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자 알레르기 전문의의 응급실

2화: 붉은 병과 검은 장갑
강현우는 빨간 포션병 세 개를 같은 줄에 놓지 않았다.
병 라벨은 같았지만 제조 번호가 달랐다. 두 병은 레이드에서 사용됐고, 한 병은 포장을 뜯지 않은 채 가방에 남아 있었다. 장갑은 같은 모델이라도 손상 정도와 제조 로트가 달랐다. 현우는 바코드를 읽고, 양민서는 환자별 노출표를 다시 펼쳤다.
“성분이 같은데 로트가 다르다고 문제가 생깁니까?” 레이드 의료반장 문가람이 물었다.
“이론적으로는 첨가물이나 보관 상태가 다를 수 있어요.” 현우가 말했다. “현재 성분표로는 차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포션 탓은 아니군요.”
“아직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민서가 답했다. “한 분은 포션 전에 증상이 시작됐고, 다른 분은 복용 뒤에 피부 반응이 나타났어요. 순서와 증상이 다릅니다.”
성준은 산소를 떼고도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목의 부종은 줄었지만, 목소리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진아는 모니터 수치를 확인하고 응급 처치 후 반응을 시간대별로 기록했다. 유리는 발진이 더 번지지 않았고, 태경은 어지럼이 가라앉았지만 손목 안쪽은 여전히 붉었다.
민서는 각자 진료실로 옮겨 혼자 질문했다. 팀원들이 서로의 답을 듣고 기억을 맞추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성준은 장갑이 찢어진 뒤 손바닥이 따가웠다고 했다. 포션을 마시기 전부터 그랬지만, 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왜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까?”
“장갑이 찢어지면 다시 지급받아야 해요. 이전에도 장비 손상 보고가 많은 사람은 계약 평가가 나빠졌어요.”
“그 평가가 실제로 있었나요?”
“동료가 그 이유로 다음 팀에서 빠졌어요.”
성준은 자기 증상을 숨긴 일이 팀원에게 피해를 줬을까 걱정했다. 민서는 그가 보고를 미룬 사실을 숨기지 않았지만, 처벌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다. 피부 반응이 시작된 시각과 장갑 손상 부위를 기록하고, 포션 복용 시각을 대조했다.
유리는 젤리를 먹지 않았지만 같은 상자를 열 때 포장을 잡았다. 그녀는 포장 가장자리에 검은 가루가 묻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장갑을 벗고 물을 마셨고, 손가락 끝에 가루가 닿았을 수 있었다. 피부 반응은 그 뒤 20분쯤 지나 시작됐다.
“확실히 묻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적겠습니다. 포장에 가루가 보였다는 기억과 접촉 여부를 분리할게요.”
태경은 젤리를 먹은 뒤 입안이 얼얼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갑 안쪽에서 땀이 차고, 손목에 닿는 부분이 따끔거렸다고도 했다. 그의 증상은 여러 노출과 겹쳐 있었다.
“검은 가루가 포션에서도 나왔습니까?” 현우가 물었다.
태경은 고개를 저었다. 병은 멀쩡했다고 했다. 그는 빈 병을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어 왔다. 민서는 그 판단을 칭찬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응급 증상이 나타나면 물건을 챙기러 돌아가지 말고 바로 도움을 요청하세요.”
태경은 시선을 내렸다. “저는 팀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혼자 참으면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현우는 장갑 제조사에서 보낸 성분표를 받아 보았다. 표준 제품은 탄성 코팅제, 방수 첨가물, 마찰 방지 분말로 구성됐다. 검은 가루는 성분표에 없었다. 그는 남은 장갑의 손상된 부분을 잘라 시료로 보내자고 했다. 환자에게서 떼어 낸 가루도 별도로 보관했다.
“같은 시료로 묶으면 안 됩니다.” 민서가 말했다. “환자 피부에서 나온 것과 장갑에서 나온 것을 분리해요.”
“오염 경로가 다를 수 있죠.” 현우가 동의했다.
각 시료에는 채취 위치와 시간, 담당자 이름을 적었다. 진아는 환자의 피부에 남은 가루를 면봉으로 채취하기 전 동의를 확인했다. 성준은 오른손 손등만 허락했고, 태경은 손목 안쪽도 포함하기로 했다. 유리는 시료 채취를 원하지 않았다. 민서는 그 선택을 존중했다.
레이드 의료반 가람은 길드에 당일 보급품을 회수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길드 보급 창고에는 같은 장갑이 200켤레 남아 있었고, 다음 출정이 하루 뒤였다. 가람은 장갑 사용을 전면 금지하면 대체품이 부족하다고 했다.
“로트가 다른 것도 다 회수해야 합니까?”
“같은 제품명만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사용을 멈추고, 로트와 보관 상태를 확인하세요.” 민서가 답했다.
“그럼 출정이 취소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환자 셋의 증상을 무시하고 계속 쓰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가람은 보급 창고에 대체 장갑을 요청했다. 다른 제조사의 모델은 손목 길이가 짧고, 보호 등급이 낮았다. 현우는 의료진이 직접 시험할 수는 없지만, 장비 담당자가 규격과 마찰 테스트 결과를 확인하도록 연결했다. 가람은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해당 레이드 팀을 출정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팀원 한 명이 전화로 항의했다. “증상이 없는 사람까지 빠지는 건 부당합니다.”
가람은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은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야. 어느 물품이 위험한지 모르니까 확인할 때까지 멈추는 거야.”
그는 다음 계약 평가에 불이익이 없도록 길드에 문서로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가람은 팀원의 이름을 의료진에게 넘기지 않고, 물품 번호와 사용 시간만 전달했다.
검은 장갑 시료의 1차 분석에서 금속성 마나 입자와 검은색 보강 분말이 함께 검출됐다. 포션병에서는 같은 입자가 나오지 않았다. 젤리 포장에서는 소량이 확인됐지만, 내용물에서는 기준 이하로 나왔다. 분석 결과는 검은 코팅을 의심하게 했지만,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므로 그것이 공통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성준 씨는 장갑 손상 뒤 증상이 시작됐어요.” 현우가 말했다.
“그분은 방호복 안쪽에 던전 먼지도 묻었습니다.” 민서가 지적했다. “태경 씨는 장갑 안쪽 접촉이 있었고, 유리 씨는 포장 접촉 가능성이 있지만 젤리는 안 먹었어요.”
“그러면 더 넓게 조사해야겠네요.”
민서는 환자들에게 중간 결과를 설명했다. 검은 장갑 코팅에서 예상하지 못한 물질이 나왔고, 포션에서는 같은 물질이 나오지 않았다. 젤리 포장에서 소량이 확인됐지만 실제 섭취와 증상의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가 검사를 강요하지 않고, 회피하고 싶은 물품을 각자 정하도록 했다.
설명 도중 유리가 목을 긁었다. 숨은 괜찮았지만, 귀 뒤쪽에 새 발진이 올라왔다. 진아가 바로 활력 징후를 확인했고, 민서는 기도 부종이나 어지럼이 동반되는지 물었다. 유리는 가려움만 있고 입술이나 혀는 붓지 않았다고 했다. 민서는 응급 처치 계획을 조정하고 관찰 시간을 연장했다.
“검은 장갑 결과 때문인가요?” 유리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 증상만으로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 접촉한 물건이나 약이 있었는지도 확인할게요.”
유리는 병실에서 병원 담요를 덮고 있었고, 손에는 비닐 장갑을 끼지 않았다. 진아는 접촉 이력을 다시 묻고, 병동에서 사용한 세정제도 기록했다. 새 발진이 세정제에 닿은 부위에만 생긴 건 아니었다. 증상은 가라앉았지만, 장갑의 검사 결과 하나로 설명되지 않았다.
민서는 먼저 위험 반응이 다시 심해지는지 지켜보고, 검사가 필요한 부분은 알레르기 전문 진료 때 이어 가자고 했다. 유리는 당장 원인을 알고 싶어 했지만, 응급실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검사와 그렇지 않은 검사를 구분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준은 해당 장갑 로트의 사용을 피하겠다고 했다. 유리는 젤리는 먹지 않되, 포장을 만질 때 장갑을 끼겠다고 했다. 태경은 장갑과 젤리 둘 다 당분간 피하겠다고 했다. 세 사람은 같은 치료 계획을 받지 않았다.
“이거 한 번 겪으면 다음 레이드 때 뭘 믿어야 하죠?” 태경이 물었다.
“확인된 정보와 아직 모르는 정보를 나눠서 보급표에 적겠습니다. 전부 안전하다고 약속할 수는 없지만, 증상을 숨기지 않고 더 빨리 대처할 수는 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팀에서 자신이 약해 보일까 두려웠지만, 위험 신호를 말하는 게 동료를 지키는 일일 수도 있었다.
가람은 팀원들에게 발진이 없는 사람도 증상이 생기면 즉시 알리라고 공지했다. 하지만 모든 팀원이 불필요하게 응급실에 몰리지 않도록, 숨이 차거나 얼굴·입술이 붓고 어지러운 경우는 즉시 응급 호출, 가벼운 가려움은 팀 의료반과 상담 후 진료를 받도록 구분했다. 민서는 그 안내가 환자를 스스로 진단하게 하지 않도록, 위험 신호가 있으면 기다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제가 없는 사이에 증상이 시작되면요?” 가람이 물었다.
“응급 처치 계획은 개인별로 의료진과 세워야 합니다. 팀 전체에 같은 약을 나눠 주지 마세요.”
가람은 팀 의무 담당자에게 환자별 계획을 보관할 잠금 파일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름을 보급 담당자에게 전달하지 않고도, 필요한 대체 장비와 식품만 알릴 수 있도록 코드표를 쓰기로 했다. 민서는 각 환자가 공개 범위에 동의한 뒤에만 계획을 공유하라고 요청했다.
현우는 제조사에 해당 로트의 첨가물 변경 이력을 요청했다. 응답은 다음 날 온다고 했다. 가람은 보급 창고에서 같은 장갑을 잠정 격리하고, 대체 장비를 확보했다. 진아는 환자 세 명의 증상 변화와 치료 반응을 각각 기록했다.
밤 교대 전에, 민서는 장갑 코팅 외부에서 나온 분말의 색을 다시 살폈다. 검은 가루 안에는 아주 작은 붉은 입자가 섞여 있었다. 포션병의 뚜껑 안쪽에도 같은 붉은 색이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