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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11화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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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용의 눈물 타르트

중앙 연금술 학회 본부의 공식 초대장을 수락한 뒤 라 보나의 주방은 새로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작업대 위에는 단단한 흑단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겉면에는 붉은색 마력 봉인선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었다. 황실 감찰단과의 보급 계약에 따라 에드윈이 특별히 구해다 준 희귀 식재료였다.

엘리제가 은제 핀셋으로 봉인 매듭을 풀자 뚜껑이 천천히 열렸다.

상자 안쪽에는 솜뭉치에 싸인 붉고 울퉁불퉁한 열매 세 덩이가 담겨 있었다. 비늘처럼 돋아난 껍질 사이로 미세한 불꽃 입자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공녀님. 이게 정말 먹을 수 있는 열매인가요?”

아델이 두 손을 모은 채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목의 낡은 끈 안쪽에서 희미한 백색 마력이 일렁였지만 아델은 이전처럼 겁먹고 물러서지 않았다.

“남부 사막 화산지대에서 자라는 화염 속성 영물 드래곤 프루트예요. 제국에서는 불꽃 용과라고 부르기도 하죠.”

엘리제는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열매 하나를 집어 올렸다. 껍질 표면의 온도가 장갑 너머로 화끈하게 전해졌다.

“원래는 군용 폭약이나 고위 화염 마법 시약의 원료로 쓰는 고위험 영물이에요. 그냥 섭취하면 위장이 타들어 가거나 체내 마력이 폭발하죠.”

옆에서 찻잔을 닦던 마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폭약 원료를 카페 주방에 들이시면 어떡해요, 공녀님!”

“그건 일반 연금술사들이 분자 구조를 다룰 줄 몰라서 그래요.”

엘리제는 열매를 반으로 갈랐다. 핏빛처럼 붉은 과육 속에 까만 깨처럼 촘촘히 박힌 씨앗들이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핵심은 과육이 아니라 이 씨앗이에요. 씨앗 껍질 내부에는 고농도 열성 캡사이신 복합체와 농축된 화염 에센스가 결합되어 있어요. 이걸 그대로 가열하면 폭발하지만 지방 성분과 결합해 유화시키고 저온 분해 서클을 통과시키면 성질이 완전히 바뀝니다.”

엘리제는 머릿속으로 반응식을 그렸다.

과포화된 냉기 마력으로 신경계가 굳어버린 사람.

카일레온의 증상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최연소 소드 마스터로서 다루는 마력의 순도가 너무 높아 온몸의 마력선이 극저온으로 응집된 채 감각 경로를 틀어막고 있었다.

에그타르트나 백청 쿠키 같은 부드러운 순화제로는 일시적인 진통에 그칠 뿐이었다. 얼어붙은 거대한 빙산을 깨부수려면 강렬하면서도 통제된 고밀도 열 에너지가 마력선 안쪽까지 직접 침투해야 했다.

“아델. 마력 순화 결정을 가장 고운 입자로 빻아 줘요. 지름 0.1밀리미터 이하로 균일하게 갈아야 유화가 깨지지 않아요.”

“네, 공녀님!”

아델은 옥 맷돌을 잡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결정을 갈기 시작했다. 엘리제는 드래곤 프루트의 씨앗만을 정밀하게 분리해 유지방 버터가 든 유리 비커에 담았다.


본격적인 가공은 정밀한 화학 공정 그 자체였다.

엘리제는 작업대 위에 3중 나선형 연금 서클을 그렸다. 첫 번째 층은 발열 억제, 두 번째 층은 지용성 캡슐화, 세 번째 층은 마나 안정화 서클이었다.

비커 속의 버터가 천천히 녹으며 드래곤 프루트 씨앗을 감싸기 시작했다. 톡, 토독. 씨앗 속의 화염 마력이 튀어 오르며 붉은 스파크를 일으켰다.

“지금이에요. 아델, 순화 결정 분말을 3회에 걸쳐 투입해요.”

아델이 하얀 가루를 정확한 박자로 털어 넣었다. 가루가 닿는 순간 붉은 불꽃이 사그라들며 영롱한 루비빛 시럽 형태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동시에 주방 가득 매혹적인 향이 번졌다.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알싸하고 매콤한 향기 뒤로 진한 베리 향과 버터의 고소한 단내가 겹겹이 피어올랐다.

“맵싸한데…… 냄새가 정말 달콤해요.”

마리가 신기한 듯 코를 킁킁거렸다.

“이게 바로 매콤달콤한 에너지 크림이에요. 매운맛 분자가 혀끝 신경을 강렬하게 자극해 닫힌 감각을 깨우고 버터에 녹아든 화염 에센스가 마력선을 타고 들어가 얼어붙은 마력을 녹여내는 원리죠.”

엘리제는 미리 구워둔 타르트 쉘을 꺼냈다. 아몬드 가루와 통밀을 섞어 바삭하게 구워낸 틀 위에 부드러운 바닐라 커스터드 크림을 채우고 그 중앙에 붉은 드래곤 프루트 글레이즈를 듬뿍 올렸다.

마지막으로 가마의 마력 안정석 밸브를 조절해 상단 열선만을 가볍게 쬐어 표면을 캐러멜라이징했다.

타르트 표면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맑은 붉은빛을 띠었다.

‘용의 눈물 타르트.’

한 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며 입안 가득 맹렬한 생명력이 퍼져나가는 마력 활성 디저트였다.

엘리제는 완성된 타르트 네 개를 은제 트레이에 담으며 시계를 보았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예요. 다들 고생 많았어요.”

아델과 마리가 정리를 마치고 별저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그때였다.

딸랑— 쾅!

카페 입구의 문종이 거칠게 흔들리더니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동시에 매장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벽면에 설치된 마력 안정석들이 찌르륵 비명을 지르며 하얀 서리를 뿜어냈다.

“공녀님!”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엘리제의 뒤로 숨었다.

문간에 서 있는 것은 짙은 남색 망토를 두른 카일레온이었다. 하지만 평소의 단정하고 차가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은발은 땀과 서리로 젖어 있었고 흑요석 같은 눈동자는 통제력을 잃은 채 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카일레온은 벽을 짚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끝이 닿은 나무 기둥이 쩌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었다.


“카일레온 님!”

엘리제는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카일레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

“오지 마…… 마력이…… 제어가 안 돼.”

카일레온이 짓씹듯 뱉어냈다. 목소리는 얼음이 갈라지는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소드 마스터의 한계를 넘나드는 무리한 검기 사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포화된 냉각 마력이 체내 마나 코어에서 역류해 온몸의 혈관과 신경을 얼려붙이고 있었다.

“말하지 마세요. 숨 들이쉬고 제 손 보세요.”

엘리제는 카일레온의 손목을 낚아채듯 붙잡았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한기가 장갑을 뚫고 들어왔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아델, 마리!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서 안정석 스위치 올려요. 어서!”

두 사람이 주방으로 피신하자 엘리제는 카일레온을 부축해 가장 가까운 테이블 의자에 앉혔다. 카일레온의 입술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 감각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호흡이 얕아요. 지금 마력선이 전부 막혀서 폐까지 얼어붙고 있어요. 이대로 두면 심장이 멈춰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소리도…… 맛도…… 고통조차 무감각해져 간다.”

카일레온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극심한 통증의 단계를 지나 온몸의 신경이 죽어가는 무감각 증후군의 말기 발작이었다.

엘리제는 작업대로 달려가 방금 완성한 ‘용의 눈물 타르트’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입 벌려요. 씹을 힘이 없으면 삼키기라도 해요.”

엘리제는 타르트 한 조각을 잘라 카일레온의 파리한 입술 사이에 밀어 넣었다.

카일레온의 혀끝에 붉은 글레이즈와 타르트 조각이 닿았다.

처음 1초간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2초 뒤 혀끝에 닿은 드래곤 프루트 씨앗의 유지방 캡슐이 카일레온의 미세한 체온에 반응해 터져 나갔다.

화르륵!

혀 전체를 강타하는 강렬하고 찌릿한 매운맛이 번개처럼 신경계를 타고 뇌수를 직격했다.

“……윽?!”

카일레온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물리적 미각 자극이었다.

불꽃이 튀는 듯한 알싸한 매콤함 뒤로 눅진하고 달콤한 바닐라 커스터드 크림이 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고소하고 바삭한 타르트 시트가 씹히며 버터의 풍미가 폭발하듯 번져나갔다.

맵다. 달다. 그리고 뜨겁다.

“삼켜요! 마력을 밀어내지 말고 열기를 받아들여요!”

엘리제가 카일레온의 등을 받치며 명령조로 외쳤다.

카일레온은 반사적으로 타르트를 씹어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타르트 조각이 위장에 닿는 순간 순화된 화염 마력이 온몸의 경락을 따라 거대한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쩌저적!

카일레온의 어깨와 팔을 뒤덮고 있던 푸른 서리가 증발하며 하얀 수증기로 변해 피어올랐다. 얼어붙어 있던 마력선들이 온열 에센스에 녹아내리며 맹렬한 속도로 순환하기 시작했다.

“하…… 흣…….”

카일레온이 긴 숨을 토해냈다. 입안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파랗게 질려 있던 그의 뺨에 붉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얼음장 같던 손끝에 사람의 온기가 되살아났다.

탁자 위의 서리가 모두 녹아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카일레온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과 입술을 만졌다. 심장이 강하게 뛰고 있었다. 혀끝에는 여전히 기분 좋은 매콤함과 진한 단맛의 여운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이건…… 대체…….”

“용의 눈물 타르트예요.”

엘리제가 숨을 헐떡이며 의자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신의 냉각성 마력 응집을 녹이기 위해 화염 영물의 씨앗을 가공해 만들었어요. 통증을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열기로 막힌 길을 뚫어낸 거예요.”

카일레온은 붉은 루비빛이 도는 빈 접시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맛이 난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얼어붙어 죽어가던 감각이…… 전부 살아 숨 쉬고 있어. 매콤하고 달콤하며 지독할 정도로 따뜻하다.”

카일레온은 고개를 들어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단순한 손님이나 후원자를 넘어선 깊은 경외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대는…… 내게 기적을 먹이는군.”

“장사꾼에게 기적이란 말은 과분해요.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사 드신 겁니다.”

엘리제가 짐짓 퉁명스레 대꾸하며 헝클어진 붉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카일레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 뒤늦게 달려온 에드윈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카페로 뛰어 들어왔다.

“나리! 무사하십니까? 갑자기 마력이 요동치며 사라지셔서……!”

에드윈은 정상으로 돌아온 카일레온의 안색과 테이블 위의 빈 타르트 접시를 번갈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공녀님의 디저트였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에드윈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나리,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방금 별저와 카페 외곽을 순찰하던 감찰대원들이 수상한 자들을 포착했습니다.”

“수상한 자들이라니?”

카일레온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남부 최대 상단인 골드미르 상단의 밀정들입니다. 최근 라 보나에서 나오는 특수 연금술 디저트의 효능과 학회 초대장 소식을 듣고 주방 레시피와 재료 장부를 훔쳐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에드윈의 말에 엘리제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제 레시피를 훔치겠다고요?”

“공녀님의 레시피는 이미 단순한 과자가 아닙니다. 고위 마력 질환을 치료하고 기사들의 전투력을 회복시키는 국가급 전략 자산 취급을 받고 있어요. 귀족 상단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카일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는 이미 완벽하게 정돈된 소드 마스터의 위압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찰단을 배치해 쥐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잠깐만요.”

엘리제가 손을 들어 카일레온을 제지했다.

“가게 밖에서 싸움이 나면 내일 영업에 방해돼요. 그리고 남의 기술을 공짜로 훔치려는 도둑놈들은 제 방식대로 맞이해 줘야 제맛이죠.”

엘리제의 붉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반짝였다.

그녀의 시선이 주방 한구석에 놓인 고압 압력 밥솥과 반응성 연금 분말통으로 향했다.

화학공학도의 손에 쥐어진 고압 용기와 불안정한 시약들이 어떤 위력을 내는지 도둑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줄 시간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라 보나의 창밖으로 불길한 그림자가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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