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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상태창이 너무 많음5화

대마법사의 상태창이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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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빌린 흰빛의 대가

문 안쪽에서 세 번째 두드림이 끝나자 우물 가장자리의 돌이 한꺼번에 내려앉았다.

이안은 지팡이를 돌려 무너지는 돌조각을 허공에서 멈췄다. 토른이 구조된 작업자들을 뒤로 밀어냈고 세라는 아직 우물 아래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세라. 올라오십시오.”

“저 안에 무언가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려가면 안 됩니다.”

세라가 그를 돌아보았다. 흰 문양이 떠오른 손등에서 가느다란 빛이 새고 있었다.

“방금 당신도 들었잖아요. 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구조 요청과 문 개방 명령은 다릅니다.”

“그 차이를 확인하려면 안을 봐야 합니다.”

“확인하러 들어간 사람이 문 안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안은 우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물은 빠르게 줄고 있었지만 벽 안쪽의 세로선과 꺾인 고리 문양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그 문양 사이로 흰빛이 한 번씩 뛰었다.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구조된 작업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가, 가렐입니다. 배수로 관리조의 반장입니다.”

“안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가렐은 젖은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손톱 밑에 박힌 검은 모래가 뺨에 길게 묻었다.

“문 하나였습니다. 쇠도 돌도 아니었어요. 빛이 굳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문 앞에 네 개의 발자국이 있었고 그 너머에서 계속 누군가 걸어 다녔습니다.”

“사람의 발자국이었습니까?” 토른이 물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소리가 네 사람의 숨소리보다 먼저 들렸습니다.”

가렐의 눈이 흔들렸다.

“우리가 한 걸음 움직이면 안쪽에서 두 걸음이 따라왔습니다. 우리가 멈추면 그것도 멈췄고요.”

이안은 가렐의 손목을 보았다. 검은 모래가 혈관을 따라 얇게 번지고 있었다.

“가렐. 지금 자신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 느껴집니까?”

“그야…….”

가렐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왼손인가요?”

“오른손입니다.”

세라가 곧장 그의 손목을 감쌌다. 백색 마나가 흘러들자 검은 모래가 꿈틀거리며 그녀의 손등 문양으로 달라붙었다.

“이건 단순한 오염이 아니에요.”

세라가 이를 악물었다.

“감각의 순서를 흐리고 있습니다. 팔을 보고도 어느 쪽 팔인지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이안의 시야에 흰 창이 떠올랐다.

[성녀 기록이 대상의 기억 회로에 접촉했습니다.]

[치유 권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주의: 동의가 불완전할 경우 최근 기억이 대가로 소모될 수 있습니다.]

―그 빛을 다시 건드리면 이번에는 네가 먼저 무너진다.

바르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럼 방법을 말해.’

―문을 닫아라.

‘사람이 여기서 죽게 두라는 뜻인가?’

―산 자를 구하려고 문을 열었던 자들이 얼마나 많은 시체를 남겼는지 모르는군.

이안은 대꾸하지 않았다. 가렐의 호흡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토른. 남은 세 사람을 시장 입구로 옮기십시오. 검은 모래가 묻은 물건은 전부 따로 봉인하고요.”

“반장도 데려가야 합니다.”

“아직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세라가 말했다.

“당신의 팔도 멀쩡하지 않습니다.”

세라의 왼팔에는 결계가 갈라졌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갑 아래에서 흰 금이 피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서둘러야 합니다.”

세라는 가렐의 어깨를 받쳤다. 가렐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우물 아래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녀의 피가 돌아왔구나.”

세라의 발이 멈췄다.

이안은 손가락을 지팡이에 걸었다. 목소리는 가렐의 귀에는 닿지 않은 듯했다. 토른도 듣지 못했다.

“누가 말했습니까?” 세라가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선 올라가세요.”

세라는 가렐을 토른에게 넘겼다. 그녀가 손을 떼자 흰 문양이 다시 맥박처럼 빛났다.

“이안.”

그녀가 낮게 불렀다.

“당신은 뭔가 들었죠?”

“문이 반응했습니다.”

“제가 묻는 건 문이 아닙니다.”

이안은 그녀의 손등을 보았다. 문양 주변에 작은 금이 퍼지고 있었다.

“지금은 확인할 시간이 없습니다. 상처부터 치료하십시오.”

“제 상처는 제가 판단합니다.”

“그 판단으로 저 안에 들어가겠다는 겁니까?”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그냥 닫아 둘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로 검은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돌에 닿은 물방울이 작은 발자국 모양으로 번졌다.

토른이 멀리서 외쳤다.

“세라 사제! 가렐의 호흡이 다시 흔들립니다!”

세라는 즉시 몸을 돌렸다.

이안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세라를 붙잡을 명분도 문을 열지 않을 권리도 아직 자신의 손에 없었다.

그때 우물 벽의 흰 문양이 바깥으로 솟았다. 세라의 손등에 있던 빛이 벽으로 끌려갔고 세로선 사이에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틈이 벌어졌다.

문 안쪽은 어둡지 않았다. 흰빛이 먼지처럼 떠다니는 긴 통로가 보였다. 통로 끝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는 모습만은 선명했다.

쿵.

이번에는 네 번째 두드림이었다.

“당신이 이안 베르크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이안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세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가렐을 살피고 있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이름은 네 것이 아니다.”

통로 끝의 형체가 한 걸음 다가왔다. 발밑에서 흰빛이 일렁였다.

“문을 열어라. 네 안에 갇힌 이름을 돌려보내라.”

이안의 손목이 타들어 갔다. 검은 봉인선이 소매 안에서 번쩍였다.

―닫아라.

바르칸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명령처럼 울렸다.

동시에 세라의 손등에서 빛이 폭발했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세라!”

이안은 우물 가장자리로 뛰었다. 문틈에서 흰 파편이 튀어나와 세라의 왼팔을 스쳤다. 갈라진 결계 자국이 벌어지며 피가 맺혔다.

세라는 이를 악물고 지팡이를 세웠다.

“문을 닫아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왜 열고 있습니까?”

“제가 여는 게 아닙니다. 이 문양이 당신을 열쇠로 보고 있어요.”

이안은 지팡이 끝을 문턱에 박았다. 대마법사식 지지식이 세 겹으로 펼쳐졌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오히려 통로 안의 흰빛이 지지식을 따라 그의 팔로 기어왔다.

가렐이 시장 쪽에서 짧게 비명을 질렀다. 검은 모래가 그의 목까지 번지고 있었다.

세라가 돌아서려 했지만 다친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렐을 먼저!”

“이 문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럼 둘 다 붙들면 됩니다.”

세라가 지팡이를 내리쳤다. 백색 결계가 가렐을 감싸고 검은 모래를 밀어냈다. 그러나 그녀의 팔에 있던 균열이 어깨 쪽으로 번졌다.

이안은 눈앞의 창을 보았다.

[치유 권한 사용 가능]

[대상: 세라 로웬]

[동의 상태: 불완전]

[예상 대가: 최근 기억의 일부가 재배열됩니다.]

성녀의 빛을 빌리면 세라의 팔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가렐의 감각은 세라가 자신의 힘으로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억을 대가로 삼는 방식은 그가 가장 경계하던 힘의 사용법이었다.

“이안!”

세라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지금 결정하십시오!”

이안은 세라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백색 마나가 피부를 타고 흘렀다. 그 안에는 따뜻함보다 오래된 슬픔이 먼저 있었다.

“당신의 빛을 빌리겠습니다.”

세라가 그를 노려보았다.

“무엇을 가져갑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강제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허락하지 않으면 손을 놓으십시오.”

세라는 가렐과 이안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호흡은 흔들렸지만 목소리는 분명했다.

“허락합니다. 대신 누구의 기억도 당신 마음대로 가져가지 마세요.”

그 말이 끝나자 흰 창의 글자가 흐려졌다.

[동의가 확인되었습니다.]

[완전 동기화는 거부되었습니다.]

[제한된 치유 권한을 임시 개방합니다.]

이안의 손바닥에서 흰빛이 터졌다. 빛은 상처를 덮지 않았다. 먼저 세라의 흐트러진 감각을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세라의 팔을 타고 번진 균열이 멈췄다. 그녀는 곧바로 가렐을 향해 지팡이를 들었다.

“가렐. 제 목소리를 들으세요. 오른손을 들어 보세요.”

“오른손…….”

가렐이 떨리는 손을 들었다. 검은 모래가 손끝에서 떨어졌다.

“좋습니다. 이제 숨을 셉니다. 하나, 둘.”

세라의 백색 결계가 가렐의 목과 가슴을 감쌌다. 검은 모래가 더 번지지 않고 피부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빛이 세라에게 이어지는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낯선 장면이 밀려들었다.

불타는 평원이었다. 흰 망토를 입은 여자가 피투성이의 병사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검은 갑주를 입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뒤로 물러서세요.”

흰 망토의 여자가 말했다.

“저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검은 갑주의 인물이 대답했다.

“이미 늦었다. 문을 닫아야 한다.”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부상자 하나를 일으키려 했다. 그때 하늘에서 흰 불꽃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비명이 번졌다. 여자는 손을 뻗었지만 한 사람의 손가락 끝만 붙잡았다.

나머지는 불길 속에 남았다.

이안은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누군가를 버리고 돌아선 죄가 가슴에 박혔다.

‘내가 늦었다.’

생각이 아닌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내가 문을 닫았다.’

“이안!”

세라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그 기억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분명 자신의 가슴을 짓눌렀다.

“나가십시오.”

통로 끝의 형체가 속삭였다.

“그 죄는 네 것이 아니면서 네 피에 남아 있다.”

이안은 흰빛을 지지식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문턱이 갈라지고 통로 안의 형체가 한순간 흔들렸다.

“당신이 누구든 이름부터 말해라!”

“이름을 잃은 자가 이름을 묻는구나.”

형체가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는 봉인 속의 이름을 가지고 와라.”

이안은 마지막 힘을 밀어 넣었다. 세라의 손등 문양이 꺼지고 흰 문이 굉음을 내며 닫혔다.

그 순간 성녀의 빛도 사라졌다.

이안은 무릎을 꿇었다. 머릿속에는 불타는 평원과 붙잡지 못한 손가락이 남아 있었다.

세라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안.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들립니다.”

“제 기억을 가져갔습니까?”

이안은 대답하기 전에 그녀의 눈을 확인했다. 세라의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사람의 눈은 아니었다.

“당신의 최근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본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성녀의 기억인지 문 안쪽의 기억인지도.”

세라는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갈라졌던 흰 금은 닫혔지만 손등의 문양 절반이 흐려져 있었다.

“당신은 제게서 힘을 빼앗지 않았군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대가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당신 얼굴에 남은 죄책감이 그 대가입니까?”

이안은 불타는 평원을 떠올렸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을 후회하는 감정이 너무 선명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세라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 죄가 당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생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사실과 감정은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라는 손을 거두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래도 보고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힘을 썼는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비정상적인 결속과 치유 현상은 숨길 수 없습니다.”

이안도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보고하면 마도탑은 저를 격리할 겁니다.”

“그럴 겁니다.”

“그런데도요?”

“격리실에서 당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현장 검증이 필요하다고 쓰겠습니다.”

세라의 말은 단호했다. 감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안을 혼자 가둘 생각도 없다는 뜻이었다.

토른이 생존자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가렐은 창백했지만 두 발로 서 있었다.

“문은 닫혔습니까?”

그가 물었다.

“닫혔습니다.” 세라가 답했다.

“그럼 안쪽 발소리도 멈췄겠군요.”

이안이 우물을 돌아보았다. 문양은 모두 사라졌지만 돌 틈 깊은 곳에서 작은 흰빛이 한 번 깜박였다.

쿵.

아주 멀리서 한 번의 두드림이 돌아왔다.

이안의 손목 안쪽에서 검은 선이 그 소리에 맞춰 뛰었다.

바르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라가 이안의 옆에 섰다.

“다음 조사에는 정식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도 함께 갑니까?”

“당신이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면요.”

이안은 닫힌 우물과 자신의 손목을 번갈아 보았다. 낯선 죄책감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그 감정을 혼자 견디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먼저 말하겠습니다.”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흐려진 문양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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