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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률 100% AI를 가진 스포츠 분석가6화

승률 100% AI를 가진 스포츠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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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숫자의 파문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도윤은 개찰구를 빠져나오며 화면을 켰다. 이번 달 카드 잔여 할부금 1,642,000원이 선명한 붉은 글씨로 떠 있었다. 첫 베팅 적중으로 연체는 막았으나 다음 결제일까지 남은 시간은 보름 남짓이었다.

그 아래로 서지태 기자의 메시지가 나란히 떠 있었다.

보내주신 해시와 시간 기록, 검증 완료했습니다.

경기 전 등록 시각과 후반 68분 변수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스포츠 데이터 포럼 '볼메트릭스' 전문 칼럼에 사전 검증 증거로 인용했습니다. 링크 확인해 보세요.

도윤은 링크를 누르려다 멈췄다. 사옥 회전문 앞에서 보안팀 직원 둘이 출입 카드를 일일이 대조하고 있었다. M-17 세션 재개 이후 보안 등급이 올라간 탓이었다.

게이트를 찍자 녹색 불이 들어왔다. 경비원은 도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가로막지는 않았다.

6층 분석팀 사무실 구석, 원래 문서 파쇄기가 놓여 있던 좁은 책상이 비어 있었다.

“강도윤 씨 자리는 저기야.”

임상무가 턱짓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외부 분석 TF 발령 공문은 오늘 중으로 결재 날 걸세. 일주일 동안 그곳에서 해외 비인기 리그 데이터를 전수 검사해. 원본 산출 로그 정리도 잊지 말고.”

책상 위에는 먼지 쌓인 모니터와 해외 3부 리그 경기 영상이 담긴 외장하드가 놓여 있었다. 사실상의 격리였다.

도윤은 묵묵히 개인 노트북을 꺼냈다. 오라클이 깔린 외장 암호화 볼륨은 가방 깊숙이 두었다. 여기서 보여 주어야 할 것은 합법적인 통계와 공개 데이터뿐이었다.

오전 열 시가 지났을 때 민서가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커피 마셔.”

민서는 파티션에 기대며 목소리를 낮췄다.

“알아냈어. 어제 사내 서버에 너보다 8분 먼저 등록된 선행 파일 있잖아. 해시가 완전히 같았던 그거.”

도윤은 마우스를 쥔 손을 멈췄다.

“어디서 올라온 거야?”

“사내망 스위치 포트를 역추적했어. 분석팀 내부망이 아니야. 8층 임원실 전용 게이트웨이 대역에서 올라왔어.”

8층은 대표이사실과 임원실만 사용하는 독립 서브넷이었다.

“임상무 자리인가?”

“단정은 못 해. 8층 공용 스위치를 거쳤거든. 하지만 실무진이 접근할 라인은 절대 아니야. 누군가 네 초안을 사내 게이트웨이에서 가로챘거나 작업 화면을 실시간으로 훔쳐보고 있었다는 뜻이야.”

“그리고 폐기된 LMX-admin 계정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는 거군.”

“응. 너를 도둑으로 몰든 리포트를 먼저 빼돌리든 하려고.”

민서의 말에 도윤은 어젯밤 오라클이 남겼던 문장을 떠올렸다.

다음 관측 대상: 내부 협력자.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라인업메트릭스 내부에서 M-17의 잔여 코드를 쥔 자가 실제로 숨어 있었다.

민서가 스마트폰을 꺼내 흔들었다.

“그것보다 지금 밖이 뒤집혔어. 서지태 기자가 올린 글 봤어?”


점심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도윤은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국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 데이터 및 전술 분석 커뮤니티 ‘볼메트릭스’ 메인 화면 상단에 붉은색 ‘BEST’ 마크가 박혀 있었다.

[전술/데이터] 해솔 vs 로엔, 역배당을 사전에 해부한 익명의 리포트 (검증 해시 첨부)

작성자는 스포츠 탐사 전문 필진으로 활동하는 서지태 기자의 공인 계정이었다.

게시글은 세 시간 만에 조회수 4만을 넘어섰고 댓글은 600개에 육박했다.

서지태는 도윤의 신원을 감췄다. 대신 경기 시작 50분 전 생성된 사전 리포트의 암호화 해시값과 블록체인 타임스탬프를 증거로 공개했다.

본문에는 도윤이 정리했던 통계가 명확하게 실려 있었다.

  • 해솔 타이탄스 골키퍼의 최근 코너킥 수비 시 전진 습관 (리그 평균 대비 전진율 43% 초과)
  • 로엔 유나이티드의 후반 윙어 교체 시 역습 전환율 (전반 대비 2.8배 상승)
  • 시장 배당 왜곡 구간과 후반 68분 세트피스 리스크 시나리오

댓글 창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 축구는수학이다: 단순 역배 찍기가 아니라 골키퍼 전진 타이밍까지 짚었네. 68분에 진짜 골키퍼 펀칭 미스로 들어갔잖아.
  • 빅데이터베터: 경기 전 해시 확인 완료. 위변조 불가능한 타임스탬프 맞음. 도대체 어떤 전문가가 쓴 거냐?
  • 축알못탈출: 사설 도박판 내부자가 미리 짠 판 흘린 거 아니냐? 어떻게 분 단위까지 맞혀.
  • 전술마니아: 헛소리 마라. 골키퍼 습관이랑 윙어 교체 타이밍을 통계로 풀었잖아. 조작이면 저런 전술 데이터를 왜 써? 순수 데이터 분석의 승리다.
  • 라인브레이커: 며칠 전 농구 아크 시티전 때 4점 차 역전 정확히 맞고 배당 급변했던 그 사람 아니냐? ‘골든 메트릭스’ 떴다.

“골든 메트릭스?”

도윤이 중얼거리자 민서가 엷게 웃었다.

“커뮤니티 사람들이 벌써 별명까지 붙였어. 지난번 농구 경기 배당 급변이랑 이번 경기를 같은 사람 작업으로 묶어서 추적하더라.”

“일이 너무 커졌어.”

도윤의 등줄기에 서늘한 긴장이 흘렀다.

대중의 관심은 양날의 검이었다. 통계적 정당성을 증명하는 방패가 되지만 감춰야 할 오라클이 드러날 위험도 커졌다.

민서가 화면을 넘겼다.

“좋은 점도 있어. 사설 배팅방 브로커들이 이 리포트 작성자를 찾으려고 혈안이 됐대. 그 말은 사내에서 임상무가 널 함부로 징계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야. 외부에서 인정받은 분석가를 자르면 회사만 난처해지니까.”

“임상무는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설 사람이 아니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머니에서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임상무 상무] 강도윤, 지금 즉시 6층 소회의실로 올라와.


소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종이 뭉치가 테이블 위로 내리꽂혔다.

“이게 뭔가!”

임상무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볼메트릭스 게시판 인쇄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회사 자산을 가지고 밖에서 쇼를 해? 계약 종료를 유예해 줬더니 인터넷에서 스타 놀이나 하고 있어?”

도윤은 종이들을 차분히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쇼를 한 적 없습니다.”

“그럼 이 글은 뭔데! 자네가 어제 회의실에서 내민 자료와 똑같잖아! 회사 기밀 유출이야. 업무상 배임에 비밀유지 서약 위반이라고!”

임상무의 호통이 회의실을 울렸다.

도윤은 흔들림 없이 임상무의 시선을 마주했다.

“임상무님. 그 게시글에 우리 회사 고유 코드나 알고리즘이 단 한 줄이라도 있습니까?”

“뭐?”

“출전 명단은 연맹 공식 자료입니다. 골키퍼의 전진 성향과 실점 장면은 방송 영상 캡처입니다. 로엔의 역습 성공률 역시 누구나 열람 가능한 공공 스포츠 통계에서 추출했습니다.”

도윤은 인쇄물 첫 장을 짚었다.

“회사의 독점 지적재산권이나 비공개 API는 쓰지 않았습니다. 분석관 개인의 전술 해석과 공개 통계 가공물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기밀 유출이 됩니까?”

“말장난하지 마! 회사의 시설을 이용해 만든 분석물은 회사의 소유야! 자네가 개발했다는 그 산출 모델 원본을 지금 당장 제출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부로 대기발령 내리고 형사 고소할 테니까!”

임상무가 책상을 내리쳤다.

도윤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형사 고소를 하신다면 저작권 침해와 배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정보보안실 로그 전체를 경찰에 제출해야겠군요.”

“……뭐라고?”

“어제 내부 회의 때 확인된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초안을 저장하기 8분 전 사내 서버에 동일한 해시의 파일이 먼저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임상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윤은 틈을 주지 않고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파일이 업로드된 단말의 IP를 확인했습니다. 분석팀이 아니라 8층 임원실 전용 게이트웨이더군요.”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임상무의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 붉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며 당혹감이 스쳤다.

“자, 자네가 그걸 어떻게…….”

“관리자 계정인 LMX-admin을 도용해 사내 직원의 미완성 리포트를 가로채고 이를 임원실 네트워크를 통해 서버에 심어 둔 인물이 누구인지 정보보안실에 정식 감사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제가 고소를 당한다면 그 감사 자료도 법원에 제출되겠죠.”

임상무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런 반박도 내뱉지 못했다.

8층의 개입이 공론화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닥칠 터였다.

무거운 침묵 끝에 임상무가 서류들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모았다.

“……나가 봐.”

“외부 분석 TF 업무는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나가 보라고 했어!”

도윤은 정중하게 목례를 하고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등 뒤로 임상무가 거칠게 물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숫자로 만든 방패에 이어 상대의 목을 겨눌 작은 칼날 하나를 쥐게 된 순간이었다.


퇴근 후 어두운 원룸에 들어섰을 때 온몸의 긴장이 풀려나갔다.

도윤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암호화 외장 드라이브를 연결하자 검은 콘솔 창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ORACLE_MATCH_RESULT v0.9b

누적 관측 비용: 5%

상태: 대기 중

커서 아래에 깜빡이는 문장은 여전히 같았다.

다음 관측 대상: 내부 협력자.

“내부 협력자라…….”

도윤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8층 임원실 서브넷을 쓴 자가 오라클이 지목한 내부 협력자일까? 아니면 하우스와 손을 잡은 또 다른 배신자일까?

엔터를 눌렀으나 콘솔은 침묵했다. 5%라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한 오라클은 더 이상의 정보를 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 휴대전화 화면이 밝아졌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스팸인가 싶어 넘기려던 도윤의 눈에 문자메시지의 첫 문장이 꽂혔다.

[에이펙스 캐피탈] 강도윤 분석가님.

도윤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굳었다.

볼메트릭스에 올라온 해솔-로엔전 리포트, 대단히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국내 프로 구단이나 사설 도박판 따위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정밀한 분산 모델이더군요.

라인업메트릭스 같은 영세한 데이터 업체에서 계약직 신분으로 썩기에는 그 숫자들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회사 밖에서 진짜 판을 굴려볼 생각이 있으시다면 연락 주십시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가장 큰 자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에이펙스 캐피탈 대표 백지혁.

문자를 다 읽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이 책상 유리를 날카롭게 흔들었다.

백지혁.

합법 스포츠 펀드와 해외 베팅 데이터 솔루션을 운용하며 시장의 거물로 군림하는 인물. 사설 도박의 음지가 아닌 제도권 자본의 최정점에 서 있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도윤은 떨리는 숨을 삼키며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오라클의 검은 화면 속에서 녹색 커서가 고요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세상의 장막이 걷히고 상상해 본 적 없는 거대한 판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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