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돌아왔더니 아기 헌터? ― 성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입니다

6화: 불청객의 등장
쿵! 쿵! 쿵!
낡은 현관문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흔들렸다.
연희는 무진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방금 전까지 안도의 눈물을 흘리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도담 길드 연희 길드장! 안에 있는 것 다 알고 있으니 문 여시오!”
문밖의 목소리는 협의하러 온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들어와도 된다는 듯한 명령과 자신이 주인이라는 착각이 뒤섞여 있었다.
무진은 연희의 가슴에 귀를 댄 채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발소리는 셋이었다. 하나는 묵직했고 둘은 가벼웠다. 모두 마력 회로를 어느 정도 단련한 헌터였다. 하지만 이 좁은 집 안에서 연희를 위협할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태성 길드인가.’
연희가 가계부를 숨기던 순간부터 이런 방문은 예상하고 있었다. 도담 길드가 돈이 없다는 사실은 마포의 헌터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달랐다.
월세도 수리비도 갚았다. 연희의 계좌에는 당분간 길드를 버틸 돈이 있었다.
문제는 문밖의 남자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연희는 무진을 침대에 내려놓으려다 멈췄다.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는 동안 혼자 두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진아. 엄마가 금방 다녀올게.”
그녀는 무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작은 방의 문을 반쯤 닫았다. 그리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무진은 침대 난간을 붙잡았다. 짧은 손가락으로는 문고리까지 닿을 수 없었다. 대신 고개를 돌리면 거실과 현관의 일부가 보였다.
철컥.
잠금장치가 풀렸다.
연희가 문을 여는 순간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발부터 들이밀었다. 험상궂은 얼굴에 번들거리는 이마와 두꺼운 금테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태성 길드의 문장이 찍힌 조끼를 입은 헌터 둘이 따라왔다.
“아침부터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군요.”
남자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웃었다.
“태성 길드 이사 박태식입니다. 도담 길드장과 좋은 협의를 하러 왔습니다.”
“협의라면 문 앞에서 말씀하시죠.”
연희는 몸으로 현관을 막았다. 무진이 있는 방이 보이지 않게 한 걸음 옆으로 섰다.
박태식은 그녀의 어깨 너머로 낡은 집 안을 훑었다.
“좋은 협의는 안에서 하는 법이지요. 설마 손님을 세워 두시겠습니까?”
“손님은 초대했을 때 들어오는 겁니다.”
연희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박태식은 그 손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여전히 성격이 곧으시군. 그래서 장사를 못 하는 겁니다.”
그는 연희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수행 헌터들도 양옆으로 비켜서며 신발을 벗지 않은 채 거실을 차지했다.
무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남의 집에 들어오면서 예의도 없군.’
박태식은 두툼한 서류철을 식탁 위에 던졌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도담 길드가 맡은 마포 외곽 E급 게이트 관할권을 태성 길드에 넘기십시오.”
연희의 눈썹이 꿈틀했다.
“관할권 조정은 협회 승인이 필요한 일입니다.”
“협회에는 이미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작은 길드가 관리하는 것보다 저희가 맡는 편이 시민에게도 이롭다는 의견서지요.”
“저희가 관리하지 못했다는 증거는요?”
“증거가 꼭 필요합니까?”
박태식은 서류철을 펼쳤다.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 몇 장이 식탁 위로 미끄러졌다.
“지난 공략에서 통제선이 파손됐고 보수 비용이 발생했습니다. 길드 등록 유지비도 밀려 있었지요. 사무실 월세까지 연체 중이고.”
“그 채무는 모두 처리됐습니다.”
연희의 목소리가 조금 단단해졌다.
박태식의 미소가 멈췄다.
“처리됐다고요?”
“오늘 아침에 전부 입금됐습니다. 공인 확인서도 있습니다.”
연희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 한국헌터복지재단의 확인서가 떠 있었다.
박태식은 그것을 받아 보지도 않고 코웃음을 쳤다.
“익명 후원금 한 번 들어왔다고 사정이 달라진 줄 아십니까? 출처도 모르는 돈을 믿고 길드를 운영하겠다는 겁니까?”
“합법적인 기부금입니다. 태성 길드에서 문제를 삼을 이유가 없어요.”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미 해당 구역을 가져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길드장님이 순순히 서명하면 지금 빚은 더 묻지 않겠습니다.”
“빚이 없다니까요.”
“그럼 후원금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 드릴까요?”
연희의 표정이 굳었다.
박태식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출처도 모르는 거액을 받은 길드는 반드시 조사를 받습니다. 보호 중인 아이의 신원 문제가 나오면 곤란해질 수도 있고요.”
무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직 이름도 제대로 등록하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건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라도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협회가 아이를 별도 보호 시설로 보내는 경우도 있지요.”
연희가 무진이 있는 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박태식의 시선도 그 방향을 따라갔다.
“아이를 협박에 끌어들이지 마세요.”
“협박이라니요. 충고입니다.”
“나가세요.”
연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돈이 없을 때도 우리는 게이트를 지켰습니다. 태성 길드가 사람을 더 많이 데려온다고 해서 구역을 빼앗을 권리가 생기지는 않아요.”
박태식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서류를 천천히 접었다.
“강한 척하지 마십시오. B급 힐러 하나와 하급 헌터 둘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남의 집에 난입해 아기를 겁주지는 않습니다.”
“그 아기 하나 때문에 길드를 지키겠다는 겁니까?”
박태식이 비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서류의 가장자리를 잡아챘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좁은 거실에 날카롭게 울렸다.
“그럼 이 약점부터 치워 드리지요.”
연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손대지 마세요.”
그녀가 서류를 빼앗으려는 순간 수행 헌터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마력으로 강화된 팔이 연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진은 침대 난간을 꽉 쥐었다. 손톱이 작은 플라스틱을 파고들었고 가슴 안쪽의 미약한 마력 핵이 거칠게 뛰었다.
‘감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숨만 새어 나왔다. 성좌 채널을 열면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무진은 자신의 선택으로 개입을 막아 왔다. 남이 대신 싸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희가 자신 때문에 위협받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지키는 것과 대신 싸우게 하는 것은 다르다.’
무진은 침대 위에서 몸을 비틀었다. 발끝이 매트리스를 밀었고 작은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연희가 놀라 소리쳤다.
“무진아! 움직이지 마!”
무진은 멈추지 않았다. 팔꿈치를 바닥으로 내리고 몸통을 끌어당겼다. 아직 기어가는 동작은 엉성했다. 한 번 밀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박태식이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어 나오려고 하는군요. 참 대단한—”
“응…….”
무진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연희를 바라보았다.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화를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울리지 마라.’
무진은 자신의 몸에 명령했다.
‘이 사람을 울리지 마.’
가슴속 마력 핵이 작게 수축했다. 그 안에 남아 있던 힘이 목구멍으로 밀려 올라왔다.
“응애!”
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방 안의 공기가 먼저 반응했다.
파직.
박태식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 화면이 검게 꺼졌다. 식탁 위에 놓인 협회 인증 단말기도 동시에 붉은 오류 문자를 토해 냈다.
서류의 붉은 도장이 잉크가 번진 것처럼 일그러졌다. 수행 헌터의 팔을 감싸던 마력도 한순간 흔들렸다.
“뭐야?”
헌터가 팔을 움켜쥐었다.
박태식은 무진을 바라보았다. 아기는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채널 창이 시야 한구석에 떠올랐다.
[감정 반응을 감지했습니다.]
[아기의 방어 의사가 응애 마력에 반영되었습니다.]
[외부 대상에 대한 직접 공격은 제한됩니다.]
[보호 대상: 연희, 도담 길드의 거처]
무진은 숨을 고르며 창을 읽었다.
‘직접 공격은 제한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힘은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칼이 아니었다. 자신의 영역을 넘지 말라고 알리는 방패에 가까웠다.
성좌들의 채팅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성좌 ‘장미의 여왕’: 누가 우리 아가를 울리려고 했어?]
[성좌 ‘은하의 제왕’: 감히 아가의 보금자리에 발을 들이다니! 허락을 구하고 무릎을 꿇어라!]
[성좌 ‘침묵의 학자’: 방어 반응 확인. 추가 후원은 아이의 의사를 먼저 받아야 한다.]
연희는 무진을 안아 올렸다. 떨리는 품이었지만 팔에는 힘이 있었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무진은 연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천을 조금 구기는 데 그쳤다.
그래도 연희는 그 작은 손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박태식은 꺼진 휴대전화를 몇 번 흔들었다. 화면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이건… 장비 오작동입니다. 낡은 집이라 전파가 불안정한 모양이군요.”
그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졌다.
연희는 무진을 품에 안은 채 현관을 가리켰다.
“서류를 두고 가세요. 협회와 법률 자문을 거쳐 정식으로 답하겠습니다.”
“답변을 기다릴 시간은 하루뿐입니다.”
박태식은 찢어진 각서 조각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내일 오전까지 관할권 포기 각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태성 길드가 직접 게이트를 접수합니다. 그 과정에서 통제선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협박을 녹음해 두었습니다.”
연희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박태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직 녹음이 남아 있을지는 확인해 보시죠.”
그는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며 돌아섰다. 그러나 현관을 나서기 직전 무진과 눈이 마주치자 걸음이 잠깐 멈췄다.
아기의 눈은 울다 지친 눈이 아니었다. 오래 살아온 사람처럼 차갑고 깊었다.
박태식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쾅.
문이 닫혔다.
연희는 잠금장치를 두 번 확인한 뒤에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진을 소파에 눕히지 않고 그대로 품에 안았다.
“무진아. 무서웠지?”
“뺙….”
“엄마가 미안해. 괜히 이런 사람들까지 네 앞에 오게 해서.”
연희는 무진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손끝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지킬게.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다른 곳으로 끌려가게 두지 않을 거야.”
무진은 연희의 목에 작은 팔을 둘렀다. 제대로 안기기에는 힘이 부족했지만 의사는 분명히 전해졌다.
그 순간 채널 창이 조용히 변했다.
[보호 대상과의 유대가 확인되었습니다.]
[전투 보구 후원 후보가 해금됩니다.]
[성좌 ‘은하의 제왕’이 ‘파멸의 뇌전 딸랑이’를 후원하려 합니다.]
[성좌 ‘장미의 여왕’: 우리 아가가 직접 고르게 해 줘!]
[성좌 ‘침묵의 학자’: 사용 전 위험도와 범위를 확인할 것을 권고한다.]
무진의 시선이 창 중앙에 멈췄다.
검은 손잡이와 푸른 보석이 박힌 딸랑이 그림이 떠 있었다. 설명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주의: 유아의 손에 맞춰 봉인된 상태입니다. 흔들 경우 지정 범위에 뇌전이 낙하합니다.]
무진은 조용히 손을 뻗었다.
아직 연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무진의 눈에 맺힌 빛을 눈물로 착각하고 품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무진의 손끝이 승인 버튼 바로 앞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내가 고른다.’
작은 방 안에 푸른 번개가 한 줄기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