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12화: 1클래스로 5클래스를 베다
아스테리아 아카데미 대강당의 아침 공기는 팽팽했다.
교양 101 수강생 스물두 명뿐 아니라 소문을 듣고 몰려든 학부 전공생들과 교수진 수십 명이 관중석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단상 중앙에는 사흘 전 공식 검증회에서 사용했던 검증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형 둘레에는 마력의 흐름과 소모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은빛 측정구 네 개가 푸른빛을 은은하게 머금은 채 대기했다.
시엘 라인하르트는 흰 장갑을 낀 단정한 손길로 측정구의 영점을 맞추었다.
기록관 세 명이 시엘의 곁에 서서 봉인 번호와 금속 고리의 결착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
"네 개 측정구 모두 영점 조정 완료되었습니다. 외부 마력 유입 흔적은 없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원본 기록지에 서명해 주십시오."
시엘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단상 한편에 선 베르나르 하르트만 교수는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빛으로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흐름을 읽어 반쇄한다라. 말은 참 그럴듯하군. 하지만 5클래스 관통창의 파동을 마주하는 순간 애송이들은 손목부터 부러질 거요. 기초 수련도 거치지 않은 학부 저학년들이 불씨 하나로 고위 마법을 베어 넘기겠다니 오만을 넘어선 광기요."
엘리안은 교탁에 기대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광기인지 학문적 진실인지는 잠시 후 기록이 증명할 겁니다."
베르나르의 입가가 비틀렸으나 엘리안은 더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잔뜩 굳어 있는 두 학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레온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고 헤이든은 전완부를 연신 문지르고 있었다.
엘리안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머릿속으로 공식을 암기하려 애쓰지 마라. 눈앞에 나타날 관통창은 화려한 창이 아니라 비틀린 실타래일 뿐이다. 너희 몸이 기억하는 길만 보아라."
헤이든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넷째 박자 직전에 손가락을 펴겠습니다."
"그래. 억지로 잡으려 하지 마라. 손을 펴고 힘을 빼야 비로소 길이 열린다."
엘리안의 시선이 레온에게 닿았다.
"레온. 너는 셋째 숨 끝을 기억해라. 마력을 억지로 쥐어짜지 말고 흐름이 손목을 지날 때까지 기다려라."
"명심하겠습니다, 강사님."
수석 기록관이 단상 중앙으로 걸어 나와 묵직한 놋쇠 징을 울렸다.
댕―!
맑고 묵직한 울림이 대강당 전체를 휘감았다. 웅성거리던 관중석이 순식간에 숨을 죽였다.
"기초 공식의 학생 재현 시험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시연자는 헤이든 발몬트 학생입니다."
헤이든이 검증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관중석 곳곳에서 귀족 전공생들의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발몬트 백작가의 삼남이잖아?"
"저 녀석 표준식 연습하다가 팔 근육이 상해서 휴학까지 고민하던 녀석인데."
"저런 녀석이 1클래스로 5클래스를 막겠다고?"
헤이든은 소음을 털어내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검증진 맞은편에 설치된 대형 마도 투사구에서 푸른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베르나르가 편찬한 제국 표준 마법학 개론서에 수록된 5클래스 관통창의 재현 진형이었다.
초기 마력량은 정확히 41단위.
첫 박자에 마력이 거칠게 응축되었고 둘째 박자에 세 겹의 외곽 회전 고리가 솟구쳤다. 셋째 박자에 이르자 날카로운 냉기를 머금은 거대한 마력의 창끝이 헤이든의 정면을 겨누었다.
5클래스 고위 마법이 내뿜는 묵직한 영압이 검증진 내부의 공기를 짓눌렀다.
헤이든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넷째 박자에서 억지로 방향을 틀기 위해 손목과 전완부에 온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타는 듯한 경련과 함께 마력이 역류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넷째 박자 전에 손을 편다.'
헤이든은 엘리안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쥐고 있던 다섯 손가락을 가볍게 폈다. 팔에 깃들어 있던 경직을 털어내고 힘을 완전히 뺐다.
우웅―!
관통창이 전진하며 넷째 박자에 접어드는 순간 중심축이 억지로 비틀렸다. 거대한 진형 외곽이 휘청거렸고 다섯째 보정 고리가 튀어나와 흔들림을 억지로 짓누르려 들었다.
마치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균열.
'보인다.'
헤이든의 손끝에서 조그마한 붉은 불씨 하나가 피어올랐다.
마력 측정구에 찍힌 수치는 고작 1.1단위.
헤이든은 불씨를 관통창의 창날로 던지지 않았다. 넷째 박자의 비틀림과 다섯째 보정 고리가 억지로 충돌하며 생겨난 좁은 틈새로 불씨를 미끄러뜨렸다.
치지직!
붉은 불씨가 틈새에 닿는 순간 관통창의 회전 고리들이 거친 마찰음을 뿜어냈다.
관통창 스스로가 억누르고 있던 마력의 모순이 불씨라는 작은 쐐기를 만나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쩌정!
마치 유리 기둥에 금이 가듯 관통창의 중심축이 두 동강 났다. 한쪽 축을 잃은 마력 고리들이 서로를 사납게 들이받으며 허공에서 허물어졌다.
거대한 5클래스 마법이 소리도 없이 바스라지며 안전 결계의 바닥으로 푸른 마력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정적.
대강당 전체가 차가운 물속에 잠긴 듯 고요해졌다.
측정구의 숫자가 멈추어 섰다.
[관통창 궤적 완전 소멸.]
[헤이든 발몬트 소모 마력: 1.1단위.]
[외부 아티팩트 반응: 없음.]
헤이든은 떨리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매일 밤 그를 괴롭히던 전완부의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해냈어. 정말로 부러뜨렸어."
"말도 안 돼!"
베르나르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연이다! 발몬트 가문의 화염 친화력 때문에 운 좋게 빗맞았을 뿐이야! 저건 공식의 재현이 아니다!"
엘리안이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달칵.
"요행인지 아닌지는 두 번째 시험을 보면 알겠지요."
엘리안이 무심하게 손짓했다.
"다음 수강생 나오너라."
레온 카터가 검증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평민 출신 열등생. 입학 첫 달부터 마력 조절 실패로 퇴학 경고장을 받았던 소년.
귀족 전공생들 사이에서 비웃음 섞인 웅성거림이 번졌다.
"헤이든은 혈통이라도 있는 귀족이지만 레온 저 녀석은 마력 적응도 최하위잖아."
"저런 녀석이 5클래스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베르나르가 투사구 조작대 앞으로 다가섰다.
"우연은 두 번 반복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실전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
베르나르가 레버를 거칠게 밀어 올렸다.
"초기 마력량 45단위. 보정 고리의 회전 속도를 1.5배로 올리고 외곽 결계를 두 겹으로 보강했다. 이것도 그 빌어먹을 요행으로 뚫어보아라!"
시엘이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하르트만 교수님. 사전에 합의된 검증 기준을 독단으로 변경하는 것은 규정 위반입니다."
"원리가 완벽하다면 조건이 바뀌어도 재현되어야 마땅하지!"
베르나르가 억지를 부릴 때 레온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조교님."
레온의 시선은 투사구를 향해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더 커져도 상관없습니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마력을 힘으로 억누를수록 틈새는 더 벌어질 뿐이니까요."
엘리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배운 대로 해라."
투사구에서 뿜어져 나온 관통창은 이전보다 훨씬 거대했다. 45단위의 고농축 마력이 휘몰아치며 대강당 바닥의 석판을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푸른 창끝이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레온의 이마를 스쳤다.
첫 박자.
둘째 박자.
회전 고리가 맹렬한 속도로 돌며 셋째 박자를 지나갔다. 보정 고리를 억지로 덧댄 탓에 마력 순환선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레온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의 손목 기록을 수백 번 넘게 들여다보았다. 잘못된 공식에 매달려 손목이 타들어 가던 고통스러운 기억은 이제 가장 선명한 이정표가 되어 있었다.
'불씨를 모은다.'
레온은 셋째 숨의 끝자락에서 손목의 긴장을 완벽하게 풀었다. 마력을 쥐어짜지 않고 호흡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겼다.
손바닥 위에 맑고 투명한 백청색 불씨가 피어올랐다.
'흐름을 잇는다.'
불씨를 앞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길목을 따라 불씨를 가만히 얹었다.
넷째 박자가 시작되며 관통창의 축이 억지로 꺾였다. 뒤이어 과잉 보정 고리들이 그 꺾임을 덮기 위해 맹렬하게 짓누르고 들어왔다.
두 개의 힘이 부딪히며 생겨난 거대한 공동(空洞).
'형태를 고정한다.'
레온의 손끝을 떠난 백청색 불씨가 비틀린 마력의 정중앙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쩌저적!
관통창의 축 하나가 부러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45단위로 팽창한 마력의 핵 자체가 스스로의 과잉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갔다.
콰아아앙!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이 대강당을 하얗게 뒤덮었다.
관통창을 이루던 모든 고리와 공식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며 안전 결계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휘몰아치던 마력의 폭풍이 거짓말처럼 멎고 잔잔한 온기만이 감돌았다.
스르륵.
측정구의 푸른 바늘이 바닥을 치며 최종 수치를 띄웠다.
[5클래스 관통창 완전 해체 및 소멸.]
[레온 카터 소모 마력: 1.0단위.]
[마력 전환 효율: 99.8%.]
[마력 역류 수치: 0.]
적막이었다.
대강당에 모인 수백 명의 학생과 교수진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단상 위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레온과 허공에 흩날리는 백청색 마력 가루만이 남아 있었다.
탁.
수석 기록관의 손에서 힘없이 깃펜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기록관은 떨리는 눈으로 측정구의 수치와 검증진 바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완전 해체."
기록관의 입술 사이로 멍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1클래스 기초 불씨 1단위로 45단위의 5클래스 고위 마법을 완전히 분해했습니다. 외부 결계나 아티팩트의 개입은 일절 없었습니다. 술자의 마력 역류 수치 역시 제로입니다."
관중석 맨 뒷줄에서 누군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 작은 소리를 시작으로 억눌려 있던 충격이 대강당 전체를 뒤흔들었다.
"말도 안 돼…… 방금 뭘 본 거지?"
"1클래스 불씨로 5클래스를 베어버렸다고? 그것도 입학 성적 꼴찌였던 레온이?"
"헤이든뿐 아니라 레온까지 해냈잖아! 이건 요행이 아니야!"
"대체 교양 101에서 뭘 가르친 거야? 저게 정말 기초 교양 수업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경악과 전율이 뒤섞인 비명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교양 101 수강생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를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칠판 앞에서 밤새 씨름했던 세 줄 공식이 마침내 기득권 학회의 오만한 상식을 완벽하게 깨부순 순간이었다.
베르나르의 얼굴은 핏기를 잃고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건…… 이건 사기다! 저따위 하급생들이 내 마법을 깰 리가 없어!"
베르나르가 단상으로 난입하려 했다.
시엘이 앞을 가로막아서며 서류철을 그의 가슴팍에 단호하게 들이밀었다.
"하르트만 교수님. 추태를 멈추십시오."
시엘의 루비빛 눈동자가 서릿발처럼 차갑게 빛났다.
"측정구의 봉인은 교수님이 직접 확인하셨고 투사구의 마력을 45단위로 올린 것 역시 교수님이셨습니다. 이 결과마저 사기라 부르신다면 교수님께서 자신의 5클래스 마법이 사기였음을 자백하시는 꼴입니다."
"너…… 감히……!"
"학칙 제31조에 따라 검증 결과에 대한 물리적 방해는 교원 자격 정지 사유에 해당합니다."
시엘의 단호한 경고에 베르나르는 턱을 덜덜 떨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뒤에 서 있던 펠릭스는 이미 낯빛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수석 기록관이 단상 앞으로 나섰다.
쾅―!
검증 보고서 마지막 장에 선명한 인장이 찍혔다.
"학부 검증위원회 최종 의결. 교양 101 엘리안 강사의 정통 공식 및 붕괴점 반쇄 원리는 학생 재현성을 완벽하게 충족함. 따라서 본 공식의 학문적 유효성을 아카데미 공식 기록으로 공인한다."
수석 기록관의 엄중한 선언이 장내를 울렸다.
엘리안은 품에서 출석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레온과 헤이든의 이름 옆에 굵은 체크 표시를 남겼다.
"실습 과제 합격이다. 다음 주 수업 전까지 오늘의 붕괴점 관찰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예! 강사님!"
헤이든과 레온이 벅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엘리안은 가볍게 찻잔을 챙겨 들고 뒤를 돌아 강당 출구로 걸어 나갔다.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백 명의 전공생들과 교수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일제히 양옆으로 길을 터주었다. 비웃음과 멸시가 머물렀던 자리에 깊은 경외와 전율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스테리아 아카데미 교무처 앞 복도는 교양 101의 수강 신청 취소표를 구하려는 수백 명의 학생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마비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