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상태창이 너무 많음

6화: 격리 대신 현장 검증
임시 치료소의 천막 안에는 젖은 돌 냄새와 약초의 쓴 향이 뒤섞여 있었다.
가렐은 침상에 앉아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손가락은 멀쩡히 움직였지만 그는 손을 볼 때마다 한 번씩 눈을 감았다.
“이게 오른손입니까?”
세라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눈으로 본 건 아닙니다. 손가락을 구부렸을 때 감각이 돌아오는 순서가 다르지 않아서요.”
세라는 가렐의 손목에 두 손가락을 대고 백색 마나를 흘렸다. 이안은 그 빛이 검은 모래의 잔향을 밀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록지를 펼쳤다.
“통증은 느낍니까?”
“느낍니다. 다만 아픈 곳보다 소리가 먼저 옵니다.”
“무슨 소리가요?”
“발소리입니다.”
가렐의 시선이 천막 입구로 향했다. 밖에는 구조된 작업자 세 명이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토른은 검은 모래가 묻은 삽과 로프를 따로 묶어 봉인지를 붙이는 중이었다.
“문 안에 있던 것은 네 사람의 발소리를 따라 했습니다.”
가렐이 낮게 말했다.
“그런데 문이 닫힌 뒤에는 아무도 걷지 않았어요. 대신 안쪽에서 한 번 두드렸습니다.”
이안의 펜촉이 종이를 찍었다.
“한 번뿐입니까?”
“한 번은 분명했습니다. 그 뒤에는 귀가 아니라 뼈가 들은 것처럼 울렸습니다.”
세라의 손등에 남은 흰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문양의 절반은 흐려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안은 불타는 평원을 떠올렸다. 흰 망토의 여자가 뻗은 손과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진 사람의 감촉이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내가 늦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생각처럼 울렸다. 이안은 침상 옆 기록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안.”
세라가 그를 불렀다.
“기억이 겹쳤습니까?”
“잠깐 겹쳤습니다. 제 기억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영향을 받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이안은 장갑을 고쳐 끼웠다.
“그래서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그때 천막 바깥에서 말굽 소리가 멈췄다. 토른이 고개를 들었다.
“베른의 전령입니다.”
붉은 밀랍이 찍힌 명령판이 들어왔다.
“이안 베르크와 세라 로웬은 즉시 마도탑 보고실로 오라는 명령입니다. 구조된 작업자들의 기록과 증거품도 함께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토른이 판을 확인했다.
“격리 심의가 먼저랍니다.”
소매 안쪽의 검은 봉인선이 뜨거워졌다.
―가면 안 된다.
바르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보고하지 않으면 더 빨리 의심받는다.’
―의심은 이미 끝났다.
이안은 전령에게 말했다.
“가겠습니다.”
토른이 미간을 좁혔다.
“도망쳤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이유입니다.”
이안은 가렐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제가 반응을 일으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세라가 일어섰다.
“가렐과 다른 작업자들은 봉인 치료실로 옮겨 주세요. 제가 확인한 기록을 먼저 남기겠습니다.”
“제가 생존자와 증거품을 호송하겠습니다.” 토른이 말했다.
이안은 천막을 나서기 전에 가렐에게 물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무엇을 먼저 확인하겠습니까?”
가렐은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발소리가 네 사람의 것인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왕립 마도탑의 보고실은 평소보다 밝았다. 천장 수정등이 모두 켜져 있었고 출입문에는 봉인식이 세 겹으로 겹쳐져 있었다.
베른은 긴 탁자 끝에 서 있었다. 뒤편의 평의원들은 이안이 들어서자 그의 손목과 가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로웬 사제. 위험 등급부터 판정해야 합니다.”
베른이 말했다.
세라는 토른의 기록지를 탁자 위에 올렸다.
“첫 파동은 파편의 실금에서 발생했습니다. 이안 베르크의 마나가 반응한 것은 그 뒤입니다. 지하에서 세 번의 박동이 이어졌고 문이 닫힌 뒤 한 번의 응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응답이 외부 신호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구조된 작업자 네 명의 진술이 일치합니다. 감지판에도 마지막 반응은 이안의 몸을 중심으로 퍼진 형태가 아니라 지하 방향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른은 이안을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이안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지요.”
“안전하다고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세라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안은 고대 봉인 반응의 매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계승자의 동의가 있어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도 확인했습니다. 동의가 불완전하면 기억 혼선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을 사용한 결과는요?”
“제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대신 이안에게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전쟁 기억이 남았습니다.”
평의원 하나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 기억이 자신의 것인지 모른다는 말입니까?”
“모릅니다.”
이안이 답했다.
“하지만 제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압니다.”
베른이 탁자를 내리쳤다.
“그러니 격리해야 합니다.”
“격리하면 지하 반응을 확인할 사람이 사라집니다.”
“다른 마법사를 보내면 됩니다.”
“그들은 파동의 중심과 문이 닫힌 뒤 돌아온 응답을 모릅니다.”
세라가 이안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안 베르크를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위험하기 때문에 현장과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보고실이 조용해졌다.
평의회 의장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하부 관측실에서 조건부 시험을 진행합니다. 반응이 다시 발생하면 즉시 격리합니다. 문을 열거나 외부에 힘을 행사하는 행위는 금지합니다.”
세라가 바로 물었다.
“결박은 하지 마십시오. 강제로 마나 흐름을 누르면 관측 결과가 왜곡됩니다.”
베른이 반박하려 했지만 의장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결박은 하지 않는다. 대신 지팡이의 수식은 모두 기록한다.”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그 순간 보고실 벽 안쪽에서 작은 금속음이 울렸다. 이안의 손목에서 검은 선이 한 번 뛰었다.
하부 관측실 바닥에는 오래된 수정 원반이 박혀 있었다. 도시의 봉인 파동을 측정하는 장치였지만 눈금 대부분은 닳아 있었다.
베른이 이안의 발밑에 봉인 고리를 닫았다.
“지팡이를 내려놓으십시오.”
“지팡이가 없으면 마나의 방향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조절하지 마십시오.”
“그럼 측정이 아니라 폭주를 기다리는 겁니다.”
세라가 두 사람 사이에 백색 결계를 세웠다.
“흐름을 막지 말고 기록만 하십시오.”
이안의 시야에 흰 창이 떠올랐다.
[외부 관측 장치가 봉인 기록의 잔향을 탐지합니다.]
[현재 반응원: 불명]
[주의: 검은 봉인선과 직접 공명합니다.]
―문을 닫아라.
바르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는 문이 아니다.’
―문으로 이어지는 손잡이다.
‘그걸 알고 있었다면 왜 말하지 않았지?’
―네가 묻지 않았다.
원반의 눈금이 한 칸씩 빛났다. 첫 번째 파동은 이안의 가슴에서 퍼지는 듯했지만 실제 흐름은 그의 마나를 스치고 아래로 향했다.
이안은 지팡이 끝으로 바닥에 세 개의 지지점을 찍었다.
“무슨 짓입니까?”
“장치가 제 마나와 아래쪽 반응을 한 줄로 읽고 있습니다. 방향을 분리하겠습니다.”
마지막 선이 이어지자 푸른 마법식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원반으로 돌아왔고 다른 하나는 바닥 아래로 내려갔다.
세라의 흰 문양이 먼저 빛났다.
이안의 가슴이 뒤늦게 조여 왔다. 불타는 평원이 다시 눈앞에 번졌다. 흰 망토의 여자와 피 묻은 손가락이 겹쳐졌다.
“이안. 제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세라가 결계 너머에서 말했다.
“당신의 문양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반응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바르칸이 낮게 속삭였다.
―오면 끊어라.
두 번째 눈금이 켜졌다. 이번에는 탑의 봉인식 전체가 떨렸다.
쿵.
소리는 관측실보다 훨씬 아래에서 올라왔다.
“이안의 반응입니까?”
평의원 하나가 물었다.
“아닙니다.”
세라가 즉시 대답했다.
“첫 파동보다 늦게 왔습니다.”
이안은 두 번째 흐름을 끊으려 했다. 검은 봉인선이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번졌다.
상태창의 글자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제한 치유 권한은 현재 잠겨 있습니다.]
[살아 있는 계승자의 동의가 없는 개입을 금지합니다.]
이안은 세라를 보았다. 그녀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결계의 폭을 넓혀 관측실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안은 자신의 지지식만으로 흐름을 꺾었다. 푸른 선이 끊기며 두 번째 파동이 사라졌다. 관측 원반의 빛도 함께 꺼졌다.
베른이 봉인 고리를 확인했다.
“반응은 이안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안이 없으면 방향을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세라가 말했다.
“그러니 현장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안은 지팡이에 기대 숨을 골랐다. 전쟁 기억은 사라졌지만 죄책감은 남아 있었다.
세라가 가까이 다가왔다.
“판단할 수 있습니까?”
“예. 다만 혼자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세라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 검증 허가서에는 조건이 붙었다.
이안 베르크는 세라 로웬의 감시 아래 이동할 것. 토른 경위는 증거품과 생존자 기록을 별도 보관할 것. 폐쇄 배수로의 문을 개방하지 말 것. 이상 반응이 발생하면 즉시 철수할 것.
베른은 마지막 줄에 서명했다.
“조건을 어기면 즉시 지하 격리실로 이송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안은 허가서를 접었다.
“관측 기록을 평의회가 독점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현장 참여자 모두가 사본을 받아야 합니다.”
“협상할 처지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매개라면 기록을 한곳에만 두는 편이 더 위험합니다.”
평의회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당에도 한 부를 보낸다.”
토른이 봉인된 증거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생존자들은 안정됐습니다. 가렐은 문이 닫힌 뒤 들은 두드림을 계속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도 포함해 주세요.” 세라가 말했다.
이안은 세라에게 다가갔다.
“기억이 겹치거나 손목의 봉인선이 반응하면 숨기지 않겠습니다.”
“전부 말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세라는 허가서의 봉인 표시를 확인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해야 할 위험까지 감추지는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믿는다고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그 편이 정확합니다.”
“대신 혼자 보내지도 않겠습니다.”
세라의 흰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때 보고실 바깥의 봉인 경보가 울렸다. 북쪽 벽에 붉은 선이 나타났다. 선은 마도탑 지하에서 아르덴 북부 구시가지 방향으로 뻗었다.
토른이 증거 상자를 내려놓았다.
“아침에 다녀온 배수로 방향입니다.”
이안은 붉은 선 아래에서 금속성 울림을 들었다.
딱.
문 안쪽의 두드림과는 달랐다. 더 얇고 차가운 소리였다. 금속으로 돌을 긁는 듯한 울림이 지하를 타고 올라왔다.
바르칸은 침묵했다.
세라도 소리를 들은 듯 손등을 움켜쥐었다.
“출발합시다.”
이안은 허가서를 품에 넣고 지팡이를 들었다.
격리는 보류됐을 뿐이었다. 자유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감시받는 현장과 숨길 수 없는 위험이었다.
마도탑의 북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닫힌 문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건드린 봉인을 확인하러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