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9화: 수석교수의 난입
마법학부 본관 최상층의 수석교수 집무실.
호화로운 융단 위로 양피지 뭉치가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책상 모서리를 친 은제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이따위 보고를 받으려고 내가 너를 수석조교 자리에 앉혀 둔 줄 아느냐!"
베르나르 하르트만 교수의 고함에 실내의 공기가 찌릿하게 떨렸다.
집무실 구석에 선 펠릭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식은땀을 흘렸다. 감청색 학부 정복 소매 안에서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송구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라인하르트 영애가 학칙 제24조 3항을 내세우며 기록의 열람 및 이관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백작가의 후계자인 데다 이번 학기 수석 입학생이라 강제로 집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학칙? 수석 입학생?"
베르나르가 코방귀를 뀌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계집아이가 제 가문의 권세를 믿고 기어오르는구나. 일개 임시 강좌의 삼류 마법사에게 홀려 학부의 권위에 먹칠을 해? 내가 직접 편찬 위원장으로 참여한 제국 표준 교재를 두고 마력 손실 86퍼센트 운운하는 쓰레기 기록을 버젓이 남겨 두었다는 말이냐!"
베르나르의 이마에 굵은 핏대가 솟았다.
소강당 검증 사건 이후 마법학부 내부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비록 현장 입회자를 제한하고 입단속을 시켰지만 화강암 방어벽이 뚫렸다는 소문은 교수들 사이에 은밀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마법학적 권위와 표준 교재의 체계가 뿌리째 흔들릴 위기였다.
"교수님, 제국 마법 학회에 정식으로 이단 판정 청원을 넣으시겠습니까?"
펠릭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회 청원은 절차가 느려. 서류가 오가는 사이에 그 하급 강사 놈이 수강생들을 모조리 엉터리 사술로 물들일 것이다."
베르나르의 눈빛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
"사기꾼의 혀는 그 자리에서 잘라버려야 하는 법이다. 내일 아침 교양 101 수업 시간에 학부 전임 교수들과 상급 조교들을 전부 소집해라."
"직접 가시려는 겁니까?"
"그래.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놈이 가르친 공식이 왜 위험한 흑마법 사술인지 명명백백히 밝혀내겠다. 내 앞에서 손가락 하나 뻥긋하지 못하게 만들어 당장 아카데미 밖으로 내쫓아 주마."
다음 날 아침, 교양 101 강의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정돈된 책상들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교탁 옆에서는 감청색 띠를 팔에 두른 시엘이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실습용 마력 측정구의 마정석을 하나하나 분리해 영점을 조절했다.
"시엘 조교님."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레온이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레온. 일찍 왔네요."
시엘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교양 101 전담 조교'라는 은빛 직인이 새겨진 명찰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어제 조별 실습 후에 손목 흐름을 다시 점검해 봤는데 넷째 호흡에서 생기던 미세한 떨림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력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길만 열어두니까 정말 통증이 없더군요."
레온이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그때 뒷문으로 헤이든 발몬트가 들어왔다. 그는 레온과 시엘을 발견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장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레온."
헤이든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오만한 기색이 완전히 빠져 있었다.
"어제 네가 알려준 대로 셋째 숨 끝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기숙사에서 해봤다. 전완부 경련이 일어나지 않더군. 덕분에 표준식을 쓸 때마다 굳어버리던 손목이 풀렸다. 고맙다."
귀족 가문의 도련님이 평민 학생에게 건넨 진심 어린 감사였다.
레온은 쑥스러운 듯 뺨을 긁었다.
"아닙니다. 강사님의 세 줄 공식 덕분이죠. 저도 아직 모르는 게 많습니다."
"아니, 네 조언이 정확했어. 오늘 수업 과제 대조표에도 네 의견을 그대로 반영해 적어왔다."
헤이든이 자신이 작성한 양피지를 시엘에게 공손히 제출했다.
시엘은 양피지의 수치를 빠르게 검토한 뒤 출석부 옆 서류철에 끼워 넣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기 5분 전이었지만 스물두 명의 수강생 전원이 이미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결석이나 지각은커녕 학생들의 눈빛은 배움에 대한 열기로 반짝였다.
달칵.
앞문이 열리며 익숙한 낡은 회색 로브 차림의 엘리안이 들어섰다.
강의실 안이 일순간 쥐은 듯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일제히 허리를 곧게 펴고 교탁을 주목했다.
"출석을 부르겠다."
엘리안이 출석부를 펼치며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엘 라인하르트."
"네, 교수님."
"레온 카터."
"네!"
"헤이든 발몬트."
"네, 강사님!"
한 명도 빠짐없이 맑고 힘찬 대답이 돌아왔다. 엘리안은 서류에 체크 표시를 남긴 뒤 분필을 집어 들었다.
"전원 출석이군. 지난 시간에 제출한 마력 흐름 지도는 대체로 양호했다. 오늘은 각자의 손목에서 정체되던 마력을 안정적으로 분출구까지 유도하는 '마력 지향성 제어'를 다루겠다."
엘리안이 칠판으로 몸을 돌려 공식을 적으려는 찰나였다.
쾅!
강의실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리며 복도 전체를 울리는 굉음이 터졌다.
학생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간에는 감청색 교수 로브를 휘날리는 베르나르 수석교수가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펠릭스를 비롯한 학부 조교 다섯 명과 학부 소속 전임 교수 세 명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베르나르의 몸 주위로 5클래스 마법사 특유의 푸르스름한 마력 오라가 위압적으로 일렁였다.
"수업을 즉시 중단하라!"
베르나르의 서슬 퍼런 일갈이 실내를 뒤흔들었다.
공기 중의 마력 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며 학생들의 숨통을 무겁게 짓눌렀다. 몇몇 평민 학생들은 숨을 헐떡이며 책상을 부여잡았다. 헤이든조차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시엘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 앞을 가로막았다. 루비빛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베르나르 교수님. 지금은 교양 101의 정규 강의 시간입니다. 아카데미 학칙 제18조에 따르면 어떠한 교수나 외부인도 담당 교원의 사전 승인 없이 수업 진행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입 닥쳐라, 라인하르트 영애!"
베르나르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며 삿대질을 했다.
"학생을 보호해야 할 백작가의 영애가 이런 무자격 사기꾼의 농간에 넘어가 조교 완장 따위를 차고 학부의 권위에 도전해? 네 조교 임명은 학부 승인을 거치지 않았으니 무효다!"
"교양 과목의 조교 임명권은 학장 직속 규정상 담당 강사의 고유 권한입니다.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시엘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받아쳤다.
베르나르의 입가가 비틀렸다.
"그 알량한 말장난도 여기까지다. 학부의 공식 교재를 훼손하고 학생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사술을 주입한 죄는 아카데미 징계 위원회 회부 사안이다. 당장 강의실을 폐쇄하고 저 가짜 강사를 포박하라!"
베르나르의 신호에 뒤따라 들어온 조교들이 마력 지팡이를 치켜들며 교탁 쪽으로 접근하려 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때 교탁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남의 강의실에 들어올 때는 노크부터 하라고 배우지 못했나 보군."
엘리안이었다.
그는 분필을 손가락 사이로 가볍게 굴리며 베르나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푸른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자격도 없는 3클래스 임시 강사 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혓바닥을 놀리느냐!"
베르나르가 엘리안을 향해 한층 더 거센 마력 파동을 뿜어냈다. 5클래스 마법사의 영압이 파도처럼 엘리안의 전신을 덮쳐 눌렀다. 바닥의 타일이 삐걱거리며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
"네놈의 엉터리 마법이 얼마나 조잡하고 위험한 것인지 학부의 이름으로 증명해 주겠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면 제국 재판소에 고발하는 것만은 면해주마."
베르나르는 상대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엎드릴 것이라 확신했다. 3클래스 하급 마법사가 5클래스의 순수한 마력 압박을 맨몸으로 버텨낼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희미한 조소가 걸렸다.
"5클래스 마법사라는 자의 마력 순환이 이토록 조잡해서야."
엘리안이 들고 있던 분필 끝으로 허공을 톡 쳤다.
탁.
아주 작고 건조한 마찰음이었다.
그 순간 강의실 전체를 짓누르던 베르나르의 푸른 마력 파동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끊어지듯 베르나르의 마력 압박이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
베르나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이 턱 막히던 중압감이 사라지자 학생들은 일제히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이 온 힘을 실어 내뿜은 영압이 단 한 번의 손짓에 분해되어 사라졌다. 베르나르는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 없었다. 손끝을 내려다보았지만 마력의 잔여 흔적조차 잡히지 않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마력 상쇄 진형이라도 미리 깔아둔 것인가?'
베르나르의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불안을 부정했다. 눈앞의 상대는 그저 3클래스 임시 강사일 뿐이었다. 비열한 술수를 부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잡기술에 능하구나. 하지만 실전 마법 앞에서도 그런 얄팍한 속임수가 통할 것 같으냐!"
베르나르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엘리안 강사! 네가 가르치는 세 줄 공식이 진정한 마법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다음 주 학부 교수들과 전교생이 지켜보는 대강당에서 나와 마법 대련을 펼쳐라. 내 5클래스 마법을 상대로 네 공식이 옳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 보아라!"
강의실 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수석교수가 임시 강사에게 공식 마법 대련을 신청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패자를 아카데미와 마법 학계에서 영구 추방하겠다는 공개 처형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교수님, 이건 명백한 월권입니다! 5클래스 전임 교수가 교양 강사에게 대련을 강요하는 것은……!"
시엘이 격분하여 항의하려 했다.
하지만 엘리안이 손을 들어 시엘의 말을 멈추게 했다.
엘리안이 칠판에 적으려던 공식을 지우개로 툭툭 털어내며 베르나르를 내려다보았다.
"대련이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섬뜩할 지경이었다.
"시간 낭비군. 5클래스는커녕 기초 순환식의 기본 오차조차 잡지 못해 마력을 허공에 흩뿌리는 자와 무슨 학술 대련을 하겠다는 건지."
"뭐라고?!"
베르나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엘리안이 차갑게 덧붙였다.
"좋다. 네 신청을 받아들이지. 다음 수업 시간에 소강당으로 와라. 네가 맹신하는 그 엉터리 마법이 1클래스 기초 마법 하나에 어떻게 박살 나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베르나르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오냐, 그 오만이 네 명줄을 끊어놓을 것이다. 다음 주 소강당에서 네놈의 추악한 밑천을 전교생 앞에 낱낱이 까발려 주마!"
베르나르가 거칠게 로브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펠릭스와 학부 일행이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쾅 닫히는 문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강의실 안에는 전율과 침묵이 감돌았다.
수석교수와의 공식 마법 대련. 그것도 5클래스 마법을 1클래스 기초 마법으로 깨부수겠다는 전대미문의 선언이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교탁 위의 엘리안에게로 일제히 쏠렸다.
엘리안은 분필 가루를 털어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석부를 톡톡 두드렸다.
"소란은 끝났다. 시엘 조교, 측정구 배부를 시작해라. 오늘 진도를 나가지 못하면 전원 과제 분량이 두 배가 된다."
"……네, 교수님!"
시엘의 대답과 함께 강의실의 공기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