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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마법어를 독해하는 천재 언어학자7화

고대 마법어를 독해하는 천재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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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듣는 자의 자리

괴물의 나팔관 안에서 암청색 빛이 한 점으로 모였다.

도윤은 들이마신 숨을 삼켰다. 발음을 바로잡아 외치려던 혀를 멈추지 않았다면 그 소리까지 괴물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라온의 결계는 이미 부서졌다. 그가 검집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엎드려라!”

라온은 검집으로 바닥의 홈을 내리쳤다. 돌을 타고 울린 금속음에 괴물의 머리가 돌아갔다. 응축된 음파가 라온 쪽으로 쏟아졌다.

라온이 노린 것은 충격을 막는 일이 아니었다. 포탄이 도윤에게 닿기 전에 그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이미 부서진 방벽 대신 그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자기 몸뿐이었다.

세라가 도윤의 목덜미를 붙잡아 일곱 번째 기둥 뒤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은 바닥을 구르며 음향 사각지대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음파가 기둥을 스쳤다. 검은 암석 표면이 가루로 변했다. 라온은 칼날을 비껴 세워 충격을 흘렸지만 그대로 계단까지 튕겨 나갔다. 그의 오른팔 문양에서 회색 불꽃이 튀었다.

돌계단 모서리가 라온의 옆구리를 때렸다. 그가 짧게 숨을 토해냈다. 다시 몸을 일으킬 때도 오른팔은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라온 경!”

세라의 입술이 움직였으나 도윤이 손가락을 입에 대어 막았다. 괴물의 몸통이 세라 쪽으로 부풀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켰다.

라온은 한쪽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검집에 금이 갔고 오른팔은 검을 쥘 때마다 떨렸다.

도윤은 제단 뒤편의 작은 표식을 다시 보았다. 기둥이 부서지며 날린 돌가루가 홈을 채웠다. 그 덕분에 원래 얕아 보이던 획이 도드라졌다.

“저기까지 가야 합니다.”

그가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제단과 기둥 사이는 고작 여섯 걸음이었지만 괴물의 앞발이 그 길을 막고 있었다. 세라는 등불을 내려다보더니 손잡이를 쥐었다.

등불을 제단 옆 낮은 홈으로 굴렸다. 금속 테가 굴러가며 짧은 소리를 냈다. 괴물의 머리가 등불을 좇았다. 하지만 몸통은 중앙 제단을 향해 기울었다.

등불은 홈 끝의 낮은 턱에 부딪혀 멈췄다. 불꽃이 흔들리며 괴물의 몸속을 비췄다. 탁한 파동이 제단의 깨진 각인석과 가는 줄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들었어요?”

세라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은 가장 큰 소음을 향해 아가리를 돌렸지만 몸을 움직인 것은 제단에서 올라온 낮은 울림이었다. 명령을 붙든 곳이 저기였다.


도윤은 몸을 낮추고 기둥을 돌아 나왔다. 괴물의 앞발이 등불을 덮쳐 유리가 깨졌다. 세라가 나침반을 들어 바늘을 살폈다.

“왼쪽. 지금은 왼쪽 홈이 조용해요.”

도윤은 그녀가 가리킨 음향 마디를 따라 제단 뒤로 들어갔다. 기둥의 나선형 홈들이 모두 제단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가까이서 보니 가장 안쪽의 가는 홈 하나가 천장까지 올라가 있었다.

제단에는 두 줄의 표식이 있었다. 첫 줄의 획은 깨진 각인석 아래에 가려져 있었다. 둘째 줄은 얇은 구부림 뒤에 두 점이 찍힌 존칭이었다. 도윤이 알고 있는 하린 고어의 부름말과 형태가 닮았다.

그는 섣불리 뜻을 붙이지 않았다. 제단 둘레를 반 바퀴 돌며 같은 표식이 있는지 찾았다. 천장으로 올라가는 홈의 시작점에 구부린 획과 두 점이 한 번 더 새겨져 있었다. 제단의 소리가 향하는 곳마다 같은 높임이 붙어 있었다.

그는 석판 파편을 들어 각인석에 남은 음각과 맞춰 보았다. 검은 서기관들이 새긴 소리에는 첫 줄의 파괴 어근만 반복돼 있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끝맺음이 비어 있었다.

“받는 자가 없군.”

라온이 먼 곳에서 말했다. 그는 다시 다가오는 괴물의 앞을 막고 있었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없어서 방 안의 소리를 듣는 것 전부에게 흩어진 겁니다. 괴물도 그 명령을 듣는 자리에 걸렸습니다.”

“그럼 이름을 넣어라.”

“이름은 모릅니다.”

도윤은 제단 끝의 두 점을 손톱으로 짚었다.

“이건 이름 뒤에 붙이는 높임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선 이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는 확신을 누르며 홈을 더듬었다. 제단에서 위로 뻗은 가는 길은 방 입구 방향이 아니었다. 상층 제1석실 중앙의 수정구가 놓였던 바로 그 자리를 향했다.

도윤은 손등의 인장이 빛나는 것을 보면서도 그 힘을 끌어다 쓰지 않았다. 인장은 이미 아는 어근의 흔적일 뿐 모르는 수신자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는 표식의 위치와 소리의 길을 다시 확인했다.

세라의 나침반 바늘이 몇 차례 흔들렸다. 제단의 울림이 끊길 때도 바늘은 천장 쪽에서 돌아오는 미세한 박동을 따라 떨었다.

“위에서 소리가 돌아와요. 아래에서만 나는 게 아니에요.”

라온이 괴물의 앞발을 피하며 말했다.

“상층의 수정구도 우리 목소리에 반응했다.”

도윤은 그때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셋째는 이미 이름을 잃었다고 말하던 건조한 잔향. 살아 있는 사람이 말한 것 같지 않았다.

“수정구 안에 누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저 홈의 끝은 그쪽입니다.”

그는 표식의 획순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구부린 획은 기록을 받아 모으는 그릇의 그림과 닮았고 두 점은 듣는 자리의 높임을 나타냈다. 아는 음가와 문법 범위에서 읽으면 ‘기록을 받아 듣는 이’에 가까웠다.

“확정이 아니라 가설입니다. 청자는 저 괴물이 아니라 위의 기록 수신자입니다.”

“그러면 저것이 말하는 자란 뜻인가?”

라온의 물음에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훼손된 소리를 실어 나르는 통로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통로가 스스로 그 말을 듣고 실행하고 있어요. 원래 끝나야 할 곳을 지정하면 적어도 방 안 전체로 퍼지지는 않을 겁니다.”

파편 속에서 쉰 목소리가 다시 돌았다.

‘크아륵…… 토르…….’

괴물의 등이 부풀었다. 이번에는 라온을 향해 나팔관을 고정했다.


“얼마나 필요하지?”

라온이 물었다. 그의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

“한 박자.”

세라가 도윤보다 먼저 답했다. 그녀는 나침반 바늘이 떨림을 멈추는 순간을 기다렸다.

“도윤 씨. 바늘이 위를 향할 때 말해요. 그때 홈이 열려요.”

도윤은 깨진 각인석과 제단의 표식을 번갈아 보았다. 파괴 어근을 다시 읽을 수는 없었다. 그 말을 자신의 명령으로 삼고 싶지도 않았다. 필요한 것은 잘못 흩어진 청자의 자리를 좁히는 일이었다.

“위의 것이 대답하지 않으면?”

세라가 물었다.

“모릅니다. 다만 이 장치에는 청자를 지정하기 전까지 명령이 홈을 맴돈 흔적이 있습니다. 되돌릴 시간은 벌 수 있습니다.”

라온이 몸을 던져 괴물의 시선을 붙들었다. 검집이 두 동강 났다. 오른팔의 봉인 문양이 잠깐 빛나다 꺼졌다.

세라의 손이 들렸다.

바늘이 위를 가리켰다.

도윤은 제단의 얕은 획을 손끝으로 짚고 숨을 낮게 뿜었다. 성대를 짓누르지 않은 소리가 홈을 탔다. 구부린 획과 두 점이 이루는 부름말을 확인한 음가대로 발화했다.

다른 말은 보태지 않았다. 파편이 반복하는 파괴 어근을 입에 올리는 순간 자신의 목소리까지 그 명령에 묶일 수 있었다.

“기록을 받아 듣는 이여.”

나팔관이 도윤에게 돌아왔다. 음파가 목구멍까지 찼다.

그 순간 기둥의 가는 홈에 푸른빛이 올랐다. 석실에서 천장으로 이어진 선 하나만 밝아졌다. 괴물의 나팔관을 둘렀던 붉은 고리들이 그 선에 걸려 하나씩 멈췄다.

도윤은 숨을 참았다. 위쪽에서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만 천장 너머에서 맑은 빛이 한 번 뛰었다. 괴물의 몸이 흔들렸다. 파괴 명령을 품은 각인석 파편도 더 이상 방 안 전체를 향해 떨지 않았다.

나팔관 끝에 매달린 음파가 곧장 터지지 못하고 가늘게 늘어졌다. 방향을 잃었던 붉은 파문이 천장으로 이어진 홈 하나에 몰렸다. 세라는 그때까지 라온을 붙잡고 있던 괴물의 앞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지금이다!”

세라가 제단 옆에서 파편을 낚아챘다. 도윤은 뜨거운 파편을 외투 자락으로 감싸 들어 음향 홈 바깥으로 밀어냈다. 금속성 반복음이 끊어졌다.

괴물의 네 다리가 안쪽으로 접혔다. 음파 칼날이 얇은 선으로 풀려 제단으로 돌아갔다. 나팔관은 손바닥만 한 종 모양으로 줄어들었다.

종 안에서는 낮은 한 음만 남았다. 처음 석실에 들어왔을 때 들렸던 안내음과 닮았지만 그때처럼 공기를 물어뜯지는 않았다.

라온이 무릎을 꿇었다. 세라가 달려가 그의 어깨를 받쳤다.

“저게 끝난 거예요?”

“멈춘 겁니다.”

도윤은 아직 희미하게 떨리는 제단을 보았다.

“명령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듣는 자의 자리에 묶였고 응답은 없습니다. 파편을 다시 홈에 얹으면 반복될 수 있어요.”

그는 외투로 감싼 파편을 멀리 밀었다. 세라가 손수건을 꺼내 그 위에 덮었다.

“그럼 이건 제가 챙길게요. 잘못 밟고 다시 소리 나게 할 순 없잖아요.”

세라는 파편을 손수건째 묶어 빈 약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입구를 두 번 감아 닫은 뒤 제단과 떨어진 벽 틈에 두었다.


라온은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올리려다 얼굴을 찌푸렸다. 세라가 팔꿈치 아래를 받쳐 준 뒤 천 조각으로 고정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뼈는 붙어 있어도 문양 쪽은 모르겠어요.”

“검은 쥘 수 있다.”

“검집부터 없어졌잖아요.”

세라는 웃어 보이려 했지만 매듭을 묶는 손끝이 자꾸 미끄러졌다. 라온은 왼손으로 천 끝을 붙들어 주었다.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라온은 대꾸하지 못했다. 도윤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라온 경이 첫 음파를 돌려 주지 않았다면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대가 말을 멈추지 않았다면 내가 한 일도 소용없었겠지.”

도윤은 펜을 꺼냈다. 제단에 남은 호칭의 획과 파편을 치운 자리를 기록했다. 읽은 음절도 적되 뜻 옆에는 물음표를 붙였다.

세라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살았는데도 아직 가설이에요?”

“살았다는 사실과 뜻을 전부 알았다는 건 다릅니다. 위쪽에서 누가 들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어요.”

라온이 피 묻은 입가를 닦았다.

“확인하러 가야 한다. 돌아갈 길은 없으니까.”

제단 안쪽에서 낮은 돌 마찰음이 났다. 동심원 계단 한쪽이 갈라지며 위로 향하는 좁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빛의 가는 선이 그 안으로 이어졌다.

세라가 먼저 올라가며 나침반을 살폈다. 이번에는 바늘이 흔들리지 않았다. 도윤은 라온의 왼편을 받치고 계단을 올랐다.

상층 제1석실의 찬 공기가 내려왔다. 세 사람 앞에 희미한 수정구가 보였다. 내부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 모양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도윤이 아래에서 읽은 호칭을 마음속으로 되짚자 수정구 표면에 푸른 선이 한 줄 번졌다.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라가 등불 대신 남은 작은 불씨를 들었다. 그 빛 아래 수정구 표면에 손바닥 크기의 빈 무늬가 떠올랐다.

“여기에 손을 대라는 뜻일까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늬 속에서 그들의 손을 기다리는 듯 푸른 빛이 한 번 더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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