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마법어를 독해하는 천재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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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왜곡된 조음
뒤쪽 갱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뒤 회랑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자욱한 석분이 가라앉자 현무암 아치문 너머의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도윤은 옷자락의 흙먼지를 털어내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발밑의 판석은 더 이상 붉은빛을 뿜지 않았다. 함정의 주기가 끝나 차가운 냉기만을 머금고 있었다.
아치문을 통과하자 시야가 단숨에 트였다.
그곳은 제1석실 하부에 자리한 거대한 원형 돔 석실이었다. 사방으로 동심원 형태의 계단식 석열이 둘러져 있었고 천장은 아득할 정도로 높았다. 돔을 떠받치는 열두 개의 굵은 현무암 기둥마다 기괴한 홈들이 파여 있었다.
세라가 등불을 들어 기둥 아래쪽을 비췄다.
“단순한 장식벽이 아니에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홈이 파여 있어요.”
도윤은 기둥 표면으로 다가가 손끝으로 홈을 짚었다. 거친 암석을 파고든 홈은 나선형으로 휘어지며 바닥의 중앙 제단으로 이어졌다.
“음향 유도로입니다.”
도윤이 낮게 말했다.
“소리의 진동을 한곳으로 모으고 증폭시키기 위해 설계된 음향 구조체입니다.”
라온이 칼자루를 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방 전체가 거대한 악기라는 뜻인가?”
“악기라기보다는 정밀한 조음 시험장에 가깝습니다.”
도윤은 기둥에 새겨진 부호들을 가리켰다. 벽면에 새겨진 것은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사람의 구강 단면도와 혀의 위치 그리고 공기가 빠져나가는 통로를 추상화한 조음 음성학적 기호들이었다. 입술을 닫았다 떼는 파열의 순간과 목구멍 안쪽에서 공기를 터뜨리는 기식의 강도가 정밀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세라의 목에 걸린 나침반 바늘이 찌르르 소리를 내며 불규칙하게 떨렸다.
“바늘이 돌지 않고 떨려요.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때 중앙 제단 근처를 살피던 라온이 발을 멈췄다.
“흔적이 있다.”
제단 아래 바닥에는 부서진 검은 밀랍 덩어리와 숯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 석판 조각들이 깨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도윤은 무릎을 꿇고 석판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표면에는 소리의 파형을 마력으로 굳혀 새긴 미세한 홈들이 남아 있었다.
“소리를 기록하고 반복해서 재생할 수 있는 고대 유물인 음성 각인석입니다.”
“검은 서기관들의 짓인가?”
라온이 묻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들은 이 방의 문을 열기 위해 준비해 온 발음을 각인석에 담아 제단에 접촉시켰습니다. 하지만 조음 조건이 맞지 않아 역류한 마력이 판석을 깨뜨렸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 전체가 낮게 진동했다.
우우우웅…….
석실 바닥을 타고 기괴한 울림이 번져 올랐다. 중앙 제단 상단의 종 모양 공명 장치가 푸른 마력 빛을 뿜으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들어오며 낸 발소리와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나선형 홈을 따라 일제히 제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윤의 손등에 새겨진 네 개의 어근 인장이 날카롭게 박동했다.
“물러서십시오!”
도윤이 외쳤다.
“제단이 깨진 각인석의 잔향과 우리의 말소리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콰아아앙!
제단 중심부에서 귀청을 찢는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각인석 파편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파편 사이로 검은 서기관들이 남겨둔 탁하고 쉰 목소리가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크아륵…… 토르……!’
성대를 짓누르며 억지로 짜내는 듯한 거칠고 메마른 음성이었다. 제국 학회가 표준이라 주장하는 전형적인 성문 폐쇄음 발성이었다.
공기가 뒤틀렸다.
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제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과 뒤엉켰다. 붉은빛과 짙은 푸른빛의 음파가 겹겹이 쌓이더니 눈앞에서 거대한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세라가 단도를 쥔 채 뒷걸음질 쳤다.
“저게 대체 뭐예요? 소리가 뭉쳐지고 있어요!”
그것은 소리로 빚어진 괴수였다.
반투명한 몸체 전체가 맹렬한 음파 진동으로 일렁였다. 맹수의 골격을 닮은 네 다리는 바닥을 딛는 순간마다 석판을 부수었고 머리 한가운데에는 겹겹이 주름진 거대한 나팔 모양의 구체가 뚫려 있었다. 몸통 둘레에는 굴절된 음파가 톱날처럼 곤두서 날카로운 쇳소리를 뿜어냈다.
라온이 즉시 검을 뽑아 들고 두 사람 앞을 막아섰다.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마수인가?”
“아닙니다. 음성 마법이 잘못된 조음을 먹고 변이한 음성 수호체입니다.”
도윤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굳었다.
“원래는 기록관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길을 여는 안내 마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검은 서기관들이 엉터리 발음을 억지로 집어넣으면서 의미가 파괴와 거부로 뒤틀렸습니다!”
쿠오오오오오!
괴물이 돔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을 토해냈다.
충격파를 머금은 음파 칼날 수십 개가 부채꼴로 퍼져나가며 석실 바닥을 갈아엎었다.
“피해라!”
라온이 외치며 오른팔을 뻗었다. 팔뚝의 회색 봉인 문양이 섬광을 발하며 공기 중에 두꺼운 결계막을 펼쳤다.
채애애앵!
음파 칼날이 결계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라온의 발이 뒤로 반 걸음 밀려났다. 충격의 여파로 돔 천장에서 먼지와 잔돌이 쏟아져 내렸다.
괴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팔 모양의 아가리를 벌리며 결계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라온 경!”
세라가 외치며 비수를 꺼내 괴물의 옆구리를 향해 던졌다.
강철 비수는 몸통에 닿는 순간 쐐애액 하는 파공음과 함께 허공에서 산산조각 났다. 초고주파 진동이 강철을 단숨에 갈아버린 것이다.
비수가 부서지며 낸 금속음과 세라의 외침이 허공을 맴돌다 괴물의 나팔형 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웅!
소리를 흡수한 괴물의 몸집이 한 치수 더 부풀어 올랐다. 반투명한 몸체 주위의 붉은 파문이 한층 짙어지며 진동의 폭이 배로 커졌다.
“소리를 먹고 있어요!”
세라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쇠 부딪치는 소리도 사람의 목소리도 전부 먹어치워서 몸집을 불립니다!”
라온이 이를 악물며 결계를 굳혔다.
“침묵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투 중에 완벽한 침묵은 불가능합니다!”
도윤이 소리쳤다.
라온의 검술도 방어 결계도 부딪치는 순간 필연적으로 충격음을 낳는다. 그 소리가 고스란히 적의 먹이가 되는 악순환이었다.
괴물이 앞발을 치켜들었다. 음파 톱날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라온의 결계를 내리찍었다.
콰르르릉!
결계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졌다. 라온의 입술 틈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오른팔의 봉인 문양이 과부하로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도윤! 세라를 데리고 물러서라!”
라온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곳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세라가 급히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바늘의 떨림을 관찰하던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도윤 씨 이쪽이에요! 일곱 번째 기둥 뒤편입니다!”
세라가 도윤의 팔을 잡아끌었다.
“저 기둥 주변은 바늘이 떨리지 않아요! 소리가 서로 부딪쳐서 지워지는 자리입니다!”
두 사람은 맹렬한 돌풍을 뚫고 굵은 현무암 기둥 뒤로 몸을 던졌다.
기둥 뒤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주변의 소음이 아득해졌다. 돔 구조의 특성상 반사된 음파들이 서로를 상쇄시키는 간섭 마디 즉 음향 사각지대였다.
하지만 그 안전지대는 사람 둘이 겨우 숨을 만한 비좁은 틈에 불과했다. 라온이 있는 중앙 제단 앞까지 넓힐 수는 없었다.
쩌저적!
라온의 회색 결계 절반이 깨져 나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라온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도 칼끝을 세우고 버텼다. 괴물의 나팔관 아가리가 라온의 머리 위로 덮쳐들고 있었다.
“라온 경이 위험합니다!”
세라가 단도를 고쳐 잡으며 뛰어나가려 했다.
도윤이 세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기다리십시오. 지금 칼을 들고 나가면 소리만 보태줄 뿐입니다.”
“그럼 저 사람을 그냥 죽게 둬요?”
“해법은 무력이 아니라 저 소리의 근원에 있습니다.”
도윤은 기둥 틈으로 괴물의 몸통을 응시했다. 괴물의 나팔관 깊은 곳에서 주기적으로 울려 퍼지는 불협화음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크아륵…… 토르……!’
그것은 검은 서기관들이 각인석에 남겨놓았던 왜곡된 발음의 파형이 돔의 유도로를 돌며 끝없이 증폭되는 루프였다.
도윤의 머릿속에서 비교언어학의 체계들이 맹렬하게 교차했다.
‘왜 괴물로 변했는가.’
잘못된 발음이 어떻게 이런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는가.
도윤의 시선이 괴물의 중심핵에 맺힌 음파의 파형을 꿰뚫었다. 파형의 첫머리가 지나치게 가파르고 각져 있었다.
‘성문 폐쇄음이다.’
도윤은 깨달았다.
제국의 지배층과 학자들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언제나 목구멍을 강하게 짓누르고 성대를 마찰시키는 경음 발성을 썼다. 된소리와 거친 파열음을 섞어 상대를 위압하는 낭독 습관이었다.
하지만 도윤이 확인한 고대어의 원래 발음 체계는 달랐다.
고대어는 목을 조이지 않는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호흡을 부드럽게 실어 내보내는 기식음 체계였다.
‘크아륵이 아니다. 성대를 누른 폐쇄음이 아니라 공기를 뿜어내는 기식음이어야 했다.’
그 차이는 치명적이었다.
목을 쥐어짜 만든 폐쇄음은 고대어에서 ‘물리치다’와 ‘갈기갈기 찢다’라는 파괴의 어근을 형성한다. 반면 호흡을 실어 내보낸 기식음은 ‘안으로 들이키다’와 ‘환대하여 맞이하다’라는 개방과 영접의 어근이었다.
검은 서기관들은 ‘기록의 방을 열어 맞이하라’는 문장을 읽으려다 목을 짓누르는 버릇 때문에 ‘불경한 자를 찢어발겨 분쇄하라’는 파멸의 명령으로 뒤바꿔 놓은 것이다.
괴물의 본질은 침입자를 향한 저주가 아니라 왜곡된 발음이 낳은 명령 그 자체였다.
“도윤!”
앞쪽에서 라온의 처절한 외침이 터졌다.
라온의 칼날이 괴물의 앞발을 간신히 쳐냈지만 입에서 피가 한 줄기 더 뿜어졌다. 오른팔의 봉인 문양은 거의 바래져 가고 있었다.
“올바른 발음을 찾았는가! 찾았다면 지금 당장 소리쳐라! 내가 놈의 시선을 끌겠다!”
도윤은 가슴을 펴고 깊은 호흡을 들이마셨다. 성대를 누르지 않고 가슴속 공기를 온전히 뿜어내는 기식음 조음법을 준비했다. 올바른 발음으로 명령을 덮어씌운다면 저 괴수를 이루는 음파의 연결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터였다.
입술을 열어 첫 음절을 내뱉으려는 찰나였다.
도윤의 눈이 중앙 제단 뒤편의 둥근 석판에 새겨진 미세한 표식에 닿았다.
그것은 발음 기호가 아니었다. 문장 맨 끝에 붙어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규정하는 고대의 존칭 접미사였다.
도윤의 숨이 턱 막혔다.
‘잠깐…….’
벼락같은 경고가 내리꽂혔다.
이 문장은 단순한 음성 암호가 아니었다. 듣는 자가 누구인지 정해져 있는 계약문이었다.
만약 청자가 누구인지 올바르게 부르지 않은 채 발음만 고쳐 외친다면 어떻게 되는가.
수호체는 그 소리를 명령의 교정이 아니라 권한 없는 침입자가 흉내 내는 소음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호체는 마지막 남은 마력까지 전부 폭발시켜 석실 전체를 날려버릴 터였다.
“말해라! 도윤!”
라온의 결계가 마침내 완전히 깨져 나갔다.
챙그랑!
유리창이 박살 나듯 결계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괴물은 거대한 나팔관 아가리를 활짝 벌렸다. 석실 안의 모든 잔향과 공기를 집어삼킨 괴물이 라온과 도윤을 향해 일격에 모든 것을 분쇄할 암청색 음파 포탄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세라가 비명을 질렀고 라온의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도윤은 붉게 달아오른 괴물의 아가리를 마주 보며 주먹을 쥐었다.
발음만으로는 안 된다.
저 소리를 멈추려면 소리를 듣고 있는 대상의 진짜 이름을 불러야 한다.
파멸의 음파가 뿜어져 나오기 직전 도윤의 시선이 제단의 가장 깊은 어둠 속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