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계절을 적는 사관

2화: 사라진 겨울 연호
연호판의 겨울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다. 다른 계절의 청동판이 덮고 있었다. 차은설은 장악관 정수익이 열쇠 두 개를 돌리는 동안 판 사이의 얇은 틈을 봤다. 네 계절을 잇는 홈은 열두 칸인데 겉면의 달력은 아홉 칸뿐이었다. 겨울 셋이 봄의 첫째 칸 아래에 겹쳐져 있었다.
“겨울 날짜가 모두 봄이 됩니까?”
은설이 물었다. 정수익은 새로운 연호의 시작일로 재분류한다고 답했다. 해마다 쓰던 조작과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관측관 민유경은 그가 열쇠를 놓은 뒤 어느 판을 움직였는지 직접 보자고 했다.
관리인은 겨울판을 꺼내려면 다른 날짜도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장부의 거래 시각이 다시 바뀌어 돈을 두 번 내거나 아직 내지 않은 사람이 낸 것으로 표시될 위험이 있었다. 은설은 지금 당장 돌려놓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원기록의 대응표를 먼저 만들겠다는 요청이었다.
“그 표가 또 다른 달력으로 퍼지면?”
정수익이 물었다.
“두 날짜를 함께 적겠습니다. 어느 것이 왕실 달력인지도 쓰고요.”
그는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왕실 달력을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막으려면 실제 날짜와 다르다는 사실부터 부정해야 했다. 그러나 눈이 쌓인 창문이 방 안에서 보였다. 유경은 개인 관측책을 가져와 기온과 강설량을 나란히 놓았다.
겨울곡표의 첫 날짜는 공식 봄 첫 달의 사흘과 대응했다. 그날 관측실의 물이 처음 얼었고 창고에서 장작을 많이 썼다. 다음 날짜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 곡물 운반을 하루 멈췄다. 공식 창고 장부에는 모두 봄이라고 적혔다. 겨울 구휼은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은설은 눈사람 속 사본을 함에서 꺼냈다. 겨울 날짜가 남아 있었고 마을마다 보내야 할 곡물의 양이 적혔다. 실제 운송했다는 표시는 없었다. 부친은 지급해야 하는 양과 지급한 양을 구별했다. 사본만 보면 곡물이 남은 것 같았으나 공식 장부에는 같은 양이 전쟁 창고로 갔다고 적혔다.
“겨울 구휼이 없었으니 남는 곡식입니다.”
정수익이 말했다. 유경은 그 해석이 날짜를 먼저 바꾼 뒤에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마을은 추웠고 수확도 끝났다. 봄이라고 분류해도 씨를 뿌릴 땅이 열리지 않았다. 겨울의 식량이 부족한 상태는 그대로였다.
은설은 전쟁 창고를 확인하자고 했다. 장악관은 사관이 군량을 직접 볼 권한이 없다고 했다. 책임 사관 안문창이 그때 들어왔다. 그는 관련 기록을 대조할 요청을 승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직함을 내세웠으나 먼저 은설에게 한 줄을 빼라고 했다.
‘겨울을 지워 곡물을 옮겼다.’
그 문장은 아직 의도를 단정했다. 날짜 변경 뒤 구휼이 중지되고 곡물이 전쟁 창고로 옮겨졌다는 관측까지만 확인됐다. 은설은 그 지적을 받아 문장을 고쳤다. 장악관이 나쁜 의도를 가졌으리라는 분노와 문서로 증명할 내용은 달랐다.
안문창은 수정된 요청에 서명했다. 자신도 겨울판을 덮는 명을 승인했던 사람이라 은설을 돕는 일이 편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 창고 확인에 직접 동행하겠다고 했다. 기록을 읽는 사람이 현장에 가지 않으면 다시 장부끼리만 맞는 결론이 나왔다.
전쟁 창고의 문은 궁궐 밖으로 이어졌다. 군량 수레가 들어가는 마당에는 눈이 덜 쌓였다. 사람들이 계속 다녔다는 흔적이었다. 복동은 멀리 정원의 담 위에서 그들을 봤다. 은설은 아이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함을 전달한 역할은 끝났다. 군량 출납을 증명하는 책임까지 아이에게 줄 수 없었다.
창고지기는 공식 장부를 가져왔다. 날짜는 봄이었다. 유경이 실제 관측일을 읽어 주자 그는 그날 눈이 많이 와 수레의 바퀴가 꺼졌다고 기억했다. 짐을 갈아 실으면서 품삯을 두 배로 받은 운반자가 있었다. 장부 밖의 노동이 날짜를 확인할 단서가 됐다.
은설은 그 운반자의 정산표를 보자고 했다. 창고지기는 자기가 보관한다고 했다. 동기인이 없는 작은 종이였다. 겨울 날짜가 남았고 수레 두 대의 곡물 수량이 적혔다. 공식 장부의 수량보다 한 대분이 적었다.
나머지 한 대는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창고지기는 중간에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정수익의 표를 받은 수레가 왕실의 남쪽 저장고로 갔다. 전쟁 창고로 모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은설은 그 사실을 진술로 적고 창고지기에게 읽어 줬다. 그가 바로 손도장을 찍으려 하자 먼저 위험을 설명했다.
“이 기록에 이름이 남으면 다시 확인받을 수 있습니다. 혼자 조사받지 않게 책임 사관이 요청할 것입니다.”
창고지기는 자신이 잘못된 수량을 받았다는 죄가 되는지 물었다. 안문창은 적은 물건을 적게 받았다고 기록한 일은 문제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공식 장부에는 두 대를 받은 것으로 찍혀 있으니 정정이 필요했다. 그 정정은 사관이 함께 증언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창고지기에게 책임을 모두 넘기지 않았다. 장악관의 출고표와 실제 수령, 정산표를 각각 남겼다. 곡물의 양은 맞춰지지 않았다. 날짜를 고치기 전에 그 양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야 했다.
왕실 남쪽 저장고는 연호판 보관실과 가까웠다. 관리인은 새 연호의 경사에 쓸 잔치 곡식이라 했다. 봄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음식이었다. 은설은 땅은 얼었고 마을은 겨울 식량을 기다리는 동안 궁에서는 봄의 잔치를 준비하고 있음을 보았다.
정수익이 저장고에서 기다렸다. 그가 내민 표에는 겨울 구휼과 잔치 곡식의 양이 따로 적혔다. 그러나 출고의 날짜는 같은 봄 첫 달이었다. 은설은 겹친 두 거래를 원래 날짜로 나눠 달라고 했다. 한쪽은 겨울 구휼 예정일이고 다른 쪽은 연호 승인 뒤였다.
“왕의 명으로 바뀐 날을 다시 쓰려는가?”
그는 아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은설은 이미 두 날짜를 함께 쓰겠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관측뿐 아니라 수레의 정산표도 있었다. 날짜를 하나로 합치면 서로 다른 거래가 한 번으로 보였다. 그 혼란을 바로잡는 일이 왕의 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수익은 아버지 차도운도 같은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은설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는 부친이 연호판을 훔쳐 고치려 했다는 죄목을 덧붙였다. 이름이 사관 명부에서 지워진 이유라고 했다.
“기록을 보여 주십시오.”
은설은 목소리를 낮췄다. 부친은 판을 훔치려 했을 수도 있었다. 그 가능성을 이유 없이 부정하면 장악관은 딸의 편견으로 모든 증거를 밀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실제 죄목과 심문 기록, 이송 날짜를 요구했다.
안문창은 공식 명부에 없는 사관의 죄목을 자신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름을 지우는 것은 날짜 동기화의 기능이 아니었다. 누군가 따로 긁었다. 그는 정수익에게 명부 원본을 가져오라 했다. 그때 장악관의 손목에 달린 열쇠 두 개가 다시 부딪쳤다.
은설은 연호판 열쇠와 저장고 열쇠가 같은 손에 있음을 보았다. 날짜를 바꾸는 권한과 그 날짜에 나갈 곡식을 정하는 권한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둘이 따로 확인하지 않았기에 겨울이 없다는 명으로 식량도 없는 것이 됐다.
정수익은 명부를 오늘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보관 담당자가 퇴청했다는 이유였다. 안문창은 새 실록의 책임자로 보관함을 열 수 있었다. 그는 은설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장악관은 막지 못했지만 창고지기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려고 서리를 보냈다.
유경은 먼저 전쟁 창고로 돌아가겠다 했다. 은설은 그녀에게 창고지기가 혼자 조사받지 않도록 관측실에서 보호 확인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이 각자 길을 나눴다. 은설은 모든 증거를 자기 품에 모으는 대신 함께 본 사람이 자신이 맡을 기록을 지키게 했다.
명부 보관실에는 봄 달력 아래 오래된 목재함이 있었다. 안문창이 함을 열고 은설에게 사관 명단을 펼쳐 줬다. 임금이 바뀌며 여러 이름이 지워지거나 옮겨졌다. 그러나 긁힌 흔적은 한 칸에만 있었다. 붓으로 줄을 그은 것도 아니고 날짜가 바뀐 것도 아니었다.
차도운이 있던 자리를 작은 칼로 긁고 새 종이를 붙였다. 새 종이에는 공석이라고 적혔다. 은설은 붙인 종이를 바로 떼지 않았다. 뜯으면 아래의 글씨도 따라 사라질 수 있었다. 유경에게서 배운 대로 비스듬한 빛을 대고 가장자리의 획을 읽었다.
차, 도. 마지막 글자의 일부가 남았다. 은설은 자기 기억으로 나머지를 채워 쓰지 않았다. 흔적 그대로 별도 종이에 그렸다. 안문창이 자신이 승인했던 명단에도 부친의 이름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말과 실제 남은 획이 함께 이름을 복원할 근거가 됐다.
“나는 날짜를 바꾸는 명에만 동의했다.”
안문창이 말했다. 은설은 그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질문했다.
“겨울 구휼이 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셨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름 삭제를 모르던 책임 사관도 날짜 조작의 결과를 확인하지 않은 책임은 있었다. 은설은 그의 승인을 오늘 기록에 넣었다. 부친의 이름만 되찾고 승인한 사람들을 지우는 새로운 명부를 만들지 않았다.
함의 바닥에 이송표 한 장이 있었다. 부친의 이름이 아니라 사관 한 명이라고 적혔다. 목적지는 북쪽 기록 보관소. 날짜는 봄이었다. 실제 겨울 관측과 맞추면 눈사람의 함을 맡긴 뒤 사흘이었다. 은설은 표를 보며 부친이 기록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녀는 이송표를 원래 함에 남기고 책임 사관에게 사본을 승인하게 했다. 내일 공개 검증 자리에서는 겨울 구휼뿐 아니라 이름을 지운 사람이 누구인지도 물어야 했다. 봄 날짜가 아버지의 행방을 막았지만, 그 날짜를 실제 겨울에 맞추자 다음 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