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13화: 돌아갈 곳을 신청하는 법
재무부 개편 초안의 열람 기록은 한 줄뿐이었다.
열람 시각: 해시각 47분. 열람 직위: 공란. 접근 위치: 감찰단 회의실 서쪽 기록패.
로잘린은 기록패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공란이라니요?"
에드먼드가 기록패 위로 몸을 숙였다. 이안은 곧바로 보존 대장을 펼쳤다.
"기록패는 접속자의 신분을 직위와 이름으로 나눠 저장합니다. 이름을 숨겨도 직위는 남아야 합니다. 둘 다 비는 경우는 대리 권한을 발급하는 중간 단계뿐입니다."
로잘린은 개편 초안의 세 페이지를 떠올렸다. 인장 폐기 항목. 최종 승인선. 대리 결재표.
"열람된 쪽은 그 세 장뿐입니다. 회계 분류표와 환수 장부에는 접속 흔적이 없습니다."
이안의 말에 로잘린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누군가는 숫자를 훔쳐보려 한 것이 아니었다. 새 제도가 시작되면 자신의 손에서 사라질 권한이 어디인지 확인하려 한 것이다.
이사벨이 기록패의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무부 대리 권한도 승인 전에는 이름을 넣지 않고 직위만 임시로 열어 둡니다. 그 상태에서 문서를 읽었다면 승인 절차의 허점을 이용한 겁니다."
"범위를 아는 사람이 많습니까?"
"국장급 이상이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사용했는지는 모릅니다."
이사벨은 자신의 손목에 남은 기록용 마력 고리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아는 건 회계 숫자를 맞추는 방법이지 기록패를 조작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눠 말해 주셔서 고맙네요."
로잘린은 원본 로그를 에드먼드에게 건넸다.
"세 부를 복사하세요. 한 부는 봉인하고 한 부는 기록 보존함에 넣습니다. 나머지는 변경 감지용으로 이안 부단장과 함께 확인하세요."
"단장님은요?"
"저는 최종 승인만 봅니다. 열람 기록까지 제가 전부 붙잡으면 제도가 제 손을 떠나지 못해요."
말을 끝내자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에드먼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장님. 검진부터 받으셔야 합니다."
"기록을 마저—"
"기록은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단장님이 쓰러지면 책임선도 다시 단장님 한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로잘린은 대꾸하지 못했다. 자신 없이 돌아가는 조직을 만들겠다면서 자신이 없으면 아무도 일을 못 하게 만드는 건 모순이었다.
"좋아요. 베르딘을 부르세요."
황궁 의무실의 아침빛이 창턱에 닿을 무렵 베르딘은 로잘린의 맥박과 수면 기록을 확인했다.
"맥박은 안정됐습니다. 식사 기록도 나아졌고 수면 시간은 평균 여섯 시간에 가까워졌군요."
"그럼 업무 가능 판정을—"
"끝까지 들으십시오. 급성 위험에서는 벗어났지만 장시간 상시 대기 업무를 반복하면 재발합니다. 밤중 호출과 식사 시간 침범은 금지해야 합니다."
베르딘은 진료 기록에 조건을 적었다.
업무 가능. 단 상시 대기 금지. 하루 여섯 시간 수면과 식사 시간 보장. 정오 전 대면 보고 금지. 대리 결재 기록 유지.
로잘린은 문장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귀향 신청의 근거로 쓸 수 있습니까?"
"귀향 신청을 하실 생각입니까?"
"고향 영지로 돌아가 회복 기간을 보내고 인수인계가 끝나면 사직 절차를 밟을 겁니다."
베르딘은 진료 기록 아래에 서명했다.
"그렇다면 회복 상태와 상시 대기 금지 조건을 함께 제출하십시오. 반려되더라도 반려 사유가 남아야 합니다."
의무실 문이 열리고 칼릭스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누가 네게 귀향을 허가했지?"
"아직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제 건강 기록을 확인하시려면 열람 사유와 시각을 남겨 주십시오."
칼릭스의 붉은 눈이 베르딘에게 향했다.
"짐이 황제다. 의무실 기록을 보는 데 허가가 필요한가?"
"필요합니다. 황제든 다른 상급자든 같습니다. 건강 기록은 개인 감시 자료가 아니라 업무 제한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입니다."
로잘린이 먼저 대답했다.
칼릭스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열람 사유는 업무 조정 검토. 시각은 지금이다."
베르딘이 기록패에 내용을 입력했다.
"확인했습니다."
그제야 칼릭스는 봉투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동부 벨리아령에서 온 문서다. 네가 귀향을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오늘 오후까지 신청서를 제출하겠습니다."
"짐에게 말하는군."
"상사에게 보고하는 겁니다."
칼릭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봉투 안의 문서가 무엇인지 로잘린은 알 수 없었다.
감찰단 사무실로 돌아온 로잘린은 빈 문서 한 장을 책상 중앙에 놓았다.
제목은 동부 벨리아령 귀향 및 업무 이행 신청서로 적었다.
목적란에는 건강 회복을 위한 귀향 기간과 명목상 영지의 현황 확인을 분리해 적었다. 그 아래에는 특별 행정 감찰단의 대리 운영과 정식 사직 절차에 들어가기 위한 인수인계 일정을 붙였다.
이안이 신청서를 읽었다.
"귀향 신청에 인수인계 일정을 함께 넣으실 겁니까?"
"빼면 폐하께서 잠시 쉬다 돌아오라고 하실 테니까요. 돌아오는 날이 아니라 업무가 넘어가는 날을 적어야 합니다."
에드먼드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대리 운영표에 제 이름을 넣어도 됩니까?"
"기록 보존과 일일 보고를 맡으세요. 이안 부단장의 공동 확인을 받는 조건입니다. 단독 단장으로 적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할 수 있습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벨은 감시병이 서 있는 별도 책상에서 회계 분류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사벨 국장에게는 재무부 개편안 작성 책임을 첨부합니다. 최종 승인은 제가 맡고요."
"제가 도망치면요?"
이사벨이 물었다.
"협력 조건이 취소됩니다. 원본을 숨기거나 허위 진술을 하면 지위가 사라진다는 문구도 그대로 붙입니다."
로잘린은 신청서에 세 사람의 역할과 베르딘의 건강 판정서를 첨부했다.
그때 이안이 봉투 하나를 열었다.
동부 벨리아령: 2분기 세금 체납액 증가. 북쪽 수로의 수문 세 곳 폐쇄. 영지 대리인 공석 8개월.
로잘린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대리인이 공석이라고요?"
"명목상 대리인은 사직했고 후임 임명은 보류된 상태입니다."
"누가 보류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네요."
로잘린은 신청서의 목적란에 한 줄을 더 넣었다.
귀향 중 업무 지시가 발생할 경우 업무 범위와 기간을 별도 명령서로 분리하며 복귀 시점은 재협의한다.
에드먼드가 그 문장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면 정말 쉬러 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쉬러 가는 사람도 자기 시간을 지켜야 해요. 영지가 망가졌다고 해서 회복 기간까지 무상으로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로잘린은 신청서 끝에 서명했다.
칼릭스의 집무실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문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로잘린은 그 앞에 귀향 신청서를 올려놓았다.
칼릭스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말없이 읽었다. 그의 손가락이 베르딘의 판정서에서 대리 운영표로 이동했다.
"이안 레이너가 1차 확인권을 맡고 에드먼드 리스턴이 원본 보존을 맡는다. 이사벨 드 몬테르는 재무부 개편안을 작성한다. 너는 최종 승인만 한다."
"예."
"네가 없으면 업무가 늦어질 텐데."
"늦어지는 것과 멈추는 건 다릅니다. 멈추는 조직을 만들면 제가 평생 여기 있어야 합니다."
칼릭스는 기간란을 보았다.
"두 달. 너는 돌아온다고 적지 않았다."
"돌아와서 사직 절차를 밟는다고 적었습니다. 업무 복귀를 약속한 건 아닙니다."
그가 신청서를 찢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칼릭스는 문서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반려하실 거면 사유를 적어 주십시오."
"짐은 아직 반려한다고 하지 않았다."
칼릭스는 붉은 인장 대신 검토용 도장을 눌렀다.
황제 직속 검토 안건.
"왜 접수 도장이 아닙니까?"
"귀향 신청에는 확인할 것이 있다."
그때 문밖에서 마르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동부 벨리아령 긴급 현황 보고를 가져왔습니다."
마르셀이 문서철을 내려놓았다. 표지에는 체납. 수로. 대리인 공석.이 적혀 있었다.
칼릭스가 신청서와 문서철을 나란히 놓았다.
"귀향을 원한다면 네 영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황실 세금이 밀렸고 수문이 닫혔다. 대리인은 여덟 달째 없다."
"그래서 제가 쉬러 가는 겁니다. 그곳은 폐하의 행정 공백을 메우는 출장지가 아닙니다."
"짐은 출장을 명령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토 안건 옆에 이 문서철을 놓으셨죠."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잘린은 신청서의 추가 조건을 다시 가리켰다.
"업무 지시가 생긴다면 별도 명령서로 분리해 주십시오. 범위와 기간도 적고 대리 승인권도 명시해 주세요."
"네가 짐에게 수당을 요구하나?"
"휴식 중인 사람을 업무에 부르는 비용입니다. 제 시간을 공짜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적어 주실 수 있습니다."
칼릭스는 한참 동안 신청서를 바라보았다. 그는 결국 검토 도장 옆에 짧은 메모를 남겼다.
동부 벨리아령 현지 확인 후 허가 여부 결정.
"허가 여부를 현지 확인 뒤에 결정하겠다는 뜻입니까?"
"그곳에 네가 돌아갈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지 폐하께서 결정하십니까?"
칼릭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가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럼 안전을 확인한 뒤 보내 주십시오. 대신 제 귀향을 출장으로 바꾸지는 마십시오."
로잘린은 신청서 사본을 챙겨 집무실을 나섰다.
황실 기록패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동부 벨리아령 순행 검토 안건이 황제 직속 일정표에 등록되었습니다.
로잘린은 걸음을 멈췄다.
자신은 귀향을 신청했다. 그런데 황제의 일정표에는 순행이 등록되어 있었다.
뒤에서 칼릭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갈 곳이 어떤 곳인지 직접 확인하겠다."
로잘린은 기록패를 껐다.
"폐하께서 따라오시면 제 휴가는 출장으로 변합니다. 그 순간부터 조건을 다시 협상하겠습니다."
칼릭스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다만 마르셀에게 문서철을 넘기며 조용히 명령했다.
"동부 순행 검토 자료를 준비해라."
로잘린은 문밖에서 신청서 사본을 내려다보았다. 돌아갈 날짜와 조건은 종이에 남아 있었다.
그 종이 옆에는 황제의 출장 명령이 될지도 모르는 문서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