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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8화

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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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조교의 자격

교양 101 강의실 앞 복도에 무거운 발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며 짙은 감청색 학부 정복을 입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섰다. 가슴에 새겨진 은빛 펜촉 문양은 그가 마법학부 수석교수실 소속 조교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엘 라인하르트 영애."

수석조교 펠릭스의 시선이 시엘의 품에 안긴 갈색 기록 봉투에 닿았다.

"어제 소강당에서 진행된 공개 검증 대조 사본과 오늘 학생들의 마력 측정 원본을 회수하러 왔습니다. 베르나르 수석교수님의 직인이 찍힌 이관 명령서입니다."

펠릭스는 양피지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붉은 인장이 선명했다.

강의실 안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리를 정리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시엘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품에 안은 봉투의 모서리를 단정하게 맞추며 고개를 들었다. 루비빛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거절합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펠릭스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이것은 아카데미 학부의 공식 요청입니다. 임시 강좌의 교양 과목에서 보관할 성질의 자료가 아닙니다. 검증 과정에서 발생한 이상 수치와 파손 기록은 학부 서고에서 통합 관리해야 합니다."

"아카데미 학칙 제24조 3항을 확인하셨습니까?"

시엘의 목소리는 맑고 단호했다.

"정규 및 임시를 막론하고 모든 교과 과정에서 산출된 학생 개인의 마력 측정 기록과 과제물은 담당 교원의 평가가 완료될 때까지 해당 강좌의 독립 관리하에 둡니다. 또한 어제 작성된 공개 검증 서약서 제5조에는 기록관과 시연자가 각각 대조 사본을 보관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시엘은 책상 위의 이관 명령서를 손끝으로 밀어냈다.

"학부 서고로의 일방적 이관은 규정 위반입니다. 사본을 열람하고자 하신다면 학칙에 따라 담당 강사님의 서면 승인과 정식 열람 사유서를 먼저 제출하십시오."

"라인하르트 영애! 당신은 백작가의 후계자이자 이번 학기 수석 입학생입니다. 어째서 이런 하급 임시 강사의 편을 들며 학부의 권위에 맞서는 겁니까?"

펠릭스가 언성을 높였다.

그때 교탁 뒤에서 분필을 내려놓는 소리가 탁 하고 울렸다.

엘리안이 출석부를 덮으며 펠릭스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에는 서늘함이 어려 있었다.

"소란스럽군."

"……엘리안 강사."

"출석부와 과제 기록은 내 수업의 성적 평가 근거다. 학부가 멋대로 가져갈 권한은 없다."

"이건 단순한 교양 과제가 아닙니다! 공식 교재의 권위를 흔드는 위험한 비인증 공식의 기록입니다. 수석교수님께서 이 사안을 묵과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 교재의 권위라는 것이 마력 소모량 88단위와 86퍼센트의 손실로 이루어져 있다면 흔들리는 편이 낫겠지."

엘리안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용무가 끝났으면 나가라. 다음 시간 준비를 해야 하니 문은 닫고 가고."

펠릭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엘리안과 시엘을 번갈아 노려보며 주먹을 쥐었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학회의 검증 절차가 정식으로 시작되면 이런 식의 오만은 통하지 않습니다."

펠릭스가 거칠게 몸을 돌려 복도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강의실 안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학생들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학부의 수석교수실 조교를 정면에서 돌려보낸 광경은 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다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엘리안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과제 제출 기한을 잊었나? 마력 흐름 지도를 확인하겠다."

학생들이 서둘러 책상으로 돌아갔다.

시엘은 품에 안았던 기록 봉투를 교탁 옆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갔다. 그리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지를 한 장씩 걷어 들었다.

"총 스물두 명 중 스무 명이 제출했습니다. 두 명은 아직 작성 중입니다."

시엘이 양피지 묶음을 가지런히 정돈해 엘리안 앞에 놓았다. 양피지 상단에는 그녀가 정리한 분류표가 붙어 있었다.

유형 1: 셋째 호흡에서 손목 정체 (레온 카터 외 8명)
유형 2: 첫 번째 마력 응축 시 어깨 경직 및 누출 (6명)
유형 3: 손끝 방출 시 마력 흩어짐 (4명)
유형 4: 넷째 박자 전환 시 전완부 경련 (헤이든 발몬트)

엘리안은 분류표를 훑어보았다.

"정리가 빠르군."

"학생들이 겪는 막힘이 무질서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표준식의 특정 박자에서 강요받았던 억지 굴곡과 일치했습니다."

시엘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과제지를 맨 위에 올렸다.

"저 역시 제 마력 흐름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엘리안이 시엘의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기록은 완벽에 가까웠다. 호흡의 간격은 오차 없이 일정했고 손목이나 팔꿈치에서의 마력 정체는 거의 없었다. 마력 소모량은 5단위, 마동 수치는 0.2였다. 최상급 학생의 데이터였다.

하지만 엘리안의 시선은 지도 중앙의 한 지점에서 멈췄다.

"너는 손실을 없애기 위해 마력의 길을 스스로 조이고 있군."

시엘의 눈이 커졌다.

"조이고 있다니요?"

"누출과 흔들림을 두려워해서 흐름의 반경을 원래 크기의 절반으로 억누르고 있다. 겉보기에는 손실이 없어 보이지만 마력이 숨을 쉬지 못해 질식하는 상태다."

엘리안은 붉은 잉크를 묻힌 펜으로 시엘의 지도 외곽을 크게 둘러 그렸다.

"라인하르트 가문의 기초 훈련법은 정밀함을 강조하지. 하지만 통제와 억압은 다르다. 마력을 완전히 지배하려 들면 마력은 네 의지에 갇혀 더 넓은 파동을 만들지 못한다. 네가 만든 불꽃이 크기에 비해 무게감이 없었던 이유가 이것이다."

시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가문의 원로들과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언제나 그녀의 마력 제어력을 극찬했다. 단 한 방울의 마력도 낭비하지 않는 완벽한 기교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엘리안은 단 한 장의 흐름 지도만 보고 그녀가 느껴왔던 미세한 답답함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직접 확인해 봐라."

엘리안이 교탁 위의 측정구를 가리켰다.

"마력을 모을 때 손끝의 궤적을 억지로 닫지 말고 호흡이 퍼지는 만큼 마력의 반경을 열어 둬라. 손실이 생겨도 좋으니 끝까지 가두지 마."

시엘은 침을 삼키며 손을 들었다.

강의실 뒤편에서 레온과 헤이든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수석 입학생인 시엘이 교정을 받는 장면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엘은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마력이 손목을 지나는 순간 오차를 없애기 위해 마력망을 팽팽하게 당겼을 터였다.

그녀는 엘리안의 말대로 그 당김을 늦췄다.

마력이 손목을 지나 손바닥 전체로 넓게 퍼져 나갔다. 통제를 벗어나는 듯한 서늘한 불안감이 스쳤지만 억지로 쥐어짜지 않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화륵!

영창은 없었다.

시엘의 손바닥 위에서 피어오른 것은 이전의 얌전한 불꽃이 아니었다. 푸른빛이 층층이 겹쳐진 거대하고 투명한 화염 구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열기는 강의실 맨 뒷자리까지 부드럽게 번져 나갔다.

측정구의 숫자가 떠올랐다.

마력 소모 5단위.
마동 수치 0.05.
전환 효율 98퍼센트.

마력 소모량은 전과 같았지만 불꽃의 부피는 세 배 이상 커져 있었다. 흔들림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아……."

시엘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손목에 아무런 압박이 없었다. 마력이 자신의 몸을 억지로 갉아먹으며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바깥으로 흘러나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게 정통 순환식입니까?"

"정통식이 거창한 비법인 줄 아나?"

엘리안이 시엘의 불꽃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마력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다."

강의실 안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레온은 자신의 과제지에 적힌 정체 지점과 시엘의 불꽃을 번갈아 보며 주먹을 쥐었다. 헤이든 역시 넷째 박자에서 굳었던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며 눈빛을 바꿨다.

"과제를 다시 나눠 주겠다."

엘리안이 칠판을 두드렸다.

"시엘이 분류한 유형별로 세 명씩 조를 짜라. 서로의 흐름 지도를 대조하고 어디에서 마력을 억지로 틀어쥐고 있는지 찾아내라. 상대의 오류를 짚어내지 못하면 조원 전체를 감점하겠다."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분이나 전공의 벽은 없었다. 귀족 학생과 평민 학생이 마주 앉아 서로의 호흡과 손목 떨림을 관찰했다. 헤이든은 레온의 맞은편에 앉아 자신의 넷째 박자 경련 기록을 내밀었다.

"여기서 손목을 꺾지 않으려면 호흡을 어느 박자에 비워야 합니까?"

"셋째 숨이 끝날 때 힘을 빼야 합니다. 억지로 밀면 반동이 와요."

레온이 차분하게 답하며 자신의 경험을 설명했다. 헤이든은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받아 적었다.

강의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구실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길게 울렸다.

학생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각자의 과제지에 수정된 흐름선을 채워 넣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헤이든이 엘리안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뒤 문을 나섰다.

강의실에는 엘리안과 시엘 둘만 남았다.

시엘은 흩어진 과제지들을 완벽하게 수합해 분류별로 서류철에 꽂았다. 그리고 교탁 앞으로 다가와 품 안에서 정식 서류 한 장을 꺼내놓았다.

아스테리아 아카데미 정식 조교 위임 신청서.

지원자 란에는 시엘 라인하르트의 이름과 가문 서명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강사님."

시엘이 엘리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정식으로 교양 101의 전담 조교를 맡겠습니다."

엘리안이 펜을 든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이미 조교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단순한 과제 배부나 출석 확인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엘의 어조는 결연했다.

"학부에서는 앞으로도 강사님의 수업을 흔들기 위해 온갖 규정과 권위를 들이댈 것입니다. 베르나르 수석교수는 물론이고 제국 마법 학회의 압박도 들어올 것입니다."

그녀는 교탁 옆에 봉인된 기록 서랍을 가리켰다.

"저는 라인하르트 백작가의 적통이자 이번 학기 전체 수석입니다. 제가 학칙에 따른 공식 전담 조교로 등록되어 있다면 학부에서도 함부로 기록을 탈취하거나 수업을 일방적으로 폐강시키지 못합니다. 제가 강사님의 수업을 지키는 방패가 되겠습니다."

엘리안은 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귀족 영애의 거창한 선언이었지만 그 눈빛에 담긴 것은 권력욕이나 공명심이 아니었다. 참된 학문을 발견한 자만이 품을 수 있는 순수한 갈망과 경외였다.

"조교 일은 귀찮다."

엘리안이 무심하게 말했다.

"성적 처리 기간에는 밤을 새워야 하고 낙제점을 받은 학생들의 원망도 네가 먼저 듣게 된다. 내 수업에서 요행은 통하지 않으니 욕을 먹을 일만 남을 텐데."

"상관없습니다."

시엘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 강의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진짜 마법이니까요. 낙제할 자에게 낙제를 주는 것은 학문의 기본입니다."

엘리안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는 펜을 들어 서약서 하단의 담당 교원 서명란에 단정하게 이름을 적어 넣었다.

엘리안 폰 로젠크로이츠.

"내일부터 실습실 마력 측정구의 영점 조절도 네 담당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시엘이 서류를 가슴에 품으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시각, 마법학부 본관 최상층의 수석교수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 뒤에 앉은 베르나르 교수가 펠릭스의 보고를 듣고 차갑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물이 튀어 탁자 위의 서류를 적셨다.

"라인하르트 영애가 그자의 조교를 자처하며 기록 이관을 거부했다고?"

"예, 교수님. 학칙을 내세우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베르나르의 눈에 서늘한 노기가 번뜩였다.

"교양 임시 강사 따위가 감히 내 교재를 모욕하고 학부의 수석 학생까지 홀려놓다니……."

베르나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두고 볼 수 없겠군. 다음 수업 시간, 내가 직접 그 교양 강의실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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