰 윗선에서 윤서린이라는 말단 연구원 하나를 단독 주범으로 몰아 영장을 치라고 압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유경의 턱 근육이 굳어졌다. 실제로 본청 고위 간부가 전화로 윤서린의 신병을 신속히 확보해 사건을 단순 절도 및 위작 유통으로 종결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강태오 씨.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지 않는 것이 제 직업입니다. 다만 경감님이 진짜 몸통을 잡고 싶다면 가짜 쪽지의 시간에 속지 말고 남항 제3부두의 크레인을 확인해 보십시오.”

신유경은 입술을 짓씹으며 증거물 봉투를 집어넣었다.

“윤서린이 당신 근처에 나타나면 즉시 연락하세요. 숨겨 주면 범인 은닉으로 같이 수갑 찹니다.”

“제 가게는 깨진 도자기를 고치는 곳이지 사람을 숨기는 곳이 아닙니다.”

신유경은 의심 가득한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돌아섰다. 그녀의 거친 발소리가 철제 계단을 타고 올라가 지상 문 너머로 사라졌다.

밖에서 경찰 승합차의 시동 소리가 울리며 멀어져 갔다.

적막이 다시 섀도 엔틱을 감쌌다.

태오는 벽면으로 걸어가 수납장 측면의 숨겨진 걸쇠를 젖혔다.

벽이 열리며 어둠 속에서 윤서린이 걸어 나왔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지만 눈빛은 빗속을 뚫고 올 때와 달리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벽 너머로 오간 대화를 한마디도 빠짐없이 들은 얼굴이었다.

“왜 저를 넘기지 않았나요?”

윤서린이 물었다.

“경찰에 절 넘겼으면 당신은 의심을 완전히 벗고 거래 대가도 챙길 수 있었을 텐데요.”

태오는 작업대 위의 도자기 붓을 정리하며 말했다.

“물건을 다루는 사람은 많지만 손톱 밑에 안료를 묻혀 가며 진실을 지키려는 보존사는 드뭅니다. 당신 손이 깨끗하게 살아 있어야 내가 가진 장부와 유물들이 제값을 받습니다.”

태오는 서랍을 열어 묵직한 황동 열쇠 하나와 스위스제 정밀 보존용 메스 세트를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

“이곳 지하 보존실을 쓰세요. 당신 손으로 확인서의 C-03 압인을 찍은 자들의 가면을 벗길 때까지.”

윤서린은 황동 열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B-17 경매장의 원본 필름 케이스와 함께 손바닥만 한 가죽 노트를 꺼냈다.

“이건 B-17 보존실에 반입되었던 다음 출품 목록입니다.”

윤서린이 노트를 펼치며 손가락으로 특정 페이지를 짚었다.

“청동 불상 다음 순번으로 금속 불상 두 점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두 점의 상태 보고서에는 이미 한빛 문화재환수재단의 공식 소장품 목록 번호와 C-03 직인이 날인되어 있었어요. 재단 수장고에서 합법 유물로 등록된 물건들이 불법 경매장으로 흘러 들어와 자금 세탁용으로 쓰이고 있다는 결정적인 기록입니다.”

태오는 노트에 적힌 유물 관리 번호를 눈에 담았다. 김 의원과 한빛 재단의 문화재 세탁망이 B-17 경매장과 직접 맞닿아 있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연결 고리였다.

“좋아요. 거래를 맺겠습니다.”

윤서린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대신 하나만 약속하세요. 물건 속에 든 진실을 돈 때문에 왜곡하지 않겠다고.”

태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물건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덧칠하는 건 언제나 인간이죠.”

벽걸이시계의 바늘이 오전 1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항 제3부두 Q-41 크레인 아래로 열두 상자의 군용 화물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남은 시간은 열한 시간 남짓.

가짜 시간 23시 10분에 낚인 회수조와 경찰 그리고 진짜 시간 22시 40분을 쥔 섀도 엔틱의 지략전이 남항의 어두운 바다를 향해 시동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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