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계절을 적는 사관

1화: 봄날의 눈사람
실록 초고에는 봄이라 적혔다. 차은설은 그 두 글자를 옮기고 붓을 놓았다. 잉크를 담은 종지 가장자리에 얼음이 얇게 붙어 있었다. 방 안에서도 입김이 났다. 그녀는 봄의 이상 한파라고 써야 할지, 날짜를 다시 확인해야 할지 고민했다.
책상 위 관청 달력은 신연호의 봄 첫 달을 가리켰다. 열흘 전 달력에는 겨울 셋째 달이었다. 왕실의 연호판이 새 달력을 동기화하면 관청 장부의 날짜가 바뀌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새 임금의 연호로 옛 거래를 표시할 때도 실제 시간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이어져야 할 겨울의 칸이 보이지 않았다.
은설은 개인 수첩을 꺼냈다. 관청의 동기인이 없는 작은 수첩이었다. 겨울이라고 쓴 날짜 아래에 아버지가 집을 나간 시각이 있었다. 두 달 전이었다. 공식 달력으로 맞추면 늦가을이 됐다. 그녀는 그 날짜를 고치지 않았다.
책임 사관 안문창이 들어와 초고를 확인했다. 그는 한파라는 말을 빼라고 했다. 봄을 시작하라는 왕의 명이 내려왔으니 축복의 문장으로 써야 했다. 눈이 내려도 매화가 피기 위한 준비라는 식으로 적으라는 말이었다.
“기온은 어떻게 적습니까?”
은설이 물었다.
“관측관이 적는 수치를 옮겨라. 계절은 달력대로 하고.”
그는 나쁜 기록을 만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업무의 경계를 나누라는 태도였다. 사관은 날씨를 측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씨의 뜻을 달력이 먼저 정하면 사실은 계속 달력 뒤에 섰다. 은설은 계절과 관측을 별도 칸에 적겠다고 했다.
뒤뜰에서 아이의 웃음이 났다. 봄의 꽃을 돌보는 정원사 견습이 눈을 굴리고 있었다. 은설이 창으로 보자 큰 눈덩이 위에 작은 눈덩이가 올라갔다. 눈사람이었다. 눈을 치우라는 명이 내려왔는데 아이는 치우는 대신 사람 모양으로 모았다.
그녀는 두루마기를 걸치고 뒤뜰로 나갔다. 견습 복동이 모자 끝의 얼음을 털었다. 은설을 보고 눈사람을 가리려 했지만 너무 컸다. 눈덩이 하나가 그의 허리보다 높았다.
“치우는 중입니다.”
아이가 말했다.
“사람을 만드는 중 같은데.”
“마당의 눈을 한곳에 모으면 치운 겁니다.”
은설은 웃지 않으려 입술을 눌렀다. 복동은 눈사람의 팔로 가지 두 개를 꽂았다. 열매가 달렸던 흔적은 없고 꺾인 매화 가지의 끝만 얼었다. 그는 은설이 무슨 계절인지 묻자 겨울이라고 답했다. 관리인이 뒤쪽에서 봄이라고 크게 고쳤다.
복동은 고개를 숙였지만 눈사람을 부수지 않았다. 관리인은 곧 정수익 장악관이 지나가니 치우라고 했다. 봄 연호가 시작된 궁 안에 겨울의 상징이 있으면 무례하다는 이유였다. 은설은 눈사람을 관측 대상으로 남기자고 말했다. 기온이 얼마나 오래 낮은지 볼 수 있었다.
“눈 한 덩이로 관측을 합니까?”
“녹는 시각은 적을 수 있습니다.”
관리인은 허락을 받아 오라고 했다. 은설은 복동에게 그동안 가지를 더 꽂지 말라고 하고 관측실로 갔다. 민유경이 얼어붙은 물결 온도자를 데우는 중이었다. 손으로 데우면 수치가 달라지므로 난로와 충분히 떨어진 곳에 놓고 기다렸다.
유경은 눈사람을 남겨도 되겠느냐는 요청을 듣고 직접 보러 가자고 했다. 관측실 기록의 날짜도 봄이었다. 그러나 관측한 눈의 두께와 물이 얼기 시작한 높이는 지난 겨울과 비슷했다. 그녀는 기록의 제목을 '봄의 한파'로 바꾸라는 명을 거부한 상태였다.
“온도에 계절 이름을 붙일 수는 있어. 온도 자체를 다르게 적으라는 건 아니잖아.”
유경이 말했다. 은설은 한쪽만 바뀌어도 그 숫자를 읽는 사람이 다르게 이해한다고 답했다. 겨울이면 창고에서 장작을 주는데 봄이면 같은 추위에도 장작을 적게 줬다. 실제로 사관방의 연료가 줄어 얼음이 종지에 붙었다.
두 사람이 뒤뜰로 돌아오니 복동이 눈사람 앞에 서 있었다. 관리인 둘이 삽으로 아래 눈덩이를 자르려 했다. 아이는 눈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쪽을 받쳤다. 은설은 삽을 잠깐 멈추라고 했다.
“왜 그 부분을 막니?”
복동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경이 다른 쪽 눈을 조금 걷어 내부를 보자 작은 나무함이 나타났다. 눈사람 속에 숨긴 물건이었다. 관리인은 아이가 물건을 훔쳤다고 외쳤다. 은설은 함이 누구의 것인지 아이에게 먼저 물었다.
복동은 차도운이라는 이름을 말했다.
은설의 손이 눈에 멎었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그가 집을 나간 날 이후 관청에서는 부친을 옛 사관이라 불렀고 명부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은설은 복동에게 지금 그 이름을 더 크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의 물건을 찾았다는 기쁨보다 아이가 표적이 될 위험이 먼저 보였다.
“언제 받았니?”
“눈 오기 전날입니다. 한겨울 되면 사관님께 드리라 했습니다.”
복동은 겨울이 왔다고 생각해 함을 꺼내려 했으나 달력에서는 봄이 됐다고 설명했다. 겨울에 주라는 약속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 안에 넣어 둔 것이다. 부친이 숨기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함을 지키면서 날짜가 오기를 기다렸다.
은설은 관리인에게 아이가 받은 물건을 자신이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름과 시각을 수첩에 적었다. 누구도 보지 않았다고 숨기면 나중에 복동만 함을 감췄다는 죄가 됐다. 유경도 입회인으로 서명했다.
함에는 얇은 종이 묶음이 있었다. 겨울 구휼 창고의 출납표 사본이었다. 날짜는 모두 겨울이라고 적혔고 공식 장부의 봄과 대응했다. 부친은 날짜를 옮기지 않고 원래 관측을 남겼다. 마지막 장에는 작은 네모들이 그려졌고 각 네모 안에 창고에서 나간 곡물의 양이 있었다.
은설은 아버지의 글씨를 손끝으로 만지지 않았다. 눈에 젖은 종이는 쉽게 찢어졌다. 그녀는 함을 관측실로 가져가 바닥에 펼치고, 멀리 둔 난로의 온기로 천천히 말렸다. 복동도 함께 왔다. 아이가 혼자 조사받지 않게 유경이 따뜻한 물을 줬다.
정수익이 관측실을 찾았다. 손목의 청동 열쇠가 부딪쳐 짧은 소리가 났다. 그는 새 달력과 다른 날짜를 적은 문서는 잘못된 사본이라며 연호판에 등록해서 고치라고 했다. 은설은 날짜를 고치기 전에 원기록을 보존하겠다고 답했다.
“왕이 정한 봄을 거부하는 것이냐?”
“왕이 정한 날짜와 제가 본 눈을 함께 적는 것입니다.”
정수익이 새 관청 종이 한 장을 상에 놓았다. 동기인이 찍힌 종이였다. 은설이 개인 수첩에서 겨울 날짜를 그대로 옮기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계절의 글자가 흩어졌다. 작은 검은 점들이 모여 봄이라는 글자가 됐다. 옆에 적은 눈의 두께는 바뀌지 않았다. 유경이 같은 내용을 도장 없는 종이에 적었다. 그쪽의 겨울은 그대로 남았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지, 눈을 치우는 것은 아닙니다.”
은설은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장악관은 그 차이를 알고도 한쪽 종이만 실록으로 옮기라고 하고 있었다.
그는 눈사람은 봄에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사람 하나만으로 계절을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열흘 동안의 기온과 장작 배분, 겨울 창고의 출납표가 모두 같은 날짜를 다르게 가리켰다. 그 모순을 확인해야 했다.
정수익은 사본의 출처를 물었다. 복동의 손이 물잔에서 멎었다. 은설은 자신이 함을 받아 확인했고 유경이 입회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내용을 알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정수익은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며 그가 잘못된 연호를 고집했다고 말했다.
“그분의 기록이 틀렸다면 원기록과 대조해 주십시오.”
은설이 요청했다. 장악관은 내일 연호판을 열 때 확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사본은 오늘 가져가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경은 아직 젖어 있어 이동하면 찢어진다고 막았다. 보존하는 관측실의 책임을 내보였다. 정수익은 문을 나가며 관리인을 남겼다. 증거도 아이도 혼자 두지 않겠다는 감시였다.
은설은 복동에게 함을 누구에게 주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다시 물었다. 아이는 ‘추운 것을 추우다고 적는 사관에게’라는 말이었다고 답했다. 특정 이름이 아니었다. 부친은 딸에게만 기록을 맡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실제 겨울을 보기를 기다렸다.
“제가 잘못 준 겁니까?”
복동이 물었다.
“네가 준 사람은 지금 그 기록을 읽고 있어. 잘못 준 것은 아니야.”
은설은 아이에게 함을 감춘 사실로 조사받을 때 혼자 말하지 말라고 했다. 유경과 자신이 같이 받은 경위를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복동은 다음에는 눈사람에 함을 안 넣겠다고 말했다. 유경은 눈사람은 새로 만들어도 된다고 답했다. 물건을 숨기기보다 녹는 시각을 보자고 했다.
저녁에 책임 사관이 왔다. 은설이 초고에 봄과 눈을 함께 적었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그는 실록에 한 줄을 올리면 그 줄에 관계된 사람이 불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리인이 함을 본 사실까지 적으면 아이가 증인이 됐다.
은설은 실록 초고를 바로 완성하지 않았다. 먼저 관측실의 보존 문서로 작성해 입회인과 함을 받은 경위를 남겼다. 실록에는 아직 확인할 기록이라고 적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한 번 복원하려 다른 사람의 안전을 건너뛰지 않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나간 뒤 그녀는 겨울곡표의 마지막 장을 뒤집었다. 부친이 그린 네모들이 날짜의 빈칸과 맞아떨어졌다. 열두 칸이어야 할 공식 달력에는 아홉 칸만 있었다. 빠진 셋은 겨울이었다.
은설은 개인 수첩에 그 세 칸을 다시 그렸다. 오늘의 눈사람이 녹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관청이 봄이라고 적은 날에도 부친의 함은 겨울의 문서를 담고 있었다. 내일 연호판의 빈 홈을 직접 보면, 누가 그 겨울을 어디로 옮겼는지 물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