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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살수의 귀농 일기5화

천하제일 살수의 귀농 일기

천하제일 살수의 귀농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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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회토 속의 암호패

연화의 손톱 끝에 검은 금속이 걸렸다.

그녀가 흙을 털어 내려고 손가락에 힘을 주자 도겸이 손목을 잡았다.

“맨손으로 만지지 마시오.”

“어제부터 이걸 숨긴 건 당신이죠?”

“숨긴 게 아니라 확인하지 않은 거요.”

“확인하지 않은 물건을 왜 그렇게 경계해요?”

새벽 햇빛이 회토 더미 위의 젖은 낙엽을 비췄다. 흙 사이로 드러난 물건은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납작한 판이었다.

도겸은 대나무 쐐기로 판의 양쪽 흙을 조금씩 걷어 냈다. 금속이 흙에 붙은 것이 아니라 회토 더미 안쪽에 억지로 밀어 넣은 흔적이 드러났다.

“누군가 일부러 묻었어요.”

“그럴 가능성이 크오.”

“밤손님이 찾던 것도 이거고요?”

“아직은 모르오.”

판이 헝겊 위로 떨어졌다.

검은빛이 도는 흑철이었다. 한쪽 모서리가 깨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짧은 선 세 개가 비스듬히 새겨져 있었다. 끝에는 실을 끼울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도겸의 눈이 잠깐 멎었다.

혈우각은 연락 순서를 표시할 때 작은 철패를 썼다. 세 줄은 수거를 기다리는 물건이 있다는 뜻에 가까웠다. 깨진 모서리는 다른 조각과 맞물리거나 누군가 억지로 떼어 냈다는 흔적이었다.

그는 기억을 곧바로 밀어냈다.

“운반 표식처럼 보이오.”

“광산에서 물건을 옮길 때 쓰는 물건일 수 있다는 뜻이죠?”

“그렇소.”

연화는 판을 만지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홈 안쪽에는 어제 물길에서 본 것과 비슷한 회색 가루가 끼어 있었다.

“이 가루도 같은 것 같아요.”

“냄새가 같소.”

“당신도 알고 있었군요.”

“생각한 것과 아는 것은 다르오.”

연화는 망태기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꺼내 가루를 건드렸다. 가루가 묻은 끝은 금세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촌장님께 가져가야 해요.”

“이걸 보여 주면 누군가 폐광으로 몰려갈 거요.”

“가만히 두면 누군가 밭으로 내려오겠죠.”

“그래서 먼저 어디서 왔는지 확인해야 하오.”

연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회토 더미와 약초밭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오늘 안에 확인해요. 혼자 가지는 말고요.”

도겸은 판을 헝겊으로 감싸 연화에게 내밀었다.

“당신이 보관하시오.”

“제가요?”

“내가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 내가 찾았다는 걸 알 수 있소.”

“제가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고요?”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오. 당신은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소.”

연화는 헝겊을 두 겹으로 접었다.

“당신은 계속 사람을 시험하네요.”

“밭도 흙을 시험해야 자라오.”

“사람은 밭이 아니에요.”

“알고 있소.”

그 대답이 너무 빨라 연화는 더 묻지 않았다.


도겸은 회토 더미 주위를 돌았다.

어젯밤 자객이 남긴 발자국 위에 새 자국이 두 줄 찍혀 있었다. 발끝보다 뒤꿈치가 깊게 눌린 흔적이었다. 누군가 새벽에 돌아와 더미를 확인하고 간 모양이었다.

연화가 자국을 내려다봤다.

“밤손님이 다시 온 걸까요?”

“걸음이 다르오.”

“발자국만 보고 사람을 구별해요?”

“신발 밑창은 거짓말을 덜하오.”

두 사람은 자국을 따라 밭 아래로 내려갔다. 도겸은 바위와 마른 풀만 골라 디뎠다. 연화는 물이 고인 자리를 살피며 뒤를 따랐다.

서쪽 임시 둑 아래에 기름종이 조각이 있었다. 종이는 젖어 있었고 안쪽에 검은 가루가 얇게 눌어붙어 있었다.

“이걸 물에 풀어 넣은 건가요?”

“모르오. 가루를 담았던 주머니였을 가능성이 있소.”

“누군가 여기서 뭔가를 다룬 건 확실하네요.”

연화가 기름종이를 뒤집자 잿빛 얼룩 세 줄이 드러났다. 암호패의 선과 같은 간격이었다.

도겸은 물길 아래의 얕은 웅덩이로 시선을 옮겼다. 바닥의 진흙이 주변보다 검게 눌려 있었다.

연화가 천 조각을 꺼내자 도겸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내가 하겠소.”

“약초꾼이 물을 만지는 게 일인데요.”

“검은 가루가 묻으면 약초를 만질 수 없소.”

도겸은 손도끼 끝에 천을 감아 웅덩이 가장자리를 눌렀다. 물은 맑아 보였지만 천이 닿은 곳에 푸르스름한 얼룩이 번졌다.

연화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이건 밭으로 흘러가면 안 돼요.”

“그래서 옆으로 빼야 하오.”

연화가 마른 풀을 걷자 삼 줄 하나가 드러났다. 세 가닥을 꼬아 만든 끈에 검은 나무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나무에도 짧은 선 세 개가 새겨져 있었다.

“암호패와 같은 표식이에요.”

“그렇소.”

“그럼 광산 일꾼의 표시가 아니잖아요.”

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 줄의 간격과 흑철의 깨진 모서리는 그가 너무 잘 아는 규칙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 옛 연락망을 빌려 물길의 수거 지점을 표시하고 있었다.

연화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은 이 표식이 뭔지 알아요.”

“비슷한 표식을 본 적은 있소.”

“어디서요?”

“먼 곳에서.”

“그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거예요.”

도겸은 서쪽 능선을 바라봤다. 바람이 멎었는데도 폐광 아래의 억새가 한 줄 눕고 있었다.

“이미 왔소.”


돌 하나가 웅덩이 건너편에서 튀었다.

도겸은 연화를 낮은 바위 뒤로 밀어 넣고 물길 옆 돌둑으로 몸을 옮겼다.

“움직이지 마시오.”

“사람이 있어요?”

“한 명.”

폐광 쪽에서 사내 하나가 내려왔다. 낡은 작업복을 입었지만 신발은 새것이었다. 밑창의 못이 흙을 깊게 파고들었다.

사내는 웅덩이를 보며 웃었다.

“길을 잘못 들었소. 이 아래에 마을로 가는 길이 있다기에.”

“마을 길은 반대편이오.”

“농부 양반이 길을 잘 아는 모양이군.”

사내의 시선이 도겸의 손도끼와 연화의 망태기로 움직였다. 흙에 감싼 헝겊 꾸러미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그 망태기에 뭐가 들었소?”

“약초요.”

연화가 짧게 대답했다.

“검은 가루가 묻은 약초도 있나?”

말이 끝나기 전에 사내가 발을 굴렀다. 흙 속에서 가느다란 줄이 튀어 올라 연화의 발목을 향했다.

도겸은 손도끼 자루로 줄을 쳐냈다. 사내는 그 틈에 웅덩이로 몸을 던졌다.

그의 손이 헝겊 꾸러미를 향했다.

도겸은 늦게 움직이는 척하다가 고랑 가장자리를 밟았다. 무영보의 첫 걸음이 진흙 위에서 미끄러지듯 이어졌다. 사내가 돌아보는 순간 도겸의 손가락이 손목을 잡았다.

“놓으시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군.”

사내가 팔을 비틀었다. 힘은 강했지만 어깨가 먼저 움직였다. 도겸은 손목을 꺾지 않고 팔꿈치 아래의 근육만 눌렀다.

사내의 손에서 짧은 나무패가 떨어졌다.

그는 품을 더듬어 작은 주머니를 웅덩이에 던졌다. 회색 가루가 물 위로 퍼졌다.

연화가 기침하며 얼굴을 돌렸다.

사내는 그 틈에 팔을 빼고 비탈로 뛰었다. 도겸이 따라가려 하자 연화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물부터 막아야 해요.”

도겸은 비탈 아래를 바라봤다. 사내는 억새 뒤로 사라지고 있었다. 검은 가루가 섞인 물은 임시 둑을 넘어 밭으로 흐르려 했다.

도겸은 사내 대신 물길을 택했다.

그는 돌을 옮겨 웅덩이 아래를 막았다. 연화는 삽으로 옆으로 빠지는 홈을 만들었다. 회색 물이 약초밭과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조금만 더요.”

“흙이 무너져요.”

“그러니까 지금 눌러요.”

도겸은 손바닥으로 둑을 눌렀다. 차가운 물이 손목까지 차올랐다. 피부가 따끔거렸지만 그는 손을 빼지 않았다.

연화가 마지막 자갈을 홈 가장자리에 끼웠다. 물의 흐름이 서쪽 마른 골로 꺾였다.

도겸은 그제야 손을 거뒀다.

“쫓아갔으면 잡았겠죠?”

“아마도.”

“그런데 왜 안 갔어요?”

“밭으로 물이 가고 있었소.”

연화의 시선이 도겸의 젖은 손과 비탈 아래를 오갔다.

도겸은 웅덩이 옆에 떨어진 나무패를 주웠다. 검은 나무에 붉은 실이 한 바퀴 감겨 있었다. 실 끝의 매듭은 밤에 자객의 칼 손잡이에서 보았던 것과 같았다.


밭으로 돌아온 뒤 연화는 암호패를 빛에 비춰 보았다.

깨진 모서리 안쪽에 얇은 선 하나가 더 있었다. 금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새긴 표시였다.

도겸의 손끝이 굳었다.

수거 대기 패의 안쪽 선은 혈우각 각주에게만 전달되는 직속 연락 표시였다. 도겸이 각주였을 때도 몇 번밖에 쓰지 않았던 표식이었다.

지금 그 표식이 깨진 흑철에 남아 있었다.

“뭐가 보여요?”

“오래된 규칙을 따라 만든 물건이오.”

“아까 그 사내가 그 규칙을 안다는 뜻이죠?”

“표식을 쓰는 법은 알고 있었소.”

“그럼 마을에 알려야 해요.”

“증거를 들고 가면 사람들이 폐광으로 몰려갈 거요. 검은 물을 직접 확인하겠다며 손을 댈 수도 있소.”

“그럼 뭘 먼저 하죠?”

“위험한 물길을 표시하고 우물과 밭을 분리해야 하오. 그다음 촌장에게 알리겠소.”

“암호패는요?”

“내가 가지고 있겠소.”

“처음에는 저더러 보관하라면서요.”

“상대가 이미 당신이 가진 걸 노렸소.”

“당신이 가지고 있으면 당신을 노릴 텐데요.”

“내가 지키기 쉬운 쪽이오.”

연화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

“혼자 지키겠다는 뜻처럼 들리네요.”

“당신은 물길을 보고 나는 사람을 보겠소.”

“사람을 보는 사람이 사내를 놓쳤잖아요.”

“당신이 물을 먼저 말렸기 때문이오.”

“그럼 다음에도 제가 물을 말릴게요.”

도겸은 연화의 얼굴을 바라봤다. 겁먹은 얼굴이었지만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위험하오.”

“알아요. 그래서 같이 가자는 거예요.”

“폐광 안으로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요.”

“오늘은 밭과 마을 물길만 정리해요.”

연화는 삽을 들고 첫 번째 단으로 내려갔다. 도겸은 그 뒤를 따라가며 그녀의 발밑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돌을 먼저 치웠다.

해가 서쪽 봉우리 위에 걸릴 무렵 두 사람은 물길 세 곳에 흰 천 조각을 묶었다. 천이 검게 변하면 가까이 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연화는 촌장에게 전할 말을 짧게 적었다. 폐광의 이름과 사람의 정체는 적지 않았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살피던 도겸은 북쪽 말뚝에서 붉은 실을 발견했다.

어젯밤 자객의 칼에 묶어 보낸 것과 같은 색이었다. 이번 실에는 작은 검은 나무 조각이 함께 매달려 있었다. 나무 조각에는 세 줄이 새겨져 있었다.

도겸은 그것을 떼어 손바닥에 올렸다. 서쪽 폐광에서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암호패를 잃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슨 소리예요?”

연화가 밭 아래에서 물었다.

도겸은 검은 나무패를 소매 속에 넣었다.

“내일 물길을 더 확인해야겠소.”

“내일도 같이 가요.”

“해가 뜨기 전에 움직일 거요.”

“그럼 더 일찍 오면 되죠.”

연화는 흰 천을 묶은 말뚝을 다시 눌러 박았다.

도겸은 서쪽 어둠을 바라봤다. 밭의 흙은 젖은 손바닥 아래에서 살아 있었다. 그 위로 오래된 암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도망칠 곳을 찾는 대신 그 물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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