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상단 후계자의 황금 독점

5화: 새벽의 장터
장부실 바깥 복도에서 놋쇠 막대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하렌 상단. 황실 전매국 임시 조사다.”
마리안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가방을 쥔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로웬이 곧바로 카일의 앞을 막아서며 허리춤의 단도를 쥐었다.
“도련님. 뒤쪽 창고로 피신시킬까요?”
“아니다. 도망치면 혐의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레온은 차분한 눈길로 카일을 돌아보았다.
“카일. 원형기를 들고 안쪽 벽장 뒤 밀실로 들어가라.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숨소리도 내지 마.”
카일이 서둘러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자 레온은 옷깃을 정돈하고 현관 홀로 걸어 나갔다.
정문 덧문이 덜컹거리며 먼지가 떨어졌다.
“문 열어라! 황실 전매국의 명령이다!”
레온은 문을 활짝 열지 않았다. 가운데 달린 작은 쇠창살 쪽창만을 젖혔다.
바깥의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잿빛 외투를 입은 사내 둘이 서 있었다. 앞선 자의 가슴팍에는 전매국의 푸른 삼각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하렌 상단의 현장 책임자가 누구요?”
“내가 장남이자 대리인인 레온 하렌이다. 새벽부터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이유가 무엇이지?”
임시 조사관 베른이 품에서 붉은 끈이 묶인 양피지를 펼쳤다.
“관할 구역 내에서 미등록 마도 공명 파동이 감지되었소. 귀 상단이 불법 마도 광물을 은닉하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으니 본점 장부실과 창고를 전면 수색하겠소.”
베른이 손을 뻗어 문을 밀치려 하자 레온은 쪽창 틀을 붙잡은 채 싸늘하게 쏘아보았다.
“수색 영장은 어디 있지?”
“임시 조사관의 긴급 점검 권한이오. 영장은 사후 보고로 갈음할 수 있소.”
“거짓말하지 마라.”
레온의 음성이 가라앉았다.
“제국 상업 조례 제21조. 황실 전매국의 사업장 강제 수색은 관할 치안관 또는 상임위원회의 정식 인장이 찍힌 영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조사관 단독의 긴급 점검은 사업장 외부 목측 검사에 한하며 실내 진입 권한은 없다.”
베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망나니 귀공자의 입에서 법 조항이 막힘없이 튀어나오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리안이 레온의 뒤에서 장부 가방을 세우며 또렷하게 거들었다.
“귀하의 서류는 접수 확인서일 뿐 정식 공문이 아닙니다. 상임위원회 일련번호조차 없는 민원 서류로는 본점 빗장을 풀 수 없습니다.”
레온의 시선이 베른이 쥔 양피지 하단에 닿았다. 제보 대리인 서명란에 낯익은 필적이 남아 있었다. 낮에 확인했던 조작된 운송 원장의 서식과 흡사했다. 발테르 측 공증인의 손길이었다.
베른은 이를 갈며 양피지를 품에 쑤셔 넣었다.
“도련님이 법을 잘 아시는군. 하지만 상단의 채무 압류 시한은 오늘 정오요. 몇 시간 뒤 채권단과 정식 집행관이 들이닥칠 때도 문을 걸어 잠글 수 있을지 보겠소.”
“정식 영장을 갖춰 오면 차 한 잔과 함께 장부를 열어주지. 그때까지 내 상단의 빗장에 손대지 마라.”
레온은 쪽창을 닫고 쇠빗장을 걸어 잠갔다.
바깥에서 거친 욕설과 함께 발소리가 멀어졌다.
마리안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돌려보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발테르 숙부님이 채권단을 움직여 곧 영장을 받아낼 테니까요.”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세 시간을 벌었다.”
그때 창고 쪽 안마당에서 웅성거리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안마당 계단 아래에는 거친 삼베 작업복 차림의 인부 스물여 명이 몰려와 있었다.
흙 묻은 털모자를 쥔 십장 바르톡이 핏발 선 눈으로 계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련님! 발테르 나으리네 일꾼들이 온 골목에 떠들고 다닙니다! 오늘 정오면 채권단이 들이닥쳐 상단 문을 닫는다면서요!”
인부들 사이에서 불안한 외침이 쏟아졌다.
“우리 지난달 품삯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장 오늘 아침 집에 가져갈 빵값도 없소!”
바르톡이 난간을 짚으며 바짝 다가섰다.
“도련님. 금고가 텅 비었다는 건 다 압니다. 돈이 없다면 창고에 쌓인 잔향석이라도 몇 상자씩 나눠 주십시오! 암시장에 내다 팔아 푼돈이라도 건져야 할 것 아닙니까!”
인부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마당을 메웠다.
“맞소! 돌이라도 주시오!”
“빈손으로 쫓겨날 수는 없소!”
로웬이 앞을 막아서려 했지만 표정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금고에 남은 현금이 은화 일곱 닢뿐임을 아는 그로서는 대물 변제라도 해주는 것이 당장의 폭동을 막는 길이라 여기는 눈치였다.
레온은 난간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가 인부들을 내려다보았다.
“물건으로 급료를 대신 털어내는 짓은 하지 않는다.”
마당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바르톡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럼 우리더러 굶어 죽으라는 말이오?”
“시장에서 상인들도 외면하는 불량석을 들려 보내서 가족들에게 쥐여주라는 말인가? 노동자가 일한 대가를 팔리지도 않는 돌덩이로 떠넘기는 건 상단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비겁한 짓이다.”
레온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하렌 상단은 일꾼들의 피땀을 쓰레기 돌로 갚지 않는다. 여러분의 땀은 온전한 은화로 정당하게 받아야 한다.”
인부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바르톡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따져 물었다.
“그럼 현금은 있단 말이오? 아침 급료로 은화 열여덟 닢이 필요한데 금고가 비었다는 걸 우리가 다 아오!”
“지금 당장은 은화 열한 닢이 부족하다. 하지만 딱 세 시간만 기다려라.”
레온이 동쪽 지평선을 가리켰다. 붉은 여명이 서서히 번져오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아침 장터가 열릴 때까지 필요한 은화를 전액 마련하겠다. 만약 그때까지 은화를 쥐여주지 못한다면 내 옷과 가구라도 저당잡혀서 품삯을 채워줄 테니 창고의 짐을 지키고 있어라.”
망나니 도련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흔들림이 없었다.
인부들은 웅성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쓸모없는 돌을 떠안고 암시장을 헤매는 것보다 몇 시간 뒤 진짜 은화를 받는 편이 나았다.
바르톡이 모자를 고쳐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딱 세 시간입니다. 해가 뜰 때까지 은화가 나오지 않으면 창고 문을 직접 부수겠습니다.”
인부들이 창고 그늘 쪽으로 물러서자 로웬이 굳은 표정으로 레온을 돌아보았다.
“말씀은 당당하셨지만 은화 열한 닢은 어디서 구하실 생각입니까?”
“하늘에서는 안 떨어져도 사람의 손에서는 나온다.”
레온은 장부실로 몸을 돌렸다.
“카일을 불러와라. 백 보 거리 시험을 끝내야 시장을 연다.”
장부실 탁자 위에 놓인 원형기는 앙상하게 분해되어 있었다.
카일은 핀셋을 쥔 채 연신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화상 흉터가 남은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어젯밤 분리했던 공명판의 나사선이 뭉개졌소. 접지 간격을 잘못 맞추면 외부의 잡음 신호가 회로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거요.”
“이걸 써라.”
레온이 품에서 어젯밤 챙겨온 금속 조각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세 개의 짧은 홈과 하나의 긴 홈이 파인 공명판 파편이었다.
카일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외부 감시판의 파편이잖소.”
“그자들도 이 기준판을 보고 신호를 맞췄다. 이 홈의 간격에 나사를 맞추면 외부 신호는 튕겨내고 우리 돌의 떨림만 잡아낼 수 있을 거다.”
카일은 파편을 나사 옆에 대어 보았다. 규격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졌다.
카일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소형 인두로 납을 녹여 접지선을 고정하자 원형기 중앙의 푸른 고리가 부드러운 빛을 뿜어냈다.
“연결됐소. 하지만 장거리 신호는 무리요. 백 보 안쪽이 한계요.”
“백 보면 충분하다. 지금 필요한 건 대륙 횡단 통신이 아니라 앞마당 호출이다.”
레온은 로웬에게 표본 상자에서 꺼낸 잔향석 두 개와 쇠막대를 건넸다.
“로웬. 백 보 떨어진 창고 하역장으로 가라. 수레 바퀴 축에 이 돌을 대고 같은 간격으로 세 번 두드려.”
로웬은 영문을 모른 채 돌을 받아 쥐었지만 곧바로 창고를 향해 달렸다.
장부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카일은 바늘판 옆에 엎드렸고 마리안은 모래시계를 쥔 채 마른침을 삼켰다.
레온은 창문 너머 하역장을 주시했다. 백 보 밖 하역장에 선 로웬이 쇠막대를 들어 올렸다.
거리의 소음에 묻혀 타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탁자 위 철판의 가느다란 바늘이 가볍게 튀어 올랐다.
틱. 틱. 틱.
규칙적인 세 번의 진동이었다. 바늘 끝이 푸른 잔향을 그리며 세 눈금을 선명하게 오갔다.
카일이 탄성을 터뜨렸다.
“신호가…… 창고에서 이곳 장부실까지 넘어왔소!”
마리안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정말로 전선도 없이 벽을 통과해 신호가 전달된 겁니까?”
“전달된 건 소리가 아니라 진동의 파장이다.”
레온은 떨림을 멈춘 바늘을 쓸어내렸다.
“이 정도면 물건의 위치와 도착을 알리는 데 충분하다. 이제 상품으로 포장한다.”
“상품이라니요?” 마리안이 물었다.
“마차꾼들에게 가장 아까운 게 뭐지?”
“마차 유지비와 사료비 아닙니까?”
“아니다. 짐을 싣고 내리려고 길바닥에서 낭비하는 대기 시간이다.”
레온은 구석에 쌓인 소형 나무상자들을 가리켰다.
“잔향석 표본 두 개와 소형 수신 침판을 한 조로 짠다. 이름은 ‘화물 도착 호출패’다. 지금 당장 앞마당으로 들고나간다.”
아침 해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루미엔 남부 골목을 비추기 시작했다.
중앙 시장으로 향하는 짐마차들과 새벽 배달을 마친 소상인들이 하렌 상단 앞길을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레온은 화물 계량대 옆에 가판대를 펴고 잔향석 상자 열 개를 쌓아 올렸다. 탁자 위에는 조립을 마친 수신 침판과 작은 호출 방울이 놓였다.
레온이 계량대 위로 올라서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역장 앞에 마차를 세워두고 일꾼을 부르러 뛰어다니느라 반나절을 허비하는 마차주인들은 이리 와서 보시오!”
지나가던 짐마차 마부들과 골목 상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저거 하렌 상단 망나니 도련님 아니야?”
“파산 직전이라더니 길바닥에서 약장수 흉내를 내는 건가?”
비웃음 섞인 웅성거림이 일었지만 레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골목이 좁아 마차가 엉키고 창고 문이 어디 열렸는지 몰라 길바닥에서 썩히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요? 도착하자마자 종을 울려 하역 일꾼을 즉시 불러낼 수 있다면 하루에 마차를 한 번 더 굴릴 수 있소.”
남부 화물 마차대의 반장 차림을 한 거구의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마도 통신구는 귀족 나으리들이나 쓰는 사치품이오. 우리 같은 마차꾼이 무슨 돈으로 간단 말이오?”
“귀족들의 사치품이 아니오. 은화 두 닢이면 당신 마차에 달 수 있는 도구요.”
레온이 손짓하자 백 보 밖 골목 어귀에 서 있던 로웬이 수레에 부착된 잔향석을 쇠막대로 두 번 두드렸다.
딸랑. 딸랑.
계량대 탁자 위의 바늘이 흔들리며 연결된 작은 방울이 맑은 소리를 냈다.
골목의 마부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떴다.
“뭐야? 전선도 없는데 방울이 울렸잖아?”
“골목 어귀에서 두드린 건데 여기서 소리가 나?”
레온이 잔향석 한 쌍을 번쩍 들어 올렸다.
“복잡한 마도구도 아니고 비싼 유지비도 들지 않소. 짐칸에 이 돌을 달고 신호를 보내면 상단 계량소에서 즉시 하역 순번을 배정하오. 오늘 아침 단 열 팀에게만 은화 두 닢에 돌 두 개와 수신 침판을 넘기겠소. 고장이 나면 하렌 상단에서 전액 환불을 보장하오.”
마부들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은화 두 닢은 하루 운송 수익의 일부에 불과했다. 하역 대기 시간을 한 시간만 줄여도 당장 오늘 오후에 뽑아낼 수 있는 돈이었다.
“내가 사겠소! 남부 양조장으로 가는 마차 다섯 대에 달아보겠소!”
반장 사내가 품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은화 열 닢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 뒤를 이어 인근 건어물 도매상과 정육 마차상이 다투어 은화를 내밀었다.
“나도 두 묶음 주시오!”
“우리 채소 수레에도 하나 달아봅시다!”
마리안의 손이 깃펜을 들고 맹렬하게 움직였다. 구매자의 이름과 마차 번호를 적고 상단의 공식 인장이 찍힌 보증 영수증을 신속하게 끊어주었다.
순식간에 잔향석 상자 일곱 묶음이 팔려 나갔다.
마리안이 금고함을 닫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도련님…… 방금 들어온 현금이 은화 열네 닢입니다.”
기존에 남아 있던 은화 일곱 닢과 합치면 스물한 닢. 급료에 필요한 열여덟 닢을 채우고도 은화 세 닢이 남았다.
레온은 금고함을 들고 창고 그늘 아래로 걸어갔다.
바르톡과 인부들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길바닥에서 벌어진 놀라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본 탓이었다.
레온은 바르톡의 거친 손바닥 위에 은화 열여덟 닢을 쏟아부었다. 짤랑거리는 맑은 쇠 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약속한 세 시간이다. 한 닢도 빠짐없이 정당한 현금으로 지급한다. 가서 가족들에게 빵을 사다 주어라.”
인부들이 은화를 쥐며 손을 떨었다.
거짓말인 줄 알았던 약속이 진짜 은화가 되어 손바닥에 올라왔다.
바르톡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은화를 품에 소중히 챙겨 넣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도련님…… 아니 상단주님. 의심해서 죄송했습니다.”
인부들이 일제히 모자를 벗어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렌 상단 만세!”
“도련님 만세!”
절망이 감돌던 창고 마당이 활기와 신뢰의 열기로 가득 찼다.
로웬이 다가와 레온의 어깨를 툭 쳤다. 그의 흉터투성이 얼굴에 드물게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장사를 이렇게도 하는군요. 십오 년간 마차를 몰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 봅니다.”
“이제 겨우 빵값을 치렀을 뿐이다.”
레온은 골목 너머를 응시했다.
아침 해가 높이 떠오르며 그림자가 짧아지고 있었다.
골목 끝에서 붉은 휘장을 두른 네 마리 말의 대형 마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마차 옆에는 루미엔 마차길드의 푸른 제복을 입은 용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오를 예고했던 채권단과 발테르의 집행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레온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진짜 장사는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