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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14화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폭군의 수양딸로 환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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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오빠의 과보호가 시작됐다

마력 폭풍이 걷힌 연무장에는 부서진 돌가루 냄새만 남았다.

카시안은 에일린을 품에 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팔에 힘을 주면 작은 몸이 부서질 것 같았고 힘을 풀면 다시 붉은 폭풍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전하. 황녀 전하를 살펴야 합니다."

황실 의관이 다가왔지만 카시안은 에일린을 내주지 않았다.

"여기서 보시오."

"침상에 눕혀야 맥을 정확히 짚을 수 있습니다."

카시안의 적안이 서늘해졌다. 바르도 기사장이 급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도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검자루를 지나치게 세게 쥔 카시안의 손바닥은 길게 찢어져 있었다. 손등에도 폭주한 마력이 할퀸 붉은 흔적이 선명했다.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니다."

레오하르트가 굳은 얼굴로 두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옆 의무실을 비워라. 오늘 연무장에서 본 것과 들은 것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마라."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카시안은 에일린을 직접 안고 의무실로 향했다. 침상에 눕히려는 순간 에일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으응…… 오빠?"

"여기 있다."

카시안은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에일린은 흐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만큼 온몸이 무거웠다.

'또 배터리가 바닥났네.'

레오하르트의 발작을 잠재웠을 때보다는 나았지만 몸 안이 텅 빈 느낌은 똑같았다.

의관이 에일린의 맥과 체온을 살핀 뒤에야 굳은 표정을 풀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다만 기력이 지나치게 소진되었습니다. 오늘은 따뜻한 회복식을 먹고 푹 쉬셔야 합니다."

"정말 괜찮은 것이냐?"

카시안이 재차 묻는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서 피가 뚝 떨어졌다.

에일린은 그 손을 가리켰다.

"오빠도 아야."

"나는 괜찮다."

"안 갠차나. 피 나."

카시안이 치료받지 않으면 자신도 눕지 않겠다는 듯 에일린은 그의 제복 깃을 붙잡았다.

"오빠 약. 린린 코 자."

카시안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자신 때문에 모든 힘을 쏟아낸 아이는 깨어나자마자 그의 상처부터 걱정했다.

결국 카시안은 침상 옆 의자에 앉아 붕대를 감았다. 에일린은 의관의 손길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눈을 감았다.

잠에 빠지기 직전 말랑한 손이 카시안의 붕대 감긴 손가락을 꼭 붙잡았다.

카시안은 그 손을 내려다보며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했다.


에일린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마마?"

몸을 일으키자마자 세 사람이 동시에 달려왔다.

"아기씨!"

"공주님, 천천히요!"

"움직이지 마라."

마리안과 리세 사이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카시안이었다.

카시안은 에일린의 등 뒤에 방석을 받치고 담요를 턱밑까지 끌어 올렸다. 비뚤어진 끝까지 반듯하게 맞췄다.

에일린은 달라진 침실을 둘러보았다. 탁자 모서리에는 두툼한 천이 감겨 있었고 카펫의 주름은 자로 잰 듯 펴져 있었다. 침대 옆 나무 말 장난감도 사라졌다.

"말 어디써?"

"모서리가 뾰족해서 치웠다."

"곰은?"

"단추가 떨어지면 삼킬 수 있다. 새것으로 바꾸게 했다."

리세가 웃음을 참으며 속삭였다.

"황태자 전하께서 카펫 아래와 회랑 근무표까지 직접 살피셨어요."

차갑고 까칠하던 황태자는 어디로 갔을까. 눈앞에는 동생 주변의 먼지 한 톨과도 결투할 기세인 과보호 오빠가 있었다.

'입사 첫날부터 이 정도 복지를 받았으면 전생에도 과로사는 안 했겠어.'

좋기는 했다. 그래도 계속 담요 속에서 살 수는 없었다.

에일린은 두 팔을 뻗었다.

"린린 내려가. 걸어."

"안 된다. 걷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안 넘어져!"

"다섯 걸음 뒤에 넘어졌다고 들었다."

마리안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내 걸음마 인사 평가까지 보고받았어?'

에일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망울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오빠아. 린린 다리 튼튼해."

카시안의 철벽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 손을 잡고 두 걸음만 걷는 거다."

에일린은 카펫 위에 내려서서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번째 발을 내밀려는 순간 카시안이 곧장 안아 올렸다.

"두 걸음이라고 했다."

"치이."

에일린은 볼을 부풀리다가 멈췄다. 자신을 받쳐 든 카시안의 붕대에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오빠! 앉아! 약!"

"이 정도는 정말 괜찮다."

"안 돼. 오빠 말 안 들어."

에일린이 단호하게 소파를 가리켰다. 리세가 새 붕대와 약을 가져오자 카시안은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치료가 끝난 뒤 에일린은 그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렸다.

"가치 쉬어."

"나는 너를 지켜야 한다."

"여기서 지켜."

반박할 말이 사라진 카시안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에일린도 만족스럽게 그의 팔에 기대앉았다.

곧 작은 하품과 나직한 숨소리가 나란히 방을 채웠다.

마리안은 두 아이의 무릎 위에 담요 한 장을 더 덮었다. 늘 혼자 검을 들고 서 있던 황태자가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는 모습은 그녀에게도 낯설었다.


오후가 되자 황실 주방에서 회복식이 도착했다.

따뜻한 우유죽과 으깬 과일 그리고 손가락만 한 꿀과자가 은쟁반에 놓여 있었다.

카시안은 쟁반을 내려놓으려는 시종을 막았다.

"누가 만들었지?"

"궁중 조리장 파울이 직접 조리했습니다."

"봉인을 보여라."

시종은 덮개에 붙은 붉은 납 봉인을 내밀었다. 카시안은 문양과 기록표의 필체를 대조했다.

뒤따라온 파울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지정 시식관이 같은 솥의 우유죽을 먼저 맛보았습니다. 반 각 동안 이상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조리한 자와 운반한 자를 따로 기록해라. 식재료가 들어온 시각도 남긴다."

문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언제부터 소공녀 궁의 식사 규정을 정했지?"

레오하르트였다.

카시안은 에일린 앞을 지킨 채 물러나지 않았다.

"오늘부터입니다."

"황태자의 오후 일정은 서부 사절단 접견일 텐데."

"미루었습니다. 에일린보다 중요한 사절은 없습니다."

똑같이 붉은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에일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두 분 모두 사랑은 감사한데 밥부터 주시면 안 될까요?'

레오하르트가 먼저 파울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록은 세 부로 만들어라. 주방과 소공녀 궁에 하나씩 두고 나머지는 황제 집무실로 가져와라."

"명을 받듭니다."

카시안이 죽 그릇을 들자 레오하르트가 반대편에서 붙잡았다.

"놓아라. 내가 먹인다."

"아버지는 집무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사절까지 미룬 네가 할 말은 아니군."

두 사람이 그릇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맞섰다.

"린린 밥!"

작은 외침에 두 손이 동시에 멈췄다.

레오하르트가 죽을 한 숟갈 떠서 식힌 뒤 에일린에게 먹였다. 카시안은 입가에 묻은 죽을 천으로 닦아 주었다.

에일린은 꿀과자를 반으로 갈랐다. 한 조각은 레오하르트의 입에 밀어 넣고 다른 한 조각은 카시안에게 내밀었다.

"아빠도. 오빠도. 가치 머거."

두 사람 모두 딸과 동생이 내민 과자를 거절하지 못했다.

레오하르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카시안은 괜히 빈 접시를 정리했다. 조금 전까지 팽팽하던 방 안의 공기가 달콤한 꿀 냄새 속에서 풀어졌다.

'팀 내 갈등은 역시 간식으로 중재하는 게 최고지.'

에일린은 흐뭇하게 우유죽을 받아먹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카시안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침대 옆에 앉아 에일린의 이불 끝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에일린은 졸린 눈으로 붕대 감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오빠도 코 자."

"네가 잠들면 간다."

에일린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그의 손등을 토닥였다.

"오빠 조아. 아프지 마."

카시안의 입술이 굳었다.

"다시는 네가 나를 구하게 하지 않겠다. 내가 너를 지킬 거다."

에일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가치."

"뭐라고?"

"오빠랑 린린 가치 지켜."

카시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한쪽이 목숨을 던져 다른 한쪽을 지키는 것이 가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일린은 폭풍 속에서도 지금 이 침대 위에서도 그의 손을 먼저 잡았다.

카시안은 천천히 몸을 숙여 에일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래. 같이 지키자."

안심한 에일린은 곧 잠에 빠졌다.

카시안은 작은 손이 제 손가락을 놓은 뒤에야 일어났다. 문밖의 기사에게 경계를 늘리고 주방 근무 명부를 받아 두라고 지시했다.

소공녀 궁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같은 시각 황궁 주방 뒷문에서는 낯선 그림자가 움직였다.

"새벽 우유 담당입니다."

회색 앞치마를 두른 주방 보조가 나무 표찰을 내밀었다. 황실 주방 인장이 찍힌 표찰은 모서리가 닳아 오래 쓴 물건처럼 보였다.

졸린 당직 시종은 앞면만 등불에 비춰 보았다. 뒷면 번호와 교대 명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첫 종 전에 준비를 끝내. 오늘부터 기록이 세 배로 늘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 꺼진 주방 안쪽에는 유아용 분유와 약재를 보관하는 작은 찬장이 있었다. 주방 보조는 망설임 없이 그 앞에 섰다.

검은 소매가 걷히자 손바닥만 한 유리병이 나타났다. 병 안에는 설탕처럼 희고 고운 가루가 들어 있었다.

"완성된 음식을 살핀다면 그 전에 넣으면 되지."

가느다란 도구가 자물쇠 안으로 미끄러졌다.

찰칵.

보조는 다음 날 첫 분유에 쓰일 은빛 통을 찾아냈다.

그리고 유리병의 마개를 천천히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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