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13화: 손님이 몰고 온 봄
라 보나의 문을 열기도 전에 물레방앗간 앞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저 줄은 전부 카페 손님인가요?”
마리가 창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아마도요. 저기 깃발을 든 사람들은 남쪽 도시에서 온 상인 같고요.”
엘리제는 중앙 공개 시식 참석자 명단을 접었다. 초대된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었지만 소문은 초대장보다 빠르게 달렸다. 라 보나의 디저트가 기사들의 피로를 풀고 귀족의 마력을 안정시킨다는 이야기가 마차를 타고 영지 바깥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오늘은 용의 눈물 타르트를 먹을 수 있습니까?”
“마력 허브도 이곳에서 살 수 있습니까?”
문밖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엘리제의 눈썹이 올라갔다. 마지막 질문은 디저트 손님의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라 보나의 다음 돈벌이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마리. 문은 열되 안으로 한꺼번에 들이지 마세요. 번호표를 나눠 주고 한 시간에 열두 명씩 받습니다. 주민 손님은 외지 손님과 분리해서 먼저 앉히고요.”
“열두 명이면 너무 적지 않나요?”
“적어야 해요. 오늘 만든 크림과 에센스는 스무 명분밖에 없어요. 효능 기록을 남겨야 하는 디저트를 눈대중으로 늘리면 라 보나가 먼저 망가져요.”
엘리제는 카운터 옆에 새로 만든 나무판을 세웠다. 손님 이름과 시식 시간 그리고 섭취량을 적는 칸이 나뉘어 있었다. 아델은 작은 잉크병을 들고 그 옆에 섰다.
“제가 이름을 적을게요.”
“숫자도 정확하게 적어야 해. 타르트 반 조각인지 한 조각인지 헷갈리면 안 돼.”
“네. 기록을 지키는 사람이 가게를 지키는 거죠?”
“맞아. 오늘은 영지를 지키는 일도 될 거야.”
첫 손님들이 들어오자 카페 안은 버터와 바닐라 향으로 가득 찼다. 중앙에서 온 귀족들은 좁은 의자와 나무 식탁을 둘러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타르트를 먹은 뒤에는 조용히 기록판을 바라보았다.
“증상이 가라앉았다고 추가로 드시면 안 됩니다. 물을 마시고 십 분 동안 반응을 기다리세요.”
“이 정도 가격이면 두 개쯤은 먹어야—”
“치료용으로 만든 디저트는 양으로 효능을 올리는 물건이 아니에요. 손님의 욕심이 공정표보다 강하면 판매하지 않겠습니다.”
상대가 얼굴을 붉혔지만 엘리제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때 문밖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왜 우리는 뒤로 미루는 겁니까? 초대받은 손님들이 먼저 아닌가요?”
“저분들은 라 보나가 생기기 전부터 이곳에서 물건을 사 주신 주민입니다.”
카일레온의 낮은 목소리가 소란을 눌렀다. 검은 망토를 걸친 그는 입구 옆에서 손님들의 통행을 정리하고 있었다. 칼은 허리에 있었지만 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카일레온 님. 기사들은 경비만 맡겨 주세요. 시식대에는 손대지 말고요.”
“그대는 나를 종업원처럼 부리는군.”
“오늘은 후원자보다 문지기가 더 필요한 날이에요.”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지기라면 잘할 수 있다.”
광장에는 임시 천막이 세워졌다. 번호표를 받은 사람들은 물레방앗간 수로를 따라 걸으며 허브차를 마셨고 외지 손님들은 주변의 허브 밭과 마차 보관소를 유심히 살폈다.
“저 허브는 어디에서 납품합니까?”
“이 근처 밭에서요.”
“드래곤 프루트 씨앗도 이 영지에서 나옵니까?”
질문이 쏟아질수록 엘리제는 기뻐하기보다 머리가 아파졌다. 오늘 팔리는 것은 타르트만이 아니었다. 밸류어 영지의 흙과 물과 길이 함께 값을 매겨지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베른이 주문서 뭉치를 들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공녀님. 허브와 버터 그리고 마력 순화 결정 주문서가 스물세 장입니다. 숙박을 문의하는 마차도 여섯 대나 들어왔습니다.”
엘리제는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남부 도시의 상인들은 라 보나의 디저트를 도시로 가져가고 싶어 했다. 그중에는 밸류어 주민에게 직접 재료를 사겠다는 계약서도 있었다.
“이 가격은 왜 이렇게 낮아요?”
“운송비를 부담한다는 조건입니다.”
“수확량이 줄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다음 계절부터 가격을 다시 깎을 겁니다.”
엘리제는 계약서를 탁자 위에 펼쳤다.
“원료마다 등급을 세 개로 나누고 수분과 마력 농도를 확인해야 해요. 매입가는 등급에 따라 고정하고 불량품은 반품할 수 있게 하세요. 운송 중 손상은 상인이 책임지고요.”
베른이 눈을 크게 떴다.
“공녀님께서 직접 농가 계약까지 하시려고요?”
“라 보나가 원료를 전부 사들이면 금방 망해요. 주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우리는 검수된 만큼만 사야 해요. 그래야 공급도 늘고 가게도 품질을 지킬 수 있습니다.”
로딘이 데려온 물레방앗간 관리인은 낡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폐창고는 비어 있습니다. 지붕이 새서 마차도 들이지 못하지만 손보면 쓸 수 있지요.”
“수로 옆 창고를 원료 집하장으로 쓰고 싶어요. 지붕 수리비는 라 보나에서 먼저 내겠습니다. 대신 마을에서 들어오는 재료는 이곳에서 무게와 마력 농도를 확인하게 해 주세요.”
“그럼 우리도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까? 귀족 나리들은 물건을 가져간 뒤 늘 흠을 잡았습니다.”
“저는 흠을 잡기 전에 이유를 적을 겁니다. 기록이 없으면 저도 손해를 보니까요.”
아델이 검수표에 날짜와 항목을 적고 시료 봉인을 붙였다.
“이 봉인은 누가 뜯었는지도 알 수 있어요.”
관리인은 봉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좋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첫 수레를 보내지요.”
그날 저녁 물레방앗간 앞에는 주민들이 허브 자루를 들고 모였다. 외지 마차들은 빈 창고의 크기를 재었고 마리는 방문객에게 근처 여관 위치를 알려 주었다. 로딘은 마차가 수로를 막지 않도록 이동 순서를 정했다.
라 보나 하나의 불빛이 마을 전체의 움직임을 바꾸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밸류어 공작이 별저에서 내려왔다.
“네 이름으로 들어온 계약서가 내 집무실 책상 절반을 덮었다. 직접 보지 않고 판단할 수는 없지.”
공작은 광장을 둘러보았다. 손님을 태운 마차가 서 있었고 물레방앗간 옆 창고에서는 주민들이 원료를 내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잡초만 자라던 길에 번호표를 든 사람들이 줄을 만들고 있었다.
“이게 모두 네가 만든 일인가?”
“제가 혼자 만든 건 아니에요. 가게에 손님이 왔고 주민들이 재료를 길렀고 마차가 길을 오갔을 뿐이죠.”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공작은 베른에게 장부를 건네받았다. 매출과 재료비 그리고 임시 천막 설치비가 한 줄씩 적혀 있었다.
“공작령 예산을 쓰지 않고 네 출자금으로 처리했군.”
“처음에는 카페의 확장 비용이니까요. 수로와 도로를 고치는 건 카페만의 일이 아니에요. 손님이 늘면 영지의 공공시설이 됩니다.”
공작의 시선이 길게 이어졌다.
“네가 공작령의 수입 구조를 설명하는 모습이 낯설군.”
“저도 제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요.”
“후계자가 될 생각은 있느냐?”
엘리제의 손에서 장부 모서리가 구겨졌다.
“없습니다. 저는 조용히 살려고 카페를 열었어요.”
“그런데 네가 하는 일은 이미 공작령의 일이다. 주민과 계약하고 길을 고치며 외지 상인을 상대한다. 네가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너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
엘리제는 광장을 바라보았다. 아델은 새로 온 수레의 자루를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마리는 어린 손님에게 번호표를 설명했고 베른은 상인에게 운송 조건을 다시 읽어 주고 있었다.
“후계자가 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요.”
“약속을 요구한 게 아니다.”
공작은 자신의 인장을 꺼내 임시 유통 관리 문서 아래에 찍었다.
“오늘부터 남부 상업 회의에서 밸류어 영지를 대표할 임시 의결권을 네게 준다. 라 보나와 원료 집하장 그리고 관련 도로의 운영을 네 판단으로 조정해라.”
“이건 시험인가요?”
“네가 묻는 순간부터 시험이다.”
엘리제는 문서를 받아 들었다. 종이 한 장이 앞치마 주머니보다 훨씬 무거웠다.
“조건을 하나 붙일게요. 생산량을 늘리라는 명령은 받지 않겠습니다. 품질 기준을 넘는 원료와 공정은 아무리 큰 상단이라도 거절할 겁니다.”
공작은 잠시 침묵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까지 포함해 맡기지.”
그날 오후 에드윈이 봉인된 서류를 들고 라 보나에 들어왔다. 카일레온도 그 뒤를 따랐다.
“황실에서 온 문서입니다. 라 보나의 디저트를 제국 각지의 감찰 거점에 정기 공급하고 싶다는 요청이지요.”
“얼마나 많이 필요하죠?”
“최소 하루 삼백 개입니다.”
베른이 계산판을 찾는 동안 엘리제는 주방으로 갔다. 새로 들어온 허브 분말 한 자루를 열고 시료 세 개를 반응관에 나누어 담았다. 같은 양의 우유 크림을 부었지만 세 번째 관 바닥에 회색 침전이 생겼다.
“같은 허브인데 반응이 다릅니다. 대량으로 섞으면 효능이 약한 것과 마력 자극이 과한 것이 섞일 거예요.”
카일레온의 표정이 굳었다.
“황실은 기다릴 수 없다.”
“저도 손님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기록보다 많은 양을 만들면 치료용 디저트가 아니라 복불복 과자가 됩니다.”
엘리제는 문서를 에드윈에게 밀어 주었다.
“공정실을 하나 더 만들고 숙련 계량 담당자를 길러야 합니다. 그 전까지는 하루 생산량을 백 개로 제한하겠어요. 황실 계약도 같은 조건으로만 협의할 겁니다.”
카일레온의 눈동자에 놀라움과 묘한 기쁨이 떠올랐다.
“더 큰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거절하는군.”
“거절한 게 아니에요.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만큼만 받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공정실을 내가 마련하지. 그리고 그대가 제국의 공식 수석 파티시에가 되는 자리도 마련할 수 있다.”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죠. 오늘은 창고의 허브부터 다시 분류해야 하니까요.”
라 보나 밖에서는 또 다른 마차가 멈췄다. 손님을 태운 마부가 밸류어 영지의 여관을 찾고 있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주민들이 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물레방앗간의 낡은 수차는 밤이 되도록 돌아갔다.
엘리제는 반응관 속 회색 침전을 바라보았다. 카페의 불빛은 이제 골목 하나만 밝히지 않았다. 빛이 커질수록 그 안에서 생기는 그림자도 짙어질 터였다.
그녀는 앞치마 끈을 다시 묶었다.
“좋아요. 그럼 다음 공정부터 바꿔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