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 공학자의 전설 무기 공방

4화: 검은 가루가 남긴 길
새벽이 오기 전까지 이안은 배수관을 자르지 않았다.
작업대 위에는 이음매 없는 관 두 자루와 마석 분쇄 찌꺼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문밖에서 쓸려 들어온 검은 가루는 낡은 천 위에 얇게 펼쳐졌다.
마라는 화덕 옆에서 하품을 삼켰다.
“그냥 말리면 안 돼요? 젖은 가루는 값도 못 받는다고 했잖아요.”
“말리는 것과 쓰는 건 달라.”
이안은 가루를 세 무더기로 나누었다. 하나는 그대로 두고 하나는 물에 적셨다. 마지막 무더기는 작은 철판 위에 올려 화덕 가장자리에 놓았다.
“마른 상태와 젖은 상태를 따로 봐야 해. 점화 재료로 쓸 수 있는지는 그다음에 생각한다.”
“아직 약실도 없잖아요.”
“그래서 더 위험해.”
철판 위의 가루가 서서히 말랐다. 회색 결정 조각은 가장자리부터 바스러졌지만 검은 점이 섞인 부분은 마르지 않고 서로 달라붙었다.
이안은 쇠막대 끝으로 덩어리를 건드렸다.
툭.
겉은 굳었지만 안쪽은 질척했다. 막대 끝에는 검은 얼룩이 남았다.
“이 부분은 쓰지 않아요?”
“섞인 상태로는 못 써. 한쪽에서 먼저 반응하면 압력이 틀어진 방향으로 튄다.”
마라는 가루를 고글 너머로 노려보았다.
“그럼 검은 점만 골라내면 되죠?”
“골라낼 수 있으면.”
이안은 작은 체를 내밀었다. 마라가 가루를 부드럽게 흔들자 가는 분말과 결정 조각이 나뉘었다. 검은 입자는 체 아래로 빠져나와 한곳에 모였다.
이안은 손가락 대신 천 조각으로 입자를 밀었다. 일반 녹가루라면 천에 거칠게 달라붙어야 했다. 그러나 검은 입자는 천을 따라 미끄러지다가 마석 조각 가까이에서 멈췄다.
“철가루인데 움직였어요.”
“철은 맞아. 평범한 철가루는 아니고.”
그는 배수관 한 자루의 끝을 조금 갈아 냈다. 절단면에는 붉은 얼룩과 검은 점이 층처럼 나뉘어 있었다. 다른 관은 잿빛이 고르게 이어졌다.
“두 관도 같은 철이 아니에요?”
“겉은 녹으로 덮였지만 안쪽의 흔적이 달라. 하나는 불순물이 한쪽에 몰렸고 다른 하나는 고르게 섞였어.”
“그게 무기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요?”
“압력을 받으면 찢어지는 방향이 달라져.”
이안은 얇은 철사에 숯가루를 묻혀 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사를 빼자 검은 선이 관의 가운데에서만 길게 이어졌다.
그 순간 작업대 아래에서 웅 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마라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들었어요?”
이안은 관을 들어 올렸다. 울림은 사라져 있었다. 작업대 아래에는 오래된 재와 나무 쐐기만 보였다.
문밖에서 자갈을 밟는 소리가 났다.
마라가 재빨리 불을 낮췄다. 이안은 검은 가루를 서랍에 넣었다. 문틈 아래로 가느다란 검은 선이 들어와 있었다. 누군가 신발을 끌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또 왔어요.”
“누군지는 아직 몰라.”
“문을 열어 볼까요?”
“아니. 발자국이 남아 있을 때가 더 도움이 돼.”
둘은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마라는 이번에도 문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았다. 대신 쇠막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스승님. 이 가루가 석궁하고도 관련 있어요?”
이안이 대답하려는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페로 공방! 안에 있나?”
전날의 전달병이었다. 이안이 문을 열자 그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경비대 창고에 같은 석궁이 두 자루 남아 있다. 창고 관리병이 네가 직접 상태를 확인하길 원한다.”
“확인 비용은요?”
전달병의 눈썹이 올라갔다.
“고장난 물건을 보는데 돈부터 받나?”
“어제 받은 돈은 수리비였습니다. 오늘은 검사입니다.”
마라가 이안의 옆구리를 찔렀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창고에서 분해하게 해 주고 기록을 남기게 하십시오. 수리 의뢰가 되면 검사비를 수리비에 포함하겠습니다.”
“한 시간이다. 경비 둘이 지켜본다. 부품은 가져오지 마라.”
“작은 표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안 된다.”
“그럼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결함은 수리하지 않겠습니다.”
전달병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결함을 찾으면 내일 아침까지 보고서를 가져와.”
그가 돌아서며 낮게 덧붙였다.
“헤르만의 이름을 또 꺼내면 곤란해질 거다.”
“그 이름을 먼저 꺼낸 건 제가 아닙니다.”
전달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비대 창고는 성벽 안쪽의 낮은 건물이었다. 철문을 열자 기름 냄새와 눅눅한 나무 냄새가 밀려 나왔다. 창고 관리병은 이안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여긴 장난감 가게가 아니오.”
“그래서 상태만 보러 왔습니다.”
“분해는 안 된다.”
“분해하지 않으면 겉을 닦는 것밖에 못 합니다.”
관리병은 마지못해 석궁 두 자루를 꺼냈다. 외형은 거의 같았지만 손에 올리자 무게 중심이 달랐다. 첫 번째는 앞쪽이 무거웠고 두 번째는 방아쇠 쪽으로 힘이 몰렸다.
“같은 장인이 손봤습니까?”
“기록에는 둘 다 수리 완료로 되어 있소.”
이안은 석궁을 나무판 위에 올렸다. 마라는 숯과 종이를 꺼내 부품 위치를 표시했다.
“활대 끝부터 봐.”
첫 번째 활대의 결은 한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두 번째 활대는 결 방향이 반대로 들어가 있었다.
“같은 목재가 아니에요.”
“금속 고리도 달라.”
이안이 고리를 손톱으로 긁자 첫 번째에서는 붉은 가루가 나왔고 두 번째에서는 회색 가루가 나왔다. 두 고리의 두께도 달랐다.
“그 정도 차이로 불량이라고 할 셈이오?”
“차이가 불량은 아닙니다. 다른 재료를 같은 위치에 같은 힘으로 덧대면 문제가 됩니다.”
이안은 고리 옆에 숯가루를 문질렀다. 두 고리 안쪽에 같은 방향의 압력선이 나타났다. 다만 첫 번째는 고리가 원인이었고 두 번째는 활대의 결이 먼저 틀어져 있었다.
“둘 다 오른쪽으로 힘이 몰립니다. 원인은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그는 첫 번째 고리의 나사를 풀었다. 관리병이 손을 뻗었지만 전달병이 막았다.
고리가 빠지자 금속 아래에 눌린 회색 가루가 종이 위로 떨어졌다. 그 안에는 검은 입자가 섞여 있었다.
마라가 숨을 삼켰다.
이안은 공방에서 모은 가루를 꺼내려다 멈췄다. 대신 창고의 마른 숯가루를 검은 입자 가까이에 가져갔다. 입자들은 숯과 섞이지 않고 한쪽으로 모였다.
“그게 뭔지 아오?”
관리병의 질문에 이안은 가루를 바라보았다.
“아직 모릅니다. 일반 녹은 아닙니다.”
“헤르만이 쓴 재료요.”
말이 너무 빨리 나왔다. 이안은 관리병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창고 기록에 남아 있으니까.”
“그럼 기록을 보여 주십시오.”
“검사 범위를 넘었소.”
이안은 두 고리를 번갈아 보았다. 합금은 달랐지만 덧대는 위치와 눌린 방향은 같았다. 다른 재료를 써서 같은 방식의 보수를 반복한 흔적이었다.
그는 고리를 다시 끼우지 않고 종이에 결함 지도를 그렸다.
“두 자루 모두 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고치지는 않겠습니다.”
“왜지?”
“재료를 확인하지 않으면 같은 고장이 반복됩니다.”
관리병이 코웃음을 쳤다.
“하급 공방 주인이 창고를 가르치려 드는군.”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정하는 겁니다.”
마라가 종이를 들어 올렸다. 두 석궁의 압력 흔적이 서로 다른 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전달병은 종이를 받아 들었다.
“내일 아침까지 보고서를 가져오면 수리를 맡기겠소.”
“검사비는 수리비와 별도로 계산합니다.”
이번에는 마라도 말리지 않았다.
두 석궁은 창고에 남겨 두고 이안과 마라는 결함 기록만 가지고 돌아왔다. 공방 문턱 아래에는 검은 가루가 조금 더 흩어져 있었다.
“아까보다 많아졌어요.”
“문을 잠그기 전에는 없었지.”
“쫓아갈까요?”
“아니. 오늘은 우리 쪽에서 기다린다.”
이안은 창고에서 떨어진 가루와 공방에서 모은 가루를 따로 철판에 올렸다. 이어서 배수관의 절단편 두 개와 석궁 고리에서 떨어진 가루를 검은 모루 앞으로 가져갔다.
마라는 등불을 들고 계단 입구에 섰다.
“지하로 내려가려고요?”
“입구까지만.”
“그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이제는 저도 알아요.”
“그래서 혼자 안 간다.”
지하 공기는 차가웠다. 검은 모루는 어둠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녹슨 모루처럼 보였지만 표면에는 빛을 삼킨 듯한 결이 있었다.
이안은 잿빛 관의 절단편을 먼저 놓았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붉은 슬래그가 섞인 관 조각을 놓자 모루 표면에서 아주 작은 떨림이 지나갔다.
마라가 숨을 죽였다.
이안은 공방 앞에서 모은 검은 가루를 종이째 옮겼다. 가루가 모루의 홈 가까이에 닿는 순간 웅 하는 낮은 울림이 났다. 검은 입자들이 종이 위에서 둥글게 모였다.
모루는 가루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대신 가루와 가까운 금속 조각만 떨리게 했다.
석궁 고리의 가루를 옆에 놓자 이번에는 짧고 거친 울림이 났다.
“완전히 같은 성분은 아니야.”
“그런데 반응은 비슷하네요.”
“같은 종류의 오차를 품은 것 같아.”
이안은 모루 뒤쪽 벽에서 돌아오는 진동을 느꼈다. 빈 공간이 있는 듯한 울림이었다. 마라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열어 보지 마요.”
“열 생각 없어.”
“왜요?”
“지금 열면 뭘 만나는지 모른다. 그리고 창고 석궁 보고서를 내일 아침까지 써야 해.”
지상에서 나무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둘은 동시에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 문밖의 빗장을 건드린 듯했다.
이안은 등불을 끄고 마라를 계단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문이 한 번 흔들렸다.
곧 조용해졌다.
다시 등불을 밝히자 문턱 안쪽에 검은 가루가 한 줄 더 생겨 있었다. 마라는 쇠막대를 들었다.
“이번에는 쫓아가요.”
“저 사람은 우리가 따라오길 기다릴 수 있어.”
이안은 가루를 봉투에 넣고 입구를 실로 묶었다. 마라는 작업대에 종이를 펼쳤다.
“저도 기록할게요.”
“지하의 울림은 적지 마.”
“그럼 공방 앞과 석궁 고리에서 나온 가루가 비슷하다는 것만 적을게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서는 새벽이 가까워질 때 완성됐다. 마라는 두 석궁의 부품 위치와 가루의 색을 정리했고 이안은 수리 순서와 필요한 표본을 적었다.
경비대의 두 석궁은 내일 공방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검사비와 수리비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안은 빚을 줄이는 길과 누군가의 흔적을 쫓는 길이 한 줄 위에 놓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봉투를 작업대 서랍 깊숙이 넣었다.
검은 모루가 다시 낮게 울렸다.
이번에는 아무 재료도 가까이 두지 않았는데도 소리가 났다.
이안은 지하를 내려다보았다. 모루가 고른 것은 금속 조각이 아니었다. 공방 바깥에서 누군가 남긴 길일지도 몰랐다.
문밖에서 발자국이 한 번 멈췄다.
이안은 보고서 위에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
내일은 고치는 손과 감시하는 눈을 동시에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