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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15화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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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분유 찬장에 드리운 그림자

황궁의 첫 종이 울리기 전에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황실 주방 뒷문 앞의 당직 시종은 낡은 나무 표찰을 확인하고 하품을 삼켰다.

“새벽 우유 담당입니다.”

회색 앞치마를 입은 주방 보조가 고개를 숙였다. 등불 아래 표찰 앞면에는 황실 주방의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오늘부터 기록이 세 배로 늘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첫 종 전에 재료를 살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당직 시종은 표찰을 돌려 뒷면을 확인하지 않았다. 새벽마다 드나들던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할 만큼 깨어 있지도 않았다.

철문이 열렸다.

주방 보조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늦췄다. 조리장과 견습들이 머무는 앞쪽이 아니라 가장 안쪽의 작은 찬장으로 향했다. 유아용 분유와 약재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찬장 앞에 선 그는 품에서 가느다란 철사를 꺼냈다. 자물쇠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찰칵.

문이 열리자 은빛 통과 흰 분유 봉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완성된 우유죽에는 붉은 납 봉인이 붙고 지정 시식관이 먼저 맛을 본다. 그가 노리는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재료였다.

주방 보조는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병 안의 가루는 설탕처럼 희었다. 그러나 등불을 기울이면 가루 깊은 곳에서 검은 실 같은 것이 천천히 꿈틀거렸다.

“먹고 나서야 알아차리게 될 거다.”

그가 마개를 비틀었다.

그 순간 유리병을 쥔 손목에서 검은 섬유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섬유 끝에는 반쯤 열린 눈과 세 갈래 선이 매듭처럼 엮여 있었다.

주방 보조는 잠시 그 문양을 내려다보았다. 곧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은빛 통의 뚜껑을 열었다.


에일린은 꿈속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달콤한 우유 냄새 사이에 쇠를 핥은 듯한 비릿함이 섞여 있었다. 코끝이 따끔했고 목 안쪽이 까끌까끌했다.

“으…….”

잠에서 깬 에일린은 이불을 걷어차며 몸을 뒤척였다. 옆방의 마리안이 곧장 달려왔다.

“아기씨?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에일린은 대답 대신 침대 옆에 놓인 분유통을 가리켰다.

“맘마…… 아야.”

마리안은 통을 집으려다가 멈췄다. 어젯밤부터 카시안이 식재료 반입 시각까지 적으라고 명한 뒤 분유통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물건이었다.

“이건 새벽에 도착한 원재료입니다. 봉인을 확인하고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아야.”

에일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작은 손이 허공을 휘젓다가 분유통을 밀어냈다.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카시안이었다. 그는 밤새 소공녀 궁 회랑을 확인하고도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냐.”

카시안은 에일린의 창백한 얼굴부터 살폈다. 그리고 침대 옆의 통으로 시선을 옮겼다.

“린린이 맘마 싫대.”

“싫은 것이냐. 아니면 아픈 것이냐.”

“아야. 냄새 아야.”

카시안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통에 손을 대지 않고 리세를 불렀다.

“어젯밤 주방에서 들어온 원재료의 기록을 전부 가져와라. 봉인은 건드리지 말고.”

“예, 전하.”

리세가 달려나가자 카시안은 에일린을 품에 안았다. 아기를 안은 팔에는 힘이 들어갔지만 목소리는 최대한 낮고 침착했다.

“괜찮다. 오빠가 확인하마.”

에일린은 그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몸 안쪽에서 간질간질한 기운이 올라왔다. 아빠의 폭주나 오빠의 검붉은 마력과는 달랐다. 차갑고 끈적한 무언가가 아주 가까이에서 손을 뻗는 느낌이었다.

에일린의 손끝이 분유통에 닿았다.

파앗.

얇은 은빛이 손가락 사이에서 번졌다. 통의 표면에 붙은 흰 가루 한 점이 검게 변하더니 딱딱하게 굳었다.

카시안은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마리안. 아무도 이 방에 들이지 마라. 리세는 바르도 기사장에게 즉시 사람을 보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아직 모른다. 그래서 누구도 통을 옮기지 않는다.”

그는 에일린의 머리를 품 안으로 깊게 감쌌다. 카시안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아프다고 했으니 믿는다.”

곧 리세가 기록표를 들고 돌아왔다. 종이에는 새벽 우유 담당자의 이름과 반입 시각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칸의 글씨가 앞부분과 달랐다.

카시안은 기록표를 한 장씩 넘겼다.

“이 담당자의 서명이 어디에 있지?”

“주방 당직표에는 같은 이름이 없습니다.”

리세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시안은 에일린을 한 팔로 받친 채 허리의 검을 뽑았다.

“바르도에게 전해라. 주방 뒷문을 닫고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황실 주방 안쪽에서는 유리병의 마개가 반쯤 열려 있었다.

주방 보조는 은빛 통 가장자리에 가루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런데 복도 저편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닫아라! 주방 뒷문을 봉쇄한다!”

그는 혀를 찼다. 가루를 통 안에 뿌리는 대신 병을 움켜쥐고 몸을 돌렸다. 앞쪽으로 달아나면 기사들과 마주친다. 그는 식재료 상자가 쌓인 좁은 통로로 파고들었다.

바르도 기사장이 가장 먼저 주방에 들이닥쳤다.

“모든 출입구를 막아라. 조리장과 견습들은 그 자리에서 손을 보이고 움직이지 마라.”

불안에 질린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파울 조리장은 창백한 얼굴로 반 걸음 나섰다.

“기사장님. 새벽 우유 담당자는 제가 부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들였지?”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카시안이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품에는 에일린이 안겨 있었다.

“전하. 황녀 전하를 이곳에 데려오시면 안 됩니다.”

“내가 데려온 것이 아니다. 저자가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온 것이다.”

카시안은 에일린의 얼굴을 가슴에 묻은 채 통로를 살폈다. 작은 손이 그의 제복을 당겼다.

“저기…….”

에일린의 손가락이 식재료 상자 뒤를 가리켰다.

상자 하나가 움직였다.

“잡아!”

바르도의 외침과 함께 기사가 달려들었다. 회색 앞치마의 그림자가 상자를 걷어차며 좁은 통로를 빠져나왔다. 바닥에 금속 쟁반이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카시안은 에일린을 품에 안은 채 그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침입자는 짧은 칼을 꺼냈다. 칼끝이 카시안의 목을 향했다. 하지만 황태자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이를 내려놓으면 살려 주겠다는 표정이군.”

“…….”

“내 동생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용기는 없나 보지.”

카시안이 한 걸음 내디뎠다. 침입자는 칼을 휘둘렀지만 검집에 막혔다. 카시안은 칼날을 밀어내고 상대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침입자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퍽!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기사들의 시야가 순식간에 가려졌다.

“전하!”

바르도가 외쳤다.

카시안은 에일린의 얼굴을 망토로 감싸고 뒤로 물러났다. 연기 속에서 발소리가 두 번 울렸다. 한 번은 북쪽 창고 쪽이었다. 다른 한 번은 천장 가까운 환기구 쪽이었다.

“위다!”

바르도가 활을 들어 쏘았지만 화살은 환기구 철망만 꿰뚫었다. 검은 그림자는 이미 좁은 틈으로 사라진 뒤였다.

연기가 걷히자 바닥에는 찢어진 검은 섬유와 나무 조각이 남았다. 카시안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표찰의 뒷면이었다.

앞면에 찍힌 황실 주방 인장과 달리 뒷면 번호는 먹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현 당직 명부에는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다.

“이건…….”

바르도가 이를 악물었다.

카시안은 유리병을 발견한 기사에게 손짓했다. 병의 마개에는 붉은 봉랍 조각이 붙어 있었다. 황실 문서 봉인에 쓰는 것과 같은 색이었다.

“봉랍까지 구할 수 있는 자가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어린아이 같은 분노가 사라졌다. 대신 칼날처럼 차가운 결심이 남았다.

에일린은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연기 냄새에 눈물이 맺혔다.

“오빠…….”

“괜찮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카시안은 에일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뒤늦게 달려온 레오하르트에게 아이를 넘기지 않았다.

황제는 주방의 어지러운 광경과 아들의 굳은 얼굴을 한꺼번에 보았다.

“무슨 일이냐.”

“원재료에 손을 대려던 자가 있었습니다. 도망쳤습니다.”

“에일린은?”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레오하르트의 적안이 유리병으로 향했다. 검은 마력이 주방 전체를 짓누를 듯 솟구쳤다.

에일린은 본능적으로 작은 손을 뻗어 황제의 손가락을 잡았다.

“아빠. 화내지 마.”

살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레오하르트의 눈빛은 더 깊고 차가워졌다.

“누가 내 딸의 음식에 손을 댔는지 밝혀라.”

바르도와 기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명을 받듭니다.”

레오하르트는 파울을 돌아보았다.

“가루의 정체를 확인하되 흔적을 훼손하지 마라. 주방에 있는 모든 기록과 재료를 봉인한다. 이 일은 황제 직속 비밀 수사로 처리한다.”

“폐하. 그자는 내부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새벽 담당의 교대 시간도 알고 있었고 원재료가 들어오는 위치도 알고 있었습니다. 표찰 뒷면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레오하르트는 아무 말 없이 나무 조각을 받아 들었다. 뒷면에 남은 세 갈래 선의 일부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드러났다.

그 문양은 은제 방울 안쪽에서 보았던 것과 닮아 있었다.

“이 표찰과 섬유를 누구에게도 보이지 마라.”

“폐하?”

“이미 한 번 같은 문양을 보았다.”

레오하르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오르딘 후작의 사라진 시종과 동쪽 별궁의 창가에 남은 검은 섬유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질지도 몰랐다. 아직은 의심일 뿐이었다. 섣불리 이름을 부르면 진짜 손이 다시 숨어 버릴 것이다.

마리안이 에일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리세는 바닥에 떨어진 분유통을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

“제가 봉인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네 잘못이 아니다.”

에일린은 리세의 손가락을 잡았다. 아까부터 손끝에 남은 은빛이 희미하게 빛났다.

“리세 안 아파.”

“예. 저는 괜찮습니다.”

리세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의관이 유리병의 가루를 살핀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독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기에게 먹이면 강한 경련과 호흡 곤란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성 물질입니다.”

레오하르트의 손가락이 움켜쥐어졌다.

“단정할 필요 없다. 내 딸에게 먹이려 한 순간부터 죄는 충분하다.”

카시안은 에일린의 손을 확인했다. 작은 손가락 끝이 조금 창백해져 있었다.

“에일린은 이 가루를 만지고 정화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아이가 직접 확인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하려 하느냐.”

“원재료를 들이는 순간부터 두 명의 검수관과 한 명의 기록관이 입회하게 하겠습니다. 표찰은 앞면과 뒷면을 모두 확인하고 교대자가 직접 얼굴을 대조합니다. 소공녀 궁에 도착하기 전까지 봉인을 풀지 않습니다.”

레오하르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의 모든 식재료에도 적용해라. 그리고 오늘 밤부터 내전 회랑의 경비를 두 배로 늘린다.”

“그러면 적은 다른 곳을 노릴 겁니다.”

카시안의 말에 레오하르트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서 네가 내 곁에 있어야 한다.”

“에일린 곁에 있겠습니다.”

“둘 다 지킨다는 뜻으로 들어라.”

두 붉은 눈이 잠시 맞부딪쳤다. 이번에는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에일린은 두 사람의 손을 각각 잡았다.

“아빠도. 오빠도. 가치.”

레오하르트의 표정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카시안은 에일린의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

“그래. 같이 지킨다.”

주방 밖에서는 첫 종이 울렸다. 새벽을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황궁 전체로 퍼졌다.

그러나 황제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이미 새로운 보고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오르딘 후작의 시종을 추적하던 병사가 발견한 검은 매듭에 대한 기록이었다.

보고서 마지막 줄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같은 문양이 궁정국 인장 보관실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레오하르트는 그 문장을 읽고 조용히 종이를 접었다.

에일린의 식사를 노린 손은 주방에서 달아났다. 하지만 그 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이제 황궁 한가운데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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