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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12화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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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압력솥의 밤

라 보나의 문이 닫힌 뒤에도 아무도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카일레온은 창가에 서서 어둠이 내려앉은 물레방앗간 쪽을 바라보았다. 서리처럼 차갑던 마력은 가라앉았지만 그의 눈빛은 아직 검집 속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감찰단을 부르지.”

“이미 세 명이 뒤쪽 골목을 지키고 있어요.”

에드윈이 문가에서 대답했다. 그의 손에는 젖은 흙이 묻은 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이 흔적은 창고 뒤 환기구에서 나왔습니다. 발자국은 둘이지만 안쪽에서 문고리를 만진 흔적은 세 사람 분량입니다.”

베른이 장부를 품에 끌어안았다.

“세 명이면 충분히 위험합니다. 레시피가 아니라 가게 전체를 빼앗으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사들을 안으로 들이지 않을 거예요.”

엘리제는 주방 한쪽의 압력솥을 바라보았다. 황실 보급 계약으로 받은 금속 압력솥은 고압 밀폐 서클로 탄산 펄을 만들 때 쓰던 도구였다. 옆에는 반응성 연금 분말과 점성이 높은 당밀액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칼싸움이 벌어지면 가마도 깨지고 증거도 날아가요. 제가 잡겠습니다.”

카일레온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잡는다는 말이 너무 가볍군.”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고 움직임만 막을 겁니다. 압력을 올리는 게 아니라 압력이 빠져나가는 방향을 정하는 거예요.”

엘리제는 압력솥의 안전 밸브를 분리해 책상 위에 올렸다. 증기가 한쪽 배관으로만 흐르도록 낡은 구리 관을 연결하고 끝부분에는 당밀액과 순화 결정 분말을 섞은 포획액을 채웠다.

“이 거품은 공기와 만나면 세 배로 부풀어요. 피부에 닿아도 끈적할 뿐이고 마력을 흡수하지 않습니다. 발목과 손목을 감싸면 칼을 휘두르기 어려워지죠.”

“압력솥을 함정으로 쓰겠다고요?” 마리가 물었다.

“폭발시키는 함정이 아니에요. 안전 밸브를 건드리는 순간 증기가 바닥 배관으로 빠지고 포획액이 통로를 막는 구조예요. 밸브가 두 개라 하나가 망가져도 압력은 반드시 빠집니다.”

엘리제는 직접 압력계를 두 번 확인했다. 바늘은 녹색 영역 안에 머물렀다.

“아델은 카운터 안쪽에 있어. 낯선 사람이 보이면 이 종을 한 번만 울려.”

“제가 신호를 보내면 되는 거죠?”

아델은 손목의 해진 끈을 꼭 쥐었다. 희미한 빛이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렸다.

“맞아. 무서워도 뛰어나오지 말고 기록판부터 지켜.”

“네. 기록판은 제가 지킬게요.”

엘리제는 아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작게 떨리던 빛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카일레온 님은 매장 뒤쪽에 계세요. 제 신호가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마세요.”

“명령인가?”

“손님에게 드리는 영업 안내예요. 라 보나 안에서는 점주의 말을 따라야 하거든요.”

카일레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번에는 그대의 방식으로 하지.”


자정이 지나자 라 보나는 불을 하나씩 껐다. 카운터 위에는 일부러 낡은 장부 한 권과 밀랍으로 봉인한 작은 상자가 놓였다.

장부에는 백청 쿠키와 블루펄 에이드의 재료명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농도와 온도 기록은 모두 바꿔 둔 가짜였다. 진짜 공정표는 아델이 들고 주방 벽 안쪽의 빈 선반에 숨겼다.

엘리제는 창고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였다.

사각.

바깥에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환기구 덮개가 아주 조금 들렸다.

엘리제는 카운터 아래의 줄을 당겼다. 작은 종이 한 번 울렸다.

아델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곧 기록판에 무언가를 적는 바스락거림이 이어졌다.

환기구로 검은 천을 두른 사내가 내려왔다. 그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손바닥으로 주위를 훑었다. 뒤이어 두 명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주방은 오른쪽이다.”

“배치까지 알고 있군요.”

엘리제가 어둠 속에서 낮게 말했다.

사내 셋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가운데 남자가 단검을 뽑았다.

“밸류어 공녀. 조용히 장부만 내놓으면 다치게 하지 않겠다.”

“제 카페에 몰래 들어와서 협상부터 하다니. 골드미르 상단은 예절 교육도 비용으로 치나요?”

“상단의 이름을 어떻게—”

남자가 말을 멈췄다. 허리춤에서 금빛 인장이 드러나 있었다.

엘리제는 일부러 한 걸음 물러났다. 사내들은 그녀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듯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장부는 저 상자 안에 있어요. 열쇠는 압력솥 아래에 있습니다.”

“직접 꺼내.”

“손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야죠.”

엘리제는 압력솥 옆으로 걸어갔다. 가운데 사내가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가 안전 밸브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엘리제는 작은 레버를 당겼다.

푸슈우우우!

압력솥의 밸브가 열리며 흰 증기가 바닥을 타고 퍼졌다. 증기 속 포획액이 끈적한 거품으로 부풀어 올라 세 사내의 발목을 감쌌다.

“이게 무슨—!”

첫 번째 사내가 단검을 휘둘렀지만 거품이 손목까지 올라왔다. 칼끝은 허공을 가르고 바닥에 떨어졌다.

두 번째 사내가 환기구로 되돌아가려 했으나 레온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에드윈과 감찰단원 둘이 양쪽 출구를 막았다.

“움직이지 마라.”

레온이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칼을 뽑지 않았다.

세 번째 사내는 품에서 작은 마력석을 꺼냈다. 푸른 불꽃이 손바닥에서 튀었다.

“마력석은 내려놓으세요.”

엘리제가 안전 밸브를 다시 가리켰다.

“포획액은 마력 반응이 커질수록 더 빨리 굳어요. 얌전히 있으면 금방 풀리지만 저항하면 손가락부터 못 움직이게 됩니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마력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때 카운터 안쪽에서 아델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손에는 기록판이 들려 있었다.

“공녀님. 내려온 순서와 말한 내용을 적었어요.”

가운데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저 계집도 있었나?”

아델의 빛이 크게 흔들렸다. 엘리제는 곧장 아델 앞을 막아섰다.

“여기는 제 견습생이에요. 그리고 당신들이 훔치러 온 기록의 관리 담당자죠.”

엘리제는 가짜 장부를 들어 올렸다.

“이건 가져가도 됩니다. 대신 안에 적힌 숫자를 믿었다가는 골드미르 상단의 가마가 세 번은 터질 겁니다.”

“가짜라고?”

“공정 기록을 훔치는 사람이 숫자 하나를 검증할 생각도 안 했나요?”

에드윈이 사내들의 허리춤을 수색했다. 작은 열쇠와 유리병 그리고 접힌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종이에는 골드미르 상단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라 보나 주방 배치와 특허 관련 장부를 확보할 것. 성공 시 선금 삼백 금화. 실패 시 상단과의 관계를 부인한다.

엘리제는 종이를 읽고 입꼬리를 올렸다.

“관계를 부인한다면서 인장은 참 친절하게 찍어 두셨네요.”


다음 날 아침 세 명의 밀정은 영지 행정관서로 넘겨졌다. 엘리제는 압력솥의 안전 밸브와 포획액 제조 기록을 별도 상자에 넣어 들고 갔다.

골드미르 상단의 대리인은 이미 관서에 와 있었다. 그는 비단 망토를 매만지며 밀정들과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저들은 상단에서 고용한 운송인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벌인 절도 행위에 상단을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운송인이 환기구를 타고 들어가나요?”

엘리제가 되묻자 대리인의 표정이 굳었다.

베른은 계약서를 펼쳤다.

“황실 보급 계약 제7조. 라 보나의 재료 장부와 공정 기록은 점주의 소유이며 허가 없는 반출을 금지한다는 조항입니다. 이들이 노린 물품은 계약 보호 대상입니다.”

에드윈은 감찰단의 입회 기록을 내밀었다.

“침입 전부터 외곽 감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밀정 셋의 이동 경로와 체포 시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리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 압력솥이 사람을 묶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불법적인 함정일 수도 있지요.”

엘리제는 준비해 온 시험관에 포획액을 덜었다. 그리고 밀정에게서 나온 마력석을 가까이 가져갔다.

거품이 즉시 단단하게 굳었다.

“포획액은 마력석의 출력이 올라갈 때만 응고합니다. 어젯밤 세 번째 사람이 마력석을 꺼냈을 때 손목에 거품이 올라온 이유도 이 반응으로 설명됩니다.”

그녀는 안전 밸브를 열어 압력계를 보여 주었다.

“압력은 녹색 영역을 넘지 않았습니다. 밸브를 건드린 순간 증기가 아래로 빠졌고 통로에 포획액이 퍼졌어요. 누구도 폭발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행정관이 밀정의 지시서를 집어 들었다. 종이 뒷면에는 중앙 학회 공개 시식 전에 특허 의견서를 가로채라는 추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건 단순 절도보다 중합니다.”

행정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상단이 직접 지시했는지 조사하겠습니다. 밀정들은 구금하고 압수한 문서는 봉인하겠습니다.”

대리인은 더 이상 웃지 못했다.

관서 밖으로 나오자 카일레온이 돌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는 나를 부르지 않았군.”

“부르면 기사들이 다 잡아 버릴 테니까요. 저는 제 손님을 제가 상대하고 싶었어요.”

“손님이라.”

카일레온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대는 나를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는군.”

“카페 안에서는 모두 손님이에요. 다만 규칙을 지키는 손님과 지키지 않는 손님이 있을 뿐이죠.”

카일레온의 시선이 엘리제의 손에 들린 봉인 상자로 내려갔다.

“그렇다면 나도 규칙을 지키겠다. 중앙 공개 시식에는 황실 감찰단의 정식 입회 자격으로 동행하지.”

“좋아요. 대신 시식대 앞에서 검을 뽑지는 마세요.”

“그대가 명령한다면.”

라 보나로 돌아온 엘리제는 새 안내문을 문에 붙였다.

외부 재료와 장부 반입 금지.
주방 출입은 점주와 지정 견습생만 가능.
모든 시식과 공정은 입회 기록 후 진행.

아델이 마지막 줄을 적었다.

‘기록을 지키는 사람은 가게를 지킨다.’

엘리제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중앙 학회에서 두 번째 전갈이 도착했다. 공개 시식 날짜가 정해졌다는 내용이었다.

봉투 안에는 참석자 명단도 들어 있었다.

맨 아래에는 골드미르 상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엘리제는 봉투를 접어 장부 사이에 끼웠다.

“좋네요. 이번에는 도둑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밤이 아니에요.”

그녀는 카운터 위의 압력계를 돌려 제자리에 걸었다.

“제가 초대한 자리에서 정식으로 상대해 주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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