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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9화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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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총구 앞의 가격표]

장갑차가 선 줄

디젤 엔진음이 골목을 짓눌렀다.

대기열의 맨 뒤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상가 사이로 회색 장갑차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궤도가 아스팔트를 갈아내며 다가오자 먼지와 자갈이 번호표를 쥔 손님들의 발밑으로 튀었다.

“뒤로 물러나세요! 번호표는 버리지 마십시오!”

윤설희가 목청껏 외쳤다. 그녀는 손님들을 마트 유리문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입구의 줄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했다.

“1번부터 12번까지 안으로 들어갑니다. 뛰지 마세요. 뛰면 넘어집니다!”

강두철은 정문 앞에 서서 쇠파이프를 바닥에 세웠다. 장갑차 위 기관총의 총구가 그를 향했지만 두철은 이를 악물고 자리를 지켰다.

“여긴 민간 손님 받는 영업장이다! 차량은 정문 앞에서 멈춰!”

장갑차 한 대가 정문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멈췄다. 뒤따르던 기동 소대가 양옆으로 퍼지며 골목을 봉쇄했다. 군복 위에는 검은 철판과 붉은 방패 문양이 붙어 있었다.

선두의 사내가 확성기를 들었다.

“이 구역은 철혈 요새의 작전 관할이다. 시설 관리자는 즉시 영업을 중단하고 보급 시설 조사에 협조하라. 불응할 경우 군사 작전 방해로 간주한다.”

손님들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흘렀다. 이제 막 줄을 세우고 물을 사려던 사람들에게는 총구가 사과와 커피보다 가까웠다.

카운터 뒤에서 상황을 보던 한도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손끝에 남은 따뜻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마트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굳었다.

“설희.”

“네.”

“손님들을 안쪽 세 번째 통로까지 이동시켜. 계산 중인 사람은 상품을 내려놓지 말고 영수증부터 챙겨.”

“군인들도 입장시키실 건가요?”

“손님으로 들어오면.”

도진은 유리문 너머의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점령하러 들어오면 손님이 아니지.”

관할보다 비싼 물

장갑차 옆에서 검은 방탄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소매에 붙은 계급 표식과 부대장이 달린 붉은 완장은 그가 지휘관임을 보여 주었다.

“철혈 요새 정찰 3조장 최기석이다.”

최기석은 정문 앞에 서류철을 펼쳐 보였다. 종이에는 철혈 요새 인장이 찍혀 있었고 ‘긴급 보급 시설 임시 편입’이라는 문장이 굵게 적혀 있었다.

도진은 서류를 받지 않았다.

“보호받은 적이 없는데 보호 비용부터 청구하시는군요.”

“말장난할 때가 아니다. 밖에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보이지 않나?”

“보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쪽에서 총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최기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마트 안에서는 사장의 말이 법이라는 소문이 있더군.”

그가 뒤를 돌아보자 병사 둘이 소총을 세운 채 자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 안내판의 첫 줄이 그들의 눈앞을 스쳤다.

[무장 해제 후 입장]

도진은 카운터 옆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소문이 아니라 가격표입니다.”

자동문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안으로 한 발 들어왔던 병사들의 군화가 투명한 선에 걸린 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총을 쥔 손목이 서서히 바깥쪽으로 밀렸다.

“뭐지?”

“발이 안 움직입니다!”

병사들이 당황해 발을 굴렀다. 마트 바닥은 멀쩡했지만 경계선 너머로는 한 치도 들어오지 못했다.

도진은 안내판을 가리켰다.

“무장 해제. 번호표. 선불 결제. 세 가지를 지키면 입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군인이다. 손님처럼 줄을 설 수는 없다.”

“그럼 손님이 아니군요.”

최기석이 손짓했다.

“물부터 가져와.”

병사 하나가 총을 멘 채 진열대의 생수에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페트병에 닿는 순간 병은 물결처럼 흐려졌다. 다음 찰나 생수는 원래 자리에 돌아가 있었고 병사의 손에는 차가운 공기만 남았다.

마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결제 전 상품은 반출할 수 없습니다.”

도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정문 밖까지 선명하게 닿았다.

최기석은 서류철을 내리쳤다.

“이건 군의 명령서다. 코어와 같은 가치가 있어.”

카운터 위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결제 수단 확인]

[철혈 요새 긴급 보급 명령서: 포인트 환산 불가]

[사유: 정상 거래를 통한 노동·자원·공공성 보상 항목에 해당하지 않음]

도진이 피식 웃었다.

“종이는 물을 못 사네요.”

빈 수통과 가득 찬 매대

최기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가 지금 군을 모욕하는 건가?”

“아뇨. 군의 지불 능력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도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카운터 위에 작은 표시창이 나타났다. 입구 근처 병사들의 상태가 간단한 글자로 떠올랐다.

[정찰 3조]

[등록 인원: 18명]

[수분 부족 11명 / 영양 결핍 7명]

[차량 연료 잔량: 작전 지속 예상 4시간 20분]

설희가 그 창을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도진이 마트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손님 상태 표시였다. 군인들이 숨기던 사정이 모두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래 굶고 마신 흔적은 수치로 충분히 보였다.

“사장님.”

설희가 낮게 말했다.

“저기 병사들 수통이 전부 납작합니다. 장갑차 뒤 보급 상자도 비어 있어요.”

두철은 정문 밖을 훑었다. 그의 시선이 장갑차 뒤쪽의 녹슨 연료통에 멈췄다.

“저놈들, 총알보다 물이 먼저 떨어진 얼굴인데.”

최기석이 고개를 돌렸다.

“쓸데없는 관찰은 그만둬라. 마트의 재고와 보충 주기를 확인하면 된다. 이 시설을 요새가 접수하면 모두가 보호받을 수 있다.”

“모두가 아니라 요새가 먼저겠죠.”

도진은 카운터 아래에서 새 종이를 꺼냈다. 설희가 가격표를 만들 때 쓰던 골판지였다. 그는 그 위에 매직으로 숫자를 적었다.

생수 2포인트.

핫컵라면 3포인트.

쌀죽 3포인트.

커피 5포인트.

사과 8포인트.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군용 단체 구매도 1인당 제한 적용.

“이게 네 답인가?”

“답이 아니라 가격표입니다.”

도진은 골판지를 정문 유리에 붙였다.

“철혈 요새가 보호를 제공하고 싶으면 계약서를 가져오세요. 물자를 강제로 가져가고 싶으면 총부터 내려놓고 위반 기록을 받으세요. 코어를 가져와 정상 결제를 하겠다면 지금 바로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최기석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네 앞에서 무기를 내려놓을 것 같나?”

“그럼 물도 못 사죠.”

마트 안쪽에서 민우가 기침했다. 박순자가 아이의 등을 급히 쓸어내렸다.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총을 든 군인들보다 카운터의 가격표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가격표는 누구에게나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명령서와 거래서

최기석은 무전기를 들어 입가에 붙였다.

“3조장이다. 목표 시설은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 외곽 포위 유지. 기관포는 정문을 겨냥하라.”

장갑차 위에서 기관포가 움직였다. 손님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설희가 즉시 통로의 안전선 안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모두 바닥에 앉으세요! 유리문 쪽으로 가지 마세요!”

두철은 정문 안쪽에 버티고 섰다. 손에는 무기가 없었다. 직원 규칙에 따라 쇠파이프를 무장 보관함에 맡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는 골목을 흔들었다.

“총구 치워라! 손님들 겁주고 물 받아 가는 건 장사가 아니라 강도질이다!”

“강도는 네놈들이 먼저 저질렀지.”

최기석이 두철을 노려보았다.

“무장 세력에게 먹을 걸 팔면 더 큰 세력이 달려든다. 그러니 철혈 요새가 관리하는 게 맞다.”

“관리하고 싶으면 돈을 내.”

도진이 끼어들었다.

“전량 징발은 거절합니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파는 건 가능합니다.”

“조건은?”

“첫째, 외곽 병력의 총구를 내립니다. 둘째, 입장 인원은 무장 해제합니다. 셋째, 번호표를 받고 1인 제한을 지킵니다. 넷째, 코어로 선불 결제합니다.”

“군의 체면이 있지.”

“체면은 포인트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최기석의 손이 권총집으로 내려갔다. 그가 손잡이를 움켜쥐는 순간 마트 바닥에 붉은 선이 번졌다.

[경고: 강제 수용을 위한 위협 행동 감지]

[위반 기록이 누적될 경우 대상과 소속 세력의 방문 제한 심사가 진행됩니다]

도진은 붉은 창을 최기석에게도 보이도록 앞으로 밀어냈다.

“직접 공격만 위반이 아닙니다. 총을 들고 가격표를 무시하는 것도 기록됩니다.”

최기석은 창을 읽었다. 자신의 부대 전체가 이 마트에서 손님 자격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뒤에 선 병사 하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옆 병사는 빈 수통을 감추려 허리 뒤로 손을 돌렸다. 설희는 그 모습을 보고 카운터 옆의 물 진열대를 가렸다.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도진은 가격표를 한 번 더 두드렸다.

“부하들 배가 비어 있던데요.”

“상관없다.”

“상관있습니다. 굶은 손님은 계산 실수를 하고 총을 든 손님은 사고를 칩니다. 사고가 나면 전원 퇴장입니다.”

도진은 가격표 아래에 빈칸을 남겼다.

“무기를 내려놓고 손님이 되면 오늘 필요한 물과 즉석식부터 팝니다. 단체라고 더 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규칙을 지킨 기록이 쌓이면 다음 거래에서 물량을 협의할 수 있습니다.”

마트 밖의 병사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표정에는 명령을 기다리는 긴장과 물을 떠올리는 갈증이 함께 있었다.

최기석은 무전기를 다시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명령을 내리지는 못했다.

도진은 카운터에 팔꿈치를 올리고 그를 기다렸다.

“정찰대가 선택할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협박인가?”

“재고가 아니라 영업시간 이야기입니다.”

도진은 병사들의 빈 수통과 장갑차의 연료통을 번갈아 가리켰다.

“당신들이 돌아가도 네 시간 뒤면 다시 보급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이 문 앞에서 총을 들고 서 있으면 그때도 손님이 아닙니다.”

멀리서 또 다른 무전 잡음이 흘러나왔다. 최기석의 표정이 변했다. 본대에서 새로운 지시가 내려온 모양이었다.

그는 마트의 가격표와 자신의 부대원들을 번갈아 보았다.

“전원 대기.”

병사들이 숨을 죽였다.

“아직 총을 내리지는 마라.”

최기석이 도진을 향해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네 거래 조건을 받아들일지는 직접 확인해 보겠다.”

도진도 웃지 않은 채 카운터 옆 보관함을 열었다. 정호와 민석의 압류 무기가 들어 있는 쇠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좋습니다.”

도진은 가격표의 마지막 칸에 굵은 글씨를 적었다.

무기 보관료. 별도 협의.

장갑차의 기관포는 여전히 정문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총구 앞에는 마트의 유리문과 도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병사들이 반드시 지나야 할 가격표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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