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

6화: 순찰의 값
주차장의 검은 문 둘레에는 밤에 보이지 않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강해나는 셔터 틈에 눈을 대고 숨을 죽였다. 회색 괴수의 발자국이 원을 그리며 겹쳤다. 쓰러진 쓰레기통과 폐차에서 뜯어 낸 범퍼가 정문까지 이어졌다.
지난밤 진열대를 받쳤던 쇠의자가 아직 유리벽 아래에 끼어 있었다. 누군가 숨을 크게 내쉴 때마다 김이 서려 바깥이 흐려졌다. 해나는 손등으로 틈의 습기를 닦아 냈다.
“저건 바람에 밀린 게 아니에요.”
해나가 방패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말했다.
“괴수가 들어올 길은 넓히고 우리가 달아날 길은 막고 있어요.”
서도윤은 주차장 왼쪽을 보았다. 검은 문과 매장 사이에 놓인 콘크리트 화분 세 개. 그 사이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틈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은 폐차와 뒤집힌 쓰레기통이 길을 막았다.
“지금 나가면 어디까지 볼 수 있습니까?”
“화분 뒤까지요. 더 가면 돌아오는 길이 막혀요.”
“그 정도로는 문 안쪽을 못 봅니다.”
“문 안쪽을 보러 나가겠다고 한 적 없어요. 매장이 포위되기 전에 발 디딜 곳을 찾자는 겁니다.”
해나는 범퍼 끝을 가리켰다. 날이 밝은 뒤에도 그 근처에서는 회색 등이 한 번씩 움직였다. 괴수가 완전히 돌아간 줄 알고 밖으로 나섰다면 정문에서 세 걸음도 떼지 못했을 거리였다.
도윤은 말없이 장부를 펼쳤다. 밖에서 순찰자가 쓰러지면 문을 열어야 하는 사람도 위험해진다. 열린 문 하나 때문에 매장 일곱 명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건우가 접이식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주차장 왼편에 배수로 덮개가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올 때는 사람이 지나갈 만큼 틈이 났어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확인하려면 화분 뒤로 돌아야 해요.” 해나가 말했다.
윤수민은 재고 장부 뒷장에 매장과 주차장 윤곽을 그렸다. 도윤이 화분과 폐차 위치를 짚었다. 지도 위의 빈칸은 도윤이 보고 싶은 길이 아니라 누군가 직접 밟아 봐야 할 땅이었다.
“제가 갑니다.” 해나가 말했다. “대신 조건은 제가 같이 정해요.”
도윤은 그녀의 방패 모서리에 새로 패인 흠을 보았다. 방금 전 유리벽을 지킬 때 생긴 자국이었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또 가장 위험한 곳에 보내야 했다.
도윤은 가격표 아래 빈 종이를 붙였다.
[외부 순찰 계약]
“매장 정문부터 화분 뒤 배수로 입구까지만. 검은 문 쪽으로는 접근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삼십 분.” 해나가 덧붙였다. “제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바로 돌아옵니다.”
오태구가 혀를 찼다.
“겁나면 중간에 들어와도 값을 준다고?”
해나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당신이 밖에 나가면 그 조건 그대로 드리죠.”
태구는 고개를 돌렸다. 도윤은 종이에 철수 기준을 적었다. 괴수 두 마리 이상 확인. 복귀로 차단. 부상 발생. 셋 중 하나면 신호를 보내고 즉시 돌아온다.
“신호는 방패로 바닥 두 번. 우리가 안에서 받으면 비상등 두 번으로 답합니다. 답이 없으면 문 앞으로 뛰지 마세요.”
“나간 뒤에는 문을 완전히 닫아요.” 해나가 말했다. “틈을 남겨 두면 놈이 먼저 들어갑니다. 제가 돌아올 때 신호를 듣고 여세요.”
도윤은 계약서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문을 닫는 순간 해나는 혼자가 된다. 열어 주는 순간에는 안의 모두가 함께 위험해진다.
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답이 없으면요?”
“정문을 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화분 옆 배수로로 몸을 숨기고 다시 신호하세요.”
“그 길을 확인하러 가는 건데 피난처로 먼저 적을 수는 없죠.”
도윤이 펜을 멈췄다. 맞는 말이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틈을 안전 구역으로 적을 수 없었다.
“그럼 답이 없으면 출발 지점에서 왼쪽 차체 뒤에 숨습니다. 그곳도 막혔으면 판단은 해나 씨가 합니다. 구조 신호가 오면 저는 문을 열 수 있는 상황인지 여기 사람들에게 알리고 결정하겠습니다.”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상은요?”
“생수 반 병. 위험 노동 2시간과 같은 값입니다. 밖에 있는 시간은 삼십 분이지만 확인 가능한 경로 정보와 복귀 후 지도 표시까지 포함합니다.”
“시간만 채우고 아무것도 못 보면 안 되는 금액이군요.”
“반대로 예상보다 빨리 위험을 찾아내도 삼십 분을 채우려고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보를 못 가져오면?”
“실제 수행한 위험 노동 시간만 1등급 비율로 정산합니다. 중단 사유가 합의한 위험이면 벌금은 없습니다.”
해나는 종이를 살폈다.
“안쪽 사람들 역할도 써요. 순찰만 계약이면 문 열다 죽는 사람은 누가 책임져요?”
도윤은 수민에게 기록과 복귀 신호 확인, 민석에게 비상등, 정호에게 쇠의자 쐐기 유지, 건우에게 측면 관찰을 맡겼다. 태구는 철문 쪽을 지켜 정문 인원이 비는 동안 안쪽 소리를 알리게 했다. 각자 이행한 시간은 장부에 적고 뒤에 정산하기로 했다.
수민은 자신에게 맡겨진 항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건우가 문 옆 거울의 각도를 조정하고 민석은 비상등을 켜 둔 채 손잡이를 쥐었다. 모두 해나가 돌아올 때 자신이 움직일 순서를 확인했다.
“저도 정문을 잡겠습니다.” 도윤이 마지막 줄에 적었다.
해나가 서명했다. 도윤도 이름을 적었다.
“누가 먼저 문을 열어 주는지까지 정했네요.”
“열 수 있을 때만 엽니다.”
“그것까지 알아요.”
해나는 방패를 세웠다. 도윤이 받쳐 둔 의자를 조금 빼자 유리문 아래에 한 사람 폭의 틈이 생겼다.
아침 공기는 밤보다 차가웠다.
해나는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몸을 낮췄다. 오른손에는 태구에게서 압류한 쇠파이프를 쥐었다. 문 안에서는 도윤과 정호가 의자를 다시 밀어 넣었다. 잠금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주차장까지 들렸다.
해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닫힌 문을 확인하면 발이 느려질 것 같았다. 방패 너머로 보이는 화분까지 거리는 스무 걸음 남짓이었다.
발자국은 예상보다 깊었다. 화분 뒤에는 젖은 흙이 없는데도 회색 가루가 눌려 있었다. 괴수들이 검은 문에서 나온 가루를 발에 묻혀 옮긴 모양이었다.
해나는 쓰레기통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통이 조금 움직이며 폐차 범퍼를 쳤다.
캉.
멀리 있던 발소리가 반응했다.
해나는 손을 떼고 범퍼의 모서리를 보았다. 매장으로 달아나면 몸이 스칠 높이에 세워져 있었다. 사람이 급히 지나갈 때 소리가 나도록 둔 것 같았다. 누가 배치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배수로는 화분 바로 뒤에 있었다. 덮개 한쪽이 들려 있었다. 어른의 어깨가 간신히 들어갈 폭이었다. 안쪽은 어두웠고 물소리가 났다. 안전한 출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덮개 가장자리에는 길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해나는 손을 넣었다가 곧 빼냈다. 바닥까지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고 쇠파이프를 떨어뜨리면 돌아갈 때 맨손이었다.
해나는 손가락으로 콘크리트 모서리에 두 줄을 그어 위치를 기억했다.
그때 폐차 밑에서 긁는 소리가 들렸다.
회색 앞발 하나가 차체 아래로 나왔다. 놈은 해나를 향해 달리지 않았다. 그녀와 정문 사이에 몸을 눕히고 낮게 울었다.
매장 안의 도윤도 그것을 봤다. 바로 문을 열면 괴수가 따라 들어온다.
해나는 방패로 바닥을 두 번 쳤다.
탁. 탁.
민석이 비상등을 두 번 껐다 켰다. 신호가 닿았다.
문 안에서는 정호가 의자 다리를 움켜쥐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빼지 않았다. 건우가 거울 속 괴수의 위치를 가리켰다.
“폐차 아래. 해나 씨보다 문에 가깝습니다.”
해나는 화분 바깥쪽으로 돌았다. 괴수의 머리가 움직였다. 쇠파이프로 바닥의 빈 캔을 밀자 캔이 범퍼 반대편으로 굴러갔다.
캉.
괴수가 소리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해나는 그 틈에 뛰었다. 그러나 발이 범퍼에 스쳤다. 쇠가 떨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괴수의 앞발이 차체 밑에서 튀어나왔다.
“지금!”
정호가 성한 손으로 의자를 당겼다. 도윤이 잠금쇠를 풀고 문을 열어 해나가 들어올 틈을 만들었다. 해나가 방패를 세워 괴수의 발톱을 받아냈다. 충격에 손목이 꺾일 뻔했다.
도윤이 셔터 조작봉으로 문틀 아래를 밀었다. 해나가 안으로 몸을 굴렸다. 정호와 도윤이 함께 의자를 밀어 넣었다.
쾅!
유리 바깥에 괴수의 몸이 부딪혔다. 틈은 닫혔다. 민석이 비상등을 낮게 비추자 놈은 한 발 물러났다.
해나는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숨을 골랐다.
“배수로는 있습니다. 하지만 끝은 못 봤어요.”
도윤은 방패의 긁힌 자국을 확인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수민은 지도에 해나가 본 것을 옮겼다. 범퍼의 위치에는 붉은 동그라미를 쳤다.
“정문으로 뛰면 여기서 소리가 나고 괴수가 매장 앞을 막습니다.”
해나가 손가락으로 경로를 따라갔다.
“화분 바깥으로 돌아야 해요. 배수로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틈만 확인했습니다. 출구라고 쓰지 마요.”
수민은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도윤은 장부에 순찰 시작과 복귀 시간을 기록했다. 스물여덟 분. 합의한 범위의 위험과 배수로 위치, 소리 나는 장애물까지 확인했다.
“조건 이행입니다.”
그는 생수병 하나에서 정확히 반 병을 계량해 해나에게 건넸다. 남은 재고는 5.75병. 자정은 아직 멀었다.
도윤은 눈금을 맞춘 뒤에도 잠시 손을 떼지 못했다. 저 물로 매장 안 일곱 명이 버틸 시간을 생각하면 반 병은 컸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에게 약속한 몫을 깎는 순간 다음 출입구를 지킬 사람도 사라질 터였다.
해나는 물병을 들고 곧바로 마시지 않았다.
“문 열 때 정호 씨도 일했어요.”
“별도로 적었습니다. 실제 일한 시간을 계산해서 정산하겠습니다.”
정호가 팔을 내려다보다 작게 웃었다.
“값이 정해져 있으면 다음에도 도울 수 있겠네요.”
도윤은 그 말을 장부에 남기지 않았다. 대신 화분 바깥 경로 옆에 복귀 신호를 크게 적었다. 자신이 없을 때도 누군가 문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했다.
해나가 물병을 입에 댔다가 멈췄다.
“도윤 씨. 아까 배수로 앞에 발자국이 하나 더 있었어요.”
“괴수 것 말입니까?”
“운동화 밑창이요. 괴수 발자국 위에 찍혀 있었어요. 가장자리도 안 말랐고.”
도윤은 지도에 새 표시를 했다. 검은 문 쪽에서 매장으로 향하는 작은 화살표였다.
그 순간 주차장 바깥에서 쇳조각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해나가 방패를 들었다. 셔터 틈 너머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그늘에 가려졌지만 손에는 납작한 금속 조각이 들려 있었다.
“안에 건전지 있습니까?”
도윤은 계산대 아래 남은 두 묶음을 떠올렸다.
“무엇과 바꾸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