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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11화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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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마트 1차 확장]

벽이 밀려나는 소리

철혈 요새의 장갑차가 골목 밖으로 삼십 미터 물러났다. 하늘을 겨눈 기관포의 차가운 총열 아래로 정적만이 감돌았다.

도진의 시야에 푸른빛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정상 거래 30회 누적 달성]
[철혈 요새 정찰대와의 평화적 거래 성립]
[매장 안전 구역 수호 보정: +20P]
[현재 보유 포인트: 164P]

기존 축적 코어에 병사들의 결제, 그리고 충돌을 억제한 공공성 보너스가 합산된 결과였다. 그 아래로 금빛 문구가 떠올랐다.

[마트 1차 확장 조건 달성]
[매장 면적 2배 확장: 15평 → 30평]
[방어 결계 출력 강화 및 공조 설비 업그레이드]
[신규 특수 코너 해금 가능: ‘약국(Pharmacy)’ 코너 (비용: 100P)]

장사를 키우지 않는 사장은 도태된다. 더구나 밖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버티고 있었다.

“확장 승인.”

도진이 카운터 아래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바닥에서 나지막한 기계음이 울렸다. 거대한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묵직한 진동이었다.

“사, 사장님! 벽이 뒤로 물러납니다!”

두철이 쇠파이프를 쥔 채 헛숨을 들이켰다.

콘크리트 벽면이 바깥으로 조용히 밀려났다. 흙먼지 하나 일지 않았다. 바닥에는 백색 대리석 타일이 물결치듯 깔렸다.

천장이 높아졌고 환기구에서는 폐허의 악취 대신 맑은 공기가 쏟아졌다.

비좁던 십오 평 매장이 순식간에 서른 평으로 두 배 넓어졌다.

통로가 시원하게 트였고 정문 옆에는 손님용 대기선이 정연하게 그어졌다.

설희가 수첩을 빠르게 넘기며 눈을 빛냈다.

“동시 수용 인원이 스무 명까지 늘어났어요. 동선이 엉키지 않겠네요.”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매장 안쪽 강화유리 파티션 너머로 새로운 부스가 솟아올랐다. 하얀 조명 아래 선명한 녹색 십자가 마크가 켜졌다.

[약국(Pharmacy)]

유리 선반 안에는 멸균 거즈와 붕대, 소독약과 항생제 연고, 그리고 해열진통제 상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약국 코너 해금 완료: 100P 소모]
[잔여 포인트: 64P]

“약……?”

대기열의 손님들이 숨을 죽였다.

식량이 피라면 의약품은 곧 목숨이었다. 긁힌 상처 하나로 사지를 자르고 감기 한 번에 목숨을 잃는 세상이었다.

도진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새 코너를 올려다보았다.

“이제야 진짜 매장답군.”

첫 번째 처방전

경이로움에 잠겨 있던 매장의 침묵을 깬 것은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의 비명이었다.

“민우야! 민우야, 정신 차려 봐!”

박순자였다. 그녀의 품에 안긴 민우가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아이의 이마는 불덩이였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거품 섞인 숨을 몰아쉬었다. 쌀죽으로도 몸 안의 독열을 당해내지 못했다.

순자가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걷자 팔뚝 안쪽에 녹슨 철조망에 긁힌 상처가 검붉게 곪아 터져 있었다. 보랏빛 혈관이 거미줄처럼 번져 나갔다.

마수성 세균 감염에 의한 급성 패혈증 증세였다.

“사장님! 제발 우리 민우 좀 살려주세요!”

순자가 무릎으로 기어와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가진 거라곤 이거뿐이지만 제 목숨이라도 바칠게요!”

순자가 내놓은 것은 하급 마수 코어 두 개였다. 겨우 2포인트어치의 푼돈이었다.

도진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약국 코너 운영 규칙]
[의약품은 투기 방지를 위해 ‘대면 심사’ 및 ‘목적 확인’을 거칩니다.]
[환자 상태: 괴사성 세균 감염 및 39.9도 고열.]
[추천 처방: 소아용 해열 시럽 1병, 광범위 항균 소독 연고 1개.]
[정상 판매가: 15P]

15포인트.

순자의 손에 든 2포인트로는 알약 한 톨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

설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도진을 바라보았고 두철도 마른침을 삼켰다.

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카운터를 톡톡 두드렸다.

“손님. 마트에 공짜는 없습니다.”

순자의 낯빛이 잿빛으로 바래졌다.

“사정이 딱하다고 거저 주면 이 마트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건 장사가 아니니까요.”

도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절망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가를 꼭 코어로만 치를 필요는 없습니다.”

도진이 새 계약서를 카운터 위에 얹었다.

“손님이 가진 코어로 2포인트를 선결제합니다. 모자란 13포인트는 노동으로 갚으세요.”

“노동이요……?”

“매장이 두 배로 넓어졌습니다. 오늘부터 청소와 줄 정리를 맡기겠습니다. 하루 4포인트씩 계산해 사흘간 근무하세요. 아이가 완쾌되는 즉시 시작하는 조건입니다.”

도진이 펜을 내밀었다.

“할 겁니까?”

순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동정이 아니라 당당한 일꾼으로 아이를 살릴 기회를 얻은 까닭이었다.

“하겠습니다! 뼈가 부서져라 일하겠습니다, 사장님!”

[긴급 의료 지원 심사 승인: 환자 대동 확인]
[2P 즉시 결제 + 노무 계약 담보 승인]

약국 선반에서 분홍빛 해열 시럽과 하얀 튜브 연고가 내려왔다.

도진이 순자에게 건넸다.

“한 숟가락 천천히 먹이고 상처 부위에 연고를 넉넉히 바르세요.”

순자는 떨리는 손으로 시럽을 먹이고 팔뚝에 연고를 펴 발랐다.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상처 주변의 보랏빛 혈관이 옅어지며 성난 열감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가쁘던 민우의 호흡이 고르고 편안하게 바뀌었다. 아이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 이제 안 아파.”

순자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손님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도진의 마트는 배고픔만 채우는 곳이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람을 건져 올리는 공간이었다.

총보다 귀한 알약

그때 정문 통유리를 두드리는 거친 소리가 울렸다.

쾅! 쾅! 쾅!

유리창 너머에 철혈 요새 정찰 3조장 최기석이 서 있었다. 뒤따라온 병사들도 넋이 나간 눈으로 매장 안의 녹색 십자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장! 문 열어라!”

최기석의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갈라져 있었다.

최기석이 몸을 들이밀었지만 투명한 결계에 부딪혀 반 걸음 튕겨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번호표도 없이 소란을 피우면 영구 출입 금지 처리합니다.”

도진이 팔짱을 낀 채 건조하게 쏘아보았다.

최기석은 군인의 체면도 잊은 채 약국 코너를 가리켰다.

“저 간판…… 진짜 약국인가? 저 안에 든 게 정품 의약품이냐고 묻고 있다!”

“약국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최기석의 눈에 핏발이 섰다.

“장갑차 안에 파편상으로 패혈증이 온 부하가 있다! 요새 본부에는 간부용 약품밖에 남지 않아 치료를 포기했단 말이다!”

그는 직인이 찍힌 군용 보증 전표 뭉치를 내밀었다.

“요새의 창고와 무기고를 열 수 있는 보증서다! 저기 있는 소독약과 항생제, 진통제를 전부 내놔라!”

절박한 외침이었으나 도진의 표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됩니다.”

“뭐라고?! 사람이 죽어간다고 했다!”

“손님, 귀가 먹으셨습니까?”

도진이 다가가 최기석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첫째, 요새 전표 따위는 여기서 라면 부스러기만도 못한 쓰레기입니다. 둘째, 약국은 사재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도진이 유리문에 부착된 안내판을 가리켰다.

“의약품은 환자 본인이 직접 오거나 명확한 기록이 있어야 팝니다. 한 사람당 딱 일 회 치료분만 제공하죠. 당신들이 쓸어가서 지휘관 금고에 처박아두는 꼴은 안 봅니다.”

“부하들이 죽어가는데 그깟 규정이 중요하단 말이냐!”

최기석이 주먹을 쥐고 떨었다.

도진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규정을 무시하고 총구부터 들이댄 건 당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잊으셨나 본데 아까 기관포로 정문을 겨눈 탓에 당신들은 아직 무기 보관료도 정산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도진은 보관함을 가리켰다.

“총기 네 정 보관료, 8포인트. 그것부터 치르기 전에는 약국 문턱 근처에도 못 옵니다.”

갑의 가격표

최기석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군 지휘관이 마트 사장의 가격표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였다.

등 뒤 장갑차 문틈으로 썩은 피비린내가 풍겨 나왔다.

상병 문상철이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조장님, 강 일병 숨이 넘어갑니다. 요새로 가봤자 가망이 없습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하셔야 합니다.”

최기석은 이를 악물었다.

저 결계를 억지로 뚫으려다 뼈가 으스러진 각성자의 최후를 망원경으로 똑똑히 보았던 터였다.

최기석이 방탄조끼 안쪽 비밀 주머니를 열었다.

그가 꺼낸 것은 잡티 없이 정제된 에메랄드빛 상급 마수 코어였다. 비상시 목숨값으로 숨겨둔 마지막 비자금이었다.

“이걸로 정산하겠다.”

도진이 결계 투입구를 열어 코어를 받았다.

[3급 정제 마수 코어 확인]
[순도 98.4% 최상급 에너지원]
[포인트 환산: 50P]

도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급 생존자 수백 명이 모여도 구하기 힘든 자원이었다.

“좋습니다. 총기 보관료 8포인트 차감합니다. 부상병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문상철 상병이 패드로 촬영한 영상이 있다. 흉부 파편상 및 대퇴부 골절에 따른 화농성 감염이다.”

최기석이 군용 패드를 유리창에 바짝 댔다.

시스템이 화면을 스캔하고 즉각 처방을 내렸다.

[환자 상태 원격 확인 완료]
[처방: 군용 특수 항생 연고 1개, 고농축 지혈 진통소염제 1회분]
[결제 금액: 12P]
[잔여 포인트: 30P (철혈 요새 정찰대 계정 예치)]

약국에서 묵직한 군청색 튜브와 은박 포장된 알약 두 알이 배출되었다.

도진이 약품을 건네며 서늘하게 덧붙였다.

“즉시 부상병에게 쓰세요. 이걸 빼돌려 간부에게 바치거나 암시장에 넘기는 순간 철혈 요새 전원은 영구 블랙리스트에 오릅니다.”

최기석은 손바닥 위의 약병을 내려다보았다. 갓 생산된 듯 완벽한 멸균 포장이었다.

총알 수천 발로도 살 수 없던 부하의 목숨이 가격표를 인정하자 손에 쥐어졌다.

“명심하겠다.”

최기석은 고개를 숙였다. 완전한 패배 인정이었다.

“보관된 무기 네 정도 찾아가시죠. 보관료를 치렀으니 돌려드립니다.”

보관함이 열리며 소총 세 정과 권총이 나왔다. 무기를 돌려받은 병사들의 눈에는 적개심 대신 짙은 경외심이 서려 있었다.

최기석과 병사들이 장갑차로 달려갔다. 이내 장갑차 안에서 비명이 잦아들고 안도의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기석이 떨리는 손으로 장거리 무전기를 잡았다.

[본부, 3조장이다. 목표 시설에 대한 무력 편입 작전을 전면 중단할 것을 건의한다. 반복한다. 무력 접수는 불가능하다.]
[……그곳엔 진짜 의약품이 보충되는 약국이 열렸다.]

무전기 너머 본부 통신실이 벼락을 맞은 듯 침묵했다.

동시에 마트 주변 폐허 잔해에 숨어 있던 독립 헌터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군대를 무릎 꿇린 마트.
그리고 죽은 자도 살려내는 기적의 약.

소문은 바람을 타고 폐허의 골목으로 퍼져나갔다.

도진은 두 배로 넓어진 삼십 평 매장을 둘러보며 약국 가격표를 가볍게 두드렸다.

“설희 씨.”
“네, 사장님.”
“내일부터는 손님이 아주 미어터지겠네요.”
“그럴 것 같네요. 번호표를 넉넉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도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아포칼립스의 진짜 장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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